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장경제 이론에서) 일부 허점을 발견했다. 파생상품 규제에 반대한 것은 부분적으로 잘못이었다.”
한때 ‘금융 마에스트로’로서 추앙받던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의장이 금융위기 앞에서 고개를 떨어뜨렸다. 지난 10월23일(현지시각) 미 하원 ‘감독과 정부개혁 위원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와 의원들의 추궁을 받는 자리에서였다. 1987년부터 20년 동안 연준 의장으로 재임하면서 세계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그가 참회의 고백에 나선 것이다.
그린스펀은 과거 누구도 시비 걸지 못했던 자신의 지론에 오류가 있었음을 시인할 때마다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전매특허인 애매모호한 화법도 접었다. 헨리 왁스먼 위원장(민주당)이 “당신의 세계관과 신념이 틀렸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냐”고 묻자, 그린스펀은 “그렇다. 40여 년 동안 나의 경제이론이 잘 작동한다는 상당한 증거가 있었기에 충격을 받았다”고 답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그는 “은행 등 금융기관이 주주와 자산을 보호할 능력을 갖고 있다는 믿음에 실수가 있었다”고도 했다. 최근까지도 정부의 규제 확대가 금융위기의 해결책이 아니며, 문제는 파생상품이 아니라 이를 이용하는 ‘인간의 탐욕’이라고 강변해왔던 시장주의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린스펀은 파생상품 규제에 반대했던 자신의 ‘정책적 오류’도 인정했다. 몇조달러 규모의 신용디폴트스와프(채권 발행자의 부도 위험을 바탕으로 설계된 파생상품) 시장을 다시 규제할 필요가 있다는 데 동의했다. 또 “최근 5년 새 주택경기 활황이 거품으로 바뀌어 경제를 해칠 수 있다는 지적을 부인한 것도 내 잘못”이라며 “집값이 안정될 때까지 정부가 금융시장을 지원하는 것은 올바른 조처”라고 평가했다. 그는 “(최근 금융위기는) 1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신용 쓰나미”라고 규정하면서 “현재까지 금융시장 손실을 고려할 때 일시적 해고와 실업률의 급증을 어떻게 피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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