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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회사에 다니는 강진철(29·가명)씨는 살림을 살뜰히 사는 편이다. 교사인 아내와 한 달 450만원을 벌면 그중 개인 용돈으로 각각 15만원씩만 사용한다. 식비는 50만원, 통신비·공과금도 30만원이 넘지 않게 신경 쓴다. 두 살배기 아들의 양육비 150만원과 전세금 대출 이자 20만원을 빼면 여윳돈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미래 준비도 꼼꼼하다. 올해 있을 전세금 인상에 대비해 월 50만원씩 저축해왔고, 의료실비보험(10만원), 연금저축(10만원) 적립식 펀드(20만원)도 따로 부어왔다. 이렇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면서도 강씨는 늘 불안에 시달린다. ‘집은 언제나 장만하게 될까’ ‘노후 자금은 얼마나 필요할까’ ‘아이 교육비는 어떻게 감당할까’.
돈벌이가 살림살이의 목표가 되면 가계는 불행해지기 쉽다. 가계는 기업과 달리 이윤을 추구하지 않아도 된다. 정해진 수입을 효과적으로 배분해 가족 구성원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으면 충분하다. 잘 버는 대신 잘 쓰는 방법을 고민하면 무리한 재테크에 대한 강박은 사라지고 현실에 대한 만족도는 올라간다. 방법은 이렇다. ‘자산 포트폴리오’ 대신 ‘필요·욕구 포트폴리오’를 짜보자. 한정된 돈을 어떤 우선순위로 써나갈지 가족이 함께 머리를 맞대는 게 좋다. ‘10년 안에 아파트 대신 연립주택을 마련하겠다’거나 ‘아이를 영어유치원은 못 보내도 대학 등록금의 반은 대주겠다’는 식이다. 의 저자 이지영씨의 조언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없어지지 않는다. 가족이 필요한 것을 구체화한 뒤 능력이 되는 한도 내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욕구를 선택해나가면서 해소되는 것이다.”
돈 모으기 전 지출 구조조정을돈을 모으기 전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 있다. 지출 구조조정이다. 직장인이 갑자기 수입을 늘리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지출을 줄이면 수입이 늘어나는 효과가 생긴다. 공과금, 통신비, 보험료, 각종 대여료 등 고정 지출을 조금씩 줄이는 게 첫 단추다. 200만원의 수입 가운데 150만원을 지출하는 가계가 있다. 이 중 10%인 15만원만 지출을 줄여보자. 1년에 180만원의 목돈이 생긴다. 단순하게 계산하면 1천만원을 거치식 펀드에 투자한 뒤 연 18%의 수익(판매 보수 제외)을 기록해야 손에 쥘 수 있는 돈이다. 지난해 국내 주식형 펀드의 평균 수익률이 1%대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출 통제 효과는 마법에 가깝다.
가장 나쁜 고정 지출인 빚을 줄여가는 것도 중요하다. 빚을 갚는 데도 순서는 있다. 주택담보대출처럼 규모가 큰 빚은 천천히 나눠 갚되, 마이너스통장·현금서비스·보험약관대출 등의 빚은 최대한 빨리 상환한다. 이자가 비싸고, 대출 규모가 적은 순으로 갚는 게 합리적이다.
수익률 말고 저축액을 늘려라정기적금은 종잣돈을 마련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강제 저축 효과가 탁월하고, 원금을 손해 볼 염려도 전혀 없다. 월 100만원을 정기적금과 적립식 펀드에 각각 넣어 3천만원의 밑천을 만든다고 치자. 적립식 펀드가 연 10%의 수익을 올린다면 목표 달성까지 2년3개월이 걸린다. 반면 연 3%의 정기적금으로는 2년5개월 정도 걸린다. 적립식 펀드가 정기적금보다 수익이 200만원가량 더 나는 셈이다(·장홍탁). 그러나 매년 10%씩 꾸준히 수익을 올리는 적립식 펀드는 손에 꼽힌다. 운이 나쁘면 원금이 반토막 날 수도 있다.
종잣돈을 더 빠르게 불리고 싶다면? 저축액을 늘리는 게 정석이다. 대부분 저축액은 그대로 둔 채, 수익률을 높여 돈을 불리려고만 한다. 그러나 주식이나 펀드의 수익률이 한 번쯤 20~30%를 기록하는 대박을 친다 해도, 투자 원금이 쥐꼬리라 인생 역전은 어렵다.
‘복리’에 목매지 말자‘복리’의 마술은 없다. 단리 예·적금 상품은 원금에 대해서만 이자가 붙지만 월복리 상품은 원금은 물론 이자에도 이자가 붙는 다. 단순 비교하면 월복리 예·적금 상품이 정답이다. 그러나 금리와 납입 기간에 함정이 있다. 시중은행이 판매 중인 월복리 상품은 금리가 단리 상품보다 낮고 가입 기간도 3~5년으로 짧은 탓에 복리 효과가 크게 발생하지 않는다. 연 4.5%의 금리에 3년간 월복리를 적용해도 총이자는 연 4.7%다. 목돈이 3년간 묶여 중도에 해지할 부작용만 크다. 의 저자 박창모씨의 설명이다. “월복리 적금은 단순히 복리라는 단어를 부각시켜 사람들을 현혹하는 상품에 불과하다. 정기적금은 세후 금리가 높고 거리도 가까운 새마을금고나 신협에서 가입하되, 만기를 1년으로 짧게 정하는 것이 좋다.”
무리한 재테크를 부추기는 노후에 대한 불안은 내려놓자. “은퇴 후 30년 동안 자장면만 먹고 살아도 일시금으로 20억원이 필요하다”는 금융회사 광고는 ‘공포 마케팅’일 뿐이다. 은퇴 시점에 20억원이 한꺼번에 필요한 건 아니다. 은퇴 뒤 소박하게 살아간다면 다달이 100만원, 150만원의 생활비가 나올 곳만 있으면 된다. 최근 국민연금연구원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은퇴를 앞둔 1950년대생이 받게 될 국민연금액은 월평균 46만원이다. 이들보다 가입 기간이 긴 후세대는 더 많은 연금액을 받게 된다. 부부 중 한 명만 국민연금을 받아도 생활비의 절반은 해결되는 것이다. 나머지 생활비는 집을 줄이거나 아르바이트를 해서 마련하면 된다.
무료 재무설계 받지 말자재무 목표는 하나씩 차근차근 달성해나가도 충분하다. 생애주기에 따라 결혼자금·여행경비·주택마련·노후자금의 우선순위를 정한 뒤 단기 목표부터 집중적으로 이뤄가는 것이다. 사회 초년생이 결혼자금을 마련하면서 은퇴자금까지 함께 준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그러나 최근 유행하는 금융회사의 재무설계(현재의 재무 상태를 토대로 재무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을 실천해나가는 것)에선 저축의 비중은 조금씩 달라도, 여러 재무 목표를 동시에 성취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저축성 보험, 연금저축, 변액유니버설보험 등 다양한 금융상품에 가입하라고 추천한다. 박창모씨의 반박은 이렇다. “돈은 목적별로 나눠 관리하는 것보다 눈밭에서 눈을 굴리듯 하나의 목돈으로 관리하는 것이 자산 증식에 유리하다. (재무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라는) 무료 재무설계는 고상하게 포장된 상품 판매 방법에 불과하다.”
주식보단 그나마 펀드 투자를예·적금으로 착실히 돈을 모으다가도 투자상품인 주식과 펀드에 자꾸만 눈이 간다. 그러나 재테크 전문가들도 웬만해선 개인에게 주식 투자는 권하지 않는다. 정보 부족과 비이성적인 판단으로 외국인·기관투자가와의 싸움에서 질 가능성이 높은 까닭이다. 교과서 투자로 불리는 ‘우량종목 묻어두기’도 성공 확률은 절반에 불과하다. 2002년부터 10년간 가장 우량기업이라 할 수 있는 시가총액 상위 10개 종목에 장기투자를 했다 하더라도, 수익을 낼 수 있었던 종목은 고작 5개다(·이지영). 그래도 주식시장에 미련이 남는다면 간접투자 상품인 펀드가 낫다. 잃어도 좋은 여윳돈으로 장기·적립·분산 투자를 하면 실패 확률을 낮출 수 있다. 이지영씨는 “투자 원칙은 사람들의 심리와 행태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 지켜지기 어렵다. 그리고 (주식·펀드) 투자의 성공은 단순하게 말하면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다. 내가 투자에 성공하기 위해선 나를 대신할 희생자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예금은 지역사회 돕는 착한 신협에내 돈도 지키고 남도 돕는 방법이 있다. 내 돈을 인권·환경·공정무역·예술 등의 분야에 빌려주는 것이다. 수익에 사회적 영향까지 고려한 ‘착한 재테크’다. 물론 아직 한국에는 사회적 금융의 모범 사례인 네덜란드의 트리오도스은행처럼, 사회적 기업이나 공익단체에 집중적으로 돈을 빌려주는 특수은행이 없다. 저소득층의 사업과 대학생의 학자금을 지원하는 사회연대은행이 있긴 해도, 개인으로부터는 예금이 아닌 기부만 받고 있다. 그래도 잘 찾아보면 동작신협·은평신협처럼 지역사회의 사회적 약자나 신생 협동조합을 우선 지원하는 신협·농협이 더러 있다. 집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이런 금융기관에 돈을 맡기는 것만으로도 착한 재테크를 시작할 수 있다.
여윳돈의 일부는 협동조합 출자금으로협동조합 조합원이 될 수도 있다. 여윳돈의 일부를 은행에 저축하는 대신 조합에 출자하거나 회비로 내는 것이다. 평소 친환경 농산물을 먹고 싶었다면 생협 조합원이, 재생 가능한 에너지 생산에 관심이 많다면 햇빛발전소협동조합 조합원이 되면 된다. 가계 지출을 줄이면서 농가와 환경에 좋은 윤리적 소비도 할 수 있는 묘안이다. 만약 조합이 안정 궤도에 오르면 수익의 일부를 배당금으로 받을 수 있고, 조합에 돈을 꿔주면 은행 이자의 2배 정도를 얻을 수도 있다. 단, 중요한 전제가 있다. 조합은 단순한 재테크 수단이 아니라 공동의 필요를 함께 채워가는 공동체인 만큼, 충분한 책임감과 주인의식이 생겼을 때 참여해야 한다. 김기태 한국협동조합연구소 소장의 설명이다. “예전에는 연대의 방식이 서로 몸으로 때워주는 것이었다. 이런 십시일반 정신이 몇 년 전 소비 영역으로 옮겨가더니, 이제는 협동조합을 통해 자본 영역으로 넘어오고 있다.”
사회활동가 지원하는 ‘크라우드펀딩’도사회적 기업이나 사회활동가에 자금을 대주는 ‘크라우드펀딩’에 참여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크라우드펀딩은 개인이나 단체가 특정 사업·프로젝트를 위해 다수의 개인들로부터 투자금이나 후원금을 모으는 방식을 뜻한다. 요즘에는 다양한 공익적 목적의 크라우드펀딩이 자주 이뤄지고 있다. 노숙인의 방한 신발 마련을 위한 펀딩,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역사관 건립을 위한 펀딩 등이다. 현행법에선 크라우드펀딩 투자에 대한 수익을 현금 대신 옷·책 등 현물로만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계획대로 오는 9월 법이 개정되면 개인의 지분 투자도 가능해진다. 개인이 수익을 올리면서 사회에 기여도 할 수 있는 번듯한 수단이 처음 마련되는 것이다. 이런 재테크라면 조금 모험을 해도 좋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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