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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이 ‘파이’ 때문에 영 ‘파이다’.
한국에선 파이시티가, 중국에선 파이인베스트차이나가 관리하는 화푸빌딩이 우리은행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정배 파이시티 대표에게 몰아주다시피 했던 6500여억원의 ‘부실 대출’이 문제였다. 6~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화푸빌딩은 3800억원을 투자해놓고 한 푼도 되찾지 못한데다, 건물 소유권도 완전히 갖지 못했다. 한국과 중국에선 이와 관련한 수십 건의 고소와 소송에 휘말려 있다. 파이시티에 투자하는 특정 금전신탁 상품을 ‘불완전판매’했다는 논란도 최근 불거졌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지난 10월7일부터 우리은행에 대한 특별검사를 실시 중이다. 이 민주당 김기식 의원실과 정호준 의원실을 통해 단독 입수한 우리금융그룹 내부 문건 등을 살펴본 결과, 우리금융지주가 당시 대출 관리·감독을 소홀히 했던 이순우 현 우리금융지주 회장(당시 수석부행장)에 대한 ‘징계’를 우리은행에 요구했다는 사실도 새롭게 확인됐다.
뇌물 받고 지급보증 추진한 은행 직원들우리은행은 최근 화푸빌딩 PF 채권을 팔겠다고 내놨다. 2008년부터 매각을 추진해왔지만 번번이 실패했던 터다. 우리은행 고위 관계자는 “공개입찰에 5곳이 참여해서 앞으로 2~3주 안에 우선협상 대상자와 주식매매 계약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화푸빌딩은 중국 베이징시 둥청구에 위치한 면적 12만4500m²(약 3만8천 평)의 대형 오피스 건물이다. 25층짜리 건물을 비롯해 모두 3개 동이 들어서 있다. 임대료만 월 20억~30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우리은행에는 ‘골칫덩이’다. 조선족 사업가 민봉진씨 부인이 장악하고 있는 건물 시행사인 중천굉업 쪽에서 출입을 막고 있어, 우리은행 쪽은 건물에 발도 들이지 못한다. 임대료도 중천굉업 쪽이 고스란히 다 챙겨간다. 우리은행은 이번 매각으로 투자금 3800억원의 절반만 건져도 다행이다. 화푸빌딩에는 2천억원대의 근저당권과 가압류가 얽혀 있어, 누군가 우리은행의 채권을 사간다고 해도 건물을 완전히 소유할 수는 없다. 왜 이렇게 상황이 꼬인 걸까?
이 복잡한 이야기를 풀어가려면, 2007년 12월로 시계를 잠시 돌려야 한다. 이정배 파이시티 대표와 민봉진씨는 중국에서 부동산개발 사업을 벌이기 위해 2007년 한국에 백익인베스트먼트(백익)라는 회사를 만든다. 이 회사가 화푸빌딩을 인수한다는 명목으로 국민은행에서 2300억원, 대한생명에서 1500억원을 빌렸고, 이때 우리은행이 ‘백익이 돈을 못 갚으면 대신 갚아주겠다’는 지급보증을 선다. 당시 우리은행 신탁사업단 천아무개 부동산금융팀장에게 백익 지분 30%와 수십억원의 뇌물을 주기로 구워삶은 덕분이었다. 천 팀장의 후임인 정아무개 팀장도 뇌물을 받고 이들을 도왔다.
백익은 3단계의 ‘징검다리’ 회사를 거쳐 화푸빌딩을 사들였다. 백익은 홍콩의 ‘뉴파이인베스트먼트’라는 특수목적법인(SPC), 일종의 페이퍼컴퍼니를 자회사로 만든다. 이 회사는 또 카리브해에 있는 바베이도스에 ‘마운틴브리즈’(MB)라는 SPC 지분을 100% 사들인다. 조세회피 목적이었다. MB는 다시 중국에 시행사인 중천굉업을 자회사로 만들어 화푸빌딩을 인수했다. 화푸빌딩 프로젝트를 관리할 별도 회사인 ‘파이인베스트 차이나’도 설립한다. 그러나 백익이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면서, 2010년 우리은행이 국민은행과 대한생명에서 채권을 넘겨받았다.
우리은행은 자금줄 구실을 하면서도 사업 전체를 장악하지는 못했다. 2010년 민봉진씨에게 대출금 회수를 통보하면서 전체 주식에 질권(대출금을 일정 기간 안에 갚지 않으면 담보물을 처분할 수 잇는 권리)을 설정했는데, 이 과정에서 민씨가 주식을 추가 발행해 우리은행의 담보권을 1.96%대로 떨어뜨려버린 게 결정적인 예다. 우리은행은 중천굉업의 법인 인감도 넘겨받지 못했다. 우리은행은 최근에야 중국 법원으로부터 중천굉업 지분 소유권을 인정받았다.
부실한 리스크 관리 시스템이 원인우리은행 쪽은 “부동산금융팀 몇몇의 개인 비리”라고 책임을 떠넘기지만, 결정적 원인은 부실한 리스크 관리 시스템이었다. 화푸빌딩 인수사업 업무 약정은 신탁사업단장 전결로, 백익과의 투자 협의나 에스크로 계좌 자금 관리는 부동산금융팀장 전결로 처리됐다. 천아무개, 정아무개 부동산금융팀장은 이미 2003~2004년께부터 이정배 파이시티 대표와 유착돼 있는 상태였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었다. 우리은행은 2009년 둘에게 감봉 3개월의 경미한 징계를 내리는 데 그쳤고, 두 팀장은 2010년 구속 기소돼 징역형을 살고 있다.
“일반적인 대출이 아니라 채권 양수 약정이라는 방식을 띠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내부 규정상 여신협의회를 거치지 않고 신탁사업단이 결정할 수 있는 구조였다. 그 뒤로 부동산개발금융사업도 여신협의회를 거치도록 내부 규정을 바꿨다.” 우리은행 고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런 관리·감독 소홀에 대한 책임을 물어, 금융감독원은 화푸빌딩 업무 약정을 맺은 2007년 12월 당시 황영기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비롯해 사후관리에 관여된 박해춘·이종휘 전 은행장들에게도 ‘업무집행정지 3개월’ ‘주의적 경고’ 등의 징계를 내렸다. 그러나 당시 수석부행장으로서 여신 업무를 책임지는 위치에 있던 이순우 현 회장은 징계 대상에서 빠졌다. 이 회장은 민봉진씨에게 여러 차례 대출을 연장해주는 시점에 수석부행장으로 재직했다.
그런데 우리금융지주의 내부 감사 결과는 달랐다. 우리금융지주가 2010년 11월 작성한 ‘우리은행 신탁부문 부동산 PF 관련 부문 검사 결과 보고서’를 보면, 이순우 회장의 책임이 자세히 명시돼 있다. 2008년 12월31일, 이종휘 당시 은행장, 이순우 수석부행장 등은 회의를 열어 화푸빌딩을 비롯한 대출채권 양수 약정 현황, 사후관리 방안 등을 논의했다. 보고서는 “회의에서 아무런 의사결정도 하지 않았고, 신탁사업단장이 권한도 없이 대출채권 양수 약정을 은행계정 대차대조표에 회계처리하고 정당한 승인 없이 양수 약정을 이행하는 등 부적절하게 업무 처리하는 단초를 제공했다”고 지적한다. 경영진들은 이런 상황을 지주회사 감사위원회에 즉시 보고하지도 않았다.
“2002~2008년 신탁사업단이 여신협의회 승인도 받지 않고 총 4조원의 대출채권 양수 약정을 체결한 뒤 회계처리도 안 한 것은 금융사고에 준하는 중대한 사안이다. 이순우 수석부행장은 이사회 규정에 따라 이사회에 보고하지도 않았다.” 우리금융지주는 이순우 당시 수석부행장을 2010년 연말까지 징계한 다음 보고하라고 못박았지만, 실제 징계는 이뤄지지 않았다. 우리금융지주 관계자는 “2010년 말 감사원이 감사를 벌였기 때문에 내용 전체를 감사원에 넘겼다”고 말했다.
로비자금으로 흘러갔을 가능성
금융감독원도 2009년과 2011년 우리은행에 대해 종합검사를 실시했지만, 은행장 문책과 신탁사업단 등 관련 임직원 22명만 징계 조처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신탁사업단장이 최고 결정권자였기 때문에 다른 은행 경영진의 책임을 크게 묻지 않았다. 부실 대출과 관련해서는 여신협의회에서 찬성표를 던졌던 총 부실 금액의 정도에 따라 징계 수위를 결정하도록 내부 기준이 정해져 있는데, 이순우 회장은 금액이 미미했다”고 설명했다. 정호준 의원실 관계자는 “금융 당국이 전·현직 임원들의 부실 책임을 묵인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우리은행과는 별도로,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도 있다. 화푸빌딩 투자금 3800억원은 다 어디로 갔느냐다. 우리은행 쪽이 파악한 돈의 흐름은 이렇다. 중천굉업이 화푸빌딩 인수자금으로 1650억원을 썼다. 건물 관리 용도로 설립한 파이인베스트먼트로는 투자금으로 226억원가량, 대출금 명목으로 850억원이 소진됐다. 이 돈의 대부분은 건물에 얽혀 있는 빚을 갚고 이자비용을 내는 데 쓰였다고 한다. 백익 쪽은 금융자문 수수료로 267억원도 받아갔다. 에스크로 계좌에 넣어둔 806억원은 각종 운영비로 쓰였다. 그러나 실제 중국에서 돈이 이렇게 집행됐는지는 안갯속에 가려져 있다. 재판 과정에서는 민봉진씨가 돈을 일부 빼돌려 아파트를 사는 데 쓴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우리은행의 다른 관계자는 “해외에서 오간 돈은 (민씨 쪽이) ‘인건비와 운영자금으로 썼다’고 하면 확인이 곤란하다. 중천굉업 장부도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라서 부분적으로 용처 확인이 어려운 돈이 있다”고 말했다. 김기식 의원실 관계자는 “사라진 돈이 로비자금이나 특정 개인에게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이 있다. 자금 흐름 전반에 대해 재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은행은 파이시티 사업과 관련해서도 1846억원의 PF 대출금이 묶여 있다. 여기에다 관련 금융상품을 ‘불완전판매’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2007년 가을, 평소 거래하던 우리은행 용인·수지 지점에서 연 8% 이자율을 보장해주는 좋은 상품이 있으니 빨리 가입하라고 해서 2억원을 넣었다. 그런데 이자는 3번인가 받고 원금도 줄었다. 올봄에야 이게 파이시티에 투자한 상품이란 걸 알았다.” 권영일씨는 “우리은행이 투자 위험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다”며 참여연대와 함께 금융감독원에 고발장을 냈다. 우리은행이 2007년 판매한 하나UBS운용의 클래스원특별자산투자신탁 제3호에 가입한 개인투자자는 1400여 명에 이른다. 투자액은 1900억원이다. 원래 1년6개월 만기 상품이었지만, 파이시티 사업이 허공에 뜨면서 투자자들은 돈을 받을 기약이 없어졌다.
부동산 PF 규모 집착이 부메랑 돼우리은행은 왜 이같은 ‘늪’에 빠진 걸까? 정부가 대주주다보니, 은행장을 비롯한 경영진이 정치권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탓이 크다. 윗선의 지시에 의한 부실 대출도 많았던 걸로 보인다. 주인 없는 회사라 구조적으로 방만해지기도 했다. 우리금융지주 출신의 한 인사는 “파이시티와 화푸빌딩 건은 당시 은행들이 대출 이외의 비즈니스를 늘리느라 부동산 PF 규모를 늘리는 데 집착했기 때문이다. 그게 결과적으로 부메랑이 돼서 돌아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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