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간단한 퀴즈로 새해 살림살이를 전망해보자. 다음은 어떤 해의 경제 상황을 묘사한 걸까.
2013년이라고 답하면 무방하다. 그러나 2011년 또는 2012년, 아니 2014년이라고 해도 틀린 답은 아니다. “월급은 그대로고 가계부는 빠듯하고 취직하기는 어렵다.” 세계경제의 저성장 기조를 일컫는 ‘뉴노멀’처럼, 경기변동과 무관하게 어려운 가계살림도 이제는 ‘새로운 표준’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 성장률을 3.9%로 예측하고 있다. 지난해(2.8%)보다 개선된 성장세다. 국내외 주요 경제기관의 성장률 전망인 3.7~3.8%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다. 다소 장밋빛 전망이지만, 일단 정부 말을 믿어보자. 정부가 물가상승률을 2.3%로 예상했으니 내 월급명세서는 6.2% 올라야 한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 중에 월급이 그만큼 오른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왜 그럴까?
이른바 ‘부자 기업, 가난한 가계’ 현상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전 가계소득과 국민소득 증가율은 거의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2007년까지 기업의 실질소득 증가율은 8.1%, 이명박 정부 5년 동안에는 11.2% 증가했다. 반면 가계소득은 같은 기간 각각 3.7%, 2.8%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가계소득 증가율은 고도성장기의 3분의 1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가계와 기업 간 소득 양극화는 고스란히 가계의 소득 정체로 귀결되고 있다. 지난해 가계 실질소득은 1.6% 늘어나는 데 그쳤다. 올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가계 내부에서도 소득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전체 소득에서 상위 1%가 차지하는 비중이 1995년 6.9%에서 2010년 11.9%로 늘어났다. 그렇지 않아도 줄어든 경제성장의 과실이 상위 1% 재벌과 부자에게 집중되고 있다. 내게로 돌아올 성장의 떡고물은 아무리 털어도 남아 있지 않은 셈이다.
빚도 가계를 짓누르고 있다. 가계대출은 2007년 말 630조원에서 지난해 9월 938조원으로 49% 급증했다. 특히 전체 가계대출 증가분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195조원을 금리가 높은 제2금융권에서 조달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2.5%까지 내렸지만 가계의 이자 부담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가구당 부채는 평균 6200만원, 연간 이자 부담만 250만원(월 21만원)에 달한다. 이자 부담은 가계 가처분소득의 6.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7%)보다 2.2배 높다.
또한 가계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 비율이 지난해 19.5%로, 해마다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발생하기 직전 미국에서 이 비율은 14%였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부담이 얼마나 심각한지 가늠할 수 있다.
‘빚내서 집 사라’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올해도 가계의 시름을 더욱 키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전국 아파트의 전세가격은 7.2%, 서울은 9% 올랐다. 2009년부터 보면 5년간 전국 아파트의 전세가격은 50% 뛰었다. 같은 기간 물가상승률 13%의 3.8배에 이른다. 전세가격이 매년 10%씩 오른 셈이다. 세입자들은 2년이 지나 계약이 갱신될 때마다 기존 전세금의 20% 이상을 추가로 마련해야 하는 부담을 지고 있다.
공기업 부채 국민 부담으로 떠넘기려반면 같은 기간 가계 가처분소득은 345만원으로 60만원 정도 늘어났다. 2009년 이후 한 푼도 더 쓰지 않고 늘어난 소득을 모두 저축했다고 가정하면 평균적으로 1600만원 정도 모을 수 있었다. 그사이 전국 아파트 전세가격은 1억1300만원에서 5500만원이나 올랐다. 소득 증가분으로 전세가격 상승분을 충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가계는 허리띠를 졸라매고도 평균 4천만원의 저축을 까먹거나 빚을 늘렸다. 올해도 집주인의 전셋값 인상 요구에 어쩔 수 없이 전세대출을 마련하려 은행 문 앞을 서성여야 할 것이다.
지난해 말, 한국가스공사는 기습적으로 가스요금을 5.8% 인상했다. 추운 겨울 정부가 가계에 안겨준 새해 선물(?)이었다. 가스요금은 지난해만 3차례 올랐다. 여기에 건강보험료, 전기요금, 철도요금, 고속도로 통행료, 소포 운임 등 공공요금 인상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4대강 사업, 해외 자원 개발, 집값 부양 등 정부의 정책 실패에 따른 공기업의 부채를 국민 부담으로 떠넘기려 하기 때문이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나갈 돈은 많다보니 가계부의 주름살이 펴질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건 국내 물가상승률이 2% 안팎에서 안정될 것이란 점이다. 세계경제의 장기 침체로 디플레이션을 우려할 정도로 글로벌 물가상승률이 낮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난해 12월에 시작된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는 급격히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비록 올해 말 양적완화가 모두 끝나더라도 미국의 기준금리가 인상되는 시점은 빨라야 내년 하반기가 될 것이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도 최근 물가보다는 성장에 방점을 찍고 있기 때문에, 지금에서 크게 변동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난해 여름 양적완화 축소 논의를 시점으로 이미 세계적으로 장기금리가 상승하고 있다. 금융시장에선 항상 기대가 미리 반영되기 때문이다. 외국인의 국내 채권 매수 규모가 줄어들면 국채와 회사채 등 채권 금리는 조금 오를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고정금리 적용을 받는 가계대출 금리가 올라 부채 가구의 시름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원화 강세 기조는 올해에도 이어질 것이다. 양적완화 축소에 따른 달러 강세와 외국인의 자본 유출에도 불구하고, 석유 등 원자재 가격의 안정으로 경상수지 흑자 기조는 유지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올해 말까지 양적완화가 예정돼 있어 엔화 약세도 지속될 것이다. 원화 강세는 물가상승률에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대외의존도와 자본시장 개방도가 높은 탓에 경제성장률과 고용 등 주요 경제지표와 금융시장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새해 주식시장이 처음 열린 1월2일 코스피지수가 44포인트(2.20%) 급락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회사채 금리 상승과 원화 강세는 그동안 구조조정이 지연된 대기업의 부실로 이어져 제2의 동양 사태가 발생할 우려도 있다.
불안정과 불확실성이 지배할 것정부의 낙관적 경제 전망과 달리 올해 경제는 불안정과 불확실성이 지배할 것이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통해 가계소득 중심의 새로운 경제정책 기조로 방향을 틀지 않는다면, 안타깝게도 어려운 가계살림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언제쯤이 되어야 엄마의 가계부는 안녕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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