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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선 넘어서니 경고음 뒤 벨트 잡아당겨

신형 에쿠스 타보니… 8개 공기주머니와 마사지 해주는 바이브레이터 눈길
등록 2009-02-27 18:14 수정 2020-05-03 04:25

현대·기아자동차에서 연락이 왔다. 기자를 대상으로 ‘신형 에쿠스’ 시승회를 한다는 것이다. 현대차는 세계를 대표하는 메르세데스 벤츠 S클래스, 렉서스 LS 등 2개 모델과 비교 시승 행사를 여는 모험을 감행한다고 했다.

현대차는 2월17일 경기 화성 남양연구소에서 최고급 세단 에쿠스의 신형 모델을 공개하면서 벤츠 S클래식, 렉서스 LS 시리즈와 비교 시승 행사를 열었다. 맨 오른쪽이 신형 에쿠스. 사진/ 현대차 제공

현대차는 2월17일 경기 화성 남양연구소에서 최고급 세단 에쿠스의 신형 모델을 공개하면서 벤츠 S클래식, 렉서스 LS 시리즈와 비교 시승 행사를 열었다. 맨 오른쪽이 신형 에쿠스. 사진/ 현대차 제공

카메라 반입 금지 등 보안 삼엄

갑자기 파릇파릇한 20대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친구들에게 “40살 때 그랜저를 타고, 60살 때 그랜다이저를 타겠다”며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 그랜다이저는 만화영화에 나오는 로봇이다. “왜 그랜다이저를 타냐”고 물어보는 친구들이 꼭 있었다. 그럴 때마다 “하나뿐인 인간의 별 지구를 위해서”라고 농지거리를 했다. 내년이면 마흔이지만, 그랜저를 탈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대신 에쿠스를 타보기로 했다.

2월17일 오전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에 기자들이 모였다. 버스를 타고 1시간10분여를 달리니 경기 화성시에 위치한 현대·기아차 남양연구소에 다다랐다. 이곳의 면적은 347만㎡(105만 평)에 이른다. 연구동과 각종 성능시험장, 디자인센터가 들어서 있다. 최근 제네시스 등 최고급 차량과 하이브리드카 등 미래형 신차를 개발하는 거점이다.

연구소에 들어서기 전부터 삼엄하게 보안을 유지했다. 자동차 업체끼리 첨단기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보안 유지가 업체들마다 최대 이슈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입구에서부터 카메라 휴대 금지를 알렸고 휴대전화 카메라에는 봉인 스티커를 붙였다. 연구소 곳곳에선 디자인을 볼 수 없도록 앞부분을 커버로 가린 차들을 볼 수 있었다. 현대·기아차가 개발 중인 차들이었다.

이날 성능 테스트는 총 거리 4.5km에 이르는 트랙에서 진행됐다. 시승에 앞서 신형 에쿠스는 10년 만에 완전히 바뀐 새로운 모습을 드러냈다. 디자인은 기존 에쿠스의 각을 지우고 매끈한 디자인을 더했다. 브랜드 이름은 에쿠스를 계승했지만 이전과 차별화했다. 쭉 뻗은 보디라인을 타고 흐르는 부드러운 외관은 예전 에쿠스의 딱딱하고 각진 이미지와 달랐다. 전면은 강인해 보이지만 후드에서부터 대형 라디에이터 그릴까지 이어지는 선은 매끄럽게 떨어진다.

신형 에쿠스는 세계 10대 엔진상을 받은 타우엔진을 장착해 최고출력 366마력까지 올렸다. 벤츠 S500(388마력), 렉서스 LS460L(380마력)과 비슷하다. 신형 에쿠스는 메르세데스 벤츠 S클래스보다 차 길이는 조금 짧지만 폭과 높이가 더 늘어났다. 렉서스 LS 시리즈보다는 확연히 크다. 에쿠스는 제네시스의 플랫폼(차체 뼈대)을 사용했다. 제네시스에 견줘 차 길이를 185mm 정도 늘렸다.

신형 에쿠스 4600cc에 이어 에쿠스 3800cc, 벤츠 S500·S350, 렉서스 LS460L도 잇따라 시승장에 나타났다. 외관 디자인 면에서 에쿠스, 메르세데스 벤츠 S클래스, 렉서스 LS 등 3개 모델 모두 웅장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느낌이었다.

시승은 지그재그로 차량을 운전하는 슬랄럼 코스와 원선회 코스, 차선이탈 감지 시스템을 시험해볼 수 있는 코스, 브레이킹 코스 등를 차례로 지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기자들 3명씩 한 팀이 돼 자동차를 탔다. 테스트 드라이버가 일단 시범 운전을 한 뒤, 기자들이 번갈아가며 시범 운전을 하는 식이었다.

먼저 4600cc 엔진을 얹은 에쿠스에 올라탔다. 시트벨트를 매고 변속기를 D에 놓은 뒤 액셀을 밟았다. 4.6ℓ급 타우엔진의 힘이 그대로 전해왔다. 묵직한 느낌이었다. 시속 40km를 넘어서자 벨트가 살짝 당겨지면서 타이트해졌다. 국내 최초로 선보인 이 시스템은 차량의 움직임과 위험 상황 등을 사전에 인지해 벨트를 되감아 승객을 보호하는 첨단 신기술이라고 회사 쪽은 설명했다.

액셀을 밟으니 이내 가속이 더해지면서 민첩하게 튀어나갔다. 시속 80km까지 순식간에 가속됐다. 핸들을 이리저리 돌리자 지그재그로 슬랄럼 코스를 빠져나간다. 코너링할 때 쏠림은 견딜 만했다. 미끄러짐도 거의 없었다.

에쿠스와 수입차 비교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에쿠스와 수입차 비교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가장 눈에 띈 것은 신형 에쿠스에 장착된 최첨단 기술이었다. 세계 처음 시도한 것은 차선이탈 방지 시스템이다. 노란색 중앙선을 읽어내는 기능이다. 중앙선을 넘어가면 바로 차량에 경고음이 울린다. 2~3초 정도 지나자 경고음의 빠르기가 빨라진 뒤, 곧바로 시트벨트를 살살 잡아당겨준다.

뒷좌석에선 8개의 공기주머니와 1개의 바이브레이터가 허리와 등을 풀어주는 마사지 기능도 눈에 띄었다. 타고 내릴 때 자동으로 시트가 작동해 레그룸을 넓혀주는 기능도 달렸다.

국내 판매가 2억190만원인 벤츠 S500은 동급 최고의 파워를 자랑하는 신형 5.5ℓ V8 엔진 때문인지 부드럽게 속도가 붙었다. 폭발적인 가속력도 드러냈다. 슬랄럼 코스와 원선회 코스에서도 자연스럽게 미끄러져 나갔다. 묵직한 차체에서 오는 안정감은 운전자에게 신뢰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렉서스의 최상위 모델로 판매가 1억3천만원인 LS460L은 배기량 4608cc의 8기통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를 달았다. 안정된 느낌 속에서 가속이 진행됐다. 길바닥에 붙어가는 듯했다. 진동과 소음이 거의 없는 렉서스의 강점이 그대로 배어 있었다.

벤츠·렉서스 등과 비교 시승회

신형 에쿠스는 3월11일 공식 출시한다. 가격은 3.8ℓ(기본형)가 6천만원대, 최상위 버전은 1억3천만원 선으로 책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최고가 모델을 출시한 쌍용차의 체어맨W보다는 높게 가져간다는 전략이다.

고속주행 시험장에서 신형 에쿠스를 탄 느낌은 색달랐다. 테스트 드라이버가 시속 240km까지 가속페달을 밟았지만 흔들림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90도 각도로 꺾인 곳을 시속 240km로 밝으니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다. 영화 의 조종사가 된 것 같은 느낌도 받았다. 직선 주로에서도 시속 110km만 밟으면 핸들이 후들거리는 내 중고 소나타도 떠올랐다.

시승회를 마친 뒤, 자동차 회사들이 기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도 좀더 많은 비교 시승회를 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S 5종의 차 가운데 어떤 차를 구입하는 것이 좋겠냐고 묻고 싶은 독자분은 전자우편을 보내주세요. 개인적으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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