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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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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가의 선택, 전자냐 생명이냐

등록 2007-01-06 00:00 수정 2020-05-03 04:24

금산법 개정안 통과로 그룹이 둘로 쪼개지는 상황 맞이할 수도…이건희 가문은 양자택일을 할 것인가, 법을 격파해 버릴 것인가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삼성 때리기 법이다.’ ‘웃기는 소리! 삼성 봐주기 법이다.’

똑같은 사안을 둘러싼 양쪽의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리는 일이 그리 드물지 않은 세상이지만, 지난해 12월22일 국회를 통과한 ‘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금산법) 개정안에는 그것 말고도 좀 별난 데가 있다. 양극화한 평가에 ‘삼성’이란 두 글자가 나란히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공동체의 약속인 법은 그 울타리 속에 들어 있는 모든 주체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적용되는 것인데, 왜 유독 삼성에만 문제인 듯 비치는 것일까?

같은 법 위반, 다른 행태

개정 금산법에서 쟁점이 되는 부분의 내용은 이렇다. ‘금융회사가 취득한 동일 기업집단(재벌) 내 비금융계열사의 주식 가운데 5% 초과분에 대해 금산법 제정(1997년 3월) 이전 취득분은 2년 유예 후 의결권을 제한하고 그 이후 취득분은 즉각적인 의결권 제한과 함께 5년 내에 자발적으로 해소하도록 하되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금융감독위원장이 처분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한다.’ 쉽게 단순화하면, ‘금융회사는 원칙적으로 계열사 주식을 5% 이상 가질 수 없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금융회사에 맡겨진 돈이 다른 계열사들을 지배하는데 쓰임으로써 시장경제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을 막기 위한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금산 분리) 원칙에 바탕을 둔 규정이다. 이 정신은 옛 금산법에 이미 담겨 있었지만, 새 법에선 이행을 강제하는 장치가 마련됐다.

금산법과 충돌을 빚은 데가 사실 삼성그룹만은 아니었다. 다만, 법 위반 상태라는 사실이 드러난 뒤의 행태가 삼성과 달랐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금산법 위반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대표적인 곳은 동부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이다.

동부그룹 계열 동부화재는 2002년 7월 계열사(아남반도체) 주식을 8.1% 인수했다가 이듬해 7월 5% 초과분을 매각하라는 명령을 금감위로부터 받게 된다. 금산법 24조를 위반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회사는 기관 문책 경고를, 대표이사는 주의적 경고 조처를 아울러 받았다. 동부화재는 그 뒤 아남반도체(2006년 3월 ‘동부일렉트로닉스’로 이름 변경) 지분을 2.8%로 떨어뜨려 법 위반 상태를 해소했다. 당시 동부화재의 금산법 위반은 삼성카드의 삼성에버랜드 지분 초과 보유와 다를 게 없었다. 삼성카드는 에버랜드 지분을 25.6% 보유함으로써 원칙적으로 5% 이상 가질 수 없다는 법규를 위반하고 있다. 1998년 이후 8년여째 법 위반 상태다.

옛 안기부 불법도청 테이프, 이른바 ‘X파일’ 사태 직후 금산법 개정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진 지난해 8월 금감위에 이 문제를 문의해본 적이 있다. 당시 금감위 담당 국장은 “삼성과 동부 건은 다른 사안”이라고 했다. 동부생명은 당시 보험업법에 따라 제재할 수 있었던 반면, 삼성카드를 규제하는 여신전문금융업법(여전법)에는 제재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지 의문이지만, 그렇다 해도 또 다른 문제가 남는다. 바로 현대자동차 계열 현대캐피탈의 사례 때문이다.

삼성카드와 마찬가지로 여전법 적용을 받는 현대캐피탈은 기아자동차 지분을 5% 초과 보유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이 회사는 2004년 8월 기아차 지분 10.1% 가운데 5% 초과분을 매각하겠다는 계획서를 내야 했다. 금산법을 어겼다는 이유에서였으며, 금감위 통보에 따른 조처였음은 물론이다. 현대캐피탈은 당시 약속을 지켜 현재 기아차 지분을 3.9%까지 떨어뜨렸다. 이 부분에 대해 금감위에 문의를 해봤더니 답변은 이랬다. “초과분 해소 방안을 내라고 통보했는데, 현대캐피탈은 팔겠다고 처분 계획을 냈고, 삼성카드는 그런 것을 안 냈다”는 것이었다. ‘처분 계획을 내면 좋고, 안 내면 할 수 없다’는 것이니 법을 지킨 쪽만 바보가 된 셈이다.

금융계열사가 순환출자의 핵심 고리

똑같은 잘못을 저지른 뒤의 행태는 왜 이렇게 달랐던 것일까? 현대차와 동부는 말 잘 듣는 ‘착한 자본’이고, 삼성은 말 안 듣는 ‘나쁜 자본’이어서일까?

재벌 문제에 천착하고 있는 김진방 인하대 교수(경제학)는 금산법 대응에서 나타나는 그룹별 차이를 소유·지배 구조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한다. 현대차, 동부, 삼성 모두 계열사들끼리 뱅뱅 돌리는 순환출자 구조를 갖고 있지만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는 설명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순환출자 구조를 보면, 현대자동차가 기아자동차를, 기아자동차가 현대모비스를, 현대모비스가 다시 현대자동차를 지배하는 모양새다. 현대캐피탈의 기아차 지분은 큰 변수가 되지 않는다.

동부그룹의 경우 ‘동부제강 → 동부생명 → 동부건설 → 동부제강’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에서 금융계열사가 핵심으로 끼어 있다는 점에서 삼성과 같지만 총수 일가의 그룹 내부 지분율에서 삼성과 큰 차이를 보인다. 그룹 덩치가 비교적 작은 동부의 경우 김준기 회장 가문이 계열사들의 발행 주식을 20% 가까이 확보하고 있다. 금융 계열사를 순환출자 고리에서 떼어내더라도 총수 일가가 그룹을 지배하는 데 큰 무리가 없다. 반면 삼성의 경우 이건희 회장 일가의 내부 지분율이 5%를 밑도는 수준이다. ‘에버랜드 → 삼성생명 → 삼성전자 → 삼성카드 → 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에서 삼성생명과 삼성카드를 떼낼 경우 총수 일가 중심의 그룹 권력구조(소유·지배 체제)에 금이 갈 수밖에 없다. 삼성이 금산법으로 대표되는 금산 분리 원칙을 무너뜨리기 위해 집요하게 매달려온 것은 바로 이런 사정으로 풀이할 수 있다.

개정 금산법을 준수한다는 전제 아래 삼성 쪽은 두 가지 제약을 받게 된다.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지분 가운데 5% 초과분인 20.64%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받고 5년 안에 이를 매각해야 한다. 또 하나는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7.26% 가운데 5% 초과분인 2.26%는 2년 뒤인 2009년부터 공정거래법(11조)에 따라 의결권을 제한받게 된다.

개정 금산법에 따른 이런 제약은 삼성그룹의 권력 구조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지분 매각 조처는 겉보기에 강경해 보여도 삼성의 권력 구조에는 변수가 되기 어렵다. 삼성카드 지분을 몽땅 털어내더라도 이건희 회장(3.72%),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25.6%)를 비롯한 특수관계인 지분이 60%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다만, 이 경우 문제가 되는 건 삼성카드 지분을 누구에게 얼마에 파느냐는 게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삼성카드는 에버랜드 주식을 1주당 10만원에 사들인 반면, 이재용씨 남매는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7700원에 매입했다. 삼성카드가 매입 당시의 가격대로 제값을 받고 에버랜드 주식을 팔 경우 이건희 회장에서 이재용 상무로 이어지는 상속 과정의 법적·도덕적 정당성이 다시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다.

에버랜드가 금융지주회사가 되면…

삼성 쪽에서 볼 때 초미의 관심사는 이것보다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의결권 제한 조처일 것으로 여겨진다. 2년의 유예기간을 확보했고 지분을 매각하지는 않아도 된다지만, 생명의 전자 지분은 삼성 권력구조에서 핵심 중의 핵심이다. 김진방 교수는 “삼성물산을 비롯한 계열사들을 통해 삼성전자 주식을 더 매입하는 식으로 대응할 것”으로 관측한다. 이를 통해 삼성생명을 고리로 삼는 현재 구조에서 ‘삼성전자 → 삼성SDI → 삼성물산 → 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로 차츰 바꾸어갈 것이란 분석이다. 김 교수는 삼성물산의 유통사업부 매각 결정을 이런 맥락으로 해석했다. 그룹 내부 지분율을 높이기 위한 ‘실탄 확보용’이라는 것이다.

이렇게만 보면, 금산법 개정에 따른 삼성의 권력구조에는 별 변화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삼성전자에 대한 삼성생명의 지배력이 감소할 뿐(그것도 2년 뒤에나) 총수 가문을 중심으로 하는 지배력은 사실상 그대로 유지된다. 그런데 변수가 하나 있다. 에버랜드가 공정거래법상 금융지주회사가 되는 것을 피하기 어려운 처지에 맞닥뜨릴 수 있다는 점이다. 에버랜드가 금융지주회사가 되면, 에버랜드 스스로 또는 삼성생명(자회사)을 통해서도 삼성전자 주식을 1주도 소유할 수 없게 된다. 삼성그룹이 생명을 중심으로 하는 금융자본 그룹과 전자를 중심으로 하는 산업자본 그룹으로 쪼개지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건희 회장 일가 쪽에서 볼 때는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지배해야 하는 기로에 서는 셈이다. 에버랜드는 회계 기준을 바꾸고(지분법 → 원가법) 부채를 늘리는 방식으로 삼성생명을 비롯한 금융 자회사의 주식 평가액을 총자산의 50% 아래로 떨어뜨려 금융지주회사가 되는 길을 요리조리 피해왔지만, 삼성생명이 상장되는 순간 편법을 쓰기 어렵게 된다. 상장 회사의 주식은 시가대로 평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총수 가문이 삼성전자냐, 삼성생명이냐는 선택의 기로에 몰릴 경우 당연히 전자 쪽으로 기울 것이란 일반적인 관측과는 달리 생명 쪽을 택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특수관계인의 삼성전자 지분은 16.09% 수준으로 삼성생명 몫(7.26%)을 떼내면 10%를 밑돈다. 금산 분리 원칙에 따를 경우 총수 일가 쪽에서 안정적인 지분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다. 총수 일가의 삼성생명 지분을 몽땅 정리해 삼성전자에 넣는다 해도 시가총액 120조원에 육박하는 삼성전자를 안정적으로 지배하기는 힘들다. 삼성생명의 시가총액은 6조(1주당 30만원으로 봤을 때)~14조원(주당 70만원) 수준인데다 이건희 회장(4.54%)을 비롯한 특수관계인의 지분이 30.94%에 이른다. 금융 쪽을 선택할 경우 여유자금으로 은행까지 사들여 명실상부한 한국 최고의 금융그룹으로 거듭날 수 있다. 반도체 사업에 견줘 면허업인 금융업의 리스크(위험)가 상대적으로 작다는 점도 삼성생명 쪽으로 무게추를 기울게 하는 대목이다.

삼성제국의 완성을 강행할 것인가

물론, 이는 당장 닥칠 일은 아니며 또한 삼성 쪽에서 금산분리 원칙에 따른 현행 법규를 준수한다는 전제 아래 가능한 시나리오다. 삼성은 현행 법이란 ‘울타리’에 순응하지 않고 울타리 자체를 깨는 쪽으로 선택을 할 수도 있다.개정 금산법이 국회 논의 과정에서 상당히 후퇴했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여론몰이를 통한 금산 분리 원칙의 격파 시도는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삼성생명 상장 과정에서 생기는 차익으로 전자 지분을 매입할 수도 있지만, 금산 분리 원칙을 깨는 게 더 싸게 먹힌다”(전성인 홍익대 교수). 출자총액제한제가 사실상 폐지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는 분위기는 삼성 쪽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금융지주회사가 되면 출자총액제한제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현행 법규를 감안할 때 금융지주회사 관련 규정을 완화하라는 압박은 명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금산 분리로 삼성전자가 외국 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협권에 놓인다는, 근거는 약해도 정서적 호소력은 강한 ‘자본의 국적론’ 또한 삼성의 든든한 우군이다. 지키기 불편한 법은 격파한다는 시나리오가 현실화한다면, ‘삼성공화국 논란’은 새로운 용어로 갈음돼야 할 것이다. ‘삼성제국의 완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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