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독자로부터 한 통의 전자우편을 받았다. ‘당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아시오?’라는 격한 제목이었다. 765호 ‘딸랑 이거’에 소개된 <u>‘돈 되는 손님만 오세요’</u> 기사에 대한 비판이었다.
내용은 이랬다. “당신이 쓴 기사 기억할 겁니다. 당신이 아무 생각 없이 그 따위 기사를 써댔는지 몰라도 그 이후로 여러 군데 농협의 창구 여직원들은 업무 시간에 의자에 앉지 못하고 서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우리 동네 농협 지점장이 미쳐서 그런 줄 알았더니만 그게 아니라 다른 지점들도 ‘고객 만족 강화’란 미명하에 여직원들을 몽땅 서서 일하게 하고, 또 일부 여직원은 차출되어 ‘365 자동화’ 코너에 하루 종일 서서 안내하는 일을 하더군요. 당신이 대단한 일을 저질렀더군요.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당신이 써 갈긴 기사에 농협에서 고객 만족 강화라는 어이없는 일을 저지른 것 같습니다.”
“자동화 코너에서 종일 서서 안내”
일단 당황스러웠지만, 독자에게 최대한 정중한 답신을 보내며 기사를 쓴 의도를 다시 한번 설명했다. 그 기사를 끝까지 읽어보면 알겠지만, 창구에서 일하는 여직원들을 모두 일으켜 세우라는 내용이 아니었다. 은행들이 수익에만 집중하면서 돈 없는 서민들을 위한 서비스에는 신경쓰지 않는 점을 비판한 것이었다. “돈 되는 고객만 앉아서 상담받게 해줄 게 아니라, 은행의 ‘빠른 창구’에서 공과금을 내거나 입출금하는 고객에게도 작은 의자 하나 내주는 게 좋지 않겠냐”는 것을 에둘러 말한 것이었다.
이 기사는 한 포털 사이트 메인에 노출돼 누리꾼의 관심을 끌었다. 물론 “빠른 창구야 대기 시간이 길어봤자 2~3분이라 그런 거고, 상담 창구는 기본적으로 5분은 넘어간다. 다리가 아프면 은행 중간에 많이 있는 좌석에 앉았다가 자기 순서가 되면 잠깐 가서 업무를 처리하면 되는데, 이것을 마치 유산계급에 대한 특혜로 몰아가는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하다”(히물)는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댓글은 금융기관들의 서민 푸대접에 대한 비판이었다. “의자 하나 놔두는 게 뭐 어렵다고…. 동사무소 같은 곳도 다 의자가 있다. 시간이 안 걸리면 서 있으면 되고, 많이 걸리면 앉아 있으면서 의견을 주고받으면 되고, 알아서 판단하게 하면 되지. 당연한 권리를 아예 못 찾고 있으니까 의자 없는 게 훨씬 효율적으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눈을 돌리면 훨씬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데, 좋은 걸 던져줘도 못 받아먹는 우매한 민중들이 아쉽다.”(강렬하게)
이에 대해 농협 쪽은 “회사 차원에서 창구 여직원들이 일어서서 고객을 응대하도록 지시하지 않았다. 다만 일부 지점장들이 고객 만족을 위해 그렇게 했을 수는 있다”고 해명했다. 빠른 창구에 고객용 의자를 놓을 계획은 여전히 없다고 했다.
대신 농협은 최근 직원들에게 복장 관련 지침을 내려보냈다. 남자 직원들은 수염·코털·비듬이 정리되지 않았거나, 긴 머리 혹은 단정하지 않은 헤어스타일이거나, 규격에 맞는 양복 정장을 입지 않았을 때 지적을 받고 인사고과에서 감점을 당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여직원들은 화장을 하지 않거나 반대로 너무 진하게 한 경우, 원색 매니큐어를 칠하고 지나친 액세서리나 화려한 머리띠를 착용한 경우 감점을 받을 수 있다. 스커트 차림의 여직원이 스타킹을 신지 않거나, 스타킹 색깔이 원색으로 화려할 경우, 발목 부츠나 뒤 끈이 없는 샌들을 착용했을 때도 감점을 받을 수 있다.
복장만 단속하면 ‘고객 감동’?농협은 고객에게 감동을 주는 서비스를 하겠다며 이같은 지침을 내려보냈지만, 오히려 획일적이고 자의적인 평가 기준으로 직원들만 고생하고 있다. 고객은 직원들의 겉모습보다 창구에 의자 하나 놓아주는 데 더 감동을 받을 것이다.
기자에게 항의 전자우편을 보낸 독자는 “경영자들은 그런 조그만 일(기사)에도 민감해 직원들을 다그치는 게 보통이죠. 게다가 아직도 우리나라 남자들의 정서는 여자들이 앉아 있으면 건방지다 생각하는 꽉 막힌 사람들도 많고. 저와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이러한 잘못된 관행이 하루빨리 바로잡혔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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