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부채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기업의 부채 비율은 아직 큰 문제는 없지만 국가·지방자치단체·공기업 등 공공부문의 부채가 빠르게 늘고, 가계 부채도 우리 경제의 단골 골칫거리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두 부문의 부채는 규모가 크고, 증가 속도가 빠르고, 우리 경제의 걱정거리라는 점에서 똑같다. 그러나 구체적인 증가 원인과 해법은 서로 다르다. 이런 공통점과 차이점에 유의해 우리나라 부채 증가의 원인과 해법을 알아보자.
부채 증가의 멍석 깐 저금리
먼저 두 문제의 공통된 원인을 살펴본다. 이번 부채 증가의 근본에는 저금리가 있다. 저금리에는 한국은행(한은)의 책임이 있다. 물가안정목표제를 시행한 이후 역설적으로 저금리는 한은이 부를 줄 아는 유일한 ‘유행가’가 돼버렸다. 어떻게 이런 역설이 성립할 수 있었는가.
2000년대 초반 세계경제에는 중국과 인도라는 커다란 공장이 있었다. 두 공장이 전세계에 물건을 값싸게 공급했다. 한은이 무슨 정책을 취하든 물가상승률은 2∼3%에서 오르락내리락했다. 기고만장한 한은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저금리 노래를 불렀다. 어찌 보면 경기부양이 한은의 실질적인 통화정책 목표가 된 느낌마저 들었다. 어떤 한은 총재는 “비록 그 효과가 없을지라도 경기부양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 금리를 낮춘다”는 발언까지 했다. 자고 나면 부동산 가격이 뛰어도, 몇몇 학자가 금리를 올리라고 입바른 소리를 해도 “금리정책을 자산가격 안정에 사용하는 예가 없다”는 헛소리를 입에 올리곤 했다(한은 관계자가 이런 말을 한 다음날 언론에는 부동산 가격 폭등을 막으려고 영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기로 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어떤 한은 총재는 금리 인상이 두려워서 콜금리 목표는 그대로 두고 지급준비율을 올리는 ‘연극’을 했다. 콜금리 목표를 그대로 두는 한 시중의 자금 사정은 거의 변화가 없는데도 말이다. 이런 전통은 물가가 불안한 지금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인도와 중국의 효과가 사라진 뒤 요즘 물가는 다시 고공행진을 하고 있건만 한은은 요지부동이다. 의심스러운 독자는 다음달 금융통화위원회 결정을 주목해보라. 과연 물가 비상이 걸린 요즘 한은이 금리를 올릴 것인지.
저금리가 부채 증가의 멍석을 깔았다면 건설경기 활성화를 통해 성장률 수치를 끌어올리려는 꼼수가 나머지 푸닥거리를 완성했다.
부동산 투기, 우리의 탐욕스러운 자화상
공공부문 부채 증가의 현실을 보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SH공사라는 이란성 쌍둥이는 공기업 부채 증가의 전형을 보여준다. ‘세종시’ ‘뉴타운’ 등 구체적인 이름은 달라도 이를 꿰뚫는 공통의 주제는 ‘건설’이다. 건설은 성장률을 높이고 싶어하는 정치권이 죽어도 외면할 수 없는 ‘사탄의 유혹’과 같다. 돈을 집어넣는 순간 정확히 고용과 성장이 손쉽게 창출되기 때문이다. 돈을 집어넣은 명분이야 뭐라도 좋다. ‘수출과 내수의 균형성장’ ‘지역균형발전’ ‘무주택 서민의 내 집 마련 지원’ 등 적당히 가져다쓰면 된다. 이번 정부는 여기다 ‘4대강 개발’을 추가하는 독창성을 더했을 뿐이다.
그러나 건설은 순식간에 타오르다 곧 사그라지는 짚불 같은 것이다. 돈을 끊으면 그 순간 ‘땡’이다. 건설은 불이 타오를 때는 투기를, 불이 꺼지면 부실을 낳은 ‘금단의 선택’인 것이다. 오죽하면 일부 학자들이 우리나라를 ‘토건국가’라고 명명했을까.
우리나라의 가계 부채가 급증한 이면에는 내 집 마련을 위한 애틋한 정성이 존재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모두가 돈 버는 투전판에서 나도 한밑천 잡아보려는 적나라한 투기적 동기가 전혀 없었다고 장담할 수 없다. 위장 전입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땅을 사랑하는 마음이 어디 장관 후보자들만의 전유물이겠는가. 이런 맘을 기막히게 헤아리는 안목을 가진 곳이 금융기관들이다. 3년 만기 일시상환 대출이 무엇인가? 대한민국 국민 중에 이런 방식의 수억원짜리 대출을 만기에 상환할 능력을 지닌 사람이 있다면 한번 만나보고 싶다. 이 대출은 오로지 집값이 앞으로 훨훨 날아오르리라는 예상하에서만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다. 전체 주택담보대출의 80%가 이런 식의 대출이라는 현실은 우리의 탐욕스러운 자화상과 다름없다.
이번 정부 들어 현저하게 나타난 중앙정부의 부채 증가는 약간 상황이 다르다. 이는 역설적으로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의 산물이다. 작은 정부를 추구한답시고 ‘부자감세’를 해서 세수는 줄여놓고, 정작 정부는 이 잔치, 저 상갓집에 안 끼는 법이 없었다. 정부 기능은 확대하고 세수는 줄여놓으니 그 결과는 불문가지다. ‘작은 정부’를 추구하기로 했으면 정부는 문자 그대로 야경국가 시절로 돌아갈 각오를 해야 한다. 도둑만 잡는 것으로 구실을 한정해야 한다. 부실 건설사를 떠받들고, 부실 저축은행에 돈을 퍼붓고, 4대강 공사를 벌이고, 미래 먹거리를 걱정하고, 해외 자원을 개발하는 것은 야경국가의 사전에 없다. 야경국가에 무슨 ‘서민 복지’와 ‘중소기업 지원’이 있다는 말인가. 그런 일을 하려면 솔직하게 세금을 올려야 한다.
금리 올리고 증세해야
해법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원인을 뒤집으면 된다. 그다음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파생되는 부작용을 치유하는 세심함을 부가하면 된다. 먼저 금리를 올려야 한다. 금리 인상 없이 부채 문제를 잡는 어떤 방법도 거짓말이다. 이것만이 누구에게나 특혜나 편견 없이 보편적으로 부채 유지 비용을 증가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다음으로는 정치권과 관료들이 건설 경기를 통해 성장률을 제고하려는 꼼수를 버려야 한다. 성장은 생산성을 향상시켜 이룩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복지를 운위하려면 돈을 걷어야 한다. ‘공짜 점심’은 초등학교 학생들의 눈에만 공짜로 보일 뿐이다. 그것을 공짜로 만들려면 어른들이 열심히 돈을 내야 한다. 부채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리 모두 어른이 되어야 한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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