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중 최근 국내 부동산 시장의 분위기를 설명하는 표현은 무엇일까.
① 완연한 봄 ② 한여름 폭염 ③ 이상기온 현상 ④ 혹한의 겨울
과연 이 문제의 답은 뭘까. 사람마다 다를 테다. 우선 갓 결혼한 김아무개(28)씨에게 묻자. 현재 서울 종로구에서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45만원을 내는 단독주택(43㎡)에 사는 그에게 부동산 시장은 그저 숨이 턱턱 차오르는 폭염의 날씨에 가깝다. 그는 “전셋값이 오르는 걸 보면 불안하다기보다 답답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말이다”라고 말했다. 결혼 전에도 전세를 구하기 어려워 월세살이를 했던 그는 부모님이 도와줄 형편이 안 돼 신혼집도 월세로 구했다. 내년 2월에 계약이 끝나 최근 돈을 아껴보려고 전세를 알아봤지만 이미 포기한 상태다. “원하는 곳에 살려면 8천만~1억원 정도 대출을 받아야 한다. 신혼부부를 위한 전세자금 대출이 금리가 낮다고 해도, 나중에 이자·원금을 같이 갚으려면 월세보다 비용이 더 들더라.” 결국 월세로 살면서 2~3년을 더 지켜봐야 하는지 고민 중이다.
두 아이를 기르는 맞벌이 부부 가족인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양아무개(37)씨에게 부동산 시장은 오래전부터 이상기온에 시달리는 것만 같다. 6년째 한집에서 살고 있는데, 2년마다 꼬박꼬박 전셋값이 2천만원씩 올랐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집주인이 2천만원을 더 올려달라고 연락해왔다. 큰아이가 학교 갈 나이가 돼 아예 초등학교 근처로 이사할 생각도 했지만, 전셋값이 8천만원 정도 차이가 나 포기했다. 그는 “아이 둘을 키우니 지출은 고정돼 있고 쓸 수 있는 돈은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 정부가 금리를 낮춰 집을 사라고 유도하고 있지만, 그의 경우엔 대출 이자·원금을 갚을 여력이 안 된다. 소득이 일정한 맞벌이 직장인에게는 선택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상기온 속 한여름을 대비하라?그렇다면 박근혜 정부에서 경제팀을 이끌고 있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사진)은 어떻게 볼까. 그는 지난 6월 장관으로 임명된 뒤 기자들을 만나 자신의 생각을 내비쳤다. “지금은 부동산이 불티나게 팔리고 프리미엄이 붙던 ‘한여름’이 아니고 ‘한겨울’이다. 한여름이 다시 오면 옷을 바꿔 입으면 되는데 언제 올지 모른다고 옷을 계속 입고 있어서야 되겠나.” 그동안 집을 살 여력이 없던 이들에게 대출 부담을 낮춰줄 금리의 ‘가벼운 옷’을 제공하겠다는 뜻이었다. 실제 거주를 위한 것이든, 투자를 위한 것이든 주택 거래를 활성화해 내수 소비를 진작해보겠다는 의도였다.
장관 취임 때부터 그가 내세운 ‘부동산 한파론’의 후속 조치는 곧바로 현실이 됐다. 정부는 지난 7월 총부채상환비율(DTI)과 담보인정비율(LTV)을 조정하기로 했다.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때 은행에서 담보가치를 인정해주는 비율인 LTV를 수도권 은행을 기준으로 소득 대비 50%에서 70%로 상향 조정했으며, DTI도 서울은 50%, 경기·인천은 60%로 나눠 제한하던 것을 60%로 통일했다. 그는 대출 규제를 완화했을 뿐 아니라 한 달에 한 번꼴로 각종 경기부양책을 내놓았다. 경기 부양을 위해 재정보강 11조7천억원, 정책금융·외환·한국은행 금융중개지원 대출 확대 등을 통해 29조원, 세제·규제 개혁 등 모두 41조원 이상을 시장에 풀겠다고 밝혔다. 그 밖에 기업과 가계의 소득 환류를 목표로 하는 세제개편안도 제시했다. 재계에서는 그의 행보를 두고 일본 경제의 성장을 내건 ‘아베노믹스’에 비유하는 이른바 ‘초이노믹스’(Choi+Economics)라고 부르며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10월23일 취임 100일을 맞은 부총리의 성적표는 생각보다 초라하다. 한국은행이 그 다음날 공개한 ‘실질 국내총생산(GDP) 속보치’를 보면, 최 부총리의 초이노믹스가 영향을 미친 올해 3분기(7~9월) 실질 GDP는 직전 분기보다 0.9% 증가했다. 수치상으로 내수가 회복된 것으로 비치지만, 2분기에 직전 분기보다 0.5% 증가에 그쳤던 성장률이 다시 1분기 수준으로 회복한 정도다. 게다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는 3.2% 늘어난 것으로 이는 2013년 2분기 이후 가장 낮은 성장률이다.
초이노믹스의 초라한 약발초이노믹스의 뼈대로 일컫는 부동산 경기 부양의 결과도 그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각종 수치상으로는 거래가 활발해지고 있지만, 앞으로 서민경제의 발목을 잡을 요인들을 만들고 있다는 예측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몸의 컨디션을 회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잠복기가 긴 병을 얻게 된 상황에 비유하기도 했다. 실제 국토교통부의 9월 주택매매 거래량은 8만6천 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1.9% 늘어났으며, 누적치로 따져봤을 때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6% 많아졌다. 그러나 한국감정원이 내놓은 9월 매매 가격 대비 전세 가격은 서울이 61.2%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포인트 올랐고 수도권은 62.7%로 2.8%포인트 상승했다. 전·월세 값은 2009년부터 5년 연속 계속 올랐지만, 그 상승폭이 2013년 이후 좀더 가팔라지고 있다. 정부가 나서서 집값을 유지해줄 테니 ‘빚내서 집을 사라’고 유도하고 있지만, 그 효과가 전·월세 값을 덩달아 부추겨 대다수 서민들만 압박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대출을 손쉽게 하고 부동산 매매를 유도해온 최 부총리의 경기부양책이 오히려 거주비 압박으로 돌아와 민간 소비를 위축시킬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동안 전셋값이 꾸준히 상승해온 탓에 이미 부채가 많은 서민들의 전세 수요를 매매 수요로 전환하겠다는 발상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정우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는 “집값과 전·월세 값에 불균형이 나타날 때는 집값 하락을 통해 서서히 조절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반대로 전셋값 급상승으로 조절하고 있다. 결국 주거비 부담 등으로 약자들만 고통받는 구조인데, 정부가 나서서 전셋값 상승을 억제하는 게 맞다. 그런 점에서 최 부총리의 해법은 잘못됐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과도한 가계부채가 앞으로 위기가 왔을 때 큰 위기를 가져올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빚은 이미 충분히 많다!정부의 대출 규제 완화의 결과가 부동산 매매로 이어지지 않아 가계부채 악화를 부채질할 가능성도 있다. 박원석 정의당 의원이 10월3일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올해 1~7월 은행에서 신규로 나간 주택담보대출 총액(67조2천억원) 가운데 32조1천억원(47.7%)이 주택 구입 이외의 용도로 사용됐다. 구체적으로 33.3%는 기존 차입금 상환에, 25.5%는 생계자금 마련에 쓰였고 15.8%만이 전·월세 자금 마련에 쓰였다. 2008년 금융위기 직전에 미국에서 나타났던, 서민들이 생활자금으로 주택담보대출을 과도하게 끌어쓰는 현상과 닮았다.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경제연구실장은 “정부의 대출 규제 완화로 그동안 제2금융권의 고금리 부채가 은행으로 전환돼 이자 비용이 낮아지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부채가 많은 자영업자 등에서 생계형 사업자금을 위해 부동산 대출이 늘어난다면 잠재적인 우려가 더 커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초이노믹스로 포장된 최 부총리의 경제정책이 그동안 체질 개선에 힘써온 한국 경제에 잠재적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최 부총리는 앞서 기준금리 인하에 반대했던 한국은행에 대해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 와인을 한잔했다며) 와인을 먹으면 다 하는 것 아니냐. 금리의 ‘금’ 자 얘기도 안 했지만 ‘척하면 척’이다”라고 말하면서 사실상 금리 인하를 압박해 정책을 이끌어왔다. 이처럼 경제기관들의 견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실세 부총리가 전면에 부각돼 이끄는 경기부양 정책이 자칫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아시아의 다른 신흥시장에 견줘 안정적이고 대외적인 경제 충격에 면역력이 있다고 평가받아온 우리나라의 경제 체질이 대출 규모 확대로 더 약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장보형 실장은 “주택값이나 인구구조의 변화로 봤을 때 앞으로 큰 흐름에서 주택시장이 크게 오르긴 힘들 것이라고 본다. 그런 상황에서 부동산 중심의 경기부양책은 의도했던 방향을 얻기 어렵다. 경기 하방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 부동산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많으니 단기적으로 주택·부동산 시장에 활력을 불러일으키려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단기 부양책 폭탄, 어디서 터질까?증세 없이 부동산 시장만 자극하는 최 부총리의 정책 자체가 ‘성장 전략’이 없음을 자인한다는 평가도 있다.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장은 “그동안 한국에서의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은 부동산 개발에 대한 포퓰리즘 정책이었다. 최 부총리의 정책은 굉장히 장기적인 부양책으로 포장했지만 한국 경제에 굉장한 위협을 줄 도박과 같은 것이라고 본다”고 비판했다. “(대출 없는) ‘안전한 전세’가 전체의 절반 수준이다. 이른바 ‘하우스푸어’가 소유한 전세 매물은 (이자 압박으로) 월세로 전환되고, 언제든지 집값이 폭락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전세를 선호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저금리를 내세우며 집값 떠받치기를 하면서 하우스푸어의 주택 정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처럼 단기 부양책에 기대는 위험한 폭탄돌리기의 정책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 결국 정부가 저금리 기조에서부터 경각심을 갖고 고위험 부채를 쥐고 있는 하우스푸어의 주택 정리 등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밖에 아베노믹스의 경우 재정 적자를 감수하면서 예산을 풀고 소비세 인상 등 세수 확보에 나섰지만, 최 부총리가 내세운 정책에는 증세도 없고 재정 예산이 아닌 정책자금을 푸는 것 자체가 경기부양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관료+언론인+정치인 출신으로 역대 어떤 기획재정부 장관보다 화려한 수식어를 달고 달려온 그는 과연 자신의 첫 라운드 경제 성적표에 어떻게 책임질 수 있을까. 그의 100일 이후가 심상치 않은 이유다.
[%%IMAGE2%%]■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주요 발언“지금은 부동산이 불티나게 팔리고 프리미엄이 붙던 ‘한여름’이 아니고 ‘한겨울’이다.”
-6월13일 장관 내정이 확정된 뒤 기자들과의 만남
“투자개방형 외국병원 설립을 의료민영화와 연결짓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따르는 논리의 비약이다.” -8월12일 ‘보건의료서비스 분야 투자활성화 대책’ 발표 뒤 KBS 뉴스 출연
“한국이 디플레이션 초기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8월28일 밀레니엄 포럼 발언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 와인을 한잔했다며) 와인을 먹으면 다 하는 것 아니냐. 금리의 ‘금’자 얘기도 안 했지만 ‘척하면 척’이다.” -9월21일 오스트레일리아 케언스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뒤 기자들과의 만남
“미국이 조기에 금리를 올리더라도 (우리나라에서) 급격한 자본 유출 가능성은 없다.” -10월9일 미국 뉴욕 한국경제설명회 발언
“임금이 오르지 않으면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다.” -10월11일 미국 워싱턴 특파원들과의 만남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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