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 의 김이환·의 손아람, 젊은 작가를 만나다</font>
▣ 글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소설이 기지개를 핀다. ‘한국’이라는 딱딱한 말이 붙은 ‘문학’이 아니라 그냥 ‘소설’들이다. 김이환의 (전 3권, 황금가지 펴냄, 이하 )과 손아람의 (전 2권, 들녘 펴냄, 이하 )가 나란히 나왔다. 이 소설들은 신춘문예나 문학상 같은 ‘엄격한 절차’를 겪지 않고 독자들과 만났다. 은 인터넷에 연재된 소설이고, 는 인터넷을 통해 투고돼 단행본화에 이르렀다. 바늘구멍을 통과하지 않은 이 ‘예의 없는’ 소설들은 구멍을 통과하기 위해 웅크리지 않았다. 은 ‘환상의 나라’를 다룬 판타지 문학이고, 는 1998년부터 힙합신에 실재했던 그룹의 역사를 쓴 ‘음악소설’이다. 젊은 기운에 맞게 소설가 또한 젊다. 의 김이환은 1978년생이고, 의 손아람은 1980년생이다.
‘하기 싫은 일’도 있는 환상의 나라
은 2005년 여름부터 2006년 겨울까지 문피아(http://www.munpia.com) 에 연재됐다. 이곳에서 책으로는 1천 쪽에 이르는 분량이 빠르게 소화됐다. 이만큼의 빠른 연재를 감당할 ‘문학 매체’는 없을 것이다. 조회 수는 폭발적이었다. 무엇보다 읽은 독자들의 반응이 기존과 달랐다. “추천하는 게시판에서 거의 모든 이가 내 작품을 거론할 때는 정말 놀랐습니다. 2년 전 일이었는데 지금도 못 잊겠어요.” 황금가지의 이지연 주간은 이렇게 당시를 회상한다. “인터넷 소설 독자들은 ‘포르노’를 보는 사람들과 비슷해요. 소비하고는 리액션을 거의 보이지 않지요. 의 조회 수는 최고 조회 수의 다른 작품과 비슷했지만 댓글은 몇 배씩 됐습니다.” 책이 나온 지금도 이 인터넷 독자들은 스스로 책 홍보요원이 되어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있다.
의 모티브는 책의 맨 앞에 나오는 문장이다. “엄마는 내가 크면 훌륭한 일을 하는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고 하셨다.” 소설을 구상하면서 작가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이미지는 ‘한 소년이 수레를 끌고 다니는 모습’이었다. 소설은 ‘나’(이름을 밝히면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생략)가 환상의 나라의 ‘훌륭한 사람’인 등대지기가 되기 위해서 수레를 끌며 ‘양말을 줍는’ 이야기다. 고1인 ‘나’는 갑작스럽게 부모가 이혼하면서 ‘세계관’의 혼란 상태에 빠진다. 1년 뒤 바쁘기만 하던 어머니의 정체가 밝혀진다. 어머니는 환상의 나라의 고위직 간부. ‘나’는 어머니의 사회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일주일에 5일은 양말 줍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이 소설은 장르문학을 펴내는 황금가지에서 근 3~4년 만에 펴낸 ‘국내’ 작가의 작품이다. 이지연 주간은 “환상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방식이 굉장히 새롭다. 인터넷 소설의 기본적인 형식인 나쁜 놈을 만나서 싸우고, 이기고, 더 강해지고, 마지막 음모를 풀어내는 방식에서 벗어났다. 처음에는 낯설었다가 소설이 가는 방향에 재미가 더해져 계속 지켜보고 출간을 결심했다”고 말한다. 새로운 환상 세계의 동화적 상상은 귀엽다. 현실의 벽에 가고 싶은 환상의 나라 벽 번호를 적어서 주문을 외면 넘어갈 수 있다. 환상의 나라에서는 돈에 눈이 먼 앵무새가 심부름을 하러 다니고 기린은 구름을 모아 비를 내린다. 고딕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딴 세상’이 아니라 ‘하기 싫은’ 일들 같은 일상이 존재하는 등치된 ‘또 하나의 세상’을 만들어냈다.
속사포 래퍼의 랩 같은 문장들
는 ‘자전적 음악소설’이다. 저자인 손아람은 1998년 고등학교에서 힙합 동아리 활동을 하고 이후에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로 명명되는 그룹에서 ‘손 전도사’로 이름을 날렸다. 위키백과는 이 힙합 그룹의 손 전도사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손 전도사의 랩의 속도는 (…) 아웃사이더의 데뷔 전까지는 가장 빠른 랩을 선보여 명실상부한 최고의 속사포 래퍼로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이들은 등으로 인기를 끌다가 음반사와의 불화로 데뷔 음반을 녹음하고도 발매하지 못했다. 5년 전에 해체됐는데 소설 발간을 계기로 이 음반을 발매한다고 한다.
손아람은 이런 실화 베이스에 픽션을 세웠다. 그 자신은 서울대 미학과를 다녔으나 소설에서는 ‘문제아’에 부모가 이혼한 가정의 소년으로 등장한다. 소설에서 ‘나’는 고등학교 시절 혁근과 초등학교 동창 하윤과 힙합그룹 활동을 시작한다. 그들이 만든 ‘어머니’가 알음알음으로 알려진 가운데 ‘우지’가 그룹에 접근한다. 공연하고 싶던 클럽 크립 무대에 서지만 우지는 그들이 충분히 놀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소설의 문장은 랩을 하는 것 같다. “어머니에게는 나를 경제적으로 부양할 능력이 없고, 아버지에게는 나를 경제적으로 부양할 의무가 없다.” 시니컬한 재밌는 문장들도 많다. “지하실에는 달력이 없었지만 우지는 언제나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알고 있었다. 구석에 횡대로 세워놓은 술병을 세어 7로 나누어 떨어지는 날이 토요일이니까.”
손아람은 소설을 낸 뒤 음악 담당 기자들의 연락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그는 ‘전업작가’다. “글쓰기를 직업으로 하게 될 줄 몰랐습니다. 하지만 7~8살 때부터 일기에 소설을 써왔어요. 누구든지 소설을 쓰고 싶다고 한다면 그렇지 않았을 텐데, 지금 이곳에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소설에 대해 “첫 작품이다 보니, 조금만 보여줬다가 나를 이렇게 알면 어쩌나 싶은 조바심에 다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다”고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표현한다. 그가 쓰고 싶은 장르는 공상과학소설(SF)이다. 그것이 “유일하게 지적인 장르”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따라다닐 ‘똑똑함’(책의 저자 소개에는 아이큐 테스트에서 만점을 받았다고 나와 있다)에 대해서 그는 똑 부러지게 말한다. “목사님의 설교가 고상하고 바르고 깊이 있지만, 그걸 똑똑하다고 하지는 않지요. 그런데 그런 게 소설에 쓰이게 되면 똑똑함이 되어버리더라고요. 유머러스하고 일상적이지만 심금을 울리는, 속이 깊은 사람이 똑똑하지 않나요? 소설도 그래야 할 것 같아요.” 손아람의 문학판을 향한 쓴소리는 계속된다. “음악 활동을 할 때 같은 기득권에 압살당하는 분위기를 느낍니다. 연예인이라는 소재를 끌어들이는 것이 부당한 저평가를 받을 만한 포맷이긴 하지만 순수 대중작가로만 머무르고 싶지는 않아요.” 윤재인 들녘 주간은 “자신의 젊은 날을 썼으니까 털고 앞으로 나갈 것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작가”라고 말한다.
딱딱한 ‘문학’을 깰 수 있을까
이 두 소설은 젊은이의 ‘성장소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주인공들의 부모는 이혼 하고 한 명은 유머러스하게, 한 명은 진한 농담으로 다른 세계로 도피한다. 하나는 환상의 세계이고, 하나는 음악이다. 그리고 소설에는 ‘연예계’라는 그 세대에 익숙한 세계가 소설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에서 환상의 나라 시민들은 모두 실재 세계의 배우 이름을 가지고 있다. 에는 조PD 등이 실명으로 등장하고, 걸그룹 활동을 하다가 힙합을 탐색하는 ‘마리’는 실재 연예인을 연상시킨다. 이들 세대의 달라진 면모를 적극적으로 소설 속에 녹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본능적으로 글을 쓴다. 김이환은 인터넷에 생활처럼 글을 올리고 손아람은 일기를 소설로 쓰듯이, 그것으로 랩의 가사를 썼듯이 글을 쓴다. 그리고 아직도 쓸 게 너무나 많다. 손아람은 “죽을 때까지 써도 다 쓸 수 있을까” 싶은 아이디어 폴더를 30개 가지고 있다고 한다. 김이환은 이미 (북하우스)이라는 책을 낸 바 있는데, 이 책 이전에도 과의 사이에 여러 편의 작품을 쓴 다작의 작가다. 이 돌연변이들이 딱딱하게 굳은 ‘문학’을 깰 수 있을까. 드라마 처럼, 돌연변이는 히어로를 품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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