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 협상의 이론적 지향점은 공평과 평등이다. 한쪽으로 추가 기울어지면 ‘불평등’하다고 한다. 협상을 진행할 때 서로에게 유불리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자체가 중요한 카드이기 때문이다. 협상이 끝나면 정부와 협상단은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발표한다. 그래야 국회의 비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판정은 협정의 영향을 받는 당사자들이 내리기 마련이다.
미 업계, 재협상안에 연이어 “유리하다”
그럼 이 문장에 주목해보자. “지난해 12월에 한-미 협상단이 합의한 개정안은 결정적으로(decisively) 미국에 유리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결과에 대한 미국 상공회의소의 평가다. 미 상공회의소는 협회지 (Free Enterprise) 2월호(www.uschambermagazine.com/article/why-a-korea-fta-matters)를 통해 이런 평가를 내렸다.
잘 알려진 대로 재협상의 가장 큰 수혜는 자동차업계가 받았다. ‘디트로이트의 삼총사’로 불리는 미국 자동차 3사(포드·크라이슬러·GM)는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혔다. 자동차업계 산별노조인 전미자동차노조(UAW)까지 나서 환영했다. 자동차업계의 이해를 대변하는 전미자동차정책협의회(AAPC)는 물론이다. 지난 2007년 타결된 협상안에 대한 평가에서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2007년 협상안에 대해 포드와 크라이슬러는 반대했다. GM대우의 모회사인 GM은 평가를 유보했다.
이랬던 태도가 싹 바뀌었다. 포드의 앨런 멀럴리 사장과 UAW의 밥 킹 의장이 찬성 서한을 공동 작성했을 정도다. UAW는 그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대해서는 강경한 반대 의사를 밝혀왔다. NAFTA가 발효된 이후 UAW 조합원은 76만6천 명에서 35만5천 명으로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노조의 존립이 위험할 정도였다. 그러나 한-미 FTA는 자신들에게도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UAW는 “(한-미 FTA를 통해) 자동차 10만 대를 추가 판매할 경우 3500명의 새로운 조합원이 생길 수 있다”고 밝혔다.
더 적극적인 쪽은 미국의 농산물업계다. 은 미국육류협회(AMI) 등 미국 농축산물업계의 60여 개 이익단체가 지난 1월24일 공동으로 미 상·하원에 전달한 한-미 FTA 조기비준 요청서한을 입수했다. 쇠고기와 돼지고기 등 육류 쪽 협회들은 지금 몸이 달았다. 서한에 그 이유가 나와 있다.
“미국농업협회(AFBF) 추산에 따르면, 대한국 농산물 수출은 현재보다 46%가 늘어난 18억달러(약 2조1천억원)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나 이런 예상도 AMI가 아이오와대학 헤이스 박사팀과 공동으로 연구·발표한 결과에 견주면 매우 보수적인 수치입니다. 이 연구에 따르면, 미국산 쇠고기와 돼지고기, 닭고기 수출만 따져도 21억달러(약 2조5천억원) 수준으로 늘어날 것입니다.”
미국의 대한국 육류수출액은 2009년 기준으로 4억7750만달러 정도였다. 아이오와대학 연구팀은 특히 미국산 돼지고기의 경우 2009년 9만t이던 대한국 수출량이 협정 체결 이후 60만t 수준으로 6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구제역까지 겹쳐 쾌재 부르는 미 축산업계
더구나 이 수치를 산출할 때는 한국의 축산업계가 구제역 파동으로 사실상 궤멸 상태에 놓이기 전이었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의 축산물 검역 실적에 따르면, 쇠고기의 경우 지난해 12월 2만2124t이 수입돼 구제역 발생 전인 11월 1만9637t에 비해 12% 증가했다.
특히 미국산 쇠고기 수입량은 지난해 총 9만562t으로 2009년 4만9973t보다 갑절 정도 늘었고, 지난해 12월에도 7748t이 수입됐다. 이는 미국육류수출협회(USMEF) 집계와도 일치하는데, 지난해 10월까지 미국산 쇠고기의 대한국 수출은 지난해보다 양으로는 125%, 금액으로는 168%나 늘었다. USMEF 필립 셍 회장은 지난해 10월 실적을 발표하면서 “한국에서의 미국산 쇠고기 매출 회복은 주목할 만하다”며 “이런 추세를 지켜나가기 위해 미국산 쇠고기의 신뢰성을 높이는 2단계 캠페인을 시작하는 등 한국 시장에 대한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셍 회장은 “2단계 캠페인은 안전성 문제를 넘어 미국산 쇠고기의 맛과 질의 우수성을 한국인들에게 알리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구제역 여파로 사실상 ‘무주공산’이 될 한국 시장을 두고 미국의 축산업계는 ‘(한-유럽연합 FTA를 맺은) 유럽보다 먼저 들어가야 한다’며 몸이 달아 있다. 지난 2월2일 에는 이와 관련해 의미심장한 기사가 실렸다. 신문은 미 상원 재무위원회의 맥스 바커스 위원장(민주당·몬태나주)이 “한국의 쇠고기 시장이 (추가로) 열리기 전까지 FTA 비준안을 통과시킬 수 없다”고 밝힌 사실을 전했다.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연령제한을 완화하라는 것이다. 미 상원 재무위원회는 한-미 FTA 비준을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상임위다. 는 그러나 “미국의 많은 축산농가는 2008년 이후 빠르게 증가하는 대한국 수출 때문에 연령제한 문제로 협정 통과가 난관에 부닥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전했다. 신문은 “전미목장주협회(NCBA)는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한국의 관세 40%만 없어져도 큰 이익을 볼 수 있기에 쇠고기 연령 문제로 비준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고 덧붙였다.
한-미 FTA에 대한 가장 강력한 지지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다. 한-미 FTA가 오바마 대통령 경제정책의 핵심인 ‘미국의 제조업 부흥’, 즉 수출 드라이브를 통한 일자리 만들기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1월 상·하원 합동연설에서도 “혁신은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국내 제조업 부흥을 이끌어야 한다”며 “미국에서 개발된 수많은 첨단기술로 외국에서 제품이 만들어 지는 현실 때문에 우리 국민은 그로 인한 혜택에서 벗어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한-미 FTA 자동차 재협상을 이끌어낸 것은 기업들에 ‘한국으로 가자’는 신호탄을 쏘아올린 것이다.
미국 일자리 창출의 일등 공신 될 건가톰 도너휴 미 상공회의소 의장은 FTA 재협상 직후 “이 협정은 수천 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앞으로 5년 안에 수출을 2배로 늘리겠다는 우리의 국가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미국이 또다시 무역을 주도하는 국가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기업들도 공개적인 찬성으로 화답했다. 지금까지 한-미 FTA에 공개적으로 찬성 의견을 밝힌 기업은 정보기술(IT) 업계의 AT&T·마이크로소프트·인텔·허니웰과 유통·서비스업계의 월마트·UPS·암웨이, 금융업계의 시티그룹·JP모건체이스, 그리고 제조업 분야의 보잉(항공)·캐터필러(운송장비)·셰브론(정유) 등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한-미 FTA를 처음 제안하고 추진한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현 삼성전자 해외법무 사장)도 최근 내놓은 책 〈김현종, 한미 FTA를 말하다〉에서 “미국이 더 이상의 추가 협상은 없다던 약속을 지키지 않아 유감스럽다. 우리 이익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고 재협상이 한국에 불리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자신이 추진했을 당시는 ‘이익의 균형이 맞았다’는 식의 강변이겠지만, 분명한 것은 협상을 추진한 당사자의 눈으로 봐도 재협상은 한국이 불리하다는 것이다. 한-미 FTA 재협상안에 대한 미 상공회의소의 평가를 다시 보면 이렇게 된다. “지난해 12월에 한-미 협상단이 합의한 개정안은 결정적으로(decisively) 한국에 불리하다.”
애틀랜타(미국)=이태희 기자 한겨레 경제부문 hermes@hani.co.kr
<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E7E7E2"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F7F6F4"><tr><td class="news_text02" style="padding:10px"><font color="#1153A4">미국 쪽의 한-미 FTA 비준 변수</font>
<font size="4"><font color="#008ABD">콜롬비아 극우의 노조 테러가 걸림돌?</font></font>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미 의회 비준에도 변수는 있다. 공화당의 전략이다. 공화당의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켄터키주)와 오린 해치 재무위원회 간사(유타주)는 2월8일 오바마 대통령에게 한-미 FTA 비준동의안과 콜롬비아·파마나 FTA 비준안을 동시상정해줄 것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 공화당이 이 세 협정을 연계하려는 이유는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자들을 갈라놓는 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오바마 행정부와 민주당은 콜롬비아 및 파나마와의 자유무역협정에 유보적이다. 콜롬비아에 만연한 극우집단의 노조 지도자 테러 사건 때문이다. 콜롬비아에서는 노조 지도부의 목숨을 노리는 정치테러가 극심해 2003년 한 해에만 186명의 노조 지도부가 살해됐다. 희생자들은 지난해 39명으로 줄었지만, 단지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이유만으로 너무 끔찍한 대가를 치러온 것이다. 콜롬비아 정부는 그간 수수방관하는 태도였다. 1991~2001년 살해 혐의로 기소된 범인은 단지 1명에 불과했을 정도다. 2007년 한 해 26명의 살해범이 기소되는 등 상황은 나아지고 있지만, 미국 인권단체들은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이에 오바마 정부는 “살인범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범인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미-콜롬비아 FTA 타결의 전제조건으로 걸고 있다.
민주당의 강력한 지지 기반인 노조와 노동자단체들도 우익 테러가 종결될 때만 콜롬비아와의 FTA가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공화당은 오바마 대통령이 강력한 의지를 가진 한-미 FTA에 미-콜롬비아 FTA, 미-파나마 FTA를 묶어 오바마와 민주당 지지층의 갈등을 유도하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더구나 미-콜롬비아 FTA는 공화당의 조지 부시 정부가 중남미 일대의 이른바 ‘좌파 도미노’에 맞서기 위한 정책으로 추진한 결과물이다.
미 정치전문 매체인 는 지난해 12월호에서 이 전략이 공화당에는 효과적인 카드라고 평가했다. 는 미 공화당 하원의원 보좌관의 말을 빌려 “이런 전략을 통해 공화당은 오바마 대통령이 무역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본가’인 민주당과의 사이에서 정치적으로 치러야 할 대가가 많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공화당의 이런 전략도 교란이 목적이지, 한-미 FTA의 부결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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