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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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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백혈병’ 여야 없는 공격

국감에서 한나라당 의원들도 산재 불인정 질타하고 장관과 설전…

국감 보도 입닫은 언론, 삼성 발표 기사는 대서특필
등록 2010-10-14 17:32 수정 2020-05-03 04:26
10월4일 시작된 국정감사에서 ‘삼성’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삼성전자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 등 난치병에 걸린 노동자들 문제와 이건희 회장이 재판 과정에서 법원을 속였다는 의혹을 두고 뜨겁게 달아올랐던 국감 현장을 들여다본다. _편집자
‘삼성 백혈병’ 문제가 집중적으로 제기된 10월5일 노동부 국정감사에서 박재완 고용노동부 장관이 피곤한 표정을 짓고 있다.한겨레 박종식

‘삼성 백혈병’ 문제가 집중적으로 제기된 10월5일 노동부 국정감사에서 박재완 고용노동부 장관이 피곤한 표정을 짓고 있다.한겨레 박종식

물리학은 물의 임계온도가 374.2℃라고 한다. 이를테면 두꺼운 쇠로 만든 밀폐용기에 물 반, 공기 반을 채우고 데워보자. 내부 온도가 100℃를 넘기면 물이 끓기 시작한다. 온도가 올라간 물은 부피가 팽창하면서 밀도가 낮아지고, 강한 압력을 받는 수증기는 밀도가 높아진다. 그러다 임계온도를 넘어서는 순간 밀폐용기 속 물 분자는 물이기도 하고 수증기이기도 한 애매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지난 10월5일 노동부 국정감사가 열린 정부과천청사 노동부 국감장은 마치 임계점에 놓인 밀폐용기 같았다. 몇 년째 ‘진실 대 위선’의 게임을 벌이고 있는 삼성전자 백혈병 사건이 느닷없이 국감의 초점으로 떠올랐다. 누가 여당이고 누가 야당인지 모를 타박이 박재완 고용노동부 장관을 향해 쏟아졌다.

손범규 “노동자에게 인과관계 입증 요구해선 안돼”

첫 포문을 연 이는 뜻밖에도 손범규 한나라당 의원이었다. 손 의원은 질병에 걸린 노동자 쪽이 자신의 질병과 평소 회사 업무와의 연관성을 입증해야 하는 현행 산재승인 방식을 문제 삼으며 삼성전자 백혈병 환자들을 예로 들었다.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이 너무 수동적이어서 산재승인 관련 입증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있는데, 승인 요건을 완화하는 합리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오후 추가 질의에서 내놓은 대안은 이렇다.

“노동자에게 (질병과 업무의) 인과관계를 완벽하게 (입증하도록) 요구하기보다는 건강한 사람이 그곳에서 근무하다 병에 걸렸다 했을 때는 상당한 인과관계를 추정해 근로복지공단이 산재처리 요양 승인을 해주고, 강자인 사용자가 원하면 소송을 해서 인과관계가 없는데도 승인해줬다(고 다투는)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산업의학 전문가가 아닌 노동자가 인과관계를 입증하기도 어렵고 소송을 내서 이기더라도 시간이 오래 걸리니, 공단 쪽이 웬만하면 인과관계를 인정해주되, 산재보험요율의 부담을 안게 되는 회사가 납득하기 힘들면 노동자의 질병과 회사 업무가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음을 입증하게 하자는 얘기다. 손 의원이 어느 정도의 진심을 갖고 한 얘기인지는 앞으로 그의 의정활동을 계속 지켜봐야겠지만, 어쨌건 매우 ‘아방가르드’한 주장임에는 틀림없다.

삼성 백혈병 문제를 이슈화하고 있는 시민단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에 따르면, 이날까지 모두 96명의 삼성(전자·전기·SDI 포함) 전자제품 제조공장 노동자가 희귀질병에 걸렸는데 이 가운데 32명이 숨졌다. 삼성전자에서만 47명이 발병해 13명이 숨진 것으로 파악된다. 산재승인 신청을 한 이는 16명인데, 9명은 불승인 결정이 났고 나머지는 심의가 진행 중이다. 불승인 결정을 받은 6명은 근로복지공단의 불승인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통계를 봐도 산업재해성 질병을 얻은 노동자가 근로복지공단을 통해 피해를 구제받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이번에 나온 국감 자료를 보면, 업무상 질병임을 인정해달라고 노동자가 낸 신청에 대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불승인율은 2008년 55.3%에서 지난해 60.7%로 뛰더니 올해 5월까지는 64.5%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주호영 “통계적 유의성 없다는 자료를 내놔라”

이 와중에 손 의원은 참고인으로 출석한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에게 “두들겨패는 남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데, 삼성보다 근로복지공단이 더 밉지 않았냐”고 물어, 비판 총구 비틀기에 나서는 모습도 보였다. 이에 대한 이 노무사의 답변은 “둘 다 똑같이 잘못됐다고 본다”는 것이었다.

주호영 한나라당 의원은 심지어 박 장관과 얼굴을 붉히는 설전까지 벌였다.

주 의원 : 2차대전 때 미군이 젊은이를 징집하면서 (군인의 사망확률이 민간인보다 낮다며) ‘군에 들어오면 가장 안전하다’고 했다. 통계적 유의성이 있다는 것이다. (삼성 백혈병 노동자의 발병율이 일반인과 다르지 않다는) 노동부도 통계적 유의미성만 계속 얘기하니, (당사자들로서는)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지 않겠느냐.

박 장관: 이 문제는 고도의 전문성을 갖고 판단해야 한다. 사실로 얘기해야지 감정 갖고 하면 안 된다.

주 의원: 통계적 유의성이 없다는 자료를 내놔라. 그럼 오해가 풀릴 것 아닌가. 1년 전 국감 때도 이랬는데, 오늘도 이러니 답답하다. 노동당국이 삼성 재벌 때문에 덮는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는 것 아니냐.

애초 이 노무사와 함께 이 사건의 최초 희생자로 알려진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를 참고인으로 부른 이미경 민주당 의원은 산업안전보건연구원과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삼성전자 등 국내 반도체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역학조사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830호 초점 1 ‘삼성반도체 조사보고서 그리고 거짓말’ 참조). 이 의원은 “96명 중 32명의 꽃다운 20대 청년들이 죽었고, 국회에서 3년째 문제가 되고 있다. 유엔도 삼성에 공개질의서를 냈고, 전세계적으로 이 문제에 관심이 쏠려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공장에서) 어떤 화학물질을 쓰는지 다 공개하도록 하고 현지 삼성 법인도 미국 법에 따라 공개하지 않느냐. 이번 국감에서 정보공개를 매듭짓고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의 홍영표 의원도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로 해당 회사들의 영업상 기밀을 들지만, 사업장 비밀 보호와 희생자가 충돌하니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 과학적·객관적 검증을 하려면 자료를 내놓으라”고 거들었다.

이날 논의는 후반으로 가면서 확률 논쟁으로 번졌다. 박 장관과 강성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장이 ‘앞선 역학조사 결과 삼성전자에서 백혈병이 유난히 많이 발병했다고 볼 수 없으며 발병 요인도 찾지 못했다’는 주장을 펴면서다. 차명진 한나라당 의원은 “(질병을 얻은 노동자가) 회사와 개별 처리하고 퇴사하는 게 비일비재하다”며 조사가 잘못됐을 가능성을 인정하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손범규 의원도 현대과학은 반도체 작업장의 경우 벤젠과 방사선만이 백혈병을 유발하는 물질로 보지만 앞으로 새로운 발병 요인이 밝혀질 수도 있지 않느냐는 논지를 폈다.

여야 의원들이 모처럼 한목소리를 내 삼성전자 백혈병 문제의 해결을 촉구했음에도 박재완 장관의 태도는 완강했다. 과학적으로 명백히 밝혀지기 전에는, 역학조사 결과를 공개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뀌기 전에는 역학조사 결과 전면 공개도 힘들고 피해 노동자에게 산재승인을 내주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 언론도 공모공동정범

그렇다면 해묵은 이 문제가 풀리지 않는 건 순전히 정부 때문일까?

이날 현장 기자들은 얼마 전까지 논란을 부른 유급 노조활동 시간(타임오프) 한도 제도와 향후 노동 현안의 태풍으로 떠오르고 있는 사내하청 문제보다 삼성전자 백혈병 문제가 국감의 초점이 된 데 대해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럼에도 10월6일치 일간지 가운데 이 이슈를 다룬 건 가 유일했다. 그런데 마침 이날 삼성이 3년 동안 200억원을 들여 사회적 기업 7곳을 육성하겠다고 발표하자, 다음날 모든 매체가 이를 대서특필했다.

석 달 동안의 영업이익이 5조원을 넘나든다는 삼성전자의 백혈병 문제에서 한국 언론은 논란의 여지 없는 공모공동정범이다.

전종휘 기자 한겨레 사회정책팀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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