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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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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눠쓰기 머뭇거리는 ‘또 하나의 가족’

초과이익을 중소 협력업체에도 배분하는 방안 두고 고심하는 삼성전자…
정부는 “상생협약 재체결 때 적용할 수 있을 것” 압박
등록 2010-09-09 11:34 수정 2020-05-03 04:26
삼성전자가 지난 8월16일 서울서초동 본사에서 ‘상생경영 실천방안’을 발표했다. 최근 잇달아발표되는 대기업의 상생대책은중소기업의 납품단가와 수익성보장 방안을 담고 있지 않아 비판이 일고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 8월16일 서울서초동 본사에서 ‘상생경영 실천방안’을 발표했다. 최근 잇달아발표되는 대기업의 상생대책은중소기업의 납품단가와 수익성보장 방안을 담고 있지 않아 비판이 일고 있다.

최근 잇달아 발표되는 대기업들의 상생대책이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 하도급 거래의 핵심인 적정 납품단가와 수익성 보장 방안을 담고 있지 않아 실효성 논란이 제기되는 가운데, 대기업이 초과 달성한 이윤의 일부를 임직원에게 나눠주는 초과이익배분제(Profit Sharing)를 협력사에도 확대 적용하는 방안이 정부 안에서 제기돼 주목된다.

대·중소기업 상생 대책, 포장만 바꾼 ‘재탕’

“앙꼬 없는 찐빵.”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대기업들의 상생대책을 두고 중소기업들 사이에서 나오는 쓴소리다. 대기업들이 진작부터 시행해온 것의 재탕에 불과하고, 정작 필요한 게 빠졌다는 의미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7월 초부터 대·중소기업 간 상생경영에 초강력 드라이브를 건 뒤 지금까지 실천 방안을 내놓은 대기업에는 삼성, 현대기아차, LG, 포스코, 롯데 등 재계 상위 재벌들이 망라돼 있다. 이들의 상생방안 중에는 일부 새로운 내용도 포함됐다. 1차 협력사뿐만 아니라 2~3차 협력사들도 상생경영 적용 대상에 포함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자금 지원, 연구·개발과 판로 확보 지원 등 나머지 대부분은 종전 내용을 포장만 새로 한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그럼 중소기업들이 정말 고대했던 내용은 무엇일까? 중소기업중앙회의 성낙중 전무는 “적정 수익성 보장을 위한 공정한 납품단가 책정 문제”라고 말한다. 지금처럼 2~3%의 낮은 수익률로는 연구·개발 투자, 우수 인재 확보 등 중소기업의 경쟁력 제고 노력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김영호 유한대 총장은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여서 대기업의 경쟁력으로 이어지도록 하려면 공정한 하도급 거래 질서를 확립해 중소기업이 적정 이윤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혁신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기업 중에서 중소기업에 적정 납품단가나 수익성을 보장하는 상생방안을 내놓은 곳은 거의 없다. 그나마 분기별로 원자재값이 5% 이상 상승하면 납품단가에 반영하고(현대기아차), 원자재값 변동 때 납품단가에 합리적으로 반영하는(포스코) 방안이 제시됐지만, 중소기업들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일부 대기업들이 이미 원자재값 변동 때 납품단가에 자동으로 반영하는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주물공업협동조합의 허만영 전무는 “원자재값이 오르면 납품단가에 자동으로 반영되는 시스템을 도입하고도 실제로는 여러 인상 요인 중에서 일부만 반영하거나, 그마저도 제때 안 해주고 몇 달씩 늦추기 일쑤”라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대기업들은 납품단가나 수익성을 무조건 보장하는 방안은 수용하기 어렵다는 태도를 고수한다. 4대 그룹의 한 재무담당 임원은 “글로벌 시장에서 제품의 경쟁력 유지·강화를 위해서는 끊임없는 원가 절감 노력이 필수적인데, 협력사에 납품단가나 수익성을 일정 수준 이상 무조건 보장하는 방안은 자칫 경쟁력 상실을 초래해 모두가 공멸할 수 있다”고 고개를 저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부 방안에 납품단가 관련 내용이 어떻게 반영될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주관하는 하도급 거래질서 개선대책을 포함한 정부의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종합대책이 애초 발표 예정일이던 8월25일에서 9월로 갑자기 연기된 것도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뜻에 따른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통령은 지난 8월30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공정한 사회가 안 되면 경제성장도 한계가 있다”면서 “공정한 사회를 통해 갈등과 격차를 해소할 수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정부의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종합대책 검토 내용

정부의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종합대책 검토 내용

삼성전자 직원에 초과이익 1조3천억 배분

현재 검토되는 정부안은 △납품단가 조정협의 의무제의 실효성 제고 △중소기업 조합·단체의 지원 기능 활성화 △하도급 거래 실태 모니터링 강화 △자율적 상생협약 활성화 방안 등이다. 이 중에서 납품단가와 관련해서는 중소기업 조합·단체도 개별 중소기업 대신 납품단가 조정협의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개별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눈치를 보느라 원자재값이 올라도 납품단가에 반영해달라는 얘기를 제대로 못하는 현실을 감안한 것이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성낙중 전무는 “조합이 나서면 아무래도 대기업들이 신경을 쓰지 않겠느냐”고 기대를 나타냈다. 하지만 부당 납품단가 인하의 근원인 대·중소기업 간 협상력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려면 중소기업 조합 및 단체에 납품단가 조정협의권까지 부여하거나, 원자재값 인상분을 바로 납품단가에 반영하는 연동제를 시행해야 한다는 중소기업계의 요구에 비하면 미흡한 수준이다.

정부가 동반성장 종합대책 발표 때 대기업 총수를 직접 참석시키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도 상생방안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효과가 의문시되기는 마찬가지다.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상생협력 대책회의를 열 때마다 대기업 총수들이 참석했지만 사정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인천 지역에 있는 ㅅ공업의 이아무개 사장은 “대기업 회장들이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만날 때는 중소기업을 배려하겠다고 약속하지만 현실은 딴판”이라고 말했다. 실제 대기업 총수들과 정부의 시각에는 적잖은 간극이 존재한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8월23일 상생과 관련해 “윗사람, 아랫사람이 힘을 합쳐야 하고, 똑같이 노력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대·중소기업 양극화 해소를 위해 대기업이 주도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정부와의 시각차를 분명히 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적정 납품단가와 수익성을 보장하는 획기적인 방안으로 ‘초과이익배분제 확대 적용’이 정부 안에서 제기되고 있다. 동반성장 종합대책 수립에 참여하는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삼성이 올해 협력사와의 상생협약 재체결을 앞두고 있는데, 현재 임직원에게 시행하는 초과이익배분제를 협력사들에도 적용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운을 뗐다. 삼성의 초과이익배분제는 연초 수립한 이익 목표를 연말에 초과 달성했을 때 초과이익의 20%를 직원에게 연봉의 최대 50%까지 제공하는 인센티브제도다.

이 제도가 협력사에도 적용된다면 대기업이 막대한 이익을 혼자 독차지한다는 부정적 여론을 일거에 불식시킬 수 있게 된다. 그 파급효과도 엄청날 전망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올해 초 지난해 초과이익 중에서 1조3천억원 정도를 직원에게 배분했다. 삼성전자가 협력업체에도 똑같은 금액을 배분했다면 협력업체의 지난해 매출액순이익률(매출액 규모가 큰 498개 기준)은 평균 3.1%에서 7.5%로 껑충 뛰게 된다. 재계 1위인 삼성이 이 제도를 시행하면 다른 대기업들도 따라 시행할 가능성이 높다. 중소업체인 서오텔레콤의 김성수 사장은 “애플이 아이폰에서 성공한 것은 이익의 70%를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중소벤처기업에 배분하는 공존 전략을 썼기 때문”이라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 성장을 위해서는 지금처럼 대기업이 이윤을 독식하는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여한 만큼 나누는 게 시장경제 원리

초과이익배분제의 또 다른 장점은 시장경제 원리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대기업의 이익목표 초과달성에는 경영진, 일반 직원 등과 함께 협력업체의 노력도 기여한다. 따라서 임직원과 함께 협력사에도 초과이익을 배분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럽다. 초과이익을 협력사의 기여도에 따라 차등 지급할 경우 추가적인 원가 절감 노력을 유인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삼성의 상생협약 재체결이 늦어지는 이유가 초과이익배분제를 협력사에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놓고 고심 중이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삼성은 지난 2008년 7월 상생협약을 체결했다. 다른 대기업들의 경우에 비춰보면 삼성은 이미 지난 7~8월에 협약을 재체결했어야 한다. 삼성은 공식적으로 이 사안에 대해 신중한 모습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공정위와 상생협약 재체결을 협의 중이지만, 초과이익배분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삼성 주변에서는 정부가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삼성에 초과이익배분제의 확대 적용을 압박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곽정수 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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