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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가스 감축, 기업이 뛴다

등록 2006-12-29 00:00 수정 2020-05-03 04:24

이미 유럽에선 이산화탄소 배출권 할당, 2013년 이후엔 한국도 포함될 듯…기업의 적극적인 감축 노력 이끌기 위해 ‘온실가스 감축실적 등록소’ 운영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21세기에도 오일쇼크는 지속될 전망이다. 초기에 정치적 양상으로 감지되는 여파가 기업을 휘청거리게 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당연히 기업들은 산유국들의 위세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게 마련이다. 각종 석유 제품을 제조할 때 나오는 ‘부생연료유 2호’(Hi-sene C9+)와 등유·경유 등을 제품 생산공정이나 부대시설에 사용하던 경동세라텍 아산공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생산공정은 오일쇼크뿐만 아니라 위험에도 노출돼 있었다. 경동세라텍 박헌용 기술개발팀장은 “화석연료는 수급에 어려움이 있을 뿐만 아니라 제품의 질에도 악영향을 끼친다”고 말한다.

경동세라텍의 소중한 결실

아무리 오르는 기름값의 충격에서 벗어나고 안전한 생산공정을 위한 연료 전환이라 할지라도 가볍게 결단을 내릴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적지 않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청정 에너지로 전환한다고 해서 정부 차원의 지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연료 전환은 비용의 문제가 아니었다. 환경 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으로서 친환경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도 도움이 될 듯했다. 그래서 2005년 9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6억2천여만원을 투자해 소성요와 건조기의 버너를 액화천연가스(LNG)용으로 교체했고, 액화석유가스(LPG)를 사용하던 난방·취사 연료도 설비를 바꾸었다.

이렇게 경동세라텍에서 연료 전환을 성공리에 마친 효과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LNG는 별도의 저장시설이 필요 없어 부지를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었고, 완전 연소시에 발생하는 순발열량이 기존 연료유보다 높아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새롭게 환경친화기업으로 거듭나면서 온실가스 감축에 따른 비경제적 효과까지 덤으로 얻었다. LNG로 연료를 바꾸면서 해마다 온실가스를 1300tCO2 줄인 덕분이다. 이는 국내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 5억9천만tCO2 가운데 지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모범적인’ 감축 사례로 꼽힌다.

현재 기업들은 온실가스 감축을 현실적인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미 유럽에서는 이산화탄소 배출 시장이 형성됐다. 2005년 1월 문을 연 유럽거래소는 에너지 소비가 많은 1만2천여 기업에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할당했다. 예컨대 100tCO2를 할당받은 기업이 150tCO2를 배출했다면 배출권을 소진하지 않은 기업으로부터 50tCO2의 배출권을 구입해야 한다. 최근 유럽에서는 이산화탄소 배출권이 t당 8유로달러 안팎에 거래되고 있다. 언젠가는 개인에게도 이산화탄소 배출권이 할당될 것으로 예측된다. 자동차 연료를 주입하거나 비행기 여행을 할 때마다 할당량을 공제하게 되는 것이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2005년 2월에 발효된 교토의정서의 의무부담국(38개국, 감축분: 5.2%)에 속하지 않았다. 그래서 기업들의 온실가스 감축은 자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선발 개발도상국의 감축 참여가 본격화되는 2013년 이후에는 강제적으로 배출권을 할당받을 가능성이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회원국 가운데 국민총생산(GDP) 대비 온실가스 배출이 가장 많은 나라로 우리나라를 꼽기도 했다. 실제로 2003년 기준으로 OECD 평균(0.19tCO2)을 훨씬 웃도는 0.23tCO2였다. 이는 세계 최대의 에너지 소비국인 미국(0.22tCO2)보다 높은 수치였다.

“적절한 감축실적 산정 확립해야”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부 차원에서도 온실가스 배출을 방치할 수만은 없는 처지다. 그래서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 활동을 지원하고 감축 실적을 관리하려고 2005년 7월 에너지관리공단 기후대책실 산하에 ‘온실가스 감축실적 등록소’를 설치했다. 여기에서는 국내 기업과 단체 등지의 온실가스 감축 성과를 이산화탄소 환산량으로 계량해 관리한다. 온실가스 감축실적 등록소 오대균 소장은 “온실가스 배출 감축량이 이산화탄소 환산량으로 연간 500t 이상인 기업이나 신·재생에너지 개발사업 성과를 등록할 수 있다. 앞으로 기업들이 주식처럼 보유하면서 시세차익을 얻어 사거나 팔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실적 등록사업 관련 예산으로 50억원을 편성했다. 아직 tCO2당 가격은 확정되지 않았는데 국제 시세를 반영해 5천원에서 1만원 사이에 결정될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기업들이 감축실적을 등록하려면 기준 활동을 감안해 관련 데이터를 수집해 배출량을 산정해야 한다. 앞으로 국가 의무부담이 확정되면 등록 소요 비용을 기업이 부담해야 하지만 지금은 정부의 보조를 받을 수 있다. 이 결과는 기후변화의 예방 조처를 다루는 국제협상 과정에서 ‘카드’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기업의 적극적인 감축 노력을 유도하는 게 급선무다.

사실 기업의 처지에서 금전적인 혜택을 기대하고 온실가스 감축에 나서지는 않는다. 경동세라텍만 해도 한 해에 1천만원 안팎을 얻으려고 연료 전환에 나선 것은 아니다. 문제는 아무런 대비도 없이 의무부담국이 된다면 경제적 충격이 엄청날 것이라는 데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2013년부터 5년 동안의 2차 공약 기간에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5%(1995년 기준) 줄이면, 실질 GNP가 2015년 0.75%(11.3조원), 2020년 1.51%(22.8조원) 줄어들 것으로 추정했다. 정부가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 투자를 적극 유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가와 기업이 사는 길이 지구의 열을 식히는 데 있는 셈이다.

지난 12월19일 서울 교육문화회관에서 경동세라텍을 포함한 11개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실적 심사가 이뤄졌다. 감축실적 타당성 평가위원회에서 등록 승인 여부를 판정받은 것이다. 이미 경동세라텍의 감축실적은 문서와 현장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상태였다. 평가위원 9명은 “LNG 생산 과정에서까지 배출량을 계산해 감축실적을 보수적으로 산정했다”면서 만장일치로 등록 승인 결정을 내렸다. 이날 평가위원장을 맡은 한국산업대학교 강승진 교수(에너지정책)는 “기업의 자발적인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가시화되고 있다. 감축실적 산정에 관한 적절한 방법론을 확립해 기업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청정개발체제 사업에 연계될 수도

국내 기업에서 41건의 온실가스 감축실적이 등록 승인을 받았다. 2006년 말까지 85건이 신청되어 50건을 심사한 결과다. 이로 인한 온실가스 감축량이 연간 101만tCO2(에너지 기원 71만tCO2, 비에너지 기원 30만tCO2)에 이른다. 여기엔 한국서부발전 서인천발전본부의 ‘고효율 가스터빈 도입을 통한 복합화력 성능개선’(연간 14만5천tCO2),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의 ‘과불화탄소(PFC) 플라스마 분해시설 도입’(연간 21만6천 tCO2) 등 진행형인 사업도 다수 포함됐다. 만일 수자원공사가 시화호 둑에 건설하는 조력발전소가 2009년에 완공되면 연간 31만tCO2의 감축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앞으로 온실가스 감축실적 등록소의 성과는 ‘청정개발체제’(CDM·Clean Development Mechanism) 사업에 연계되어 파급력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교토메커니즘 가운데 하나인 CDM은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지고 있는 선진국이 감축 의무가 없는 개도국에 투자해 얻은 감축분을 자국의 실적으로 인정받거나 배출권을 판매해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제도다. 각국에서 온실가스 시장이 형성되는 추세에 있는 만큼 우리나라도 특단의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 기업들도 산업 경쟁력 차원에서 온실가스 감축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단 온실가스 감축실적 등록소의 문을 두드리는 것부터 시작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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