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칼끝이 어디로 향할까?
검찰 수사가 한화그룹과 태광그룹을 거쳐 C&그룹으로 확대되면서 재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서울서부지검에 이어 대검찰청 중앙수사본부가 그동안의 휴식을 끝내고 C&그룹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에 나선 것이다. 대검 중수부가 직접 수사에 나서기는 이른바 ‘박연차 로비’ 사건 수사 이후 1년4개월 만이다. 이를 위해 대검 중수부는 일선 검찰청에서 검사 25명과 수사관 20명 등 ‘예비군’을 불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지난 10월18일 열린 대검 국정감사에서 “우리 관심은 비자금에 있다. 돈의 흐름을 수사하라고 강조하기 때문에 한화나 태광이나 비자금의 실체를 밝혀보겠다”고 말했다. 또 “그동안 예비군 체제로 운영되던 중수부가 내 취임 1년을 기해 수사 체제로 들어갔다”고 밝혔다.
그의 말은 며칠 뒤인 10월21일 C&그룹의 압수수색과 임병석 회장의 체포로 현실화됐다. C&그룹은 호남 지역에 기반을 두고 참여정부 시절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부풀렸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며 부도가 나 워크아웃에 들어간 뒤 그마저 중단돼 청산 단계에 들어가 있다. 이 때문에 C&그룹에 대한 수사를 본격적인 재벌그룹 수사를 앞둔 일종의 ‘전초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특히 대검 중수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불러온 박연차 로비 사건을 수사한 뒤 폐지론까지 불거진 적이 있어, 앞으로 수사에서는 훨씬 엄밀한 수사로 상당한 성과를 내야 하는 처지다. 이 때문에 검찰 수사가 어느 때보다 강도 높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런 검찰의 움직임에 정·재계는 거센 사정 바람이 불어닥치는 것 아니냐며 긴장하고 있다. 국내 4대 그룹의 한 임원은 “검찰이 여러 개 기업을 대상으로 수사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수사 대상으로 5~6개 기업들의 실명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검찰 수사의 방향이나 그 배경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수사 대상이라는 소문이 나도는 기업들은 모두 “우리는 아니다. 다른 기업인 것으로 안다”며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다. ㄱ기업 관계자는 “우리가 수사 대상이라는 소문이 있어 확인해보니 아니더라”며 “다른 기업의 과거 비자금 조성 의혹이나 불법 증여를 살펴본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ㄴ기업 관계자 역시 “비자금 의혹도 있어 바짝 긴장했는데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계속 구체적인 의혹과 함께 기업의 실명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ㄱ기업은 총수가 역외펀드를 이용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고, ㄴ기업은 이미 수사를 거쳤지만 완전히 규명되지 않은 비자금 조성 의혹을 다시 조사하고 있다는 식이다. 또 ㄷ기업은 정부의 ‘일자리 나누기’ 정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아 수사를 받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
국세청이 10월 초 롯데건설·아주캐피탈에 이어 최근 제일기획·GS리테일·신세계푸드 등에 대해 세무조사를 벌인 점도 재계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다. 특히 롯데건설과 아주캐피탈에 대한 세무조사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 투입돼 가장 강도가 높다. 조사4국은 일반 정기 세무조사가 아니라 심층·기획 조사를 전담한다. 국세청 관계자는 “롯데건설은 회계가 엉망이고 몇 가지 의혹이 있어 특별 (세무)조사를 하는 것으로 안다”며 “나머지 기업들은 5년마다 받는 정기 세무조사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기 세무조사를 받는 기업들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특히 GS리테일·신세계푸드 등은 올해 들어 사업 부문을 매각했거나 코스닥에서 코스피로 상장 이전한 기업들이어서 세무조사의 초점이 비자금 조성이나 편법 상속·증여와 같은 비리 조사 쪽에 맞춰지는 게 아니냐는 관측까지 낳고 있다.
앞서 이현동 국세청장은 대기업의 과세에 대한 태도 변화를 직접 주문하기도 했다. 이 국세청장은 지난 10월19일 회계·법무법인 간담회에서 “대기업이나 대주주가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혜택받고 여유 있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이행해야 할 최소한의 나눔이자 사회적·윤리적 책임”이라며 “일부 대기업은 세금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오늘날 세계적 기업들은 (세금 문제와 관련해) 관리목표를 ‘세금의 최소화’에 두지 않고 ‘명확한 세금 부담’, 즉 성실 납세에 두고 있다”며 “그러나 우리나라 일부 대기업은 아직 세금을 보는 과거의 자세에 안주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런 흐름에 공정거래위원회도 가세하는 양상이다. 공정위는 태광그룹 계열사인 동림산업개발의 골프장 회원권을 태광산업을 비롯한 태광그룹 계열사들이 비싼 값에 사들인 의혹 등을 조사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STX건설이 STX그룹 계열사들로부터 부당지원을 받은 의혹을 경제개혁연대가 제기한 데 대해서도 조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검찰과 국세청, 공정위 등 사정기관의 이런 움직임은 ‘대기업 손보기가 시작된 것 아니냐’는 관측에 힘을 싣고 있다. 재계의 우려는 이미 지난 광복절에 이명박 대통령이 ‘공정사회’라는 화두를 들고 나오면서 시작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 9월13일 대기업 총수들과 만나 “공정사회가 기업 사정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라고 진화하기도 했지만, 이후 사정기관의 수사와 조사가 이어지면서 재계의 불안감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여러 해석이 나온다. 우선 민주당은 “정략적 의도가 짙다”며 경계심을 나타내고 있다. 검찰 출신인 박주선 최고위원은 10월22일 최고위원회에서 “(C&그룹 등에 대한) 수사는 기업의 비자금 수사가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의 레임덕을 방지하고 야권을 탄압하기 위한 것”이라며 “민주당이 전당대회를 계기로 당 지지율이 높아지니까 이게 두려워서 야당 파괴 차원에서 하는 정략적 수사”라고 맹렬히 비판했다. 반면 한나라당 일부에서는 정권 말 레임덕 현상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한 친이계 의원은 “권력 후반기에 검찰은 여당과도 거리를 둔다”고 말했다.
이같은 분위기 속에 태광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는 속도를 높이고 있다. 서울서부지검은 태광산업을 비롯해 흥국생명보험, 한국도서보급, 고려상호저축은행 등 주요 계열사를 압수수색한 것은 물론 이호진(48) 회장의 어머니인 이선애(82) 태광산업 상무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아울러 서울지방국세청까지 압수수색해 수사 방향이 정·관계 로비로 커지고 있음을 알렸다.
태광·한화 수사도 급진전 양상태광그룹 사건은 애초 △이호진 회장이 아들 현준(16)군에게 가업을 승계토록 하기 위한 불법 상속·증여 △창업주인 이임룡 회장의 상속재산으로 비자금 조성 △케이블TV 사업자인 큐릭스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방통위에 대한 로비 등에 집중되는 듯했다. 그러나 이후 △이 회장이 계열사인 태광관광개발이 소유한 경기도 용인시 태광컨트리클럽(태광CC)의 주변 땅을 전·현직 그룹 임직원 이름으로 소유하고 △한국도서보급을 두산그룹에서 인수한 뒤 오너가 지분을 다시 헐값에 사들여 사유화하고 △예가람상호저축은행을 인수할 때 과거 공시규정 위반으로 다른 기업을 인수할 자격이 없는 고려상호저축은행이 컨소시엄에 포함된 점 등의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한화그룹의 비자금 조성 의혹 수사도 진척을 보이고 있다. 서울서부지검은 10월19일 한화그룹 경영기획실 윤아무개 전무와 한화증권 김아무개 지점장 등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또 같은 날 김승연 회장의 누나인 김영혜씨가 2대 주주로 있는 태경화성을 압수수색했다. 태경화성은 지난 3월 한화그룹의 제약 계열사인 드림파마의 물류사업 부문인 웰로스를 합병해 대형 물류 기업이 됐다. 현재 김영혜씨가 25.77%, 김씨의 아들 이석환씨가 2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검찰은 앞으로 그룹 핵심 임원진을 소환해 비자금의 실체를 규명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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