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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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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샤, 거품 빼고 날개 달다

등록 2004-12-03 00:00 수정 2020-05-03 04:23

유통비용 줄인 초저가 화장품으로 폭발적 성장…가격 외에 브랜드만의 ‘플러스알파’ 만들어야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지난 2000년에 첫선을 보인 ‘미샤’(MISSHA) 브랜드의 (주)에이블씨엔씨가 국내 화장품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3천~9천원의 초저가 전략을 내세운 에이블씨엔씨의 매출 규모는 2002년 33억원에서 2003년 130억원으로 늘어난 데 이어 올해는 상반기에만 500억원을 웃돌았다. 지난 4월부터 다달이 100억원, 10월부터는 120억원을 넘어서고 있는 추세로 보아 올 한해 1100억원에 이를 것으로 회사쪽은 추정하고 있다. 지난해에 견준 성장률이 무려 10배에 이르는 엄청난 고속성장이다.

화장품은 생활필수품

덩치만 커지는 게 아니다. 매출 신장세에 따라 이익도 쑥쑥 늘어나고 있다. 2002년 1억원 정도에 지나지 않았던 순이익 규모가 지난해 22억원으로 늘어난 데 이어 올해는 190억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 미샤 화장품은 2004년 마케팅 대상(산업자원부 선정), 올해의 브랜드 대상(소비자 포럼)을 받았고, 대학생 선호도 1위(대학신문 조사)를 차지하는 등 일반의 인지도를 크게 높여가고 있다. 미샤 등장 뒤 더페이스샵, 캔디샵, 도도클럽 등 초저가 화장품 브랜드가 잇따라 등장해 화장품 시장에 새로운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미샤 돌풍의 중심인 서영필(42) 사장은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졸업 뒤 1990년부터 생활용품회사인 피죤의 연구소에서 4년 동안 화장품 연구·개발 업무를 맡으면서 화장품과 인연을 맺었다. 1996년 (주)엘트리라는 회장품 제조·유통회사를 차려 독립한 서 사장은 당시로선 새로운 형태인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다. 미샤의 성공은 여기에서 비롯된 바 컸다.

서 사장은 과의 인터뷰에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쌍방향 ‘소통’을 하면서 고객들의 욕구를 남보다 빨리 정확히 파악한 게 주효했다”고 말했다. “회사 인터넷팀을 통해 파악한 바, 고객들의 요구사항은 ‘좋은 제품을 싸게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용기나 포장지 같은 부소재가 아니라 내용물이 중요하다는 것이었지요. 그게 1999년쯤이었습니다.” 여성들에게 화장품은 이미지상품 또는 사치품이 아니라 ‘생활필수품’이라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게 된 게 이즈음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에이블씨엔씨의 전략은 화장품의 거품을 쏙 빼고 값을 낮추는 것이다. 600여종에 이르는 미샤 화장품의 가격은 3300~9000원으로, 널리 알려진 유명 화장품 업체들에서 파는 비슷한 제품에 견줘 10분의 1에 지나지 않는 수준이다. 값이 싼 만큼 ‘싸구려’ 아니냐는 의심이 들 법한데, 회사쪽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설명한다.

“상장돼 있는 화장품 회사들의 공개된 자료를 보면, 매출액 대비 주원료의 비중은 3~8% 수준입니다. 더욱이 이는 출고가에 비교한 것이고, 소비자값에 견주면 그 비중은 더 내려가 1.5~4%로 떨어집니다. 통상 2만원짜리 화장품의 원가(재료비)는 300~800원에 불과한 셈입니다. 이렇게 원가는 낮은데도 소비자 손에 전달되기까지 도매상과 소매상을 거치면서 수수료가 붙기 때문에 비싸지는 것이지요.”(김보동 에이블씨엔씨 이사)

코스탁 등록도 준비

김 이사는 “에이블씨엔씨는 온라인 판매 등을 통해 유통 단계를 줄였을 뿐 아니라 용기와 포장지를 비롯한 부소재에서도 거품을 뺐기 때문에 질적으로 같은 수준의 제품이라도 기존 업체들보다 훨씬 싼 값에 공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용기를 유리에서 플라스틱으로만 바꿔도 원가가 적게는 몇백원, 많게는 1천원 이상 차이가 납니다. 플라스틱병은 200~300원인 반면, 유리병은 1천~2천원씩 하거든요. 여기에 종이상자 값이 400~1000원씩 합니다. 플라스틱 병을 쓰고 종이 케이스를 없애면 제조원가를 1천~2천원씩 낮출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 차이가 소비자값 단계에 이르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5천~2만원 수준으로 벌어지게 됩니다.” 화장품 값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에서 에이블씨엔씨의 성공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서 사장이 화장품 원가와 소비자값의 괴리에 대해 깊이 인식한 것은 피죤의 연구소에서 화장품 개발 업무에 참여한 때부터였다. 당시 한병당 7천~1만원씩 하는 스킨로션의 용량은 100~150㎖였고, 연구진의 최대 과제는 1㎖당 원가를 1원 수준으로 맞추는 것이었다. 결국 1병당 원가는 100~150원이었던 셈이다. 연구실에서는 1~10원을 놓고 벌벌 떠는데, 판매가는 1만원에 이르는 것을 알았을 때의 허탈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에 뛰어든 서 사장의 앞날이 탄탄대로였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가 처음에 손을 댄 사업은 방향제 제조·유통업이었다. 피죤에 근무할 당시 알고 지내던 외국 업체에서 원료를 받아다가 방향제를 제조해 ‘향기 나는 도자기’를 만드는 것으로, 판매는 화장품 회사들의 유통 채널을 이용했다. 당시엔 썩 괜찮은 기발한 아이템으로 생각했는데, 결과는 쓰라린 실패로 돌아가 1년 남짓 만에 접어야 했다. 첫 사업의 실패는 서 사장에게 “사업에서는 기발한 것도 좋지만, 어떻게 팔 것인지부터 생각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방향제 사업을 접고 화장품 제조·유통업에 뛰어들 때 온라인 판매에 역점을 두는 등 마케팅을 중시하게 된 것도 여기서 비롯됐다.

서 사장의 에이블씨엔씨는 국내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것을 발판으로 삼아 이제 해외로도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 9월1일 오스트레일리아, 10월6일 싱가포르에 매장을 개설한 데 이어 12월 중 홍콩·대만·몽골에도 잇따라 매장을 열 계획이다. 또 내년에는 미국·일본·중국에도 진출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에이블씨엔씨는 코스닥 등록도 준비 중이다. 지난 10월 말 코스닥위원회에 예비심사 청구서를 제출한 상태이며, 예정대로 심사를 통과할 경우 내년 초부터 시장에서 주식 거래가 이뤄질 것으로 회사는 전망하고 있다. 회사의 실제 내용이 공개된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검증을 받는 새로운 단계에 접어드는 것이다.

경기 불황에 힘입어

국내 화장품 시장 규모는 연간 7조원, 이 가운데 1만원 안쪽의 저가 화장품 시장은 연간 2천억원 안팎에 이르는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올해 매출이 1천억원을 웃돌 것으로 보이는 미샤가 저가 화장품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미샤의 앞날이 탄탄대로일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일러 보인다. 초저가 화장품의 돌풍은 브랜드 자체의 경쟁력보다는 경기 불황에 힘입은 바 크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일정한 한계를 띠고 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대한화장품협회 관계자는 “미샤의 성장세는 경이적인 사건”이라면서도 “소비자들의 경제적인 여건이 좋지 않다 보니, 초저가 제품을 선호한 데 따른 것이란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일본에서도 10년 전 100엔 안팎의 화장품이 상당한 인기를 끌다가 경기 활성화 이후 시들해졌다”고 말했다. 용기를 비롯한 부소재와 유통 과정을 줄임으로써 값을 낮추는 것에 더해 미샤 브랜드만의 ‘플러스 알파’를 만들어내지 않고는 폭발적 성장세를 이어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갓 등장한 더페이스샵이 올해 500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되는 것에서 엿볼 수 있듯 선도주자의 이점은 차츰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화장품의 거품을 뺐다는 모토로 성공을 거둔 에이블씨엔씨가 보아나 원빈 같은 톱클래스 광고모델을 기용한 아이러니에 대한 의구심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서 사장은 “후발 업체들이 잇따라 나오는 경쟁 환경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광고에 따른 소비자값 인상은 없었다”는 나름의 답변을 준비해두고 있지만, 톱모델의 광고비만큼 비용은 인상되게 마련이라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지금까지 비교적 성공을 거둔 서 사장이 또 한번의 도전을 맞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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