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정직하다. 일이 고되면 반드시 어딘가 고장이 난다. 생산직 노동자에게 ‘통증’은 숙명이다. 때론 아파도 내색을 못한다. 요즘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엔 통증을 호소하는 이가 유난히 많다. “물리치료실은 예약 뒤 1~2주를 기다려야 한다. ‘몸이 아파서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 해도 잔업, 특근을 못하겠다’는 사람들 때문에 일주일에 한두 번은 저녁 3시간 잔업 일정이 깨지곤 한다.” 평택공장에 근무하는 김민호(가명)씨의 말이다. 최근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그만큼 노동강도가 세진 탓이다. 지난해 생긴 한방치료실에도 추석 연휴 직전 환자가 부쩍 늘었다. 공장이 멈춰섰던 4년 전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다.
당기순이익 62억원, 6년 만에 처음 흑자
‘코란도의 부활은 내 손에서 시작한다’. 지난 8월7일 출시된 뉴코란도C를 생산하는 조립1공장 벽에는 여기저기 현수막이 붙어 있다. 희망찬 구호로 가득하다. 회사를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이 묻어난다.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 250여 명의 어깨가 무겁다. 각종 부품을 차에 장착하느라. 아니, 그보다 회사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 묵직하다. 뉴코란도C는 출시하자마자 올해 쌍용차 월 최대 판매실적을 갈아치웠다. 20여 일 만에 4천 대가 계약됐다. 9월25일까지 누적 계약 물량은 7천 대를 기록 중이다. 경쟁 모델인 현대·기아자동차의 투싼ix와 스포티지R에도 크게 뒤지지 않는 성적이다.
차가 ‘없어서’ 못 팔 정도다. 지난 9월 초, 부산 남천과 경주 대리점 등에선 전시 차량까지 빼다 팔아서 고객이 와도 보여줄 차가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뉴코란도C는 지금 계약하면 40일가량 기다려야 받을 수 있다. 캠핑 열풍이 불면서 스포츠실용차(SUV) 인기가 높아진 덕분이다. 해외에서도 마케팅에 시동을 건다. 9월27일 중국, 10월1일 유럽에서 화려한 출시 행사와 함께 수십 개국 기자들을 초청한 시승 행사도 연다.
쌍용차가 ‘정상 주행’을 시작했다는 신호는, 여러 지표로도 확인된다. 내수시장에서 만년 꼴찌였던 쌍용차는 올해 상반기 르노삼성을 제치고 4위로 올라섰다. 2011년 2.6%에 불과하던 내수시장 점유율(수입차 제외)은 2012년 3.4%, 올해 상반기엔 4.3%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 전년보다 판매량이 늘어난 국내 자동차 업체는 쌍용차가 유일하다. 지난 2월 출시한 코란도 투리스모가 애초 월 100대 안팎으로 팔릴 것이라던 예상을 깨고 1천 대 이상 팔리고 있는데다, 뉴코란도C까지 나오면서 판매실적에 가속도가 붙었다. 1~8월 쌍용차는 전년(7만5천 대)보다 24% 증가한 9만3천 대를 팔았다. 올해 생산 목표는 14만9300대다. 2003년 15만 대 생산 이후, 10년 만에 최고치다. 파업이 있던 2009년(3만4700대)보다 5배 이상 늘었다. 2분기엔 영업이익 37억원, 당기순이익 62억원으로 6년 만에 처음 흑자로 돌아섰다. 상반기 전체로는 영업적자 폭을 전년의 30% 수준으로 줄이며 선방했다.
아파도 정직하게 ‘아프다’고 말할 수 없다. 쌍용차 문제 국정조사와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하며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무기한 단식농성 중인 이들 얘기다.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 등 해고자를 포함한 단식단 12명은 지난 9월10일부터 곡기를 끊었다. 체중은 각각 10kg가량씩 빠졌다. 낮에는 내리쬐는 가을 햇살을 우산으로 가리고 앉아 있다가, 저녁이면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미사에 참여하는 게 하루 일과다. 쌍용차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미사는 벌써 170회가 넘었다. 한의원 치료는커녕, 하루 50~60명에 이르는 동조 단식자들의 연대를 ‘보약’ 삼아 버틴다. 41일간 이어진 김정우 전 지부장의 단식, 171일간의 평택공장 앞 철탑 고공농성에도 꿈쩍하지 않던 회사는 이번에도 묵묵부답이다. 2009년 77일간의 옥쇄파업, 그 뒤 날아온 동료 24명의 부고장 그리고 햇수로 5년째 계속되는 거리농성. 단식으로 상한 몸도 몸이지만, 응어리져 있는 속병도 심각하다.
정리해고자들은 복직 논의에서 고립회사는 빠르게 정상화되고 있는데, ‘옛’ 쌍용차인들이 공장으로 돌아갈 시간은 더디게 흘러간다. 지난 5월 무급휴직자와 일부 징계해고자 등 480여 명이 회사에 복귀했다. 렉스턴W 등을 생산하는 조립3공장이 주야 2교대로 전환하면서 추가 인력이 필요해서였다. 그러나 희망퇴직자 1904명과 해고자 187명에게 공장 문턱은 여전히 높기만 하다. 2009년 파업 종료 직후 회사 쪽은 “향후 경영 상태가 호전돼 신규 인력이 필요한 경우 무급휴직자, 희망퇴직자, 분사자를 순차적으로 복귀 또는 채용한다”고 노조와 합의했었다. 4년 넘게 기다렸지만, 더 기다리란다. 이유일 쌍용차 사장은 최근 기자들을 만나 “신차인 X-100(프로젝트명)이 생산되는 내년 10월 이전에 희망퇴직자를 순차적으로 복직시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정리해고자들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2009년 노사 합의 당시 무급휴직과 희망퇴직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복귀 약속’은 없었다는 이유다. ‘강성 노조원’이던 정리해고자들은 복직 논의에서 고립시키겠다는 속내다.
공장 안과 밖에 있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길은 하나다. 바깥에서 기다리는 이들에게 공장 문을 다시 열어주는 것이다. 사실 인력 충원은 ‘언제 하느냐’의 문제만 남아 있다. 올해 상반기 평택공장의 가동률은 107%였다. 지금 설비로는 생산이 판매를 따라잡지 못할 형편이다. 주문만 받아놓고 판매하지 못한 백오더 물량만 내수 7천여 대, 수출까지 포함하면 1만 대에 이른다. 현재 임직원 수는 4800여 명이다. 이들이 연간 15만 대를 생산해내야 한다. 생산 물량이 최대치를 찍었던 10년 전엔 인력이 7천 명에 달했다. 회사는 그때의 70% 인력으로 똑같은 결과물을 내놓으라고 쥐어짜고 있는 것이다. 2009년 파업 직후 100명대로까지 줄었던 비정규직 인원도 현재 800명을 넘어섰다.
특히 뉴코란도C를 생산하는 조립1공장의 교대제 전환이 시급하다. 현재 평일 아침 8시30분~오후 5시30분 근무, 일주일에 4회 저녁 3시간 잔업, 토요일 특근까지 ‘강행군’을 하고 있지만, 힘에 부치는 노동자들이 잔업과 특근을 꺼리고 있는 탓이다. 판매 물량이 딸리는 주된 이유다. 조립1공장에선 시간당 24대의 차량을 뽑아낸다. 모듈화·자동화율이 앞서 있고 2교대제를 시행 중인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싼타페 시간당생산대수(UPH)와 비슷한 수준이다. 작업 공간도 협소해서 쌍용차 노동자들이 느끼는 노동강도는 더 셀 수밖에 없다. 평택공장 노동자 이준익(가명)씨는 “조립1팀 컨베이어벨트 속도는 2·3팀보다 훨씬 빠르다. 일부러 잔업을 깨려는 게 아니라 힘들어서 일을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 노조와 구 노조 공동 행보 나서이에 대해선 파업 이후 금속노조에서 탈퇴했던 쌍용차노조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김규한 노조 위원장은 집행부 회의에서 “조립1공장은 한계상황이다. 복귀자 현황을 파악하고, 인원 충원과 근무 형태(교대제) 변경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노사협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유일 쌍용차 사장은 “모든 공장에서 2교대제 운영이 가능한 건, 24만 대 생산시점”이라고 최근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규백 쌍용차노조 교육선전실장은 “24만 대는 이 사장이 생각하는 추상적인 숫자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내년 생산계획을 정확하게 다시 산정해서, 교대제 전환과 증산 등 효율적인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력 충원 시점에 대한 판단은 엇갈린다. 결정적 ‘열쇠’는 뉴코란도C와 함께 조립1공장에 투입될 X-100 개발 속도가 쥐고 있다. 2015년 초 출시 예정인 1600cc급 레저용 차량(RV)인 X-100은 쌍용차의 ‘새로운 희망’이다. 뉴코란도C처럼 얼굴만 바꾼 모델이 아니라, 파업 이후 처음으로 내놓는 전혀 새로운 모델이기 때문이다. 마힌드라그룹에서 지난 6월 800억원 규모의 첫 지원금을 받아낸 프로젝트기도 하다. 이 사장은 추가 인력 투입 시점을 ‘내년 10월’이라고 언급했지만, 노조 쪽은 사전 교육 등을 감안해 일정이 앞당겨질 수도 있다고 본다. 회사의 한 고위 임원도 “X-100은 내후년 양산 계획이긴 하지만, 1년간 시험차량 운행 등이 필요하기 때문에 내년 초엔 생산라인 준비가 시작돼야 한다”며 “교대제 전환, 증산 등 공급량을 늘릴 여러 가지 방안을 놓고 ‘행복한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희망퇴직자들도 술렁이는 분위기다. “회사가 400명을 새로 뽑는다는데 이번엔 나도 공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거냐?”고 묻는 전화가 사무실로 걸려온다고 노조 관계자는 전했다. 조립1공장만 주야 2교대로 전환돼도, 500~600명의 인원이 공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서로 마음을 어루만지는, 희망의 빛도 새로 비치기 시작했다. 지난 4년 동안 껄끄러운 관계였던 쌍용차노조와 금속노조 쌍용차지부가 공동 행보에 나선 것이다. 쌍용차지부가 소식지를 통해 먼저 대화를 제의했고, 쌍용차노조도 흔쾌히 응했다. 지난 8월19일 만난 한상균 전 쌍용차 지부장과 김규한 쌍용차노조위원장 등 두 노조 임원들은 △파업 참가자들에 대한 224억원의 손해배상·가압류 △해고자 복직 △마힌드라그룹의 실질적인 투자 등 3가지 사안에 대해 논의했다. 추석 연휴 직전에는 두 노조 관계자들이 평택 지역구 의원인 새누리당 원유철 의원을 함께 찾아가, 쌍용차 사태 해결을 위해 나서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규백 노조 교선실장은 “여야 가리지 않고 정치권을 만나서 국가가 제기한 손해배상소송 취하 등을 끌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묵묵히 일만 하며 침묵하고 있던 공장 내부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지난해 국회 청문회에서 상하이자동차가 정리해고를 위해 회계 조작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뒤 움튼 변화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가 평택공장 앞에서 선전 유인물을 나눠주면 순식간에 1600부가 동이 날 정도로 현장의 관심도는 높아졌다.
후보 시절 국정조사 약속한 박 대통령지난 4년, 희망은 언뜻 눈앞에 다가온 듯했다가 사라지곤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쌍용차 국정조사를 약속했다. 그 당연한 ‘약속을 지키라’고, 정리해고자들은 또다시 단식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다시 희망을 말한다. 김득중 쌍용차 지부장은 “그동안 불편했던 기업노조(쌍용차노조)와의 상처를 털어내고 ‘소통과 화해’ 국면으로 가기로 한 것은, 이제 회사와 정치권도 노-노 갈등을 핑계 대지 말고 근본적인 사태 해결에 나서라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쌍용차를 둘러싼 객관적인 희망의 근거는 충분하다. ‘희망고문’은 지금까지만으로도 충분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