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4일 김명환 GS칼텍스 업무·홍보부문장은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그의 명함 뒷면의 영문 직급도 따라 교체됐다. 전무를 뜻하는 ‘시니어 바이스 프레지던트’(Senior Vice President)에서 부사장을 의미하는 ‘이그제큐티브 바이스 프레지던트’(Executive Vice President)로 바뀌었다.
대기업 ‘전무’에 관심이 쏠린다. 인사철 때문만은 아니다. LG그룹은 8년 만에 전무제를 도입한다. 올 연말 예정된 ‘2009년 임원 인사’ 때부터 적용한다. LG의 임원 직급은 기존 ‘사장-부사장-상무’ 3직급에서 ‘사장-부사장-전무-상무’ 4직급으로 바뀐다. LG는 5대 그룹 가운데 유일하게 전무 직급이 없었다. LG그룹의 전체 임원은 600여 명이다. 이 가운데 부사장 이상이 100여 명, 상무가 약 500명이다. 전무 직급이 없다 보니 상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하는 데 10년 이상 걸리는 예도 있다.
지난 7월24일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LG전자 전사 임원회의에서 임원들이 남용 LG전자 부회장이 말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엘지전자 제공
한 LG그룹 임원은 “상무는 임원이고, 부사장은 최고경영자(CEO)다. 부사장은 책임감이나 리더십 면에서 상무와는 비교가 안 된다. 상무에서 진급을 못하면 옷을 벗어야 하는데 그럴 경우 인재를 확보하기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부사장 승진에 앞서 임원들의 능력을 좀더 검증해야 할 필요도 있다. 정체 현상이 심한 임원 인사의 숨통을 트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
삼성그룹은 LG와 반대로 전무제 폐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전무제 폐지를 검토하는 것은 이건희 전 회장이 강조하는 창조경영과 관련이 있다. 직급 체계를 줄여 신속한 의사 결정과 발 빠른 경영에 나서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전무제 폐지에 대해 삼성 쪽에 공식 확인하자 “확정된 게 없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전무제 폐지를 선뜻 결정하지 못하는 것은 이재용 전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전무는 지난 2007년 1월 정기 임원 인사에서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했다. 1991년 12월 삼성전자에 입사해 2001년 33살에 상무보가 됐고, 2003년 상무로 승진한 뒤 3년 만이었다. 전무직을 폐지하면 이 전무를 부사장으로 승진시켜야 한다. 삼성 비자금 사태가 터진 뒤 얼마 되지 않아 이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할 경우 외부의 곱지 않은 시선이 삼성으로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의 임원급은 870여 명이다. 전무가 100여 명이다. 부사장 50명, 상무 450여 명 등으로 짜여 있다. 삼성은 지난 5월 임원 인사를 발표하면서 상무보 직급을 없앴다. 임원 직급 체계를 ‘사장-부사장-전무-상무’로 줄였다. 지난 2001년 ‘사장-부사장-전무-상무-이사-이사 대우’ 직제 중 이사 대우와 이사를 상무보로 합쳐 5단계로 축소한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조직의 별이 임원이라면, 전무는 별 중의 별쯤 된다. 인사 쪽을 오래 담당했던 양흥렬 포스코 홍보실장은 “보통 기업에서 임원 수는 전체 임직원의 1%가량이 적정한 것으로 본다”고 말한다. 100명이 회사에 들어왔다면 1명이 임원으로 승진한다는 얘기다. 물론 회사마다 약간씩 차이가 난다. 전체 임직원 1만7천 명인 포스코의 임원은 전체의 0.002%인 49명에 그친다. 그만큼 임원 달기가 치열한 곳이다. 전무는 9명이다. 보통 상무 5명 중 1명만 전무가 될 정도로 경쟁은 치열하다. 부사장 이상에 오르는 것은 ‘로또 복권’에 당첨되는 확률만큼 어렵다.
주요 대기업 임원 직급 체계
그렇다면 상무와 전무가 하는 일은 어떻게 다를까? 사전적인 정의는 이렇다. ‘전무이사(專務理事): 사장을 보좌하여 회사 업무를 주장(主掌)하는 이사.’ ‘상무이사(常務理事): 재단이나 회사 등의 이사 중 특히 일상의 업무를 집행하는 기관, 또는 그 사람.’ 삼성전자의 경우, 상무는 한 팀에 소속돼 제한적 업무를 맡는다. 반면 팀장 역할을 하는 전무는 경영진으로 간주되며 한 팀을 이끈다. 사업부문인 ‘총괄’ 단위를 담당하는 사장, 그 밑 ‘사업부’ 단위를 맡는 부사장의 바로 밑 단계다. 이재용 전무가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한 것을 두고 ‘그룹 경영권 승계 가시화’의 첫걸음으로 보는 시각의 근거다. 물론 회사마다 사업부마다 전무의 권한은 차이가 있다.
보통 전무가 되면 별도의 집무 공간이 주어진다. LG전자는 6.4평짜리 개인 집무실을 주고, 삼성은 칸막이를 해놓아 독립적인 공간을 확보해준다. 스케줄을 관리하고 전화 응대를 하는 비서도 따라붙는다. 회사에서 나오는 차도 커진다. 삼성전자의 경우 상무 때는 그랜저TG와 삼성SM7이 나오지만, 전무 때는 에쿠스가 나온다.
몇 해 전부터 기업들은 이사 직급을 없애며 임원 조직 체계를 개편했다. 기업 조직이 관료형에서 전투 역량을 높인 슬림형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창사 이래 ‘사장-부사장-전무-상무-이사-이사 대우’로 이어지는 직급 체계를 계속 유지해온 현대·기아자동차 그룹을 뺀 다른 주요 그룹들은 임원 직급 체계를 간소화하고 있다.
SK그룹은 지난해 말 아예 임원 직급 체계를 없앴다. SK그룹의 임원 직급 체계는 ‘사장-부사장-전무-상무’로 짜였으나, 직급제가 폐지되면서 사장과 회장을 제외한 직급에 대해서는 ‘센터장’ ‘부문장’ ‘실장’ 등 각자 맡고 있는 직책으로만 부르고 있다. 다만 내부 기준에 따라 임원을 5등급(A~E)으로 구분만 한다.
이처럼 기업들이 임원 수를 줄이는 것은 직위 중심에서 직책 중심으로 조직을 바꿔 빠른 의사결정 체계를 갖추기 위해서다. 한 대기업 임원은 “임원 직급 체계를 단순화하면 임원들 간 경쟁이 촉진되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임시직’ 스트레스도 커진다. 일단 임원이 되면 ‘CEO풀’에 들어갈 확률이 높아 ‘무한경쟁’에 돌입한다. 이 때문에 임원들이 받는 스트레스 또한 만만치 않다. 김명환 GS칼텍스 부사장은 “상무에서 전무로,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할수록 권한도 커지지만 그에 따른 책임도 따라 커진다. 승진하면 좋지만 그만큼 어깨도 무겁다”고 말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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