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 1962년 대한석유공사 설립 뒤 5개사 과점 체제로…문민정부 이후 유가 자유화되자 가격담합</font>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꼭 10년 전 한 재벌그룹의 사사(社史) 편찬 작업에 참여했던 어느 경제학자는 그룹 계열의 정유공장을 방문했을 때 재미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부품업체에서 1년 벌어 자동차 회사에 갖다 바치고, 자동차에서 1년 벌어 정유사에 갖다 바쳐야 한다”고 하는.
석유공사 민영화, 재벌 판도를 바꾼 사건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더 좋은 조건을 따라 자동차 회사에 취직하려면 인사 담당자에게 1년 수입을 뇌물로 제공해야 하고, 자동차 회사에서 정유사로 옮겨갈 때도 1년 동안 번 돈을 뇌물로 써야 한다는 뜻이었다. 독과점적 성향을 더 강하게 띠는 정유사가 먹이사슬 사다리에서 한 단계 높다는 실상의 반영이었다.
업체 수로만 봐선, 자동차 업계 쪽이 더 독과점 상태인 듯해도 업종의 특성상 수입품의 도전과 위협을 거의 받지 않는 정유 업계의 독과점적 특성이 짙은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2006년 기준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수입차의 시장점유율은 4.15%인 데 견줘, 석유 시장에서 수입 제품의 점유율은 0.8%에 지나지 않는다. 2002년만 해도 국내 석유수입 업체는 타이거오일을 비롯해 80개 안팎에 이르렀다가 지금은 페트로코리아와 이지석유 두 곳만 남아 있는 실정이다. 고유가 대책에 따라 원유 관세율이 떨어져 원유와 석유 제품 사이의 관세율 격차가 줄어든 데 따른 결과다.
휘발유값 폭등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정부와 정유업계 사이의 치열한 논쟁을 한마디로 가름하기는 쉽지 않지만, 국제유가 이상으로 치솟는 기름값 흐름의 근저에 국내 정유시장의 독과점 구조가 있다는 걸 부인할 사람은 많지 않다. 정유시장은 수천만 명의 소비자를 상대로 고작 5개 정유사가 장사하는, 철저한 ‘셀러스 마켓’(판매자 시장)이다. 정유사들이 짜고(담합해) 석유제품 가격을 경쟁 시장에서 형성될 수준보다 높게 유지하고 있다는 의심은 올해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에서 사실로 확인된 바 있다. 폭등한 기름값의 배경에는 높은 세금 문제도 있지만, 담합에 기초한 정유업계의 폭리가 끼어 있다는 얘기다.
국내 정유업계에 형성돼 있는 독과점 구조의 뿌리는 1964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내 첫 정유회사인 대한석유공사(현 SK(주))가 1962년에 설립된 데 이어 울산 정유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한 게 이때였다. 한국석유협회가 1995년에 펴낸 책자 에 따르면, 당시까지 한국에 대한 석유 공급은 해방 직후 미군정 주도로 설립된 대한석유저장회사(KOSCO)에 맡겨져 있었다. 스탠더드오일, 칼텍스, 쉘 등 미국의 3대 석유 메이저에 의해 구성된 KOSCO는 1964년 대한석유공사에 그 시설과 업무를 넘겨줄 때까지 한국 내 석유류의 인수와 저장, 판매 업무를 도맡았다.
대한석유공사에서 시작된 국내 정유업체의 잇단 설립은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 계획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었다. 대한석유공사의 설립 연도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출범 연도가 같은 데서 볼 수 있듯 정유공장 건설은 당시 정권의 경제 정책에서 핵심 과제로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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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석유공사는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소유구조 면에서 중대한 변화를 겪게 된다. 1970년대 초 시설 확장과 석유화학 산업으로 진출하기 위한 자금을 외국 회사(걸프)에서 끌어들임에 따라 1970년 8월 경영권을 넘겨줘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는 1980년대 들어 선경그룹(현 SK그룹)으로 넘어가게 되는 싹이었다. 석유공사의 경영권을 장악한 걸프는 1970년대에 터진 두 차례의 석유위기(오일쇼크)를 견디지 못하고 1980년 8월 보유 주식(50%)을 전부 한국 정부에 넘기고 철수했다. 이에 정부는 석유공사를 민영화하기로 결정하고, 그해 12월 선경그룹에 유공 주식 50%와 경영권을 넘겼다. 석유공사 민영화는 한국 재벌의 판도를 바꾼 일대 사건이었다. 그때까지 재계 순위 10위권 밖에 머물던 중견그룹 선경은 이를 계기로 단번에 5대 재벌로 뛰어올랐다.
담합, 정부가 부추긴 측면도
경제개발 바람을 타고 석유공사 설립에 이어 1960~70년대를 거치며 호남정유(현 GS칼텍스), 경인에너지(SK인천정유), 한·이석유(에쓰오일), 극동석유공업(현대오일뱅크)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설립됐다. 한·이석유의 설립이 가장 늦어 1976년이었는데, 이렇게 형성된 정유시장의 5개사 체제는 지금도 그대로다. 회사 이름이 수차례 바뀌고 대주주가 달라졌어도 재벌이란 큰 틀에서 봤을 땐 40년 안팎에 걸친 과점 체제의 현상 유지였다.
석유업계의 과점 구조는 지금까지 온존하고 있지만, 휘발유를 비롯한 석유류 제품의 가격결정 메커니즘은 1990년대 들어 급속하게 변했다. 1994년 도입된 유가연동제가 그 싹이었다. 그때까지 정부 규제로 꽁꽁 묶여 있던 석유류의 국내 판매 가격을 국제원유가와 환율변동에 연동시켜 다달이 조정하는 것이었다. 문민정부 출범 직후 이뤄진 사정에 비춰 규제 완화를 외친 ‘세계화’ 바람의 영향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유가연동제는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1월 폐지되기에 이른다. 유류 가격은 이때부터 시장에서 결정되는 완전 자유화 체제로 들어갔다.
유가가 10년 전부터 자유화됐어도 진정한 의미의 시장경쟁을 통해 결정되고 있다고 믿기는 힘들다. 정유사들 사이에 가격 차가 거의 없다는 점, 정유업체들이 해마다 막대한 과점 이득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에 비춰 담합으로 가격을 결정하고 있다는 의심을 늘 받아왔다.
정유업계의 담합은 어떤 면에서 정부가 부추긴 측면도 있었다. 유가 자유화를 시행한 지 이미 2년을 넘긴 1999년에 산업자원부를 출입하고 있었던 한 중견 기자의 경험담이다. “매달 말일이 되면, 정유업체 사람들이 나타나 노란색 봉투를 들고 층계에서 서성거리는 걸 볼 수 있었다. 다음달에 적용할 유류 제품 가격을 신고하기 위한 것이었다. 업무 마감 시각에 닥쳐 한 업체 사람이 해당 과에 봉투를 제출하면, 다른 업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얼마냐고 물어본 뒤 거의 같게 써내곤 했다.” 제도적으로는 자유화했지만, 정부 규제의 흔적이 그때까지 남아 있었음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치열한 경쟁을 피하려는 업계와, 유류 가격을 손쉽게 관리하려는 정부 사이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이기도 했다.
지금은 유류 가격을 관리하는 규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정부에서 한국석유공사를 통해 유류제품의 공장도가격과 소비자가격을 주간 단위로 모니터링(감시)만 할 뿐이다. 이로써 시장 기구에 의해 결정되는 진짜 자유화가 이뤄진 것일까?
SK(주),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등 국내 4개 정유사들이 올 2월 공정위로부터 총 526억원의 과징금 부과와 함께 검찰 고발을 당한 것은 2004년의 담합 행위에 따른 것이었다. 공정위 조사 결과를 보면, 이 4개 업체는 2004년 4월 상호 연락을 통해 긴밀한 공조 체제를 구축하고 대리점·주유소에 공급하는 휘발유·등유·경유의 판매 가격을 공동으로 인상해나가기로 합의했다. 이어 휘발유·등유·경유의 SK고시 공장도가격(드럼당, 1드럼=200ℓ)에서 각각 7천원, 1만원, 1만원을 할인한 금액을 2004년 4월1일 시장의 유종별 목표 가격으로 설정하는 담합을 저질렀다. 이에따라 가격 담합 기간(2004년 4월1일∼6월10일) 중 원유가 인상폭은 약 20원에 그친 반면 국내 정유사가 공급하는 휘발유는 약 40원, 등유는 70원, 경유는 60원가량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에너지 부문 함부로 민영화한 결과
이 4개 정유사의 2004년 영업이익이 4조2670억원으로, 전년(1조8350억원)보다 무려 132.5%나 늘어난 배경에는 이런 담합 행태가 깔려 있었다. 담합 기간의 이익은 고스란히 소비자들의 피해였음은 물론이다. 공정위는 담합 기간의 소비자 피해액을 2400억원(관련 매출 1조6천억원의 15%)으로 추정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들이 일반적으로 카르텔(담합)에 따른 피해액을 관련 매출의 15∼20%로 잡고 있는 데 따른 셈법이었다.
재벌 문제 전문가인 김진방 인하대 교수는 “우리나라에선 시장 지배적 카르텔 행위에 대해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고, 어떤 면에선 정부가 가격 안정을 명분으로, 실제로는 정치자금을 뽑아내기 위한 목적으로 협회를 통해 업체들을 관리하면서 담합을 유도해온 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정부의 힘이 줄어들고, 시장과 기업의 힘이 커지면서 담합의 결과는 이제 ‘가격 안정’이 아니라 ‘업계 이익’을 보장하는 수단으로 변질됐다”고 덧붙였다.
거대한 장치산업인 정유 업종의 경우 자연독점적 특성을 띠는 분야여서 시장경제 원리가 작동하기 어렵다. 거의 유일한 견제 장치가 공정위의 독과점 조사 정도인데, 여기서조차 실효성을 거두리라는 기대는 난망이다. 올 2월 내려진 공정위의 시정 조치와 과징금 부과가 소매 유류 가격 담합에 대한 사상 첫 조처였을 정도로 그동안 담합을 단죄하는 일은 없다시피 했다. 그나마 검찰 쪽으로 옮아간 단계에서 구멍이 숭숭 뚫린다. 지난번 공정위의 조처에 대해 검찰은 담합 행위에 관한 증거나 공소시효 문제 등을 이유로 1개 정유사와 일부 유종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담합에 참여한 당사자 중 일부가 자수하지 않는 한 담합 행위를 드러내기 어렵기 때문에 사법 처리 단계에서 다시 한 번 대거 걸러지는 사정을 감안할 때 공정위 조사의 한계는 명백하다.
김기원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는 “적절한 ‘사회적 통제’ 장치를 갖추지 못한 채 자본집약적 장치산업인 에너지 부문을 함부로 민영화한 결과 빚어진 폐해”라고 진단한다. 러시아나 베네수엘라 같은 나라에서 민영화했던 석유산업을 다시 국유·국영화하는 움직임도 이런 배경에서 비롯된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시장만능주의가 판을 치는 한국의 상황에서 민영화를 되물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새로운 규율을 만들어내는 것조차 거의 불가능한 일로 여겨진다. 또다시 밟아선 안될 전철(前轍)의 사례로나 거론될 뿐이다. 어쩌겠는가, 기름을 안 쓰고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font color="#C12D84">[665호 한겨레21 주요 기사]</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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