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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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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두 날개 감정싸움

등록 2009-03-27 15:12 수정 2020-05-03 04:25

올 3월 대한항공이 40주년을 맞았다. 그런데 40주년 잔치를 준비하던 대한항공은 샘나는 소식을 듣는다. 경쟁사인 아시아나항공이 세계적 권위의 항공 전문지인 (Air Transport World)로부터 ‘올해의 항공사’로 선정된 것이다.
이 잡지는 1974년부터 매년 12개 분야에서 우수 항공사를 뽑고,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둔 항공사 1곳을 올해의 항공사로 시상해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시아나가 처음이다. 대한항공도 지난 2002년과 2006년 최고화물항공사상과 기술·서비스혁신상을 각각 받은 적이 있으나 올해의 항공사로 선정되진 못했다.
아시아나항공이 1월28일 보도자료를 뿌렸다. 아시아나항공은 대한민국 민항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일이라며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수상 소식이 알려진 하루 뒤인 1월29일 윤영두 아시아나항공 사장은 기자간담회에서 “경쟁사(대한항공)에 비해 매출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이미 앞섰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곧바로 1월30일 신문지면에 광고를 냈다. “모두 잊어버리겠습니다”라는 멘트를 시작으로 ‘2005년~2008년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세계 화물수송 4년 연속 1위’ 등 그동안 받은 상 목록들을 열거했다. 그러면서 “전세계로부터 받은 수많은 상들을 깨끗이 잊어버리고자 합니다. 다른 어떤 상보다 고객들의 칭찬 한마디가 소중합니다”라고 말했다. 전형적인 ‘김 빼기’ 작전이다.
두 항공사는 이 상 때문에 감정싸움을 벌이고 있다. 대한항공 쪽은 “아시아나항공의 CEO가 기자회견에서 다른 회사를 폄하하는 게 말이 되냐. 항공업계에 오신 지 별로 되지 않으셨는데 배우는 자세로 임하셔야지 CEO로 부임하자마자 경쟁사를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비판했다. 또 “대한항공은 이미 이 주는 퍼스트·비즈니스클래스 부문 1위 등 여러 상을 이미 받았다. 아시아나가 상을 무슨 항공업계의 노벨상으로 홍보하는데, 이 상은 항공업계의 여러 상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며 평가절하했다.
이에 대해 아시아나항공 쪽은 “대한항공이 그런 식으로 상을 폄하해선 안 된다. 국가적으로도 의미 있는 상이다. 우리나라 항공 분야의 신인도를 높인 상이다. 대한항공은 이 상을 타보지도 못한 것 아니냐”며 발끈했다. 오히려 아시아나항공 쪽은 “들리는 첩보로는 대한항공 쪽에서 편집장을 만나 ‘아시아나가 받아야 하는 거냐’며 방해 공작을 펼쳤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물론 대한항공 쪽은 “방해 공작 얘기는 금시초문”이라며 “오히려 대한항공이 40주년으로 뜨니까 아시아나항공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으려 한다”고 화살을 돌렸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자존심 대결은 그칠 줄 모른다. 2001년에는 정부의 일본 노선 배분을 둘러싸고 대한항공이 “아시아나 편중 정책”이라고 반발했고, 2004년엔 중국 노선 배분에 대해 아시아나 항공이 “대한항공에 유리한 배분”이라며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내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아시아나항공이 인천~파리 노선에 취항하면서 1975년부터 이 노선을 운항해 온 대한항공과 ‘파리 전쟁’으로 불릴 만큼 치열한 마케팅 경쟁을 펼쳤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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