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택시장 기류가 심상치 않다. 연초 반짝 강세를 보이던 집값은 최근 들어 하락세로 돌아서는 반면 지난해 지칠 줄 모르고 올랐던 전셋값은 올 들어서도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매매와 전세 시장의 온도차가 뚜렷한 셈이다.
최근 전셋값이 심상치 않다. 공급 과잉으로 주택 매매는 안정세를 보이는데, 실수요자가 많은 전셋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서울의 한 주택가 전경.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전셋값은 좀처럼 오름세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현재 서울 지역 아파트의 평균 전셋값은 현재 3.3㎡당 700만원으로 지난 한 해 동안 12%나 올랐고, 3월 이후에는 수도권까지 전셋값 상승세가 빠르게 확산되는 중이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서는 방 2개의 87㎡ 소형 아파트 전셋값이 최고 6억원까지 치솟았고, 경기도에서도 3.3㎡당 전세금이 500만원 이하인 값싼 아파트를 찾기가 어려워졌다. 올해도 서민들은 뛰어오르는 전세금을 맞추느라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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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주택시장에서 과거와는 크게 달라진 시장 흐름이 전셋값과 매맷값의 상관관계다. 예전에는 주택 전셋값이 올라 매맷값과 차이가 좁혀진 시점에서 주택 수요가 매매시장 쪽으로 유입되면서 집값을 밀어올리는 악순환이 나타나곤 했다. 이는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전세제도로 인해 전셋값과 매맷값 격차가 적을 경우에는 전세금을 끼고 주택을 구입하기가 더 쉬워지기 때문에 가능했다. 즉, 상대적으로 높아진 전세금을 활용하면 실제 주택 구입비가 줄어들고 그만큼 높은 투자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레버리지’ 효과가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현재 주택시장에선 전셋값이 좀더 올라도 그것이 매맷값 상승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여건이다. 지난 2월 현재 아파트 매맷값 대비 전셋값의 비율은 전국 평균 54.3%, 서울 지역은 41.0%를 나타내고 있다. 서울의 경우 집값이 2억원이면 전세금은 평균 8천만원 수준으로, 실수요에 상응하는 전세가격에 견줘 자본소득(양도차익)을 기대하는 투자가치가 반영된 매맷값이 과도하게 높은 편이다. 집값이 안정됐던 지난 1999~2002년 전국과 서울 지역에서 이 비율이 모두 60%를 넘어섰던 사실에 견줘보면 현재 전셋값 비율은 비정상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다시 말해 앞으로 매맷값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 한 전셋값이 올라 매맷값을 밀어올리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더욱이 부동산에 대한 투자 심리가 많이 위축됐다. 지난 2008년 미국발 부동산 버블 붕괴와 그로 인한 세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부동산 불패신화’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지난 1990년대 일본 버블 붕괴에 이어 미국에서 터진 ‘비우량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모기지론) 사태를 지켜보면서 우리 국민도 자산가격 거품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지난해 말 기준 690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 뇌관을 안고 있는 우리 경제도 어느 날 갑자기 닥칠지 모를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
주택시장 변화를 몰고 온 가장 결정적인 변수는 뭐니뭐니 해도 수요·공급 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정부의 장기 주택종합계획에 따라 지난 참여정부 5년 동안 연평균 50만 가구의 주택이 공급된 데 이어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2008년 37만 가구, 2009년 38만 가구의 주택이 꾸준히 공급됐다. 이에 따라 참여정부 말기부터 공급 과잉이 현실화된 지방은 말할 것도 없고, 연간 30만 가구에 가까운 주택이 지난 5년간 꾸준히 공급된 수도권도 지난해부터 사실상 공급 과잉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올 1월 말 현재 미분양 주택은 전국적으로 11만9천 가구, 수도권만도 2만5천 가구에 이른다. 특히 최근에는 수도권에서도 인천 영종도와 경기 김포·남양주·용인 등 곳곳에서 입주가 시작됐는데도 빈집이 남아 있는 ‘불 꺼진 아파트’가 속출하고 있다. 투기 바람이 불었던 지난 2006년 말부터 2007년 당시 분양을 받은 계약자들이 대출금 부담과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거래 실종으로 인해 입주를 늦추거나 매물을 내놓고 있는 데 따른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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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반해 주택 수요는 빠르게 감소하는 추세다. 최근 10년간 주택시장에서 최대 소비층으로서 왕성한 구매력을 보였던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가 은퇴 시기에 접어들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변수다. 이들을 대신해 최근 빠르게 늘어나는 1~2인 가구가 있지만, 이들은 주택시장에서 주력 수요층이 될 수 없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소득이 높은 1~2인 가구라 해도, 중형 이상의 주택을 선호하는 계층은 소수에 그치고 대부분은 오피스텔과 중소형 아파트, 도시형 생활주택(다가구) 등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여기다가 2019년부터 정부가 예측한 대로 국내 인구 감소가 현실화하면 주택시장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재개발과 재건축에 따른 멸실주택에 상응하는 수요와 신혼부부 등 새로 가구를 구성하는 세대의 수요량 외에 주택 수요가 더 늘어날 여지는 좁아진다.
최근엔 주택 구매 심리까지 얼어붙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서울 및 6대 광역시의 성인 1천 명을 대상으로 ‘선호주택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를 한 결과 ‘올해 집을 사겠다’고 밝힌 응답자는 불과 1%에 그쳤다. 또 절반 이상이 ‘지금은 관심 없다’(34.7%)거나‘중·장기적으로 추진한다’(24.6%)고 답해 당장 집을 살 의지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주택 거래량도 감소 추세다. 국토해양부 집계를 보면, 지난 2월 수도권 아파트 거래 건수는 총 1만1773가구로 지난해 하반기 월평균 2만 가구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올해 1분기 주택시장 움직임으로 미뤄볼 때, 향후 집값은 매매·전세 가격이 동반 상승도, 동반 하락도 아닌 ‘양극화’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전셋값은 한 해는 약세, 다음해는 강세를 보이는 패턴을 반복했다. 짝수해에 전셋값이 올랐다가 홀수해에는 안정되는 양상이었다. 그러나 지난 2008년 서울 잠실의 대규모 재건축 아파트 입주 영향으로 2년 가까이 전셋값이 떨어지면서 이런 패턴이 깨지더니, 지난해부터 반등한 전셋값은 올해 2년 연속 강한 상승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집값이 더 떨어질 것으로 기대하는 수요자들이 주택 구입보다는 전세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한데다, 재개발과 재건축 사업으로 인해 수시로 발생하는 이주 수요가 주변 전세시장을 끊임없이 교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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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주택 매맷값은 공급 과잉으로 인해 전반적으로는 하향 안정세를 보이면서 지역개발 재료 등에 따라 국지적으로 등락을 거듭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부동산연구소장은 “6월 지방선거 때 쏟아질 지역개발 공약으로 인해 국지적으로 일부 지역 집값이 오를 수는 있지만 대세에는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며 “올해 보금자리주택과 민간 아파트 분양 물량이 쏟아져나오는 만큼 무주택 수요자들은 서둘러 집 마련에 나설 이유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금융부채를 안고 있는 주택 보유자인 경우엔 부채를 털거나 줄이면서 집을 옮기는 ‘갈아타기’를 시도하거나, 처분 등을 통해 보유자산에서 주택 비중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해볼 만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최종훈 기자 한겨레 경제부문 cjh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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