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와 촛불집회 논란 속에 슬그머니 원자력발전소 추가 건설 들고 나온 정부… 한 번이라도 그 부작용을 생각해봤는가
▣ 권혁범 대전대 교수·정치언론홍보학 kwonhb@dju.ac.kr
이번 글의 주제와 관계없는 현상에 대해 서두에 한마디 하고 넘어가고 싶다. 최근 청와대 수석비서관 교체에 대한 기사를 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호남을 ‘배려’했다는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소·영’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지난번에도 이번에도 서울대 출신은 압도적으로 많았다. ‘고·소·영’이 아니라 ‘서·소·영’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흥미로운 것은 어떤 언론도 이러한 특정 학교 편중을 문제 삼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는 ‘고·소·영’의 ‘고’란 말이 왜 나왔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청와대건 행정·입법·사법부건 서울대 출신은 여전히 압도적으로 많은데도 공론의 주요 문제로 전혀 다뤄지지 않는다. 학벌사회에서 서울대 출신이 고위직에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당연하다는 전제를 한국 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것일까? 이것을 중요한 이슈로 다루지 않는 것은 언론 역시 서울대가 헤게모니를 잡고 있어서일까? 한발 더 나아가 이번 수석비서관에는 여성이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역시 이것을 문제 삼은 언론은 단 하나도 없었다. ‘서·영·남’(서울대·영남·남성)이라고 부르는 게 가장 정확한 표현일 듯하다.
한국을 벗어난 동아시아의 문제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한국 사회는 쏠림 현상이 문화적인 특성으로 자리잡고 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해서 일정한 수위를 넘으면 사회 전체의 관심이 그쪽으로만 일방적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도 그런 경우다. 지난 한 달 반 동안 온 사회가 그 문제로 뒤범벅이 되고 말았다. 그것은 선명한 문제 제기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힘의 결집이라는 차원에서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그런 쏠림 현상은 다른 여러 가지 중요한 쟁점들에 대해 손을 놓게 되는 문제를 발생시킨다. 그레고리 핸더슨이 얘기한, 빈번히 잘못 해석되고 있지만, ‘소용돌이의 정치’다. 모든 사람들이 최상층의 권력 중심부로 쏠린다는 얘기다. 온갖 문제들이 단 하나의 이슈에 빨려 들어가는 것도 유사한 현상이다.
대다수 언론과 시민들의 시선이 온통 촛불집회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에 집중돼 있을 때 이명박 정부는 원자력발전소를 추가로 짓겠다는 방안을 슬그머니 내밀었다(사실은 핵발전소가 더 정확한 표현인데 그것이 갖는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한국에서는 원자력발전소로 쓰고 있다. 단어 하나에 이미 정치적 입장이 들어가 있는 셈이다). 그것을 9기 이상 새로 건설해 전체 발전량 가운데 원전 발전 비중을 현재의 36%에서 55% 이상으로 높이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렇게 되면 한국에는 현재 가동 중인 20기와 건설 및 준비 중인 8기, 신규 건설 9기 이상을 포함해 모두 37기 이상의 원자력발전소가 자리잡게 된다. 이 중대한 문제에 대해 대다수 언론은 짤막한 기사를 논평 없이 보도한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 문제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미래 한국의 환경·생명·안전 문제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아니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건이 보여주듯 이는 한국이라는 정치적 단위와 경계를 넘어서는 국제적 문제, 즉 북한·일본·중국·러시아를 포함하는 동아시아의 문제이기도 하다. 현재 가동 중인 20기의 원자력발전소만 해도 수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 추가로 9기 이상을 짓겠다는 발상이 왜 나오는 것일까?
최근 석유의 대안으로 원자력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국제유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오일쇼크’의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한승수 국무총리는 6월 초 원자력발전 30주년 기념식에서 “최근 고유가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원자력의 역할이 더욱 강화돼야 할 것”이라고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한국은 미국, 일본,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과 함께 6대 석유 수입국이다. 또한 석탄 및 석유 등 화석에너지의 환경파괴적 성격 때문에 인류의 미래를 원자력에서 찾고 있는 경우가 있다. 화석에너지는 대기오염 물질은 물론 지구 온난화에 기여하는 온실가스를 배출하기 때문이다. 전세계 방출 에너지 중 화석연료에서 나오는 에너지의 비율이 82%다. 반면에 원자력은 온실가스를 적게 방출한다. 그래서 원자력은 역설적으로 ‘청정에너지’라고 불리기도 한다. 발전소 건설과 우라늄 광산에서의 채굴 과정을 포함해 전체 에너지 사슬에서도 석탄 화력발전소의 10분의 1 정도로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뿐이다. 1kWh를 발전하는 데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유연탄 991g, 석유 782g, 가스 549g에 이른다. 하지만 원자력은 단지 10g에 불과하다. 게다가 산성비의 주요 원인인 질소산화물을 만들지 않는다. 전세계 400기 정도의 원자력발전소에서 세계 발전량의 16%를 생산한다. 최대 강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공급원이 안정돼 있고 원가가 석유, 석탄, 액화천연가스(LNG)보다 싸다는 점이다.
정말 돈이 적게 드는 에너지원일까
하지만 과연 가격이 쌀까? 단기적으로는 싸지만 길게 보면 그렇게 말할 수 없다. 현재의 화폐가격에는 포함되지 않은 비용이 있다. 원자로의 수명은 30~50년이다. 그것은 원자로 부지와 주변 토지나 해안을 오염시킨다. 다시 원래의 환경으로 복구하는 데는 천문학적인 돈이 든다. 또한 스리마일 아일랜드와 체르노빌 사건에서 보듯 항상 폭발과 방사능 누출의 위험이 있으며 그로 인한 인명 사상과 주변 생태계 오염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을 정도다. 환경과학자 이필렬 교수의 말대로 많은 안전장치가 설비돼 있다는 것은 “거꾸로 원자로가 근본적으로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암시한다.
대만, 일본, 한국, 중국 등 세계 원자력발전소의 4분의 1이 집중된 동북아시아에서 체르노빌 같은 대형 핵 사고가 일어난다고 해보자. 태안 앞바다 ‘삼성-허베이’ 기름 유출 사건은 ‘사소한’ 것으로 치부될지도 모른다. 1986년 4월26일에 일어난 체르노빌 4호기 폭발사고로 80만 명이 피폭되고 그 결과 방사능 오염으로 1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12개 마을이 소개됐으며 37만 명이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 체르노빌의 경우 낙진이 일주일 만에 800만 마일 떨어진 베를린, 1천 마일 떨어진 그리스와 이탈리아에 도달했다. 유럽 일부 나라에서는 오염된 돼지 등을 집단 폐사시킨 일도 있다. 만약 고리 원전에서 유사한 사건이 일어난다면 서울에서만 26만, 후쿠오카에서 32만 명 정도가 방사능 때문만으로 사망하게 된다는 예측도 있다.
새로운 기술 설계로 노심 용해의 가능성이 사라졌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고장과 사고는 원자력발전소의 숙명이다. 지난 1978년에서 90년대 중반까지 국내에서 280회의 사고가 있었고 1만여 시간 동안 가동이 중단되었다. 한국의 고리 1호기는 고장 때문에 30번이나 가동이 중단된 적이 있고 월성 1호기도 냉각재 중수가 누출되는 사건이 있었다. 또한 거기서 95년 한 해 동안 상당한 양의 방사성 물질이 대기와 바다로 누출되었다는 게 밝혀졌다. 수력, 화석연료, 풍력 등은 모두 태양에너지의 변형된 형태지만 원자력이나 핵융합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에너지라는 점에서 생태계의 파괴와 교란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중저준위·고준위 폐기물의 처리도 해결하기 힘든 숙제다. 원자로 1기당 대체로 1년에 8천 드럼의 중저준위 폐기물이 발생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재의 어떤 기술로도 지하에 완벽한 저장시설을 만들 수는 없다. 고준위 폐기물인 플루토늄을 포함해 핵발전에서 나오는 물질들의 방사능 반감 시기는 최저 몇백 년에서 최대 2만 년 이상이다. 이래서 일본의 시민과학자 다카기 진자부로는 원자력을 ‘끌 수 없는 불’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안면도, 굴업도, 부안 등에서 일어난 주민들의 핵폐기물 저장소 설치 반대는, 정부가 얘기하는 ‘집단이기주의’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나름대로 타당한 과학적 이유가 있는 것이다. 대만도 핵폐기물 4만5천 드럼을 북한으로 ‘수출’하려다 대만과 한국 환경단체 등의 격렬한 저항 때문에 포기한 적이 있지 않던가.
나는 원자력발전소나 폐기물 저장소(이른바 ‘방폐장’)가 안전하다는 주장을 접할 때마다 한 가지 의문이 든다.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이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안전하다면 서울 같은 대도시, 특히 청와대나 재단 근처에 저장소를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안전하다면 왜 발이 닿지 않는 작은 섬이나 무인도에 건설하려 할까? 그런데도 정부는 저장소 설치 반대의 원인을 주민들의 ‘무지’나 ‘집단이기주의’에서 찾고 ‘계몽’하려 한다(물론 경주의 저장소 유치에서 보듯 요즘은 돈으로 주민들을 유혹한다).
이렇듯 해체 및 복원 비용, 방사능 누출 및 사고로 인한 경제적·환경적 비용, 폐기물 저장 비용 등을 합치면 과연 원자력이 다른 에너지에 비해 쌀까? 그것을 모두 내부화한다면 현재의 비용보다 몇 배나 커질 것임이 틀림이 없다. 체르노빌의 경우 3천억달러의 청소비가 들었지만 원래 환경대로 복구하는 데 실패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스웨덴, 독일 등은 원자로를 모두 폐기하기로 했다. 미국도 스리마일 아일랜드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단 한 개의 원자로도 건설하지 않았다. 선진국에서 프랑스와 일본을 제외하면 지난 20년간 새로운 핵발전소를 지은 나라는 단 한 곳도 없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국제사회와 재생에너지 개발에 나서라
또한 원자력은 모든 과정이 “인간으로부터 엄격하게 격리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반생명적인 에너지이며(이필렬), 그것이 비밀로 유지되기 때문에 소수의 관료 엘리트와 과학 전문가들에 의한 밀실의 결정과 통제에 의존하게 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나 인권 같은 가치를 밀어내게 된다. 로베르트 융크가 말한 ‘핵국가’의 속성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북한의 경우에서도 잘 드러나듯 원자력발전소를 갖게 된 나라는 핵폐기물 재처리를 통한 핵무기 개발의 유혹에 직면한다는 점이다. 자칫하면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 혹은 반대로 군사적 재앙이 일어날 수도 있다. 동아시아에서 한 국가가 핵무장을 하면 핵무기 개발이 연쇄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박정희 정권하에서 비밀리에 추진되던 핵무기 개발에 대해 지금도 민족주의적 감성으로 반응하는 한국 사회를 생각하면 이러한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핵연료 재처리 권한을 포기한 것은 주권의 관점에서 잘못된 것이며” “통일되면 북한의 핵무기가 우리 것이 된다”라는 일부의 민족주의적 입장도 그런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서는 지면상 대안적 에너지에 대한 자세한 검토를 할 수는 없다. 어떤 에너지를 선택하든 나름대로 문제가 있다. 에너지의 발굴과 사용은 인간사회에서 불가피한 일이면서도 그것이 지나치면 생태계와 인간을 포함한 생명의 생존을 위협한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화석연료나 원자력에너지에서 가급적 멀리 달아나고 재생적 에너지원, 즉 풍력, 조력, 태양열, 바이오매스 등에 가까이 가는 수밖에 없다. 석유에 비해 현재 경쟁력이 낮다 해도 수요가 늘어나면 재생에너지의 공급도 늘어나고 생산비용도 낮아질 수 있다. 물론 이것 역시 현재 우리가 예견하지 못하는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따라서 방법은 한 가지다. 그것은 한국 사회와 국제사회가 에너지를 최소로 사용하는 제도, 시설, 정책, 구조, 기술과학 그리고 일상적 삶의 방식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 시발점은 아무래도 원자력발전소의 추가 건설을 막아내는 데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이명박 정부가 발상의 전환을 해서 원자력 에너지를 포기하고 재생 에너지 확대 정책을 펴나가지 않는다면 또 한 차례의 촛불집회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참고 문헌
1. (이필렬, 창비, 1999)
2. (다카기 진자부로, 녹색평론사, 2000)
3. (바츨라프 스밀, 창비,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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