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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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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달러에 날개는 있는가

등록 2007-11-30 00:00 수정 2020-05-03 04:25

기축통화로서의 독점적 지위는 끝날 듯, 급격한 폭락이냐 완만한 조정이냐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사진·정수산 기자 jss49@hani.co.kr

국제유가 배럴당 100달러 육박, 달러에 대한 원화가치 급등, 각국 주가 급락세…. 실물 상품시장, 외환시장, 주식시장 할 것 없이 모두 요동치고 있는 요즘, 그 배경 설명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말이 있다. 바로 지속적인 ‘달러 약세’다. 미국의 유명한 랩가수조차 뮤직비디오의 돈다발 이미지로 달러가 아닌 유로화 뭉칫돈을 사용하고, 세계적 톱모델이 “계약료를 달러로 안 받겠다. 유로화로 달라”고 요구하는 등 달러 통화는 ‘한물간 통화’ 취급을 받고 있다.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도 지난 10월 초 “달러가 헤게모니를 잃고 있고 유로화의 부상이 뚜렷하다”며 달러의 통화 지위가 흔들리고 있음을 인정했다. 달러화 가치가 역사상 최저 수준에 근접할 정도로 추락하면서 기축통화로서 달러화 위상에 대한 회의론이 전면에 부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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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리밸런스 불가피

세계 경제 중심국인 미국의 경제력과 금융 네트워크 지배를 기반으로 한 기축통화 달러는 1995년 이후 7년에 걸친 ‘강한 달러’ 시대를 끝내고 2002년 초부터 약세로 돌아섰다. 1990년대 신경제 붐을 타고 10여 년간의 장기 호황을 누린 미국 경제가 2001년 이후 경기 후퇴에 들어갔는데, 그 뒤 회복 부진 상태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달러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서 “‘달러 제국’이 무너지고 있다”거나, ‘팍스 달러리움’(Pax Dollarium·달러화가 주도하는 세계경제 질서)이 저물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달러 약세의 원인으로는 △미국의 막대한 쌍둥이 적자(경상수지 적자 및 재정적자) △미국 경제 펀더멘털의 약화 △세계 경제에서 미국 경제의 비중 축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이 꼽힌다. 물론 이런 요인들은 서로 얽혀 있는데, 미국의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로 대표되는 ‘글로벌 임밸런스’(무역 불균형) 문제를 보자. 중국· 인도 등 아시아 신흥시장의 고성장과 고유가 지속으로 아시아 국가와 중동 산유국은 경상수지 흑자가 크게 늘고 있는 반면, 미국은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를 내고 있다. 2006년 경상수지 적자는 미국 국내총생산의 6%에 달하는 연간 8천억원에 이른다. 다른 국가라면 당장 국제통화기금에 구제금융을 요청해야 할 정도의 적자 규모지만 미국은 기축통화국이라서 외환위기에 몰리지 않고 있을 뿐이다. 미국의 쌍둥이 적자 규모는 미국 경제의 안정성을 위협할 정도로 계속 늘어나고 있고, 이는 미국 경제의 취약성 노출과 신뢰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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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기축통화로서 달러는 신뢰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국제유동성을 공급하는 두 가지 측면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신뢰도를 유지하려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축소돼야 하는 반면, 세계 경제가 팽창할 때 달러 유동성을 공급하려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불가피하다. 기축통화로서 딜레마를 안고 있는 셈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수석연구원은 “달러는 기축통화이면서 동시에 미국 국내에서도 통용되는 통화다. 달러가 국제유동성 공급을 위해 미국 바깥으로 빠져나간다는 건 곧 경상수지 적자를 의미한다”며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미국 경제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그동안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를 감당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미국 경제 비중이 줄어들면서 경상수지 적자가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경상수지 적자 줄이려 약세 용인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그동안 미국으로 유입되는 직·간접 투자자금을 통해 순조롭게 보전될 수 있었다. 경상수지 적자, 즉 해외로 유출된 달러가 미국 채권과 주식 매입을 위해 다시 미국으로 유입되는 ‘달러 리사이클링’ 구조다. 2006년에 미국으로 유입된 국제자본은 8800억달러에 이른다. 경상수지 적자 누적에도 불구하고 리사이클링에 따라 달러화 약세가 억제되고 달러가치 고평가 상태가 유지돼온 것이다. 그러나 아시아· 중동 경제의 고성장으로 미국 경제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경상수지 적자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못하면 리사이클링 구조가 깨질 가능성도 크다. 특히 미국 경제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미국 자산에 대한 투자 기대수익이 약화돼 자본 유입이 위축되고 있는데, 충분한 해외 자금이 미국으로 유입되지 않을 경우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는 더 이상 지탱될 수 없다. 주가 폭락, 미국에서의 자본 이탈, 달러 약세 등 ‘글로벌 리밸런스’(조정)가 불가피한 것이다. 권순우 연구원은 “부시 행정부도 각국이 외환보유액 통화 및 결제통화를 다른 통화로 다변화할 때 이를 통제할 능력이 많이 떨어졌고 결국 용인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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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겉으로는 강한 달러를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달러 약세를 용인하고 있다. 달러화가 약세를 보여야 해외 시장에서 미국 수출상품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져 수출이 늘고 경상수지 적자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큰 폭의 약세는 미국으로의 해외 자금 유입 축소를 초래하므로 감당하기 어렵다. 그런데 미국 경제의 성장세 둔화, 달러 약세 용인 정책이 지속되면서 아시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미국 채권 투자를 줄이고 대신 상대적으로 투자수익률이 높은 신흥시장 투자를 늘리고 있고, 달러화 위주였던 외환보유액 통화를 유로화· 엔화· 위안화 등으로 다변화하는 시도가 확산되고 있다. 원유와 금 등 실물상품 가격이 크게 오르는 배경에도 달러화 약세가 자리잡고 있다. 국제자본이 달러표시 자산 대신 실물상품으로 쏠리면서 가격을 밀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원유대금 결제를 달러로 해온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달러 약세로 인해 실질 구매력이 떨어져 손해를 보고 있는데, 이에 따라 “원유 가격이 더 올라야 달러 약세에 따른 손실분을 보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부 OPEC 산유국은 이제 원유 달러 거래를 포기해야 한다는 제안마저 내놓고 있다.

쌍둥이 적자 문제를 해소하려면 미국이 금리를 인상해 소비를 억제하고, 정부 지출을 삭감하고, 증세를 통해 세수를 확대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이런 고통스러운 조정을 회피하면서 대신 정책금리의 미세 조정을 통해 상황을 호전시키려 해왔다. 미국은 달러가 기축통화이기 때문에 경기 침체 속에서도 종이와 물감으로 달러를 마구 찍어내 국내 소비를 뒷받침해왔다. 찍어낸 달러를 외국 자본이 사들이고, 이렇게 달러를 판 돈으로 미국 소비자들이 소비해온 것이다. 중국에 대해서는 위안화 절상을 계속 요구하면서 무역 갈등을 빚고 있는데, 위안화 절상만으로 대외 불균형이 해소되기는 어렵다. 1985년 플라자 합의처럼 다자주의적 통화가치 정책조정을 통해 달러가치를 구하는 방법도 있으나 아시아와 유럽의 미온적인 태도, 미국의 영향력 감소를 감안할 경우 국제적 합의가 도출될 가능성은 낮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 따른 후폭풍도 지속되고 있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연구위원은 “그동안 미국 금융시장은 강하다고 투자자들이 믿어왔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상품이 위험을 적절히 분산하는 대단한 파생금융상품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한꺼풀 벗겨보니 대규모 손실을 내는 등 별것 아니라는 실망감이 겹쳐 있다”며 “특히 OPEC이 달러 페그(원유대금 달러 결제) 중단을 논의하면서 이제 달러 약세 논란이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수석연구원은 “최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미국 경제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면서 달러화 가치가 추가로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 빠르게 확산됐다”며 “미국의 고금리와 높은 성장률에 가려져 있던 대규모 무역수지 적자와 재정수지 적자가 다시 전면에 부각됐다”고 말했다.

미국의 대규모 쌍둥이 적자로 대표되는 세계 경제의 불균형이 달러 약세를 통해 해소되는 리밸런스 국면에 들어섰다고 보면, 최근의 주식과 부동산 가격 하락 등은 새로운 균형으로 이행하기 위한 ‘건강한 조정’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최근의 △아시아 국가들의 미 국채 투자 감소 △달러화 위주의 외환보유고 구성을 다변화하는 시도 △원유 등 실물상품 가격의 상승 등은 대표적인 글로벌 리밸런스 조짐들이다. 신민영 연구위원은 “달러가 뒤집어지고 기축통화 지위를 상실할 것이라는 말은 과민반응”이라며 “파국으로 가지 않고 시간을 두고 조정이 이뤄진다면, 달러가치가 당분간 약세를 지속하더라도 이는 과대평가됐던 가치가 정상화되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물론 글로벌 리밸런스가 급격히 진행되면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빠르게 폭락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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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화·엔화·위안화 등이 분담

‘급격한 리밸런스’는 향후 2∼3년 안에 미국 경제에 대한 신뢰가 빠르게 추락하면서 미국채 등 달러화 표시 자산에 대한 집중적인 매도가 발생하고, 달러화 가치가 급락해 미국 및 세계 경기가 둔화되는 시나리오다. 이에 따라 세계 최대 소비시장인 미국의 소비가 급속히 위축되면 한국 등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국가들도 경기가 위축되고, 달러화 표시 금융자산을 대거 보유해온 각국 중앙은행과 금융기관들은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될 공산이 크다. 결국 전세계적 경기 둔화라는 파국을 피하기 위해 국제 사회의 조정 노력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쌍둥이 적자 문제가 해소되지 않더라도 미국 경제가 순항하고, 미국 금융시장에 대한 신뢰를 배경으로 달러화 가치가 유지될 것이라는 ‘대마불사’ 시나리오를 내놓기도 한다. 미국 경제가 여전히 지탱 가능하며, 미국 시장에서의 높은 수익을 기대하는 국제자본의 투자가 계속되면서 달러화 가치는 지금 수준을 유지하거나 완만하게 강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얘기다.

사실 달러화 문제는 미국이 경상수지 적자를 어느 정도 개선하느냐에 달려 있는데, 최근 미국의 경기회복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미국 재정적자의 경우 2006년 2500억달러에서 올해는 1600억달러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국 경기가 조금 좋아져 세수가 증대됐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미국의 경기회복세가 되살아날 경우 달러화가 다시 강세를 띨 것이라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신민영 연구위원은 “약한 달러 정책으로 미국 수출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이 점차 강화되어 경상수지 적자 증가율이 둔화되는 효과가 지난 3분기부터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며 “내년 상반기까지는 달러 약세가 완만하게 지속될 가능성이 크지만 ‘달러 패권의 몰락’은 지나친 우려”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상수지 개선으로 내년에 달러 약세가 주춤하거나 중단될 가능성이 있더라도 길게 보면 세계 경제에 달러 공급이 줄어들고, 유로화 등이 기축통화의 한 부분을 점차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달러가 독보적인 기축통화 지위를 누려온 시대가 마감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권순우 연구원은 “달러가 유일한 기축통화 노릇을 하는 건 이제 한계에 직면했다. 중국· 인도· 중동· 아프리카 경제가 고성장하면서 상대적으로 미국 경제의 비중이 계속 줄어들고 있는데 이에 따라 달러화의 위상도 약화가 불가피하다”며 “달러 독점 시대가 끝나고 유로화· 엔화· 위안화 등이 달러와 함께 기축통화로서 점차 세계 경제의 한 축을 분담하는 체제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로화는 달러 약세 속에서 이미 위상이 한껏 강화되고 있고, 엔화는 엔캐리 트레이드를 통해 세계 금융시장에서 파워를 확대하고 있다. 위안화 역시 중국의 경제규모가 급속히 커지면서 아시아 지역에서 영향력이 날로 확장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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