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러시아를 잡아라

등록 2004-09-24 00:00 수정 2020-05-03 04:23

[지구촌경제]

엄청난 에너지가 묻힌 땅, 우리로서는 협력이 절실하다

▣ 왕윤종/ SK 경영경제연구소 경제연구실장

러시아는 높은 과학기술 수준과 고급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석유·가스 부문에 편중된 산업구조, 금융부문의 낙후성, 복잡한 행정규제, 열악한 인프라 등으로 국제 경쟁력을 갖춘 산업이 별로 없다. 하지만 에너지와 자원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면서 러시아가 지닌 잠재력에 세계는 주목하고 있다. 세계적 투자회사인 골드만삭스는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1위, 석유 매장량 세계 3위인 러시아가 2030년경에는 세계 5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최근 자원민족주의 경향

최근 고유가 행진이 계속되자 러시아 경제는 최대의 호황을 맞이하고 있다. 1998년 국가 부도 사태까지 경험한 러시아가 1999년 이후 4년 연속 연평균 6.7%의 고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고유가의 반사적 혜택으로 수출이 대폭 확대되면서 가계 소득이 증가하고 국내 투자와 소비가 증가하는 선순환 구조가 확산되고 있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건설 붐이 지속되고 있다. 러시아 주식시장의 70%를 차지하는 에너지 관련주들이 증시 호황을 주도하고 있다. 2003년 10월 유코스 사태의 여파로 주가가 한때 큰 폭으로 떨어지기도 했지만 다시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경제적 성과에 힘입어 올 3월에 실시한 제4대 대통령 선거에서 재집권에 성공한 푸틴 정부는 더욱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앞으로 10년 이내에 국민소득을 두배로 늘린다는 목표를 밝힌 푸틴 정부는 러시아의 성장 원동력으로 시베리아·극동 지역의 개발을 중요한 사업으로 설정하고 있다. 자원의 보고임에도 그동안 미개발 지역으로 무시돼온 이 지역이 장기적으로는 러시아의 새로운 경제성장의 원천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자원개발을 위해 외국자본과 손잡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최근 자원민족주의 경향이 대두되면서 러시아 정부가 외국과 맺은 에너지 자원 개발 계획이 변경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올 초 러시아 정부는 과거 옐친 정부하에서 엑슨모빌이 수주한 ‘사할린III 프로젝트’ 개발권을 취소했으며, 이르쿠츠크 가스전의 광권 면허를 무효화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현재 동북아 지역의 한국, 중국, 일본은 모두 중동산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70~80%에 달하고 있다. 지리적 요인을 감안할 때 러시아가 동북아 3국에 새로운 에너지 공급원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러시아의 에너지 자원에 가장 관심을 보이는 국가는 일본이다. 일본은 동시베리아 앙가르스크 유전의 극동 송유관 설치계획에 7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으며, 사할린의 천연가스에 대한 장기 도입 계약을 체결하기로 했다. 세계의 공장 중국도 이에 뒤질세라 러시아와 에너지 외교를 강화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방러에 이어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는 프라드코프 러시아 총리와 회담을 하고 중·러 가스·원유에 대한 협력협정을 체결하고 현재 일본과 경합 중인 극동 송유관의 중국 노선 결정을 적극 촉구할 것으로 보인다. 동북아 3국의 러브콜을 예상한 러시아는 지난해 5월에 채택한 ‘2020 에너지 전략’에서 “동시베리아와 극동 지역 가스·원유 자원을 동북아 국가들과의 지정학적·전략적 관계 설정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동북아 3국의 에너지 공급원

기존 대형 유전이 고갈되면서 석유자원에 대한 민족주의가 강화되고 있다. 이에 중국, 미국 등 대형 에너지 소비국들을 중심으로 유전 확보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자주개발 원유 비중이 3%에 불과하다. 지금이야말로 석유 개발 사업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정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금번 노무현 대통령의 방러가 에너지 외교의 성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