정답은 ‘없다’. 11월1일로 단통법 시행 한 달이 됐다. 하지만 이동통신 시장의 이해관계자 어느 쪽도 반기지 않는다. 시행 초기에는 ②번, 특히 그중에서도 삼성전자가 ‘공공의 적’이었다. 애초 이통사와 제조사가 각각 보조금을 얼마씩 지급하는지를 투명하게 공개하자는 ‘분리공시제’가 시행될 예정이었다가, 법 시행을 일주일 앞두고 무산된 탓이다. 삼성전자의 로비 때문에 반쪽짜리 단통법으로 전락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단언컨대 통신사를 위한 법’그러다가 점점 ①번이 미움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단통법이 ‘단언컨대 통신사를 위한 법’의 줄임말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이통사가 예전보다 보조금을 찔끔 내놔 마케팅 비용은 아끼면서, 정작 고가 요금제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이유에서다. ②번과 ③번은 휴대전화가 잘 팔리지 않는다고 아우성친다. ①번만을 위한 단통법을 폐지하자고도 주장한다. ①번도 하루 평균 가입자 수가 대폭 줄었으니, 꼭 성공한 장사만은 아니다. ④번은 단통법이 아니라 ‘호갱법’이라고 분통을 터뜨린다. ①번이 예전보다 휴대전화 보조금을 많이 풀지 않고, ②번이 휴대전화 출고가를 낮추지도 않고 있어서 결국은 소비자만 비싼 휴대전화를 사게 생겼다는 불만이다.
만약 ‘⑤ 정부’라는 항목을 추가하면, ⑤번이 가장 정답에 가깝다.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지난 10월30일 단통법 시행 효과를 분석한 자료를 내놨다. 우선 중고폰으로 이동통신 서비스에 가입하는 이용자가 10월1~28일 평균 하루 5631건으로, 9월(2916건)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났다. 보조금을 안 받는 고객은 요금제 12% 할인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 덕분이다. 또 중저가 요금제 가입 비중이 9월 평균 29.4%에서 한 달 만에 48.8%로 껑충 뛰었다. 정부는 알뜰한 통신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했다.
류제명 미래부 통신이용제도과장은 “십수 년간 왜곡되었던 이동통신 시장이 정상화되는 과정이다. 초기에 시장이 위축되는 등 이해관계자들의 적응 과정이 필요했지만, 이통사나 제조사가 국민의 불만에 적극 대응하지 않으면 신뢰 회복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이 시행되자마자, 폐지 또는 개정 논란이 달아오르는 분위기는 분명 기형적이다. 하나의 법을 둘러싸고 이처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고, 또 각 집단별로 상호 교차방정식이 복잡했던 적이 또 있었을까.
단통법 시행 1막은 이통사-정부 vs 제조사, 정확히는 삼성전자 사이의 힘겨루기였다. 분리공시제가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 이통사와 정부(미래부·방통위)가 단통법 시행 효과가 기대에 못 미치는 이유를 삼성전자의 분리공시제 ‘어깃장’ 탓으로 돌리자, 삼성전자는 이통사 배만 불리는 고가 요금제가 더 심각한 문제라며 역공에 나섰다. 논쟁은 2막으로 접어들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새누리당의 배덕광·심재철 의원, 새정치민주연합 최민희 의원 등이 분리공시제를 포함한 단통법 개정안을 최근 잇따라 발의했다. 최대 34만5천원으로 제한된 보조금 상한제를 아예 없애버리자는 조항도 일부 의원의 개정안에 포함됐다.
진단보다 처방이 먼저인 상황이통 3사와 유통 대리점들은 아예 서로 다른 배를 탔다.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는 10월30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집회를 열어 ‘단통법 폐지’를 요구했다.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보조금의 절대적 액수가 줄어들어 휴대전화 시장 자체가 얼어붙었다는 것이다. 이틀 전인 10월28일, 국회 토론회에 토론자로 나온 장정환 삼성전자 상무는 “휴대폰이 정말 안 팔린다”고 토로했다. 이 대목에서만은 제조사-유통업체 vs 이통사라는 새로운 전선이 형성됐다. 휴대전화가 안 팔린다는 위기의식이 공통분모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같은 입장인 것처럼 보이는 이통 3사 사이에도 미세한 차이가 있다. 단통법이라는 큰 뿌리에서 시작된 논의 주제는 크게 3가지 줄기로 뻗어나간다. 분리공시제, 요금인가제, 보조금 상한제 폐지 등 서로 다른 논쟁점이 톱니바퀴처럼 함께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이통 3사 가운데 가장 후발주자인 LG유플러스는 단통법 때문에 5(SKT) 대 3(KT) 대 2(LG유플러스)의 시장 구도가 굳어버릴까봐 걱정이다. 강학주 LG유플러스 상무는 “일부에선 단통법 폐지의 대안으로 요금인가제 폐지를 언급하는데 이건 경쟁 원칙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50% 이상 시장을 점유한 SKT만 정부에서 신규 요금제 사전 인가를 받도록 돼 있는데, 이게 허물어지면 SKT가 제멋대로 요금제를 주무를 수 있다는 이유다. “법 시행 초기 현상은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명현 현상일 수 있다. 지금은 진단보다 처방이 먼저인 상황이라 우려된다. 기왕에 만들어진 법을 지켜보다가 나중에 법 개정을 논의하자”(SKT 이상헌 상무)는 태도와는, 같은 이통사라도 온도차가 있다.
일단 이통 3사는 각종 새로운 요금제를 내놓으며 고객 잡기에 나섰다. SKT는 11월1일부터 가입비(1만1880원)를 완전히 폐지하기로, KT는 약정과 위약금을 없애는 대신 월 정액요금을 낮춘 ‘순액요금제’를 12월 출시하기로 했다. LG유플러스는 10월31일 출시된 아이폰6의 출고가를 이통 3사 가운데 가장 낮춰 공개했다. 하지만 여전히 소비자는 눈속임 요금 정책이 아닐까 눈을 홉뜬다.
이 와중에 아이폰6가 등장했다. 이통 3사는 아이폰6가 국내에서 공식 출시되는 10월31일 아침 8시, 밤새 줄을 서서 아이폰6를 개통하러 온 ‘애플빠’ 고객을 위한 다양한 행사를 마련했다. 아이폰6 효과 덕분인지 10월 넷쨋주 번호이동 가입자 수도 늘었다. 그러자 갤럭시노트4, G3 캣6 등 최신 인기 휴대전화 보조금도 조금씩 상향 조정되기 시작했다. 과거 50만~60만원의 불법 보조금이 판치던 때에 견주면 아직 최고 20만원대 초반에 머물고 있지만, 단통법도 끌어내리지 못한 휴대전화 출고가를 아이폰6가 끌어내렸다는 평가가 나올 만하다. 하지만 아이폰6 열풍은 ‘반짝’ 효과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단통법을 둘러싼 여러 논란을 잠재울 근본 처방이 되진 못하기 때문이다.
“소비자 후생 높이는 방식으로 법 개선해야”곽정호 한국정보통신산업연구원 산업정책실장은 “휴대전화 유통 구조 개선은 단시간에 개선되기 어렵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이슈다. 당장 단통법 존폐 논란으로 가기보다는, 법을 조금 개선해서 소비자 후생을 높이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단통에’ 풀리기엔, 휴대전화 시장은 얽혀도 단단히 얽혀 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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