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호 수령자가 탄생한 주택연금…기대수명 넘겨 살면 이득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사진 이종찬 기자rhee@hani.co.kr
지난 7월12일부터 판매되기 시작한 주택연금(공적보증 역모기지대출) 제1호 수령자가 탄생했다. 7월20일 서울 구로구에 사는 김아무개(83)·박아무개(78·여)씨 부부는 하나은행 서울 구로지점에서 신도림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시가 3억4천만원·한국감정원 인터넷 시세)를 담보로 주택연금에 가입했다. 김씨 부부는 앞으로 매달 20일에 173만6030원을 평생 받게 된다. 김씨가 받는 주택연금 수령액은 부부 중 나이가 적은 쪽(부인)을 기준으로 정해졌다.
주택연금을 주관하는 한국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7월25일까지 주택금융공사 영업점을 통해 3천여 건의 상담이 접수됐고, 실제 가입신청서를 낸 건 200여 건이다. 가입신청을 하면 주택가격 평가 등을 거쳐 일선 금융회사에서 대출약정을 체결하기까지 15∼30일 정도 걸린다. 7월25일 현재 대출승인이 나서 주택금융공사가 보증서를 발급한 건 10건에 이른다.
“전세 옮겨다니는 것보다 유리하다”
충북 청주에 사는 이아무개(72)씨는 시가 2500만원짜리 연립주택을 담보로 가입신청을 했다. 이씨의 예상 월 연금액은 9만6천원이다.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박아무개(87)씨는 지금까지 가입신청을 한 고객 중 최고령자다. 부인과 사별한 뒤 자녀 3명과 함께 살고 있는 박 할아버지는 시가 4억원짜리 아파트로 주택연금 가입신청서를 냈다. 월 지급금은 나이가 많을수록 증가하는데, 박 할아버지의 예상 월지급금은 282만4600원이다. 40대 아들이 혼자 사는 노모 한아무개(73)씨를 모시고 지방에서 올라와 가입 상담을 한 사례도 있다. 아들은 “평소 어머니에게 충분한 용돈을 드리지 못해 죄송했는데 주택연금 상품이 나와 어머니를 설득한 끝에 모시고 왔다”고 말했다.
주택연금은 주택을 담보로 사망할 때까지 일정 금액의 노후생활비를 매달 연금으로 받을 수 있는 제도이다. 자기 집에 죽을 때까지 거주하면서 노후 생활자금을 지급받고, 사망하면 금융기관이 주택을 처분해 그동안의 대출금·이자·보증료를 상환받는 방식이다. 일반 시중은행에서도 역모기지 대출상품을 팔아왔으나 대출기간(5∼15년)이 정해진 ‘변형된 주택담보대출’에 불과하다. 반면 주택금융공사가 판매하는 공적보증 주택연금은 종신 지급과 종신 거주를 보장한다. 주택금융공사는 가입자의 △나이 △기대수명 △주택가격 △주택가격 상승률(연 3.4% 가정) △생존 기간에 적용되는 장기 이자율 변동 예상치(연 7.12% 가정) 등을 기준으로 월 연금 지급액을 정했다(표 참조). 대출금리는 3개월 양도성예금증서(CD)의 유통수익률에 1.1%포인트를 더해 연 6.1%를 적용했다. 시중은행이 우량고객한테 적용하는 주택담보 대출금리(연 6.2%가량)보다 좋은 편이다.
가진 것이라고는 집 하나밖에 없는 노인 부부라면 누구나 가입을 고려해볼 만하다. 그러나 주택연금은 가입자의 생존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고 장기에 걸쳐 금리와 주택가격이 변동한다는 점에서 ‘불확실성’이 큰 상품이다. 즉, 리스크가 큰 상품이기 때문에 각종 리스크 변수들을 집어넣은 월 연금액 산정 공식도 매우 복잡하게 설계돼 있어서 주택연금 상품에 가입하기 전에 자신에게 유리한지 아닌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주택금융공사 쪽은 “3억원짜리 집의 경우, 주택연금에 가입하는 경우와 팔고 다른 집에 전세로 살면서 남은 돈을 은행에 넣어두는 경우를 서로 비교하기도 한다”며 “이 경우 전세보증금이 1억5천만원이라고 할 때 남은 1억5천만원을 은행에 맡기면 월 60만원 정도의 이자를 받을 수 있으나, 주택연금에 가입하면 전세를 옮겨다닐 필요 없이 내 집에 평생 살면서 매달 86만4천원씩 받게 돼 더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초기보증료·연보증료 부담해야
가입할 때 결정된 주택연금 월 지급액은 주택가격 등락이나 금리 변동에 상관없이 사망 때까지 일정액이 그대로 지급된다. 공사는 주택가격 변동 등 주요 리스크 변수들을 연 1회 이상 재산정해 월 지급액을 다시 산정한다. 따라서 집값과 나이가 똑같더라도 올해 가입자와 내년 가입자의 월 지급액은 달라질 수 있다. 물론 월 지급액 산정 기준이 바뀌어도 이전에 가입한 사람의 월 수령액은 변동이 없다. 그런데 월 지급액은 물가지수로 조정되지 않은 명목가치 개념이다. 즉, 올해 매달 86만4천원을 받을 경우 10년 뒤에도 20년 뒤에도 월 86만4천원을 받게 된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미래에는 지금의 86만원4천원보다 훨씬 적은 돈을 받게 된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주택금융공사 박성재 팀장(주택연금보증부)은 “물가를 고려한 불변 실질가치로 연금액을 정하면 월 수령액이 줄어들게 된다”며 “수급자들은 자신이 언제 죽을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입 초기부터 빨리 많이 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명목가치로 정하는 편이 더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월 지급액은 부부 중 나이가 적은 쪽을 기준으로 결정되며, 한쪽이 사망하더라도 남은 배우자에게 똑같은 금액이 계속 지급된다. 나중에 부부가 모두 사망했을 때 주택을 처분한 가격이 상환액(대출금·이자·보증료)보다 많아 돈이 남으면 자녀 등 상속인에게 돌려준다. 즉, 대출 이자·보증료는 가입자가 직접 현금으로 내는 것이 아니라 계약이 종료돼 대출금을 회수할 때 집을 처분한 금액에서 대출금과 함께 내게 된다. 다만 대출이자는 계약이 종료됐을 때 한꺼번에 갚기 때문에 복리로 계산된다.
주택연금 상품 모형은 한국인 생명표의 기대수명을 적용해 설계된다. 현재 65살인 노인의 기대수명은 남성 82살(여성은 85살), 70살의 기대수명은 남성 84살(여성 86살), 75살의 기대수명은 남성 85살(여성 87살), 80살의 기대수명은 남성 88살(여성 90살)이다. 부부 중 한 사람이라도 기대수명보다 더 오래 살면 혜택을 누리게 된다. 부부 나이 중 적은 쪽이 현재 65살인 경우를 보자. 이 부부가 받는 월 지급액(86만4천원)은 20년이 지난 85살 쯤이면 집값과 대출금이 같아지도록 설계됐다. 건강하게 오래 살아 85살을 넘기면 자기 집값보다 더 많은 돈을 연금으로 받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혼자 사는 노인보다는 부부일 경우 어느 한쪽이든 기대수명보다 더 오래 살 확률이 높아지므로 유리하다. 물론 기대수명에 못 미쳐 일찍 죽는다고 꼭 손해를 보는 건 아니다. 대출금 등을 상환하고 남은 돈은 자녀한테 돌려주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택연금 가입자들이 비용으로 부담하는 ‘보증료’ 개념이 등장하게 된다. 주택연금은 경매 처분할 때 집값이 떨어져서 대출 상환액을 충족하지 못해도 상속인에게 갚으라고 하지 않는데, 이처럼 집값의 초과 대출이 일어나 대출 은행이 입는 손실을 공사가 대신 변제해주기 위해 가입자로부터 보증료를 받는 것이다. 보증료는 초기보증료(주택가격의 2%)와 연보증료(대출잔액의 0.5%) 두 가지를 부담해야 한다. 박성재 팀장은 “보증료는 손실 보전을 위해 연금 가입자들의 공동기금 성격으로 정해진 것이다. 가입자들의 보험료는 주택금융공사에 모두 쌓인 뒤 기대수명을 넘어 산 가입자들에게 나눠지게 된다”고 말했다. 결국 부부가 모두 기대수명 전에 숨진다면 보증료만 내고, 더 오래 산 다른 가입자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해주는 셈이 된다. 따라서 부부 중 한 명이라도 기대수명을 넘어 살 수 있도록 건강부터 챙기는 게 좋다.
가입자 주택의 담보가치는 가입자가 기대수명에 이를 때쯤 거의 다 소진된다. 예컨대 65살 부부가 3억원짜리 집을 담보로 맡겨 매월 86만4천원을 받는다고 하자. 기대수명인 85살(여성)까지 21년 동안 받게 되는 돈은 모두 2억1770만원이 된다. 그런데 집값이 20년간 연평균 3.5%씩 상승한다고 가정하면 20년 뒤 집값은 5억7600만원이 된다. 주택연금 모형은 기대수명까지 생존할 경우 대출금·보증료·이자(장기 이자율 평균 연 7.12%) 등을 합친 총상환액이 집값(5억7600만원)과 비슷해지도록 설계돼 있다. 이에 대해 주택금융공사쪽은 “20년간 실제로 받는 돈에 비해 이자와 보증료가 너무 많다고 놀라는 분들도 있는데, 향후 20년간의 이자 금액 변동치를 표로 보여주면 대부분 납득한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 부부가 기대수명을 못 채우고 75살에 모두 숨졌다고 하자. 이때 이 부부는 10년 동안 1억368만원을 받게 된다. 이 대출원금과 10년간 이자(연 6.5% 가정할 때 약 700만원), 그리고 10년간 쌓인 보증료(약 3500만원)까지 모두 더하면 1억4500만원을 상환해야 한다. 여기에서 재산세 감면 등 세제혜택을 빼면 변제 총액은 1억4천만원에 이른다. 물론 중도에 해약하면 다른 가입자들을 위해 그동안 보증료만 내준 격이 된다.
집값이 상승 또는 하락할 경우는 어떻게 될까? 집갑이 변동해도 월 지급액은 변함이 없다. 다만 집값이 올랐을 경우 대출금·이자·보증료를 모두 정산한 뒤에 주택금융공사와 새로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그러면 더 높은 주택가격에 근거해 더 많은 월 지급액을 받을 수 있다. 물론 그대로 두더라도 부부가 사망한 뒤 금융기관이 주택을 처분할 때 매각 가격이 높아지면 남은 돈은 상속자들한테 돌아간다. 주택연금 이용 도중에 집값이 급등했다고 치자. 그런데 향후에 집값이 떨어질 것으로 예측되면 주택가격이 오른 그 시점에서 새로 계약을 체결하는 편이 유리하다. 하지만 이때 주택금융공사 역시 집값이 향후에 떨어질 것으로 판단한다면 월 지급액을 당연히 낮추게 될 것이다.
집값 변동해도 월 지급액 변함 없어
나이가 적을 때 빨리 주택연금에 가입할수록 꼭 유리한 것만도 아니다. 나이가 많을수록 월 지급액도 더 증가하기 때문이다. 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65살 이상이면 주택연금 상품에 가입할 수 있지만 상담하러 찾아온 노인들은 대체로 70∼75살 정도라고 한다. 주택금융공사 쪽은 “70살 이전의 노인은 아직 젊은 축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자녀로부터 금전적 도움을 받기 어려운 70살 안팎의 노인들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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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연금에 가입하려면 가입 당시 부부 기준으로 1가구 1주택이어야 한다. 그러나 가입 이후 2주택자가 되더라도 계약은 계속 유지된다. 1가구 1주택자라면 토지 등 다른 부동산을 갖고 있어도 신청할 수 있다. 그러나 부부가 실제로 살지 않고 전세를 준 주택은 주택연금 상품으로 이용할 수 없다. 또 주택연금 이용 도중에 담보로 제공된 해당 주택을 전세로 내놓거나 특별한 사유 없이 1년 이상 이 집에 살지 않으면 계약이 해지된다. 가입 기간에 해당 주택이 재개발·재건축돼도 계약해지 사유가 된다.
물론 가입하려면 해당 주택에 담보가 설정돼 있지 않아야 한다. 담보만 설정돼 있지 않으면 다른 은행의 대출금이 많아도 가입할 수 있다. 그러나 세금 체납 또는 대출금 연체가 있으면 대출심사 과정에서 탈락할 수도 있다. 주택연금은 가입 당시 법률상 혼인관계에 있는 부부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것이므로 도중에 이혼하면 주택 소유자에게만 연금이 계속 지급된다. 재혼의 경우, 연금을 받던 주택 소유자가 숨지면 남은 배우자는 연금을 받을 수 없다. 또 주택연금 가입 도중에 65살 이하의 젊은 아내와 재혼한 노인의 경우 본인이 사망한 뒤 젊은 아내가 주택연금을 계속 지급받을 수는 없다. 병원비 등 갑자기 큰돈을 써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대출한도의 30% 이내에서 일시불로 받을 수도 있다.
월 지급액을 산정할 때 대상 주택이 아파트인지, 연립주택인지 또는 서울·수도권에 있는지, 지방에 있는지는 전혀 따지지 않는다. 오직 주택 가격만 고려된다. 한국감정원 인터넷 시세에 집값이 나온 아파트는 감정이 생략되므로 감정 비용을 낼 필요가 없다. 그러나 시세가 따로 제공되지 않는 단독·연립 주택이라면 감정 비용(3억원 주택의 경우 약 40만원)을 부담해야 한다. 물론 근저당 설정비용(3억원 주택의 경우 약 30만원)도 내야 한다. 한국금융연구원 이석호 연구위원은 “1990년대 초반에 역모기지를 도입한 미국의 경우 가입자가 현재 23만6천 명에 이른다”며 “집을 자녀한테 상속한다는 의식이 약화되고, 자녀가 노부모의 주택연금 가입을 용인하는 분위기가 정착되면 주택연금 이용이 크게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택연금을 이용하려면 우선 주택금융공사 영업점(전국 12곳)에 찾아가 신청서를 내고 대출심사를 받아야 한다. 심사를 통과하면 공사가 보증서를 발급하고, 가입자가 국민은행 등 8개 금융회사의 가까운 지점을 찾아가 대출약정을 체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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