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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원 KB 회장대행, 꼬리표 떼나

‘숙청 인사’로 황영기 그림자 지우고 직할체제 구축… 연말 예정된 차기 회장 선임에 시선 집중
등록 2009-11-25 15:29 수정 2020-05-03 04:25

지난 10월5일 KB금융지주에는 ‘피의 숙청’이 일어났다. 추석 연휴 뒤 곧바로 단행한 인사에서 황영기 전 KB금융 회장의 측근 인사들이 쫓겨나듯 줄줄이 옷을 벗었다. ‘숙청’ 기획자는 강정원 국민은행장(KB금융지주 회장대행)이었다. 9월29일 황 전 회장이 감독 당국의 중징계를 받아 자진 사퇴한 지 엿새 만이다. 전 회장의 퇴임사 잉크가 마르기도 전의 속전속결 인사였다.

2009년 3월27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강정원 국민은행장(가운데) 등 시중은행장들이 건설·조선 업체에 대한 신용등급을 발표한 뒤 회관을 나서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기자

2009년 3월27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강정원 국민은행장(가운데) 등 시중은행장들이 건설·조선 업체에 대한 신용등급을 발표한 뒤 회관을 나서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기자

속전속결 ‘코드 인사’ 뒷말

참여정부 때 유행했던 ‘코드 인사’라는 평가가 나왔다. 최인규 국민은행 전략담당 부행장이 KB금융 전략담당 부사장을 겸임하도록 했다. 최 부사장은 강 행장의 최측근 인사로 통한다. 반면 황 회장이 영입했던 지동현 전략담당 부사장은 보직을 받지 못했다. 알아서 나가라는 것이었다. 지 전 부사장은 2006년 국민은행 연구소장으로 영입된 뒤 KB금융 출범과 함께 전략담당 부사장을 맡으며 황 전 회장의 오른팔로 활동했다.

인사와 홍보, 전략 부문의 핵심 부서장 5명도 전격 교체됐다. 회장 비서실이 없어지고, 비서실장은 보직 해임됐다. 이들 부서장은 권한 없는 무보직 조사역에 발령이 났다 열흘 뒤 다시 쫓겨나듯 국민은행 영업점 등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들은 금융위원회로부터 중징계 제재를 받은 황 전 회장의 구명에 적극적으로 나선 바 있다.

이에 대해 KB금융 쪽은 “갑작스런 지주 회장 사퇴에 따른 분위기 쇄신과 조직 안정 차원에서 진행된 인사”라고 강조했다. 이런 설명에도 지주사 출범 1년 만에 핵심 부서장을 모두 갈아치운 것을 놓고선 말들이 많다. KB금융의 전략과 시너지 사업 등은 계열사 업무를 총괄하는데, 업무 파악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사업 추진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또 이번 인사에서 강 행장은 지주와 은행의 최고전략책임자(CSO)와 최고재무책임자(CFO)를 각각 한 사람이 겸임하도록 했다. 지주회사의 핵심 부문인 전략과 재무를 지주-은행 겸임 체제로 전환한 건, 사실상 회장-행장 통합으로 가겠다는 강 행장의 의지로 읽힌다. 강 행장은 지난해 회장 인선 때 회장-행장 겸임을 주장했고, 황영기 전 회장은 회장-행장 분리를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민은행은 “법적으로 분리된 두 회사의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려는 조처”라고 설명한다.

회장-행장 통합 의도 드러내

KB금융 출범 1년여 뒤인 올 11월 다시 한번 KB금융에 금융권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KB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가 회장 후보 선발 작업에 들어가 연말까지 선임 작업을 완료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현재 KB금융 차기 회장으로 강 행장이 가장 유력하다는 게 금융권 안팎의 분석이다. 이 밖에 이철휘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사장이 강력한 경쟁자로 거론되고 있고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도 급부상하고 있다. 김석동 농협경제연구소 대표, 김병기 전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사장급) 등도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조담 KB금융 이사회 의장은 “내년 은행권 인수·합병(M&A)도 있고, 정기 주총에 앞서 후속 인사도 해야 하기 때문에 올해 안으로 새 회장을 선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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