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것인가, 아니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일이 벌어질 것인가? ‘시장경제의 파수꾼’인 공정거래위원회가 전원회의 비공개 관행의 위헌성 여부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848호 특집 ‘변호사도 내쫓는 공정위의 밀실재판’ 참조)을 맞아 중대한 기로에 섰다.
“전원회의 ‘공개 원칙’ 맞게 개선할 것”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2월17일 과 만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전원회의 운영을 공정거래법 43조의 ‘공개 원칙’ 취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개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공정위 처분이 1심 재판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 ‘준사법기구’로서의 위상에 걸맞게 전원회의 심의·의결 절차의 정당성을 개선해 신뢰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공정위가 1981년 정식 출범 이후 30년간 유지해온 전원회의 비공개 관행이 사라지는 획기적 변화가 일어나는 셈이다.
공정위 심판관리관실은 현재 공정거래법과 사건처리절차규칙의 관련 규정에 대한 개선안을 마련 중이다. 관건은 전원회의 비공개 관행의 빌미가 된 관련 법조항의 처리다. 공정거래법 43조는 ‘공정위의 심리·의결 과정은 공개한다’고 규정하고서도, ‘법 위반 혐의 사업자의 사업비밀 보호 필요성이 인정될 때는 비공개할 수 있다’고 예외를 두고 있다. 공정위는 ‘사업상 비밀’ 규정이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포괄적이어서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소지가 많다고 보고, 이를 더 구체화할 방침이다. 공정위 심판관리관실의 채규하 과장은 “비공개 사유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을 준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면서 “공정위와 마찬가지로 합의제 행정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의 제도와 운용도 참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보공개법에 따르면, 공공기관은 국민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책에 관한 정보는 공개해야 한다. 다만, 기업의 경영·영업상 비밀이 공개돼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등에는 비공개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기업의 위법·부당한 사업활동으로부터 국민의 재산 또는 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는 공개해야 한다.
기업이 담합이나 불공정거래 행위로 공정위 소관 법을 위반했을 경우 다수 국민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예로 과징금 규모가 사상 최대였던 LPG 담합 사건의 경우 택시기사들과 장애인들은 각각 수조원씩의 피해를 입었다며 집단으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58쪽 기사 참조). 그동안 공정위의 전원회의 비공개가 이같은 국민의 피해 구제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해왔다는 지적이 적잖았다. 공정위가 법 위반 사실을 숨기고 싶어하는 기업들을 사실상 도와줬다는 것이다. 이는 방송위가 기업의 법 위반 사건에 대해 공개 원칙을 지켜온 것과 대조를 이룬다. 공정위의 비공개 운영에 대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 오영중 변호사도 “공정위의 전원회의 비공개가 소비자의 권리 보호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위험이 크다”고 지적한다. 공정위는 기업의 사업상 비밀 보호 요청이 타당한지에 대한 심의도 그동안 사건담당 주심위원 1명이 결정하던 방식 대신 전원회의에서 결정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것을 검토 중이다.
공정위가 전원회의 운영 개선에 나선 것은 내부적으로 회의 비공개를 계속 고수할 명분이나 실리가 적다는 의견이 많은데다, 외부의 개선 요구도 거세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운동을 벌여온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2월15일 논평을 통해 “공정위의 심판은 1심 판결에 준하는 효력이 있기 때문에 재판 공개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며 “공정위가 행정 편의나 기업 이익을 우선시해 전원회의 비공개 관행을 지속할 경우 국민적 신뢰를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낙농육우협회도 성명을 내고 “공정위가 지난해 12월 우유 담합 사건의 참고인인 이승호 협회장의 법률 자문을 맡은 오영중 변호사를 사전 방청 승인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원회의장에서 강제로 끌어낸 것은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처사”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법조계는 3심제 전환 주장하기도문제는 공정위가 사건이 표면화된 이후 이런 개선 방침이나 의지를 공개적으로 천명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헌법소원이 제기된 직후인 지난 2월14일 오 변호사의 주장을 전면 부인하는 해명 자료를 냈을 뿐이다. 공정위는 자료에서 “공정위 심리 과정은 원칙적으로 공개하고 있으나 사업자 등의 비밀보호 필요성 및 방청석의 규모 한계로 불가피하게 제3자의 방청이 제한되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른 내용이다. 공정위가 심리 과정을 제대로 공개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법상 공개가 원칙임에도 사실상 비공개 관행을 고수해왔다. 방청석이 모자라 회의를 비공개로 진행했다는 변명도 궁색하기 짝이 없다.
공정위는 또 우유 담합 사건 심의 당시 공정위 직원이 오 변호사를 강제로 끌어낸 적이 없고, 오 변호사가 법률 자문을 맡은 낙농육우협회장은 참고인이 아니라 단순 방청을 위한 참관인이었기 때문에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침해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졸지에 거짓말쟁이로 몰린 오 변호사는 다음날 즉각 반박 성명으로 맞받아쳤다. “공정위의 해명이 사실이라면 김은미 공정위 심판관리관이 사건 직후인 지난해 12월23일 나를 찾아와 강제 퇴정 조처에 대해 잘못을 사과하고, 재발 방지 및 제도 개선을 약속한 것은 도대체 뭐냐?”
공정위와 오 변호사 간의 진실 공방은 공정위와 법조계 전체가 대립하는 양상으로 비화하고 있다. 오 변호사가 속한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지난 2월16일 성명에서 “공정위의 해명은 스스로 사전방청허가제를 운영해왔음을 시인하는 것에 불과하다”면서 △변론권이 침해된 오 변호사에 대한 공개 사과 △사실상의 방청허가제 폐지 △심리 공개 원칙 준수 등을 요구했다. 오 변호사도 자신에 대한 공정위의 강제 퇴정 조처는 불법이라며, 곧 국가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공정위가 재판 공개 원칙을 비롯한 적법절차 원리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것을 내세워 아예 공정위 사건에 대한 행정소송을 현행 2심제에서 3심제로 전환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공정위의 심의·의결에 1심 재판과 같은 효력을 주지 말자는 것이다. 법조계 전문지인 은 지난 2월17일치 머리기사에서 “이제는 경제법과 공정거래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법관들이 많아졌고, 소송의 신뢰성 제고와 국민들의 원활한 권리 구제, 조세·노동 등 다른 전문 분야 행정소송과의 형평성을 감안해 공정위 사건을 3심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법조계의 의견이 많다”고 보도했다.
나라마다 공정거래당국(경쟁당국)의 위상과 운영체계는 조금씩 다르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우리나라처럼 1심 법원의 기능을 겸한다. 하지만 유럽연합의 공정거래당국은 사법기관이 아니라 행정기관의 성격만 갖고, 1심 기능을 하는 전담재판부(CFI)가 별도로 있다. 일본의 공정거래 사건은 우리나라처럼 2심제로 운영돼왔지만, 지난해 일본의 공정거래당국(공정취인위원회)이 3심제로의 전환 내용을 담은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심의 중이다.
우리나라가 어떤 공정거래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단정짓기는 힘들다. 하지만 한국 공정위의 운영체제가 법조계 일부의 주장처럼 3심제로 전환될 경우 그동안 합의제 배심 구조를 갖추고 준사법기구로서 절차적 정당성을 높이기 위해 기울여온 정부의 노력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솔직한 시인과 개선 조처 신속해야이번 사건의 본질은 헌법상 재판 공개 원칙이나 공정거래법의 심의 공개 원칙을 무시하고 30년간 사실상 비공개로 운용해온 문제다. 공정위가 이런 잘못된 관행을 솔직히 시인하고 신속하게 개선 조처를 취해 국민의 신뢰를 높인다면, 이번 사건은 공정위에 오히려 ‘보약’이 될 수 있다. 공정위가 지금처럼 속으로는 개선안을 마련하면서도 겉으로는 잘못한 게 없는 것처럼 버티는 이중적 태도를 고수하다가는, ‘보약’이 ‘독약’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잖다.
곽정수 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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