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터넷에는 YTN ‘살기 좋은 세상’ 편이 화제입니다. 6월25일 대통령의 민생 행보를 편집한 4분짜리 동영상으로, 전반부는 대통령이 동네슈퍼 등을 돌아다니는 장면이고, 후반부는 상인들과의 회식 장면으로 되어 있습니다. 전반부에서 대통령은 대뜸 가게에서 “이거 사먹어라, 뻥튀기”라고 합니다. 뻥튀기 노점을 했다는 전력으로 서민 친화적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함이지만, 상인들의 표정은 어둡습니다. 상인들은 계속 대형마트로 인해 장사가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대통령은 “방학 때문에 손님이 없나”는 등 엉뚱한 발언뿐입니다. 대형마트에 대한 불만이 이어지자, 대통령은 “값은 여기가 더 싸지 않나?” 합니다. 아니라고 하자, 직거래를 해야 한다 가르칩니다. 그러나 상인은 “물량을 소화할 수 없다”며 ‘규모의 경제론’을 펼칩니다. 단 몇 마디만으로도 대형마트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몰이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전반부입니다.
“대형마트 규제하면 위헌판결” 무지 드러내그러나 클라이맥스는 후반부입니다. 회식 자리에서 대통령은 “대형마트 규제법은 헌재에서 위헌판결을 받을 것이므로 법적 규제는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은 진실일까요?
대형마트 규제법은 현재 국회, 지자체, 시민단체 등의 핫이슈입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벨기에 등에는 모두 대형마트 규제법이 있는 반면, 우리나라에선 1997년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이래 확장일로에 있는 대형마트가 최근 4년 동안만 9조원의 매출신장을 보였습니다. 그동안 재래시장의 매출은 9조원이 감소했지요. 지방도시까지 진출한 대형마트로 지방경제가 초토화되자, 일부 지방의회에선 조례를 통해 대형마트 진출을 가까스로 저지하며 법제정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4월에는 국회에서 민노당 이정희 의원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기획조정위원회 법안소위에 회부되었고, 5월에는 ‘중소상인 살리기 전국네트워크’가 발족하였습니다. 민생 행보 당일, 국회에선 여야 의원 22명이 “대규모 점포의 개설과 영업행위를 제한하는 내용의 수정 양허안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출하고 재협상에 나서라”는 대정부촉구 결의안을 본회의에 제출했습니다. 수년째 기존 양허안을 핑계로 대형마트 규제에 손을 놓고 있는 정부를 압박한 것입니다.
여당 의원들까지 규제의 필요성을 촉구하는 그 시각에, 대통령은 민생 행보를 하는 척하면서 “법적 규제가 불가능”하다 단정하며 그 핑계를 헌법재판소로 돌렸습니다. 그러나 만들어지지도 않은 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의견이 있을 리 없고, 패소한다는 대통령의 단정은 초헌법적 월권입니다. 더구나 대한민국 헌법 119조에는 “시장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민주화를 위하여…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웬만한 규제 안은 합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대통령 발언의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요? 6월23일자의 한 최고경영자(CEO) 인터뷰가 눈에 띕니다. 대형마트 업계 2인자로 최근 의욕적인 슈퍼슈퍼마켓(SSM) 출점에 나선 홈플러스 이승한 사장은 지난 5월23일 대형마트 5개사 주최로 열린 ‘공정거래 협약선포식’에서 “정부가 규제하면, 법적 소송까지 불사하겠다”는 발언을 하였습니다. 그는 지난해에 글로벌CEO대상, 최고경영자상을 휩쓸었고,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의 지속발전분과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며, ‘4대강 살리기’에도 다양한 의견을 내고 있는 기업인입니다.
“하소연할 수 있으니 좋아졌다” 자화자찬동영상의 교훈은 “하소연이라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살기 좋아졌다”는 대통령의 마지막말에 있습니다. 이것이 분배 등 실질적인 민주화는 놓친 채, 형식적 민주주의만을 성과인양 따져 온 ‘민주화 20년’의 씁쓸한 교훈입니다. 아무것도 할 의사도 능력도 없이 서민 행보에 나선 대통령은 희극배우 같아 보이지만, 그런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을 투표권만 지닌 채 생존권을 빼앗기고 거리로, 망루로 내몰릴 일만 남은 서민들의 모습은 비극의 주인공 같아 보이는 희대의 걸작 희비극입니다.
황진미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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