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그룹 총수 자녀에게 헐값으로 넘긴 뒤 막대한 차익 이용한다는 의혹 일어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7월30일 (주)한화가 2005년에 비상장회사인 한화S&C 지분과 경영권을 김승연 회장의 장남에게 헐값에 넘겼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한화 이사회가 한화S&C 보유 지분 전량(40만 주, 66.7%)을 김 회장의 아들 동관씨한테 매각할 때 주당 가격은 5100원이었다. 이에 대해 경제개혁연대는 “당시 이 회사 주식의 적정 가격은 최소 1만1669원(3% 매출증가율·1% 영구 성장률을 가정해 미래현금흐름 할인법으로 평가)에서 최대 3만308원(5% 매출증가율·5% 영구 성장률 가정)으로, 한화가 헐값에 주식을 매각했다”고 주장했다.

헐값 매각으로 한화 이사회가 회사에 26억∼100억원의 손실을 끼쳤다는 것이다. 최한수 경제개혁연대 팀장은 “줄곧 영업흑자를 내던 한화S&C가 2004년에 40억원가량 적자를 낸 직후에 매각 결정이 이뤄졌다”며 “한화S&C는 매출액의 평균 51%가 한화그룹 계열사로부터 생기는 안정적인 수익을 갖춘 회사인데, 매각 가격을 낮추려고 의도적으로 적자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재벌 일가 지분낮고 계열사 지분 높아
여기서 눈길을 끄는 건 한화S&C가 비상장기업이라는 점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돼 있는 삼성에버랜드·삼성SDS,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주식 헐값 매각 의혹이 제기됐던 SKC&C, 정의선 기아차 사장의 현대·기아자동차그룹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엠코·오토에버시스템즈 등도 모두 비상장 계열사들이란 점에서 공통적이다. 한화S&C는 재벌그룹 소속 비상장 계열사들이 총수 자녀의 경영권 승계에 활용하기 위한 자금줄로 이용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해준 것이다. 비상장 계열사 주식을 총수 자녀에게 헐값에 넘기고, 총수 일가는 여기서 얻는 막대한 차익을 활용해 그룹 경영권 지분을 확보하는 것이다.
재벌 기업의 계열사들이라면 안정적인 수익을 내면서 지속적인 성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대다수가 상장 요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그러나 상장 요건을 이미 충족하고 있음에도 기업공개를 하지 않고 계속 비상장기업으로 남아 있는 국내 재벌 계열사의 수는 놀라울 정도로 많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006년 4월 현재, 총수가 있는 자산규모 2조원 이상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41개)의 기업공개 비율은 평균 55.17%(자본금 기준·총자본금은 62조9190억원이고 공개회사 자본금은 34조7110억원)로 나타났다. 회사 수를 기준으로 보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 회사 975개 중 기업이 공개된 회사는 188개(19.2%)이다. 재벌그룹 계열사의 80%가 시장에 나오지 않고 비상장기업으로 숨어 있는 것이다. 물론 이들 787개 기업 중 상장 요건을 갖추지 못한 기업도 존재한다. 그룹별로 보면, LG그룹은 자본금 기준으로 기업공개 비율이 84.5%(그룹 총자본금 7조4700억원 중 공개기업 자본금 6조3200억원)로 매우 높은 반면, 삼성그룹은 공개 비율이 44.1%(그룹 총자본금 11조4700억원 중 상장기업 자본금 5조600억원)에 그쳤다. 상장기업보다 비상장 계열사의 자본금이 더 많은 것이다. 회사 수를 기준으로 기업공개 비율은 한화(16.1%), 롯데(16.2%), 효성(5.8%), GS(10%), 태광산업(7.6%)이 전체 평균보다 낮고, LG·두산·동부·한솔·현대·신세계 등은 공개 비율이 30%를 넘는다.

그런데 재벌그룹 비상장기업은 상장기업에 비해 총수와 그 일가의 지분이 낮고 대신 계열사 지분이 매우 높다. 내부 지분 분포를 보면 상장기업의 경우 총수 일가 평균 지분은 7.02%인데, 계열사·임원·비영리법인 등 ‘총수 일가 이외의 내부 지분’은 30.5%다. 반면 비상장기업의 총수일가 지분은 2.7%에 불과하고, 총수 일가 이외의 내부 지분은 63.9%(이 중 계열사 지분이 63.4%)에 이른다. 이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뚜렷하다. 비상장 우량기업의 지분 대부분을 갖고 있는 계열사들이 어느 시점에 지분을 재벌 오너 자녀에게 헐값에 넘기고, 재벌 2·3세는 이를 통해 얻은 막대한 자금을 활용해 그룹 경영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계열사가 누려야 할 평가차익을 총수 자녀에게 넘겨주는 식이다.
기업공개를 하지 않고 비상장기업으로 남아 있으면 시장과 투자자들의 감시를 피할 수 있고, 지배구조에 대한 감독당국의 간섭과 모니터링도 덜 받게 된다. 기업의 주식가치와 지분 변동도 투명하게 공표되지 않기 때문에 경영권 승계의 통로로 비상장 계열사를 이용하는 건 국내 재벌 총수의 전형적 수법이다. 일반적으로 기업 소유자는 회사를 상장해 지분 평가차익을 얻고, 또 수많은 투자자들로부터 직접 자본을 조달해 사업을 확장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국내 재벌 총수들의 입장에서는 일부 우량 계열사를 비상장으로 남겨두는 것이 오히려 더 이득이 된다. 이와 관련해 김우찬 한국개발연구원 교수(국제정책대학원)와 성태윤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는 1997∼2002년 국내 재벌 계열사들의 공개·비공개 기업(총 420여 개) 자료를 활용해 어떤 경우에 비공개로 남을 확률이 높은지를 분석했다. 성태윤 교수는 “그룹 내부자금을 동원해 비상장 계열사를 키우는 경우 굳이 기업공개를 통해 주식시장에서 자본을 조달할 필요가 없게 된다”며 “삼성의 경우 에버랜드라는 비상장기업이 사라졌을 때 이건희 회장 집안이 얻게 되는 현금흐름을 따져보면 에버랜드가 삼성그룹의 소유지배에 기여하는 정도를 분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에버랜드의 기업 규모 자체는 비록 작은 편이지만, 이 회사가 없어지면 지배주주는 현금흐름에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지배주주에 대한 기여가 큰 계열사일수록 비공개 기업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이익 적게 나거나 적자 낸 시점에서 넘겨
재벌 총수 자녀들이 상당수의 비상장 계열사 대주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도 재벌 비상장 계열사가 경영권 상속을 위한 발판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사실 재벌그룹 비상장 계열사들은 그룹 계열사들의 일감 몰아주기에 힘입어 안정적인 매출을 올리면서 가파르게 성장한다. 또 비상장기업이기 때문에 주주가 대부분 특수관계인이고, 일반 주주들의 간섭을 받지 않은 채 총수 일가의 재산 불리기에 쉽게 동원된다.
재계 전문 사이트인 재벌닷컴에 따르면, 2006년 말 기준으로 재벌기업 소속 400개 비상장사의 주식가치를 평가한 결과 주식 평가 금액이 100억원 이상인 사람이 123명이고 이들이 보유한 비상장기업 주식가치는 총 7조3884억원에 달했다. 삼성전자 이재용 전무는 삼성에버랜드(62만여 주·지분율 25%)·삼성SDS 등 알짜 비상장 계열사 덕분에 비상장회사 주식 3848억원어치를, 또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SKC&C(주당 가치 43만원) 등 2578억원어치의 비상장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의 아들 정의선 사장은 엠코·이노션·오토에버시스템즈 등 비상장 계열사의 최대주주로 있으면서 663억원어치의 비상장기업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LG 구본무 회장의 양자인 구광모씨는 친아버지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희성전자 주식 13%(주당 가치 44만원, 평가액 404억원)를 보유하고 있고, 희성정밀(주당 가치 15만원)의 대주주이기도 하다. 조석래 효성 회장의 세 아들인 효성 조현준 사장, 조현문 부사장, 조현상 전무는 각각 비상장 계열사인 노틸러스효성(14.13%), 효성건설(16.47%), 더클래스효성(5.09%)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재벌의 비상장 계열사는 ‘숨어 있는 황금알’로 불린다. 상장기업은 주가가 시장에서 형성돼 명확하게 드러나지만, 비상장기업은 주당 가치를 평가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에버랜드와 한화S&C가 보여주듯 비상장기업은 주식가치 평가 기준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항상 헐값 매각을 둘러싼 의혹이 제기된다. 비상장기업 주식가치는 대개 주당순이익(EPS)과 주당순자산가치(BPS)에 적정한 가중치를 부여해 평가하는데, 재벌기업 총수와 총수의 이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회사 이사회 멤버들은 회사를 설립한 지 몇 년 안 돼 이익이 적게 난 시점에서, 혹은 한화S&C처럼 적자를 낸 시점에서 지분을 총수 자녀에게 매각하는 방법을 활용한다. 주당 가격을 낮게 평가해 지분을 헐값에 넘기기 위해서다. 그러나 경영권 승계의 루트로 활용되는 우량 비상장 계열사는 설립 당시에는 매출액이 작지만 그 뒤 그룹 계열사들의 지원을 통해 매출액이 급속히 증가하기 마련이다. 지분 헐값 매각 이후 비상장기업의 이런 막대한 이익은 총수 일가의 이익으로 고스란히 돌아가게 된다. 최한수 팀장은 “비상장기업의 적정 주식가치 평가는 지배주주와 독립된 회계법인 및 사외이사들로 구성된 평가위원회가 주도해야 한다”며 “누구나 납득할 만한 평가 방법과 절차가 제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부분 시스템 통합 업체들
흥미로운 건 재벌 2세 경영권 승계를 위한 자금줄 노릇을 하는 비상장기업은 대부분 시스템 통합(SI) 업체들이라는 점이다. 삼성SDS, SKC&C, 현대차 그룹의 오토에버시스템즈 등 재벌그룹 소속 SI 계열사들을 보면 대부분 재벌 2·3세가 등기이사로 등재돼 있거나 지분율이 높다. 한화S&C도 한화그룹 내 정보기술(IT) 관련 업무를 도맡아 수행하고 있는 SI 업체다. 오토에버시스템즈는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2대 대주주(지분 20.1%)다. SKC&C는 최태원 회장이 지분 44.5%를 갖고 있고, 현대그룹 계열사들의 IT 업무를 맡고 있는 현대U&I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장녀인 정지이 전무가 지분 9.1%를 보유하고 있다. 또 태광그룹의 SI 계열사인 태광시스템즈는 이호진 태광 회장의 아들 현준씨가 지분 49%를 갖고 있고, 대림그룹의 IT 계열사인 대림I&S는 이준용 명예회장의 장남인 이해욱 부사장이 5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한화S&C의 경우 2004년만 빼고 매년 수십억원의 흑자를 내는 등 재벌 계열 IT 업체들은 매출의 상당 부분을 그룹 계열사들로부터 안정적으로 올리면서 급성장하고 있다.
국내의 많은 SI 업체들은 IT 붐을 타고 기업을 공개했지만 재벌그룹의 SI 계열사는 비공개 기업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재벌그룹 쪽은 “IT 기업은 그룹 회장의 2·3세 젊은 경영자들이 경영 수업을 쌓기에 좋은 곳이고, 기업을 공개할지 안 할지는 경영 차원의 선택일 뿐 경영권 승계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최한수 팀장은 “SI 업체는 자본금이 적기 때문에 재벌 총수 자녀가 적은 자금을 들여 지배권을 획득할 수 있고, 일단 지배권을 획득한 뒤에는 그룹 계열사의 지원을 통해 회사가 급성장하면서 경영권 승계를 위한 자금을 여기서 끌어모을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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