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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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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조승희를 외톨이로 두었는가

등록 2007-05-04 00:00 수정 2020-05-03 04:24

버지니아공대 사건 범인의 심리 분석…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는 미국 개인주의 문화 영향도 커

▣ 신의진 연세의대 교수·정신과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은 세계를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범인이 한국계 미국인이라 우리 사회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아직 미국에서 수사가 진행되고 있어 자세한 범행 동기나 주변 정황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섣부른 추측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언론에 보낸 비디오, 숙제로 낸 희곡, 전반적 범행 양상 등을 종합해보면 한 개인의 정신병리가 만들어낸 우발적 사건으로 보기에는 납득하기 어렵다. 과연 무엇이 조승희에게 방아쇠를 당기게 했을까? 이번 사건이 사회에 어떠한 경종을 울리는 것일까? 이런 측면에서 조승희 사건은 크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징을 지닌다.

첫째, 그가 남긴 글이나 평소의 언행, 주변의 평가를 종합해보면 한마디로 그는 외톨이로 살아왔다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주변 사람들과 교류하지 않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일방적으로 살아온 것 같다. 이런 외톨이의 삶은 혼자서 조용히 지내므로 큰 문제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주변에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공격적이고 성적인 본능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주변 사람들과의 교류와 훈육에 의해 순화돼 사회에 적응하게 된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과 활발한 교류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혼자만의 공격적·파괴적인 공상을 순화시키고 교정할 기회가 없어 위험한 공상을 스스로 정당화시켜 우발적 사고를 저지를 수 있다.

파괴적 공상을 순화할 기회가 없었다

아직 왜 조승희가 이렇게 외톨이로 살아왔는지 원인은 분명하지 않으나 일반적으로 다양한 정신적 어려움이나 병적인 주변 환경으로 인해 마음의 문을 닫은 채 성장하는 어린이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조승희의 경우 미국 이민 뒤 힘겹게 이국 땅에 적응하느라 가족 간의 친숙한 정서적 교류가 부족했을 가능성, 그리고 다양한 문화와 인종이 섞여 있는 미국에서 가족 이외의 친구나 주변 사람들과 마음을 터놓고 친밀한 교류를 하기 어려웠을 가능성이 짙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미국 사회에서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외톨이로 지내는 개인을 크게 문제 삼지 않는 점 역시 이번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뿐 아니라 요즘 우리 사회에서도 바쁜 부모 밑에서 자라며 장시간 인터넷이나 TV 앞에서 혼자 지내는 외톨이가 늘어나고 있어 심히 우려된다.

둘째, 조승희의 폭력 성향은 미국 사회의 각종 폭력문화를 그대로 모방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가 쓴 글에서 사용된 단어나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설정은 영화나 각종 폭력 사건에서 흔히 접하던 소재였다. 또한 언론사에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비디오를 보낸 것도 9·11 사건 이후 테러집단이 보인 행태와 참으로 유사하다. 어쩌면 조승희가 비록 외톨이로 지내며 혼자 공격적 환상을 품고 살아왔다 하더라도 폭력문화가 덜한 사회에서 자랐다면 총기난사 사건까지는 일으키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모든 걸 책임지기에는 미성숙한 나이

이처럼 한 사회에서 자라는 어린이, 청소년들은 그 문화의 온갖 측면을 배우면서 몸소 실천하게 된다는 점에서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도 폭력적인 컴퓨터 게임에 거의 중독이 된 채 지내는 초등학생, 인터넷을 통해 포르노를 무차별적으로 보게 되는 청소년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결국 성범죄가 증가하고 학교 폭력이 심각해지고 있으나 뾰족한 대책이 없는 원인은 바로 우리 문화 도처에 문제의 씨앗이 자라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미국 사회에서도 오랜 기간 폭력적 문화를 추방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으나 아직 큰 효력이 없는 듯하다. 오히려 중동 전쟁을 치르면서 더 많은 폭력을 양산하고 있으니 이를 모방한 끔찍한 범죄가 발생하는 것이다.

셋째, 대학에서 조승희의 폭력적인 글과 여학생 스토킹 사건으로 인해 경찰 조사를 의뢰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게 하는 등의 조처가 취해진 것 같은데 누구 하나 책임지고 단호하게 도움을 준 것 같지 않다. 더구나 부모에게 이런 문제로 연락해서 도움을 요청했는지조차 불확실하다. 대학생이면 성인이기는 하지만 아직 인생의 모든 문제를 스스로 책임지기에는 미성숙한 나이다. 따라서 비록 18살 이상의 나이로 성인 대접을 하고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나 사안에 따라서는 이를 다소 침해하더라도 가족이나 주위에서 좀더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융통성을 남겨두는 것이 필요하다. 필자 역시 소속 대학 학생들의 정신적 문제를 상담하면서 심각한 경우 부모를 비롯한 가족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효율적임을 경험하고 있다. 개인의 권리보장을 중요시하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미국 문화가 가족의 적극적 개입을 오히려 저해하는 걸림돌이 되지는 않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개인의 총기소지 역시 큰 논란이 되고 있다.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스스로 지키는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위험한 총기를 개인이 소장할 수 있게 사회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제도는 치안 시스템이 부재한 서부시대에는 필요했을지 모르나 과연 지금도 필요한지 냉정하게 실익을 따져봐야 할 것이다.

이처럼 개인의 권리와 프라이버시를 보장하는 측면과 공익을 위해 이를 어느 정도 제약하는 측면은 분명 어떤 사회에서도 필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 둘 사이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며 어느 한쪽으로 많이 기울었을 때 혼란스러운 사회가 되거나 독재적인 사회가 되어 문제가 발생한다. 미국 사회는 개인주의적 특성을 너무 많이 수용한 나머지 위험한 사건들이 조기에 예방되지 못하고 큰 문제로 쉽게 번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프라이버시와 공익의 조화

한국 이민자가 연루됐기에 우리 사회도 뜨거운 관심을 가졌던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은 정신병이 심한 개인이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죄라고 보기에는 그가 속한 사회의 사회문화적 특성이 너무나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생각된다. 친밀한 감정 교류가 없는 외톨이 아이를 그대로 방치한 가족과 학교, 매일 접하게 되는 폭력문화, 그리고 개인의 권리보장이 공익보다 너무나 우선시되는 사회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 한 이와 유사한 사고가 반복될 가능성은 항상 잠재하고 있다. 최근 이와 유사한 문화적 특성이 점점 증가하는 우리 사회에도 경종을 울리는 충격적인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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