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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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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을 살리자!” 늑대 정부가 이번엔 바뀔까?



말로는 중소기업을 위한다면서 친대기업 정책을 펴온 이명박 정부…

3배손해배상제 등 중기 살리기 정책을 검토하나 친기업 기조가 바뀌어야
등록 2010-07-29 23:02 수정 2020-05-03 04:26
정운찬 국무총리가 지난 5월20일 경기 안산시 원시동의 위생기기 업체인 파세코를 방문했다. 정부는 갈수록 심화되는 대·중소기업 양극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실태 조사에 나서는 한편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연합

정운찬 국무총리가 지난 5월20일 경기 안산시 원시동의 위생기기 업체인 파세코를 방문했다. 정부는 갈수록 심화되는 대·중소기업 양극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실태 조사에 나서는 한편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연합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하라.”

이명박 대통령의 특명이 떨어졌다. 정운찬 국무총리는 즉각 대·중소기업 간 하도급 거래 문제 해결에 ‘올인 모드’로 돌입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원가 부담을 전가한다.”(7월7일 총리실 회의) “재벌은 따뜻한데 하청업체는 춥다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들린다.”(7월13일 국무회의) 정 총리는 연일 관련 발언을 쏟아내고 관련 부처에 대책 수립과 보고를 독려하고 있다. 자신의 색깔에도 맞고 ‘세종시 총리’ 이미지도 벗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지난 7월9일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는 “대·중소기업의 상생을 위해 필요한 역할을 하겠다”고 천명했다.

대통령과 총리가 발 벗고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이 문제가 올 하반기 ‘친서민 정책’ 기조를 공염불로 만들 수 있는 ‘발등의 불’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이명박·정운찬·박근혜 “기업 양극화 위험” 합창

경기회복세를 타고 일부 대기업의 실적은 사상 최고치를 연방 경신하는데 중소기업의 실적은 제자리걸음이거나 더 나빠지는 양극화가 뚜렷하다. 대표기업인 삼성전자가 가장 단적인 예다. 삼성전자의 올해 매출액은 150조원을 돌파하고 이익은 20조원에 육박하며 ‘단군 이래 사상 최대 실적’이 기대된다. 하지만 거래 납품업체들의 올 1분기 순이익률은 3% 수준에 불과하다(818호 표지이야기 ‘삼성전자·현대차 그들만의 경기회복’ 참조).

양극화를 방치할 경우 고용 부진, 중산층·서민 체감 경기 악화 등의 근본 해결도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7·28 재보선에도 악영향이 예상된다. 정부의 한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과 총리가 이 문제를 사회 안정과 통합 차원에서 심각하게 고려하는 것 같다”면서 “6·2 지방선거에서 민심이 돌아선 것도 대기업이 경제회복의 과실을 독점한 게 핵심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표도 지난 6월21일 국회 기획재정위 전체회의에서 “소득분배 구조와 고용이 나빠지고 중산층은 위축되고 있다”면서 “이런 추세라면 사회 통합이 와해되고 결국 경제·사회적 비용이 막대하게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가 지속되는 한 긍극적으로 한국 경제에도 미래가 없다는 인식이 늘고 있다. 살았지만 죽은 것과 별 차이 없는 상태에서 중소기업의 혁신과 경쟁력 제고, 고용 창출을 기대하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 찾기다. 한국 경제가 수년째 중진국의 늪과 국민소득 2만달러의 질곡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에 연결시키는 이들도 있다. 이민화 기업호민관은 “혁신의 주체는 중소기업이고, 대기업은 그 혁신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건전한 기업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면서 “그렇지 못하면 선진국 도약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정부 부처들의 움직임도 부산하다.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공정거래위원회 등은 최근 전국 11개 공단 소재 1500여 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실태 조사를 벌였다. 공정위는 이와 별도로 민관 합동으로 대·중소기업 관련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부당 단가 인하, 기술 탈취, 원가계산서 부당 요구 등 모든 문제점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며 대안 마련에 착수했다. 또 부당 단가 인하 등 대기업의 불법행위에 대한 직권조사에도 나설 계획이다.

이제 관심은 대·중소기업 하도급 거래를 정상화할 수 있는 획기적 대책들로 모아진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3배손해배상제 도입이다. 대기업의 불법행위로 인해 중소기업이 손해를 입었을 경우 실제 손해액에 덧붙여 추가 배상액까지 물리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한 유형이다. 미국도 3배손해배상제를 시행하고 있다. 공정위는 기업들의 과중한 부담 등을 이유로 반대하지만 청와대와 총리실 등은 적극적인 자세다. 여야 모두 국회에 법개정안까지 제출해놓은 상태다. 한국개발연구원의 임경묵 박사는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려면 고용 비중이 높은 중소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면서 “중소기업의 경영이 어려우면 양질의 안정적 일자리 창출이나 유지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3배손해배상제 도입을 통해 중소기업의 지속 성장이 가능하도록 하는 정책적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는 납품 단가 조정협의 의무제를 개선하기 위해 개별 기업과 함께 중소기업협동조합이 협상권을 갖도록 하는 방안도 적극 추진되고 있다. 공정위의 하도급 거래 위반 사건에 대한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는 방안도 신중하게 검토 중이다.

기업호민관실은 7월23일 출범 1주년 기념 대·중소기업 공정거래를 위한 대토론회에서 하도급 불공정거래 방지를 위한 5대 과제와 20개 세부 과제를 발표했다. 불공정거래로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들이 집단으로 공정위에 신고할 수 있게 하는 불공정거래 집단신고제,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원가계산서를 받으려면 공정위에 사전 신고를 하도록 하는 원가계산서 요구 신고제 등 참신한 아이디어가 많이 제시됐다.

중소기업은 건전한 기업 생태계를 위한 공공재

과연 이명박 정부의 이번 시도가 성공할 수 있을까? 청와대와 총리실이 적극적인 것은 일단 고무적이다. 하지만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를 그동안 몰랐던 것도 아니고 불공정 하도급 거래를 막기 위한 제도나 제재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새로운 대책을 쏟아내기 전에 왜 지금까지는 성과가 없었는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관련 부처들의 인식이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민화 기업호민관은 “관련 부처 장관을 만났는데, 문제점을 인식은 하고 있지만 생각이 대기업에 편향된 것 같았다”고 말했다. 관련 부처 공무원들의 경우 하도급 거래 문제에 대해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 어쩔 수 없다거나 대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위해서는 중소기업의 납품 단가 인하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일부 부처는 서로 중소기업 문제의 책임을 떠넘기는 태도도 보인다. 정치권의 이번 관심이 과거처럼 일과성에 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사회 전체를 위해서는 대기업의 성장보다 양극화 해소가 더 중요하다는 확고한 인식이 요구된다고 강조한다. 김기찬 가톨릭대 교수(경영학)는 “중소기업은 고용과 부가가치 창출의 기본 단위로, 기업 생태계 측면에서 보면 일종의 공공재라는 인식이 전세계적으로 자리잡고 있다”면서 “공정거래는 중소기업 보호뿐만 아니라 대기업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대·중소기업의 양극화와 관련해 주로 이름이 거론되는 대기업들도 초비상이 걸렸다. 특히 정운찬 총리가 직접 이름을 거론한 삼성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한 간부는 “올해 회사 이익이 20조원에 육박할 정도로 실적이 호조를 보이면서 마치 양극화의 주범으로 몰리는 것 같아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현대차도 최근 1차 협력업체가 2·3차 협력업체에 횡포를 부리는 일이 없도록 실태 점검을 벌였다.

하지만 대기업들이 뒤로는 불공정 하도급 거래를 지속하면서도 겉으로만 상생 경영을 내세운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 2008년 휴대전화 부품업체들에 대한 부당한 납품 단가 인하로 공정위로부터 제재를 당한 이후 박막 액정표시장치(LCD) 부품업체들에 대해서도 똑같은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한 중소기업 사장은 “회사 이익률이 6%로 상대적으로 높게 나오자 두세 달 전에 완성차 업체가 감사를 한 뒤 관리 책임을 물어 담당간부의 징계와 교체를 요구했다”면서 “내년에는 이익률 통제가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털어놨다.

삼성전자가 순이익의 10%만 협력업체와 나눴다면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가 순이익의 10%만 협력업체와 나눴다면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삼성이 조금만 나누면 중기는 크게 웃는다

무엇보다 대기업의 인식 전환이 요구된다.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공정거래만 하면 중소기업도 적정 이익률을 확보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단적인 예로 삼성전자가 지난해 순이익의 10%인 6200억원만 납품 단가를 덜 깎아도 그 효과는 엄청나다. 삼성전자의 매출액 순이익률은 6.92%에서 6.22%로 큰 변화가 없지만, 부품업체(499개 기준)들의 순이익률은 3.12%에서 5.21%로 껑충 뛴다(표 참조).

정부의 행정력에 한계가 있는 만큼 하도급 거래 자료와 현황을 투명하게 공개해 시장 감시 기능을 적극 활용하는 것도 효율적이다. 예를 들어 통계청의 경우 매달 산업활동 동향을 발표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실적을 구분해 추가로 공개할 수 있다. 정부가 대기업들의 하도급 기업 리스트를 공개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박사는 “하도급 거래 구조를 개선하려면 정확한 실태 파악이 중요하기 때문에 하도급 거래의 주요 정보 내용 공개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근본적으로는 정부의 친대기업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008년 11월3일 라디오 연설을 통해 “정부가 중소기업 지원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대기업과 은행이 중소기업 살리기에 동참해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그해 정기국회와 다음해 임시국회에서 재벌 규제 완화 법률을 강행 처리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말로는 중소기업을 살리자면서 행동은 재벌 규제 완화를 통해 중소기업을 죽이는 법안을 강행 처리했고, 그 결과 경제력 집중 가속과 대·중소기업 간 격차 확대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민화 기업호민관 인터뷰
“대기업 장학생들이 문제 해결 막는다”
이민화 기업호민관

이민화 기업호민관


로마 공화정 시대의 호민관은 특권계급인 귀족에 맞서 평민의 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했다. 지난해 신설된 독립 정부기관인 기업호민관(중소기업 옴브즈맨)은 중소기업을 대변하고, 정부와 중소기업 간의 소통을 위한 가교 역할을 한다. 초대 호민관은 ‘1세대 벤처 성공신화’의 상징과도 같은 이민화 전 메디스 대표다. 7월23일로 취임 1주년을 맞은 이민화 기업호민관을 만났다.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가 심각하다. 이대로 두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
한국의 선진국 진입이 어렵다. 선진국이 되려면 혁신 지향 경제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중소기업의 납품 단가 인하를 통한 현행 원가절감 주도형 경제체제는 중진국까지는 통하지만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정부 안에는 대·중소기업 문제에 직접 개입하는 것에 소극적인 시각도 있다. 정부가 기업 간 사적 계약 영역에 개입하는 것은 시장경제 원리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등한 협상력을 가졌다면 그 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상력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시장 실패가 일어난다. 정부는 시장 실패를 교정할 책임이 있다. 일부 부처의 소극적인 태도는 대기업의 주장을 합리화하고, 대·중소기업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대·중소기업 양극화 문제가 제기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역대 정부도 수많은 대책을 내놓았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없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정부가 시장경제의 공정한 룰(규칙)을 만들고 엄정하게 집행하는 심판의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
이번에 범정부적으로 대·중소기업 양극화 해소에 나섰다.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결국 대통령의 의지에 달렸다. 일개 부처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대기업이 잘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양극화 해소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분명히 해야 한다. 또 그동안 대통령에게 문제와 대안을 구체적으로 전달하는 시스템이 막혀 있었다.
왜 막혔다고 생각하나.
정부 안에 대기업들의 장학생이 많다. 언론도 마찬가지 아닌가? 대기업 광고주 때문에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는 것도 양극화 문제 해결을 가로막는다.
중소기업 지원보다 대·중소기업 간 공정거래 확립이 우선 과제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것은 생산요소를 공급하는 것이다. 하지만 혁신은 지원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 선진경제는 혁신주도형이다. 공정거래를 통해 창의와 혁신이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삼성전자가 부품업체에 3% 정도의 이익만 허용해주는 현 구조에서 혁신은 불가능하다.

곽정수 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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