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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와 기름의 미래

등록 2004-08-27 00:00 수정 2020-05-03 04:23

[지구촌경제]

베네수엘라 불확실성이 제거됐지만 석유 수요는 꾸준히 증가세

▣ 왕윤종/ SK 경영경제연구소 경제연구실장

8월15일에 실시된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대통령에 대한 국민소환투표는 그 결과에 따라 국제유가가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점에서 국제적으로 초미의 관심사항이 되었다. 차베스 대통령은 소환투표에 앞서 자신이 패배할 경우 유가가 100달러까지 치솟을 것이라고 소환투표를 국제유가와 연계시키는 주장을 펴기도 하였다. 어쨌든 차베스의 승리로 석유시장의 큰 불안요인 중 하나가 제거됐다고 할 수 있다. 베네수엘라 석유노조를 비롯해 반차베스 세력들이 부정투표의 의혹을 제기하고 있지만, 일단 국제 여론은 국제선거감시단을 이끌었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부정투표 의혹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발견되지 못했다”는 발표에 무게를 싣고 있다. 미국도 차베스 정권과의 관계 개선을 희망하면서 이번 소환투표는 투명하고 유권자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최악의 경제 침체는 벗어나

소환투표가 있기 전까지 1주일 동안 차베스의 패배가 세계 3대 석유수출국인 베네수엘라의 석유공급 차질을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과 맞물려 유가는 20년 만의 최고치를 날마다 경신했다. 16일 투표결과 발표 직전 뉴욕 상품거래소의 서부텍사스중질유(WTI)의 9월 선물가격이 배럴당 46.91달러로 치솟았으나 차베스의 승리 결과가 발표되면서 장중 한때 44.11달러까지 하락했다. 그러나 차베스의 소환투표 승리가 국제유가의 상승 가도를 저지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일 국제유가는 다시 상승하기 시작하여 WTI 9월 선물가격이 배럴당 48달러를 돌파했다. 이라크 남부 나자프에서 미군과 시아파 저항세력의 충돌 격화에 대한 우려로 이라크 석유 공급에 대한 불확실성이 고조됐기 때문이다. 국제유가 50달러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전망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1999년에 집권한 차베스 대통령은 현재 집권 6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급진적인 경제개혁을 추진하면서 미국식 신자유주의에 강도 높은 비판을 주저하지 않는 차베스 대통령의 지지 세력은 빈곤층이다. 2002년 4월 재계와 일부 군부가 주도한 쿠데타로 축출된 차베스는 3일 만에 권좌에 복귀했다. 그러나 석유 부문 의존도가 국내총생산(GDP)의 30%에 달하는 베네수엘라 경제는 반차베스 성향의 노조가 2002년 12월부터 2003년 2월 초까지 60일간 총파업을 감행함에 따라 석유 생산이 중지되면서 극심한 경제침체를 경험했다. 2003년 경제성장률이 -9.2%, 물가상승률이 20%대에 달했고, 실업률이 19.8%를 기록했다. 이후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지출 확대로 고용 상황이 다소 호전되면서 베네수엘라 경제는 최악의 상황은 벗어나고 있다. 또 국제유가가 강세를 보이면서 올해 들어 경기가 다소 회복되고 있다.

OPEC 고유가 정책에 차베스 입김 작용

OPEC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베네수엘라는 미국 및 서방측의 OPEC에 대한 증산 압력을 거부하고 있다. 즉 차베스 대통령은 고유가의 책임이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미국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원유 증산을 통한 유가하락을 반대하고 있다. 또한 OPEC의 강경파를 주도하는 베네수엘라는 현재 배럴당 22~28달러로 설정되어 있는 목표가격대를 현실화하는데 가장 적극적인 입장을 개진하고 있다. 차베스 자신이 소환투표에서 패배할 경우 유가가 급등할 것이라고 국제사회에 위협을 하였지만, 실제로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고유가 정책에 차베스 대통령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이번 소환투표를 부추긴 장본인으로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을 지목하면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는 차베스가 소환투표에 승리함으로써 당분간 미국과의 껄끄러운 관계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차베스의 소환투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제거됐지만 세계경제의 성장세가 지속되는 한 석유 수요는 꾸준히 증가세를 보일 것이고, OPEC의 예비적 생산능력이 한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국제유가의 상승세를 멈추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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