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대통령 친구는 농협 회장 재임하나

회장 선거 투표권 가진 대의원을 자회사 임원에 앉힌다는 의심받는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 7억원 넘는 고액 연봉, 농협법 개정 논란에도 고교 동창 대통령과 친분 과시하며 재임 움직임
등록 2011-10-28 13:03 수정 2020-05-03 04:26
지난 4월14일 전산장애사태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는 최원병 농협중앙회장.  한겨레 자료사진

지난 4월14일 전산장애사태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는 최원병 농협중앙회장. 한겨레 자료사진

농협중앙회 최원병 회장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최원병 회장은 2007년 12월 당선돼 올 연말에 4년 임기가 끝난다. 최 회장은 2007년 1차 선거에서 2위였지만, 1위가 절반을 넘지 못해 다시 치른 투표에서 역전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경북 포항 동지상고 5년 후배라는 인연이 당선에 큰 도움이 됐다는 뒷말이 무성했다.

농협 행사 끝까지 자리 지킨 대통령

그렇게 당선된 최 회장이 연임하리라 예상한 사람은 올 초까지는 적었다. 최 회장이 2009년 농업협동조합법(농협법)을 개정하며 임기를 연임제에서 단임제로 바꿨기 때문이다. 2009년 개정된 농협법 제130조 5항을 보면 “회장의 임기는 4년으로 하며, 중임할 수 없다”고 돼 있다. 하지만 최 회장은 바뀐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부칙 제8조에 “제130조 5항의 개정규정은 이 법 시행 후 최초로 선출되는 중앙회장부터 적용한다”고 돼 있다. 결국 최 회장은 농협법 개정 전에 회장을 맡았으므로, 올 연말 선거에 한번 더 출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농협법은 중앙회장 임기 종료 직전 30일 전후로 선거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앞서 최원병 회장은 언론을 통해 올해를 끝으로 물러날 것을 밝힌 바 있다. 지난해 4월 와의 인터뷰에서 “임기가 2년 정도 남았는데 잘 마무리하고 퇴임해서 고향으로 갈 겁니다”라고 밝혔다. 이런 태도가 최근 들어 바뀌었다. 확실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지난 9월 국정감사에서 연임 여부와 관련한 질문에 “확실치 않다”고 말했다. 농협 홍보실도 “최 회장은 지금까지 출마와 관련해 명확한 의사를 밝힌 바 없다”고 밝혔다.

그런데 최 회장 쪽의 연임을 위한 포석으로 해석될만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최 회장은 올 들어 20여 개 자회사의 임원 자리가 비면 투표권이 있는 대의원들을 앉히고 있다. 농협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지금까지 이렇게 자회사 임원이 된 대의원이 54명에 달한다. 이는 투표권이 있는 대의원의 18.8%에 해당한다. 최 회장은 2009년 농협법을 개정하며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대상을 과거 각 단위농협 조합장에서 대표 조합장으로 축소했다. 이에 따라 현재 1178명의 조합장 가운데 투표권은 288명만 갖게 된다. 농협 관계자는 “과거에는 농협 자회사 임원에 옛 조합장과 농협 내부 인사 등도 임명됐지만, 올 들어서는 투표권이 있는 대의원만이 임원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월 200만~300만원의 월급을 따로 받을 수 있다.

최 회장이 이명박 대통령과의 학연을 활용하고 있다는 의혹의 눈초리도 있다. 최 회장은 지난 4월 청와대에서 열린 포항 동지상고 동문회에 참석해 인연을 과시했다. 지난 9월 서울 상암운동장에서 열린 ‘전국 농업인 한마음 전진대회’에는 이 대통령이 직접 참석했다. 이날 행사는 행사 대행 13억4천만원, 농업인 초청 20억원 등 33억4천만원이 들었다. 당시 대회 참가자는 “농협 창립 50돌을 맞아 열린 행사에서 4만 명의 농민 조합원을 위한 프로그램은 하나도 없었다”며 “이 대통령이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최 회장과의 우정을 과시하는 자리 같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농협 관계자는 “선거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대통령과 함께하는 자리가 많아져 연임을 노린다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농협 홍보실은 “애초 60억여원을 들일 예정이었으나 외부의 비판을 받아들여 규모를 줄인 것”이라며 “농민들을 초청해 서울 구경을 하게 하는 차원도 있었고, 과거 2005년에 열린 ‘도농상생 한마당 행사’가 55억원이 들어간 것에 비하면 많지 않다”고 해명했다. 또 “노태우 대통령 시절부터 김영삼 정부 때를 제외하고 정권마다 있었던 행사”라며 “선거와는 무관하다”고 덧붙였다.

연봉은 높아도 책임은 적어

최 회장의 연임 시도 움직임이 나타나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선 최 회장의 고연봉에 대한 문제 제기가 나온다. 최 회장은 ‘비상근 명예직’인 농협중앙회장을 맡아 지난해 2억494만원의 연봉을 기록했다. 최 회장은 또 하나의 월급 수령처를 더 두고 있다. 농민신문사로부터도 연봉을 받는다. 1억7472만원에 이른다. 이밖에 경영활동비로 각각 2억4천만원, 8400만원을 받아 지난해 최 회장이 받은 총연봉은 7억366만원에 달했다.

이는 올해 농가 평균소득으로 추정되는 3420만원의 20배에 이르는 수치고, 다른 금융기관장에 비해서도 과한 금액이다. 민주당 강봉균 의원은 “주요 금융기관장인 수출입은행장 4억8천만원, 산업은행장 4억6천만원, 중소기업은행장 4억8천만원보다도 훨씬 많은 금액을 수령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농협 홍보실은 “과거 업무추진비로 집행되던 것을 투명하게 하려고 경영활동비로 전환해 연봉에 포함시켜 많은 것처럼 보인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명예직인 대한상의,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단체 회장들이 월급을 한 푼도 받지 않는 현실과도 크게 다르다.

더욱이 지난 4월 농협 금융전산망 마비 사태가 터졌을 때 최 회장이 보인 태도 역시 많은 사람을 실망시켰다는 평가가 많다. 당시 최 회장은 “비상근이어서 업무를 잘 모르고 내가 한 것도 없으니 책임질 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지난 9월 전산 사고에 대해 금융감독원은 농협 임직원 20여 명에게 중징계를 내렸지만, 최 회장은 제외됐다. 금융감독원은 “최 회장의 징계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관련 법규를 검토했지만 법적 근거를 찾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농협중앙회에서 벌어지는 상시적인 비정규직 해고와 관련해서도 최 회장은 ‘권리가 없다’ ‘끗발이 없다’ 등의 책임 회피만을 해왔다. 명예직으로 고액을 수령하면서도 책임은 하나도 안 져도 되는 ‘신의 직위’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게다가 내년 3월로 예정된 경제사업과 금융사업을 나누는 농협법 개정에 최 회장이 적극 나서자 노조를 비롯한 내부에서도 비판을 받고 있다. 농협노조 관계자는 “지난 3월 농협을 분리하는 농협법은 금융지주회사, 경제지주회사 등 2개의 주식회사가 탄생하고 이곳의 대주주를 농협중앙회가 맡겠다는 것”이라며 “결국 주식회사의 탄생으로 기존 협동조합은 사라지고 금융지주회사에 단위농협이 편입돼 무차별한 경쟁 속에 내몰리고 그 결과 농민을 지원하는 정책은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런 법안을 주도적으로 추진한 것이 최 회장이므로 연임을 반대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현직 단위농협 조합장은 “최 회장이 애초 농협법 개정을 추진하며 2개 지주회사 설립에 필요한 자본금 가운데 6조원을 정부로부터 지원받겠다고 공언하고도 4조원만 약속받아 모자란 2조원은 농협이 메우게 됐다”며 “개혁을 빌미로 오히려 농협에 2조원의 추가 부담을 떠안긴 셈이 됐다”고 비판했다.

“전산망 마비 등에 책임져야”

이런 사정을 이유로 농협 안팎의 관계자들은 “전산망 해킹 사태를 비롯해 고액 연봉, 부실 경영 등 불명예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최 회장이 연임을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농협 홍보실은 “최 회장이 현재 농협법 개정과 관련해 업무에만 집중하는 상태인데다, 선거와 관련해서는 유권자인 대의원 조합장들이 농협의 미래를 알아서 잘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선거관리위원회는 최근 최원병 회장 연임을 반대하는 우편물이 전국 대의원들에게 두 차례 전달된 사실을 확인하고 서울중앙지검에 10월20일 수사를 의뢰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최원병 회장을 사랑하는 직원’ 명의로 최 회장의 출마에 반대하는 서신을 전국 조합장에게 보낸 사실이 드러나 불법 선거운동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