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서울병원이 최근 치과를 폐쇄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종합병원으로선 전례가 드문 이례적인 결정의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삼성서울병원은 내년 치과 수련의(인턴·레지던트)를 뽑지 않겠다고 대한치과의사협회(치협)에 지난 11월23일 통보했다. 해마다 치과 분야 인턴과 레지던트 각각 7명씩 14명을 받아온 삼성서울병원의 파격적인 방침 전환이었다. 이런 계획은 이튿날 조금 바뀌었다. 삼성서울병원은 11월24일 치협에 레지던트 4명만 받겠다고 수정 방침을 통보했다.
“3년 뒤 치과 의사 2명만 남기겠다”
같은 시기 병원 쪽은 치과에도 폐쇄를 통보했다. 복수의 삼성서울병원 치과 관계자는 “병원 쪽에서 구두로 처음에는 ‘12월부터 신환(신규 환자)을 받지 않고 내년 3월까지 치과의사 2명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구조조정하겠다’고 밝혔다가 ‘이번에 들어올 레지던트 4명이 졸업하는 3년 뒤에 치과의사 2명만을 남기고 그동안 치과 의료진을 구조조정하겠다’고 알려왔다”고 말했다. 3년 뒤 남게 될 치과의사 2명만으로는 환자를 받을 수 없어 삼성서울병원의 치과는 사실상 문을 닫게 된다.
치과는 병원 쪽의 계획에 반발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의 치과 관계자는 “공문을 받은 것이 아니어서 아직 ‘반대한다’는 입장만 갖고 있다”며 “병원 쪽이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아 정확하지는 않지만 수익성 때문이라면 의료기관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련의와 졸업생들도 지난 12월1일 모임을 갖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졸업생들은 최근 폐쇄에 항의하는 의견을 병원 쪽에 전달했다. 수련의들도 대책 모임을 꾸려 반대에 나섰다. 졸업생인 성균관대 의대의 한 외래 조교수는 “심장이나 신장 등 장기를 이식하는 환자는 면역억제제를 복용하기 때문에 수술 전 입안 충치나 잇몸 질환 등을 꼭 치료해야 하는데, 치과가 사라지면 이런 다른 진료 과목과 함께 치료할 수 없게 돼 환자들이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수련의를 더 이상 받지 않겠다는 것 역시 우수 의료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건립 이념과 상충하는 것은 물론, 의료기관으로서 사회적 책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삼성서울병원은 1994년 3월 1100병상 규모로 문을 열어 ‘최선의 진료로 국민에 봉사, 첨단의학 연구로 의학 발전에 기여, 우수 의료인력의 양성으로 국민보건 향상에 기여’를 건립 이념으로 삼고 있다.
치과 관계자들은 병원 쪽의 폐쇄 움직임을 ‘수익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올해 삼성서울병원이 받은 그룹 차원의 경영진단에 앞서 지난해 치과만 먼저 경영진단을 받았다. 그 결과 치과의 고질적인 적자 구조가 드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종합병원의 치과는 대부분 적자에 허덕인다. 삼성서울병원에서 수련의를 마친 한 졸업생은 “수련의를 받는 종합병원의 경우, 교육을 위해 수입이 적은 진료까지 해야 하고 일반 병원에서 의뢰를 받는 보험 환자가 많아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치과의 경우 아산병원을 비롯해 종합병원이 대부분 적자이며, 서울대병원만 조금 흑자가 나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바이오·헬스케어 신수종 사업화에 박차
그렇다면 왜 삼성서울병원만 치과 폐쇄를 추진하는 것일까? 지난 10월 삼성서울병원에 취임한 윤순봉 삼성서울병원 지원총괄 사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윤 사장은 삼성서울병원이 개원한 이후 17년 만에 처음으로 사장 직급을 받은 전문경영인이다. 윤 사장은 삼성그룹 비서실 재무팀,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조정실장, 전략기획실 홍보팀장 등 주요 직책을 두루 거치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신경영 지침을 적극적으로 관철해 ‘혁신 전도사’로 꼽혔다. 당시 인사에 대해 삼성그룹 이인용 커뮤니케이션팀장은 “삼성서울병원은 개원 뒤 17년 만에 처음으로 경영진단을 받았으며, 그 결과 혁신을 통한 재도약이 필요하다고 판단됐다”며 “그룹 내 혁신 전도사로 알려진 윤 사장이 적임자로 판단돼 인사를 단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순봉 사장은 그동안 병원장이 겸임하던 경영을 맡은 것은 물론, 의료사업 일류화 추진단장을 함께 맡고 있다. 일류화 추진은 곧 삼성이 새로운 먹거리로 꼽고 있는 바이오·헬스케어 산업의 육성이다. 이인용 커뮤니케이션팀장도 윤 사장의 취임에 대해 “다양한 업무 경험과 전문경영인으로서의 역량을 통해 삼성의 5대 신수종 사업의 하나인 바이오·헬스케어의 조기 사업화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삼성은 2009년 의료산업 진출을 밝힌 이후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엑스선 기기 제조업체인 ‘레이’(Ray)와 국내 최대 의료 장비업체 ‘메디슨’을 인수한 바 있다. 이어 지난 11월에는 심장질환 현장검사 솔루션을 제공하는 미국계 회사인 ‘넥서스’를 인수했다.
또 바이오시밀러(바이오복제약) 산업에서도 삼성전자·삼성에버랜드·삼성물산 등이 미국 퀸타일즈와 함께 지난 4월 바이오의약품 제조를 목적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세워 현재 인천 송도 국제도시에 공장을 짓고 있다. 최근에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미국 제약기업인 바이오젠 아이덱과 함께 신규 합작법인을 세우기로 합의했다. 아울러 영리병원에도 참여하고 있다. 삼성물산과 삼성증권은 다이와증권·KT&G와 손잡고 ‘인천송도국제병원’(ISIH) 컨소시엄을 구성해 지난 3월 병원 투자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이처럼 삼성의 발빠른 행보에 삼성서울병원의 도움이 절대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삼성서울병원의 임상과 연구가 바이오산업을 비롯한 의료산업 육성에 큰 힘이 된다는 것이다. 삼성서울병원은 2006년부터 바이오신약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신약 개발에 힘써왔고, 2008년 삼성암센터가 개원하며 삼성전자종합기술원 연구팀이 상주해 함께 연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삼성이 바이오산업, 의료기기, 원격진료 등 의료산업에 큰 투자를 하고 있다”며 “삼성서울병원은 국내 최대 규모의 병상을 갖추고 있어 임상실험이 용이해 전문경영인이 영입되면서 관련 부분이 집중적으로 육성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우석균 실장은 “서울삼섬병원의 치과 폐쇄는 그런 과정에서 필요 없는 부분을 잘라내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돈 안 되는 건 없앤다?
삼성서울병원의 치과 폐쇄는 삼성그룹의 바이오·헬스 산업과 관련한 원대한 전략의 첫 단계일지 모른다. 향후 수익성이 떨어지거나 육성할 의료산업과 맞지 않을 경우 다른 의료 부분도 잘려나갈 수 있다. 그 과정에서 환자의 진료권 등 의료기관의 사회적 책임은 치과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 무시될 가능성이 크다. 삼성서울병원 치과 관계자는 “지난해 경영진단 결과 치과의 적자가 계속 되는 등 문제가 지적돼 개선하고 있었다”며 “문제를 고치기보다 전격적으로 폐쇄 조처를 취하는 것은 종합의료기관으로서 책임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삼성서울병원 홍보팀은 “치과가 축소되는 것은 맞지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지 않아 뭐라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밝혔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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