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사 박경철의 주식 이야기 2탄…주가 2천을 넘은 날의 경고
▣ 박경철 안동 신세계연합의원 원장· 저자
필자가 이 글을 쓰는 2007년 7월25일 현재 종합주가 지수가 종가 기준으로 2천 포인트를 돌파하면서 시장이 완전히 축제 분위기다. 신문·방송들도 온통 ‘2천을 넘어 3천으로 향한다’ ‘과거와 다른 주식시장의 속설들’ ‘외국인을 이긴 개미들’과 같은 장밋빛 전망이 연일 넘쳐난다. 실제로 주가지수 2천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 불과 몇 달 전에 한 방송 심야 토크쇼에서 필자와 같이 출연했던 모 대학의 유명 경영학부 교수가 ‘지수 2천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미친 사람들이다’라고 호언장담했을 정도로 주가지수 2천 시대는 꿈과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주가지수 2천 시대가 단순히 수치 이상의 무엇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치투자? 이제 살 주식이 없다
필자는 지난 1999년 말 ‘성장주와의 이별’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는 직감이었을 뿐 확신은 아니었다. 이유는 그때가 성장주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성장주의 시대는 대개 10년의 사이클을 가진다. 산업이 성숙하고, 성숙 산업에서 잉여이익이 발생하면 돈이 남아돈다. 이때 남아도는 돈은 새로운 투자처를 찾게 마련이고 이런 시기에는 세상에 없던 산업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 마련이다. 19세기 방직산업, 1903년 자동차 산업의 출현, 오늘날의 모토롤라를 있게 한 1920년대의 무전기와 유선통신, 전자산업의 시작을 알린 1940년대 트랜지스터, 1970년대 반도체, 1980년대 개인용컴퓨터(PC), 1990년대 이동통신과 인터넷 등이 그렇다. 이런 새로운 산업들은 무서운 속도로 기존 산업이 축적한 부를 빨아들인다. 그리고 자산시장은 새로운 꿈을 좇는다. 버블(거품)이 시작되는 것이다. 하지만 매양 그렇듯 이런 새로운 산업들은 초기의 기대를 넘어 과잉 중복 투자를 낳고, 종국에는 필연적으로 경기침체와 자산가격의 폭락을 유발한다. 그 과정에서 살아남은 기업들은 어느새 기성산업이 되어 서서히 제 가치를 획득해간다.
이 마지막 과정이 가치주의 시대다. 가치는 단순명료하다. 어떤 주식을 살 때, 그 주식의 가격이 ‘절대적’으로 싼가 비싼가에 대한 질문이다. 여기서 ‘절대적’이라는 말에 주목하자. A기업의 주가에 비해 B기업의 주가가 싸면 상대적으로 싼 것이다. 하지만 그 비교 대상이 다른 주식이 아니라, 그 자체의 가치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그 기업을 지금 당장 청산해도 해당 기업의 시가총액보다 많다면 그것은 ‘이유 불문하고 싸다’. 혹은 그런 기업이 주는 배당이 은행 이자보다 많다면 그것은 ‘무조건 싸다’. 거기에다 그 주식의 주가수익배율(주가를 이익으로 나눈 값)이 낮다면, 그 기업의 이익을 몇 해 동안만 모아도 해당 주식 전체를 살 수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또한 ‘매우 싸다’. 이때 이 주식을 산다면 당신은 ‘절대적으로 저평가’된 주식에 투자하는 가치투자자다.
한국 시장에도 이런 시기가 있었다. 필자가 2002년에 조사해본 바에 의하면 전체 상장 주식의 3분의 2가 여기에 해당됐다. 한국 시장은 그야말로 가치의 보물창고였던 것이다. 일군의 운용자들과 투자자들이 여기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들은 대단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여기까지가 바로 주가지수 2천 시대에 이른 현재 우리 시장의 모습이다. 물론 과거에도 이런 방식의 투자에 대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동안 기업의 회계나 실적들이 모두 거짓말투성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회계와 시장 시스템이 안정화돼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이것을 보고 다른 투자자들도 속속 가치투자를 외치기 시작했다. 현재 거의 모든 대한민국 자산운용사가 홈페이지에서 자신들의 운용철학을 ‘가치투자’라고 내세우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 기준대로라면 이제 한국 시장은 끝났다. 더 이상 자산을 팔아 주식을 몽땅 살 기업이 없다. 오히려 현재 신가치주로 주목받는 삼성중공업의 경우에는 향후 10년간 자산이 10~20%씩은 증가해야 겨우 주가와 자산가치가 균형을 이루고, 또 다른 조선업체는 주가수익배율이 과거 코스닥 거품 때 어지간한 거품주와 같거나 높다. 눈을 씻고 봐도 한국전력이나 KT와 같은 몇몇 기업을 제외하고는 살 수 있는 주식이 없다. 그래서 필자는 이번에는 ‘가치주와의 이별’을 선언했다.
지금은 명백히 성장주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고, 그것은 이제 시작점에 서 있다. 이것이 바로 주가지수 2천 시대의 의미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리 돌아봐도 하늘에서 뚝 떨어질 새로운 산업이 없다. 투자금융, 신재생에너지, 바이오, 환경, 레저, 엔터테인먼트, 죽음산업 등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한 시대를 주도하기에는 체급이 약하다. 즉, 지금은 순수가치의 시대도, 순수성장의 시대도 아니라는 뜻이다. 앞서 말한 대로 이런 새로운 성장산업이 기대를 품고 한 시대를 이끌고 가려면 때가 무르익어야 한다. 그러기에는 주기가 너무 이르다는 뜻이다. 이것은 아마 빨라도 2~3년, 길면 5년은 지나야 할 것이다.
‘같기도’ 성장주의 시대
그래서 지금은 어느 개그 프로의 유행어처럼 ‘같기도’ 시대다. 분명히 가치의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 하지만 시장 주변의 유동성은 지수 3천 혹은 5천을 향해 질주할 준비가 완료되어 있다. 어쩌면 정말 시장이 완전히 미칠지도 모른다. 필자는 향후 2~3년간 이어질 이 시기를 ‘같기도 성장주의 시대’라고 부르고 싶다. 내재가치가 분명히 비싼데도 가격은 올라갈 테니, 그것이 성장주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시장은 앞으로 이해할 수 없는 가격에 대해 이렇게 말할 것이다. ‘향후 이익과 자산이 늘어날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이 기업의 가치는 저평가됐다.’ 독자 여러분은 이 말에 동의하시는지 궁금하다. 가치란 눈앞에 있는 물건을 두고 무게를 다는 것이지 미래에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필자는 또 다른 우려를 한다. 그것은 뒤늦게 가치의 중요성을 인식한 투자자들이 이 논리에 매몰되면 ‘굴뚝주’나 ‘전통주’를 모두 가치주로 정의하는 견강부회를 할 가능성이다.
앞으로 주식시장은 현재의 가치가 아닌 ‘가능성’을 평가할 것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머지않아 다가올 순수 성장산업보다는 어중간한 위치에서 애매한 위치를 차지하는 기업들에 초점이 고정될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전력이 풍력이나 조력발전에 나서고, 포스코가 환경기술에 뛰어들고, 대한항공과 강원랜드가 레저 관련주로, KT나 오리온이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변신한다면, 거기다가 삼성전자가 제너럴일렉트릭(GE)처럼 금융자본인지 산업자본인지 헷갈리는 행보를 취한다면, 그것은 바로 성장주의 반열에 오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금방 유동성을 폭발적으로 끌어들이는 당위성으로 여겨질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정말 LG생명과학과 같은 일부 제약사들이 생명 관련으로, 또는 대성이나 한신공영과 같은 기업들이 몽골로 나가면서 환경·에너지 관련으로, 또 코스닥이나 테헤란로의 일부 벤처기업들이 바이오로 혜성같이 등장할 수도 있다. 어디 그뿐인가? 수자원공사가 상장할지도, KT&G가 생명과 죽음을 교묘하게 결합한 기업으로 주목받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필자가 말하는 ‘같기도 성장주 시대’ ‘가치주와의 이별’은 이런 맥락에서 하는 말이다.
이 말은 농담 같지만 농담이 아니다. 다만 문제는 투자자들의 행보다. 한국 주식시장은 아직 희한한 시장이다. 한쪽에서는 가치투자로 대박을 내는데, 한쪽에서는 코스닥의 2천~3천원짜리 주식에 목을 매고 하루 종일 극과 극을 오가는 투자자들이 공존한다. 지난 몇 년간 그저 묵직한 종목 한두 개에 묻어두거나 펀드에 넣어두었다면 최소 3배의 수익이 나는 황금의 시대에, 일부 투자자들은 중앙차로를 달리는 좌석버스를 두고 굳이 차선을 넘나들며 곡예운전을 하는 총알택시를 잡기 위해 “따블, 따따블”을 외치고 있다. 지금도 유수 경제신문의 주말판은 숫제 유사 투자자문 업자들의 광고로 넘친다. ‘그들은 신이다.’ 필자가 아는 한 이분들은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미친 듯이 사라” “찍어주는 종목을 사면 무조건 대박이 터진다”고 주장했다. 고장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듯이, 지금 이들의 주장은 그럴듯하게 들리고, 정말 족집게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것이다. 하지만 한번 반문해보라. 그렇게 신들린 듯이 주식시장의 흐름을 꿰고 있는 그들이 ‘왜 자신은 주식투자를 하지 않는지’.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그들에게 정말 신기(神氣)가 있다면 스스로 주식투자로 큰 부자가 되었어야 마땅한데, 왜 오늘도 내일도 여러분에게 1만원짜리 몇 장을 들고 강연회장으로 나오라고 외치겠는가? 이 대목에서 그분들이 ‘슈바이처와 같은 박애정신이 투철해서’라고 대답하면 할 말이 없다.
더킹과 위빙의 노하우
이것이 2007년 7월 말의 대한민국 주식시장이다. 이제 일반 투자자들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다. 진정한 의미에서 ‘가치투자’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제는 누구나 같은 자료로 침착하게 재무제표를 연구하면 진주를 찾아낼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가고, 어떤 기업이 ‘이익을 마구 낼 것’을 알아맞혀야 하는 ‘통찰’이 필요한 시대다. 그것이 아니라면 설령 어떤 기업이 당장은 이익을 내지 못하더라도, 콜럼버스처럼 언젠가는 신대륙을 발견할 것이라는 믿음을 시장으로부터 모을 수 있을까를 알아채는 ‘직관’이 필요하다. 이제 2천 시대 이후의 직접투자는 이런 안목을 가진 투자자들과, 거기에 사술(邪術)을 써서 끼어들 거간들의 시대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운용자들은 그 시대에 맞는 트렌드와 패션을 충실히 반영한다. 그래서 개인 투자자들은 더더욱 간접투자로 돌아서는 용기 아닌 용기가 필요하고, 자신의 통찰과 직관을 믿는 일부 투자자들은 대박과 몰락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해볼 수도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일 말이 있다. 지금 유가와 원자재 가격의 흐름은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이것이 인플레이션의 전조로 전면에 부각하는 순간 우리 시장도 의외의 펀치를 맞고 그로기가 될 수 있다. 가파르게 오르면 그만큼 내릴 수도 있는 것이 시장이다. 한번 조정을 받으면 정말 수백 포인트는 한 방에 내릴 수도 있는데, 다들 여기에 너무 무심하다. 물론 필자 역시 비록 그렇다고 해도 카라스키야를 눕힌 홍수환처럼 다시 일어나리라는 믿음은 확고하다. 하지만 조만간 제대로 한 방 맞아 눈두덩이가 찢어지고 앞이 안 보이는 경험을 한 번쯤 하게 될 가능성이 결코 적어 보이지는 않는다. 다시 일어서서 이길 때 이기더라도 우선 맞으면 아프다. 그런 관점에서 이제부터는 내가 때리는 기술보다 잠시 상대의 주먹을 기술적으로 피하는 더킹(ducking)과 위빙(weaving)의 노하우를 슬슬 배워두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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