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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삼성 노동자 “동료 중 15살 노동자 있다”

등록 2012-09-13 16:56 수정 2020-05-03 04:26

한국 배우 장나라를 좋아하는 왕청타이(23·가명)는 중국 톈진에 있는 한국 기업 인탑스에서 일한다. 인탑스는 삼성전자에 휴대전화 케이스를 공급하고 있다. 지난 8월24일 밤 11시 공장 근처에서 만난 그는 “1시간 전에 퇴근했다”며 “내일도 일찍 출근해야 해서 인터뷰를 빨리 끝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검정색 러닝셔츠 차림을 한 20대의 얼굴에는 ‘피곤’이라고 쓰여 있었다.
왕청타이는 이날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15시간을 일했다. 그는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가 정상 근무시간이지만, 빨라야 저녁 7시에 퇴근하고 늦어지면 밤 10~11시에 퇴근한다”고 말했다. 그나마 그는 형편이 나은 편이다. 4년제 대학을 나와 케이스 규격을 측정하는 기술자라서다. 휴대전화 케이스를 생산하는 여성들은 하루 12시간씩 맞교대로 일한다.

공장 근무자 증언 “사표도 쉽게 못 낸다”
그렇다고 월급이 많은 것도 아니다. 기본급 1310위안(약 23만원)은 톈진 시정부가 정한 최저임금이다. 겨우 생계를 유지할 최저임금이 기본급이어서 초과근무를 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는 “기본급이 낮아 초과근무를 할 수밖에 없지만 근무시간이 너무 많다”며 “월 100시간가량의 초과근무를 해야 3600위안(약 64만원)을 받는다”고 말했다. 중국의 법정 최대 초과근무 시간은 월 36시간이다.
노동환경도 좋지 않다. 왕청타이는 “휴가나 병가를 내기 힘들고, 아파서 못 나오면 무단결근으로 사흘치를 월급에서 제한다”며 “나도 8개월 일하며 7~8일밖에 쉬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밤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졸거나 휴대전화를 이용하다 사진에 찍히면 벌금으로 월급의 절반가량인 500~2천위안(약 9만~35만원)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퇴사자도 자주 생긴다. 하지만 사직도 쉽지 않다. “사표를 내도 수리를 안 해준다. 결국 사흘을 출근하지 않으면 사표가 수리되고, 그 사흘은 무단결근으로 월급에서 아흐레치가 까진다.” 남아 있는 직원들은 더욱더 초과 노동에 매달려야 한다. 그는 “직원들은 고려하지 않고 삼성에서 물량을 받아오다 보니 적어진 숫자의 사람이 더 많은 일을 해야 해서 초과근무를 더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삼성과 관련된 공장들의 노동환경은 미국 비정부기구(NGO) ‘중국노동감시’(China Labor Watch)가 지난 9월4일 발표한 ‘중국 내 삼성 조사 보고서: 삼성은 노동자를 괴롭히는 애플의 특허까지 침해하나?’(An Investigation of Samsung’s Factories in China: Is Samsung Infringing Upon Apple’s Patent on Bullying Workers?)에도 담겨 있다. 보고서는 지난 5월부터 석 달간 중국 삼성 직영 공장 6곳과 톈진인탑스·톈진참테크 등 하청업체 2곳에 직접 조사팀을 취업시키고 현지 노동자들을 인터뷰한 결과, 일부 삼성 공장에서 아동노동이 발견됐고 상당수 공장에서는 월 100시간이 넘는 초과근무를 하는 등 노동환경이 매우 나쁘다고 밝혔다.
특히 광둥성의 후이저우삼성전자 공장에서는 16살 미만의 아동들이 다른 사람의 신분증을 이용해 일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회사 쪽이 이를 알면서도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곳은 지난 8월 아동노동 의혹이 제기된 HEG전자로부터 부품을 공급받아 MP3·DVD플레이어 등을 생산한다. 톈진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선전삼성커젠이동통신기술 등도 16~18살 미성년 노동자를 고용해 성인과 똑같이 초과근무를 시키는 등 노동법 위반이 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중국에서는 16~18살 고용은 가능하지만 하루 8시간 근무로 제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쪽은 “중국에서 존경받고 사랑받는 기업이 되기 위해 가장 강조하는 것이 준법경영”며 “아동노동은 삼성이 운영하는 공장뿐만 아니라 하청업체에도 없다”고 밝혔다.

“동료 중 신분증 위조해 입사한 15살 있다”
하지만 가 만난 톈진시 삼성 노동자들도 보고서 내용과 비슷한 증언을 했다. 지난 8월24일 만난 톈진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의 루링(21·가명)과 쑤링위(21·가명)는 “모니터 화질을 점검하는 부문에서 일하는데 동료 가운데 신분증을 위조해 입사한 1997년생(15살)이 있다”며 “회사가 그 사실을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별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고 전했다. 같은 날 만난 톈진삼성전자의 양쯔치(20·가명)도 “지난해 입사할 당시 15살 노동자가 있었다”고 말했다.
중국노동감시 설립자 리창은 “현재의 노동환경을 개선하려면 노동자들이 익명을 보장받아 회사 쪽에 건의할 수 있는 핫라인을 설치하고 비정부기구 등 제3의 기구가 노동환경을 감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쪽은 “근로자를 대표하는 공회와 사원대의기구가 운영되고 있다”며 “매월 정기회의는 물론 법인장 등이 수시로 간담회를 열어 직원들의 불편사항을 청취해 개선하고 있다”고 밝혔다.
톈진(중국)=이정훈 기자 한겨레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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