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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제보자를 경배하라

등록 2007-01-06 00:00 수정 2020-05-03 04:24

‘브릭’의 제안으로 확산된 ‘황우석 사태 제보자’ 돕기 모금운동…‘과학 기만 행위’를 바로잡는 유일한 사람들을 왕따시킬 것인가

▣ 김동광 과학저술가·고려대 강사 kwahak@korea.ac.kr

황우석 사태가 본격적으로 사회적 이슈가 된 지 만 1년을 조금 넘긴 지난해 12월 초에 황우석팀의 논문 조작을 폭로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던 젊은 생명공학자들의 모임 ‘브릭’(생물학연구정보센터)에서 의미 있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황우석 사태가 표면에 드러날 수 있었던 원천적인 정보 제공을 담당한 제보자를 돕기 위한 모금운동이 벌어진 것이다. 모금운동을 촉발한 단초는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을 밝히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한 ‘anonymous’의 글이 브릭 게시판에 올라온 지 꼭 1년이 되는 날(12월4일)에 한 회원이 쓴 “우리 과학자는 무엇을 했나?”였다.

강제로 직장에서 쫓겨난 K씨

당시 올라온 글은 황우석 사태가 사회에서 서서히 잊혀지고 있는 상황에서 K와 B라는 이니셜로 불리는 제보자 부부가 처해 있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이들 제보자의 고난을 계기로 국가 차원에서 제보자 보호 및 보상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글이 올라오자 젊은 과학자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모금운동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한 회원은 댓글을 통해 이렇게 동참을 권유했다. “젊은 과학자들이 다시 한 번 제보자를 위해 일어나신 것은 매우 고무적입니다. 이들 외에도 수많은 제보자들이 조직에 대해 배신했다는 이유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들이야말로 아직 한국에 희망이 있다는 증거이고, 그들에 대한 책임이야말로 과학계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에서 져야 할 몫입니다. 다 같이 동참합시다.”

모금운동은 예상보다 훨씬 높은 호응을 받았고 12월6일부터 12일까지 모두 179명이 참여해 900여만원을 모았다. 모금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과학자뿐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가세했다. 모금을 12일에 마감한 이유는 모금액이 1천만원을 넘을 경우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모금운동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기부금을 모집할 때 행정자치부 장관과 시도지사의 허가를 받도록 규제하던 허가제를 지난해 9월25일 등록제로 간소화하면서 법률 명칭도 ‘기부금품 모집 규제법’에서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로 바꾸고, 모금액 1천만원 이하에 대해선 등록 의무를 면제했기 때문이다. 이 조처는 시민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의 기부금품 모집을 쉽게 함으로써 기부 문화를 촉진하려는 의도에서 나왔다. 그것이 황우석 사태 제보자에 대한 모금운동을 가능하게 한 셈이다.

놀랍게도 모금운동은 브릭을 넘어 사회단체들의 릴레이 모금운동으로 전환되었다. 1천만원이란 제약은 오히려 시민사회의 폭넓은 참여를 이끌어내는 계기로 전환되는 훌륭한 방안이었다. 브릭이 릴레이 모금운동을 제안하자 즉시 과학기술 민주화를 지향하는 시민단체인 ‘시민과학센터’와 네이버 <pd> 팬카페 ‘사랑해요 PD수첩’이 화답을 했다. 현재 ‘사랑해요 PD수첩’은 모금을 마감했고, 시민과학센터에서는 계속 진행하고 있다. 모금된 돈은 ‘아름다운 제보자 상’ 등의 이름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는 제보자 부부에게 직접 전달될 예정이다.
도대체 제보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무엇보다 제보자들이 직장에서 쫓겨나는 데 SBS와 등 주류 언론과 과학기술부, 국가정보원 등이 큰 몫을 했다. 제보자 K가 작성한 경위서에 따르면 2005년 11월 말부터 SBS와 의 기자는 ‘제보자를 인터뷰해야 한다’면서 제보자가 근무하던 병원의 원장과 홍보부장에게 압력을 가했다. 결국 병원 쪽은 제보자에게 “사표를 제출하지 않으면 파면을 하니, 와서 직접 사표를 작성하라”는 통보를 했다. 병원 쪽은 국정원이 K가 제보자임을 확인해주었고, 과기부가 압력을 가했음을 분명히 밝혔다. 얼마 전 과기부는 ‘제보자 파면 과정에 어떤 압력도 행사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거짓임이 드러난 셈이다. 결국 제보자는 황우석 사태를 부추기고 조작을 은폐하려 했던 장본인들에 의해 제보한 지 6개월 만에 거리로 내몰린 것이다.

아직도 내부 제보를 반역으로 보는가

이들 제보자가 아니었다면 황우석 사태가 결코 밝혀질 수 없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내부 고발, 공익 제보 등 여러 명칭으로 불리는 ‘내부 제보’(whistle blowing)는 갈수록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매우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한다. 특히 일반인으로서는 그 내용을 알 길이 없는 과학 분야에서 내부 제보는 논문 조작이나 표절 등 이른바 ‘과학 기만 행위’(scientific fraud)를 밝혀내는 데 거의 유일한 통로 구실을 한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들 내부 제보자들이 받는 대접은 ‘왕따와 무관심’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대응은 내부 제보를 가로막는 가장 근본적인 구조적 요인에 해당한다. 먼저 아직도 내부 제보를 조직에 대한 반역으로 바라보는 기이한 조직 문화가 조직 사회 속에서 비민주적 풍토를 조장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내부 제보자들의 용기 있는 발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지적된 비리를 파헤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회적 의지의 결여이다.



참여연대 공익제보 지원단의 신광식 실행위원이 1995년부터 참여연대에서 공익 제보자 지원활동을 하면서 접했던 실제 주인공들을 심층 인터뷰한 기록을 최근 (도서출판 참여사회)라는 책으로 펴냈다. 이 책의 제목은 “나는 불의를 고발했다. 그러나 정작 싸움의 상대는 ‘불감사회’였다”라는 의미이다. 9명의 제보자는 한결같이 자신이 속한 조직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보여준 불감증을 처절하게 고발했다.
황우석팀의 논문 조작을 백일하에 드러내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한 문화방송 <pd>의 한학수 PD는 황우석 사태 취재 파일로 펴낸 (사회평론)에서 “대한민국은 제보자 K에게 빚지고 있다”고 말했다. 저자는 책에서 차마 제보자에게 묻지는 못했지만 이런 질문을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제보자인 당신은 이 사회가 변화해가는 과정에서 어떤 대접을 받을까요?” 그가 이런 물음을 입 밖에 내지 못했던 까닭은 앞으로 그들이 겪게 될 고초가 너무도 선명하게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오늘의 현실은 예상했던 것보다 비참하다. 제보자 K는 다니던 병원에서 과기부의 압력을 받아 강요된 퇴직을 당했고, 그 부인인 제보자 B도 실직한 상태다. 이 부부가 직장을 잃고 거리를 헤맨지도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한국 사회가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에게는 아무런 사적인 이익도 없을 줄 뻔히 알면서 오로지 과학자의 양심 하나만으로 고발을 했던 제보자들을 우리 사회는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저자는 “자신이 갚아야 할 빚을 모른 체하고 도리어 제보자 K부부를 왕따시킨다면 그곳은 희망이 없는 사회일 것이다. 제보자가 앞으로 어떤 대접을 받으면서 살아가느냐가 곧 한국 사회의 수준을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름다운 제보자 상을 제정하라

지금도 제보자 부부는 재취업이 가로막힌 것은 물론 아직도 자신들의 신원을 떳떳이 밝히지 못하고 있다. 논문을 조작한 당사자는 버젓이 사회활동을 하면서 연구 재개를 공언하고 있는데, 고발자는 온갖 불이익을 감수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이번 사태에서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 중 한 사람이며 황우석 파문의 주역인 박기영 전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이 대통령 정책기획위원으로 컴백할 것이라는 씁쓸한 소식이 들려왔다. 이제는 공익적인 제보자를 지원하기 위한 사회적인 제도를 만들기 위해서 시민사회가 나서야 할 차례다. 정부 차원이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 분연히 불의를 고발하는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한 ‘아름다운 제보자 상’을 제정하기 위한 움직임이 시민사회에서 시작되기를 기원해본다.

* 황우석 사건 제보자를 도우려는 분들은 시민과학센터 홈페이지(http://cdst.jinbo.net)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모금운동에 동참하실 분은 우리은행 1006-001-243568(시민과학센터)로 송금하면 됩니다.</pd></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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