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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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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머니게임’ 된 한전 터 인수전

감정가 3조원 넘는 ‘강남 알짜’ 한전 부지, 현대차·삼성 등 입찰 경쟁…

“인수 기업이 투자한 돈만큼 수익 뽑으려 해 ‘공공목적 개발’과 충돌 가능성 크다”
등록 2014-09-18 15:33 수정 2020-05-03 04:27

서울 강남에 남아 있는 ‘알짜 땅’으로 꼽히는 한국전력 본사 삼성동 부지 입찰 마감일이 9월17일로 다가왔다. 감정가(3조3346억원)가 3조원을 넘으면서, 서울 한복판의 ‘알짜 땅’ 매각은 시민들을 위한 공공성 기여에 대한 고민보다는 재벌 등의 ‘머니게임’으로 전락한 상태다. 서울시가 지난 9월4일 ‘한전 부지 매각’ 관련 도시계획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것도 이런 우려를 반영하고 있다.

서울에서 대규모 개발 가능한 마지막 땅

한전 삼성동 부지가 관심을 끄는 것은 이곳이 서울에서 대규모 개발이 가능한 마지막 부지로 꼽히기 때문이다. 규모가 7만9342m²에 이르고 주변에 국내 최대 업무·상업 지역인 테헤란로가 인접해 있는 등 입지 조건이 다른 곳보다 우월한 것으로 부동산업계는 본다. 1986년 이곳에 자리를 잡은 한전은 정부의 공공기관 이전 방침에 따라 본사를 전남 나주로 옮기면서 이 땅을 내놓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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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의욕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곳은 현대차그룹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검토 중’일 뿐이라며 뒷짐을 지고 있다가, 올해 초부터 입찰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현대차그룹은 서울 성동구 뚝섬에 ‘글로벌비즈니스센터’ 건립을 추진하다 서울시 반대로 무산되자 삼성동으로 차를 돌렸다. 당시 현대차 고위 임원은 “성수동 사옥이 무산된 뒤 삼성동 땅 매입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현재 양재동 사옥이 작아서 계열사 직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비효율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한전 부지에 통합 사옥과 자동차를 소재로 한 테마파크, 컨벤션센터 등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자동차전문그룹으로 일사불란하고 신속한 경영상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계열사까지 통합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절실하다는 설명이다. 또 독일 폴크스바겐 등 외국 자동차회사들이 본사와 박물관, 출고센터를 연계해 높은 브랜드 이미지를 만드는 것처럼 자동차테마파크를 구성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게 회사 쪽 설명이다. 현대차는 자동차 테마파크와 컨벤션센터 등을 묶으면 국외에서 하는 현대차 그룹 관련 행사도 국내에서 할 수 있게 돼 연간 10만 명에 달하는 외국인을 유치할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이에 비해 삼성그룹은 입찰 마감이 다가오고 있지만 다소 신중한 태도다. 삼성은 입찰이 시작된 9월3일 사장단 회의 수요 브리핑에서 “매각 공고를 토대로 검토하는 단계다. 결정된 것은 없다”고만 밝혔다. 삼성그룹 내부에서도 한전 부지에 대해 별다른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분위기다. 삼성그룹은 이미 서울 서초동에 대규모 사옥을 가지고 있어 상업적 부지 개발 외에는 한전 부지에 특별한 매력을 못 느끼고 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행보와 달리, 삼성그룹이 한전 부지 인근 옛 한국감정원 부지를 매입하는 등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다는 주장도 있다. 호텔·유통·면세점 등 새 성장동력을 만들 수 있다는 이유다. 2009년에는 삼성물산과 포스코 컨소시엄이 한전 부지 일대를 복합상업시설로 개발하는 제안서를 강남구청에 내기도 했다. 두 재벌그룹 이외에 중국 부동산개발업체나 미국 카지노업체 등이 한전 부지에 입찰할 가능성도 있다. 입찰 자격은 개인·법인·컨소시엄 등 제한이 없지만 외국인, 외국 기업은 한국 기업이 대표인 컨소시엄에 지분 50% 미만으로만 참여할 수 있다.

“토지 임대 등 입찰 진입장벽 낮췄으면…”

한전은 현대차와 삼성 등 재벌들의 입찰 경쟁을 반기고 있다. 한전은 지난 3월 2017년까지 14조7천억원의 부채를 줄이겠다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가 공기업에 부채를 줄이라고 지시하면서 부채 감축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경쟁을 통해 감정가(3조3346억원)를 넘는 입찰가가 나와야만 이익이다. 팔고 나가는 입장에서 부지의 공공적 이용에는 관심이 없다.

하지만 비판적 목소리도 나온다.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장은 “정부가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빌미로 ‘알짜 땅’을 재벌에 넘기면서 땅값을 높게 받는 한전이나 대규모 개발을 할 수 있게 된 재벌의 이익만 보장하게 됐다. 서울 시민의 편의와는 상관없다”고 지적한다. 남 소장은 “한전이 매각 방식 대신 토지를 임대하는 방식을 택해 금액을 낮추는 등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진입장벽을 낮췄으면, 재벌만이 참여하는 입찰이 아닌 다수가 참여해 공공성이 있는 개발로 유도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시는 최근 매각 관련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한전 쪽과 공고문 작성 협의 등을 제안했으나 충분한 협의 없이 매각 공고되고 입찰이 진행돼 유감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정부와 한전이 최고가 입찰 매각으로 진행하면서 ‘투기장’이 될 우려도 커졌다.

이에 따라 서울시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서울시는 이미 한전 부지가 포함된 코엑스~잠실종합운동장 일대 약 72만m²를 서울의 미래 먹거리 산업의 핵심 공간인 ‘국제교류복합지구’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한전 부지는 개발이 제한적인 제3종일반주거지역에서 일반상업지역으로 변경해 용적률을 높여준다는 계획이다. 개발 기업이 초고층 빌딩을 지을 수 있게 용적률을 800% 범위 내에서 조정해주되, 부지 면적의 40% 내외에 해당하는 가치를 토지나 기반시설, 설치비용으로 확보한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이를 통해 ‘국제교류복합지구’와 공공성이 조화를 이루게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도시지역계획학)는 더 나아가 “한전이 공공기관인 만큼 이 부지 역시 사유지와 달리 공공적 성격이 있다. 서울시가 한전 부지를 매입할 기업이 공공계획 원칙에 따라 개발할 것을 서명이나 동의로 약속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한전 부지가 최고 입찰가 경쟁이기 때문에 기업이 돈을 투자한 만큼 수익을 뽑으려 해 ‘공공 목적의 개발’과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한전 부지 개발에는 입찰 금액과 개발비를 합쳐 10조원 내외가 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서울시가 용도 변경 등 개발 여건을 보장해주기 때문에 매수 기업의 개발 목적 또한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 시민들은 최근 잠실 제2롯데월드 신축 등 재벌의 대규모 개발사업이 교통대란과 싱크홀 등의 불안을 만드는 것을 체감했다. 더구나 현대차의 경우 소속 임직원 1만8천 명이 근무할 통합사옥을 계획하고 있어, 서울시가 추진하는 ‘국제교류복합지구’와의 연계·통합 개발에 난색을 표할 가능성도 있다.

“건축의 최고 덕목은 공공적 가치”

조명래 교수는 “한전 부지 매각과 개발은 중·장기적인 밑그림이 그려지고 공익과 사익의 조화를 담보하는 계획적인 관리 틀이 처음부터 제대로 강구돼야 ‘자본 지배의 공간’ 혹은 ‘있는 자의 공간’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의 초대 ‘총괄 건축가’(시티 아키텍처)로 위촉된 건축가 승효상씨도 최근 와의 인터뷰에서 “개인 건물도 건축으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에 개인 사유물이 아니다. 건축의 최고 덕목은 공공적 가치”라고 말한 바 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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