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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행복한 신세계

백화점 알짜 공간에 직원용 어린이집 여는 신세계…

협력업체 직원 우선하고 심리상담 프로그램도 마련해
등록 2011-01-27 17:17 수정 2020-05-03 04:26

백화점 안에서 직원을 위한 어린이집을 본 적이 있는가? 없다면 대형마트는 어떨까? 답을 말하자면, 국내에는 아직 한 곳도 없다.
롯데백화점이 지난해 3월 유통업체 최초로 직원용 어린이집을 마련했지만, 위치는 판매시설 안이 아니다.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에서 차량으로 10~15분 거리에 있는 서울 재동에 마련했다. 애초 롯데백화점은 소공동 본점 지하 1층이나 15층을 어린이집 장소로 검토했다. 하지만 지상 1~3층에만 보육시설을 설치하도록 한 현행 ‘영유아보육법’에 어긋나는 일이었고, 2~3층에 마련할 경우에도 법에 따라 외부로 대피할 수 있는 계단 등 대피시설을 만들어야 해 백화점 미관을 해치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별도의 건물을 택했으나, 이 때문에 학부모와 어린이들은 회사 셔틀버스로 오가면서 상습 정체에 시달리는 등 불편을 겪고 있다.

매출 감소 감수, 직원 복지 향상

» 기혼여성의 저출산 대책 선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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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통업체들은 그동안 영유아보육법의 규제로 인해 판매시설 안에 직원용 보육시설을 마련하기 곤란하다는 태도를 보여왔다. 게다가 판매시설 안 보육시설은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의 매출과도 연결된다. 특히 1층은 알짜 공간으로 명품숍이 입점하는 등 백화점의 얼굴 역할을 한다. 그만큼 매출이 많다. 이를 직원 복지를 위해 양보하자니 아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신세계가 유통업체로서는 처음으로 판매시설 안에 어린이집을 만들기로 했다. 신세계는 1월21일 서울 이마트 성수점에 198㎡(60평) 규모의 어린이집을 비롯해 백화점 3곳(부산 센텀시티점, 인천점, 광주점)에 265㎡ 넓이의 어린이집을 만들어 3월에 문을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올해 하반기에는 서울 명동과 영등포동의 신세계백화점에, 2012년에는 서울 강남점, 경남 마산점, 경기 죽전점 등 나머지 모든 백화점에 설치할 예정이다. 이마트의 경우 서울 성수점 설치 이후 반응과 수요조사를 실시한 뒤 확대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신세계는 일시 매출 감소를 감수하더라도 직원 복지를 높인다는 목표다. 기업윤리실천사무국 최훈학 과장은 “광주점과 인천점 등 백화점 2곳은 상업시설을 줄이고, 이마트 성수점은 기존 스타벅스점 자리에 어린이집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회사로서는 일부 매출이 줄어듦에도 직원 복지를 높이기 위한 선택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보육료는 유아 기준으로 월 17만원 수준”이라며 “어린이집은 아침 8시30분부터 밤 9시30분까지 문을 열고, 주말·연휴 등과 상관없이 월요일만 쉬어 직원들의 육아 부담을 줄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1월 현재 신세계 직원은 약 1만6700명이며, 이 중 여성은 9300여 명(56%)에 달한다.

아울러 어린이집 시설과 보육교사를 업계 최고 수준으로 유지할 계획이다. 백화점 2층과 이마트 1층에 마련될 어린이집은 친환경 인증 자재를 쓰는 것은 물론, 어린이의 신체적 기능 발달을 고려하고 예술과 문화적 가치를 부여하는 디자인 콘셉트로 지어진다. 또 보육교사에게 국공립 교사의 130%, 원장에게는 200% 수준의 임금을 책정해, 보육업계에서 최고 대우를 하는 것으로 알려진 삼성복지재단보다 더 후한 대접으로 최고 수준의 교사를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2009년 국공립 교사의 월평균 임금은 155만원이었다.

여성 퇴직률 낮추는 효과 기대[%%IMAGE2%%]

특히 협력업체 직원들에게 어린이집 이용 우선 순위를 주기로 했다. 신세계 사원과 협력회사 사원 비중을 3 대 7로 둬 협력업체 직원이 더 많이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최훈학 과장은 “직장 어린이집으로 인정받으려면 본사 직원 비중이 최소 30%에 달해야 한다”며 “아무래도 본사 직원보다 협력업체 직원이 임금 등 여유가 적어 더 배려하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협력회사와의 동반성장을 추구하는 것은 물론 소득수준을 고려해 더 필요한 계층에게 혜택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여성 직원들을 배려한 심리상담 프로그램도 마련할 계획이다. 유통업체 직원은 고객과 직접 대면하는 ‘감정노동’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그동안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해왔다. 특히 상품을 일정 기간 쓴 뒤 제품의 문제점을 주장하며 교환 또는 환불을 요구하는 ‘블랙컨슈머’에 시달리는 경우도 상당하다. 신세계는 유통업체에서 직원들이 이런 감정노동으로 대인기피·공황장애·불면 등 건강 장애를 겪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파악한다. 이를 막기 위해 기업 차원의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실시한다는 것이다.

신세계는 직원 복지 향상이 회사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한다. 특히 직장 어린이집이 퇴직률을 낮추고 직장 만족도를 높일 것으로 예상한다. 지난해 10월 대한상공회의소가 1천 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를 보면, 최근 3년 이내에 직장을 그만둔 직원의 11.6%가 육아 문제 때문이었다. 최병용 기업윤리실천사무국장은 “유통업의 주요 고객은 여성이며, 현재 신세계에 근무하는 직원은 과반수인 56%가 여성”이라며 “여성 임직원이 행복하지 않은 회사가 고객을 행복하게 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또 “이미 여성 인력을 위해 멘토링 프로그램, 유연근무제, 희망부서 우선 배치제 등을 실시하고 있으며 향후 심리상담 프로그램 도입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출산 유인책 더 많이 내야”

기업의 이같은 노력은 사회 전체적으로 미래 위험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09년 1.15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성장률은 하락하고, 부양인구 증가로 재정 부담이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LG경제연구소의 강중구 책임연구원은 “여성의 양육 부담을 덜어주려는 기업의 노력은 국가재정 부담 완화 등 사회에도 기여하는 것”이라며 “특히 여성 직원이 많은 유통업체에서 판매시설을 줄여서까지 보육시설을 마련한 것은 큰 의미를 둘 만하다”고 말했다. 또 “합계출산율이 2%가 넘는 선진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저출산 대책 지출 규모가 2% 중반 수준이지만, 이보다 합계출산율이 낮은 한국은 저출산 대책 지출이 여전히 1%도 안 되는 수준”이라며 “정부도 여성이 일과 가정을 함께 돌볼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유인책을 더 많이 내놓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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