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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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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환상적인 요리사

등록 2006-05-12 00:00 수정 2020-05-03 04:24

맛의 비결뿐 아니라 건강에 끼치는 영향까지 분석하는 분자 미식학… 식품영양학 실험실과 주방의 만남 주선하며 새로운 도구 개발하기도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우리는 달걀을 삶는 방법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 이런 질문을 프랑스 국립농업연구소의 물리화학자 에르베 디스에게 던진다면 “과학을 적용하라”고 대답할 게 틀림없다. 그는 요리의 물리·화학적 원리를 담은 <냄비와 시험관>이라는 저서를 통해 전통적인 요리 ‘비법’의 오류를 밝혔다. 예컨대 달걀 노른자가 가운데에 놓이도록 삶는 방법에 대해서도 과학적 방법론을 내놓았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끓는 물에 삶는 것만으론 부족하다는 것이다. 노른자가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흰자와의 밀도 차이 때문이기에 끓는 물에서 10분 이내로 삶는 게 중요하다는 게 디스의 판단이다.

해롭지 않은 감자요리법을 아는가

이렇게 요리 과정에 과학적 원리를 적용하려는 학문이 ‘분자 미식학’이다. 과학과 요리의 만남을 주선하는 분자 미식학은 맛의 질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슈퍼마켓 진열대에 있는 감자가 샐러드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식초의 구실을 따지는 식이다. 대부분의 요리 책자에는 껍질을 벗긴 감자를 식초 몇 방울 떨어뜨린 물에 담가 냉장고에 보관하면 거무스름해지지 않는다는 ‘팁’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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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감자가 식초를 얼마나 흡수했을 때 이로운지를 따지는 것은 쉽지 않다. 프렌치프라이를 만들 때 생감자가 냉동감자보다 기름 흡수가 적은 까닭도 분자 미식학을 통해 밝혀낼 수 있었다.

만일 분자 미식학에 따라 최적의 요리법을 찾는다면 질병을 물리칠 수도 있다. 요즘 프렌치프라이와 감자칩이 우리의 내장을 채우면서 동맥을 엉키게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이런 음식물의 폐해는 그것에 머물지 않는다. 스웨덴 스톡홀름대학의 분자 미식학 연구자 마르가레타 퇴른퀴비스트 박사팀은 튀긴 감자와 시리얼 제품 등에 들어 있는 고농도의 ‘아크릴아미드’(Acrylamide)로 인해 요리 과정에서 위험 수준의 발암물질이 형성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아크릴아미드는 접합체 도료나 누수방지제 등 산업적 용도로 사용되는 지반응고제로 전분이 많은 식품을 고온에서 가열할 때 생성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분자 미식학에 따른 연구결과도 곧바로 식생활에 적용되지는 않는다. 식품의 아크릴아미드만 해도 유해성이 알려진 게 수년 전의 일이지만 개선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다. 지난 5월2일 서울환경연합은 시중에 유통되는 감자칩·감자튀김 등 5개 제품의 아크릴아미드 함량을 분석한 결과, 2002년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조사 때보다 함량이 늘어났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에 따르면 아크릴아미드 평균 함량이 감자튀김은 1620㎍/㎏, 감자칩은 1004㎍/㎏으로 나타났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94년에 국제암연구기구(IARC)가 ‘인간 발암 가능성이 높은 물질’로 분류한 아크릴아미드의 음용 수 기준을 0.5㎍/ℓ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사실 아크릴아미드가 전혀 없는 식생활을 영위하기는 쉽지 않다. 소고기나 닭고기 같은 단백질이 많은 음식물을 가열할 때도 아크릴아미드가 형성된다. 물론 인체의 유해성을 거론할 정도는 아니다. 문제는 고온에서 장시간 조리하는 감자 요리에 있다. 마르가레타 박사는 “섭씨 100도에서 끓이는 것만이 안전한 요리법”이라고 제안한다. 만일 미약한 열에서 음식물을 조리하면 살모넬라균에 의한 식중독이나 이질, 폐렴 등의 질병이 생길 수도 있다. 튀기거나 굽기 전에 감자의 껍질을 벗기거나 과일과 채소를 충분히 섭취하는 것도 아크릴아미드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발암물질 억제법도 잇따라 제시

최근 분자 미식학 연구에 따라 발암물질을 억제하는 요리법도 잇따라 제시되고 있다. 미국 캔자스주립대학 스콧 스미스 박사팀은 분쇄한 고깃덩어리에 소량의 로즈메리 추출물을 첨가하면 발암물질 생성을 억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소고기나 돼지고기, 가금류 고기 등을 높은 온도에서 가열할 때 발암물질인 헤테로사이클릭아민(HCA)이 생성된다. 그런데 로즈메리에서 추출한 항산화 물질을 첨가해 반죽한 고깃덩어리로 햄버거를 만들었을 때 HCA가 적게 생성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항산화 물질인 로즈메리 추출물의 가격이 비싸고, 로즈메리 자체를 넣었을 때의 효과가 확실하지 않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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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육류를 안심하고 먹는 데는 로즈메리의 효과가 탁월한 것으로 보인다. 스미스 박사는 로즈메리 추출물의 구실에 대해 “발암물질이 생성되는 화학적 합성 과정을 차단하는 데 탁월하다”면서 “세이지와 바질 같은 향신료도 비슷한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아직까지 향신료가 로즈메리 같은 효과를 내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향신료의 건강 효과를 의심하는 사람은 드물다. 전북대 식품공학과 신동화 교수는 “우리가 즐겨먹는 고추나 마늘·겨자 등의 향신료엔 암과 심장병 같은 질병을 예방하고 노화를 늦추는 항산화 물질이 풍부하다. 항암 효과는 마늘이, 항산화력은 정향(丁香)이 뛰어나다”고 밝혔다.

사정이 이렇다면 육류나 생선 등을 요리할 때 HCA가 적게 생성되는 다양한 방법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분쇄한 고기를 요리할 때 자주 뒤집어주고, 지방덩어리를 제거하거나 굽는 과정에서 검게 탄 부분을 제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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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연안 사람들의 조리법도 참고할 만하다. 고기나 생선을 굽기 전에 향신료와 올리브유, 식초, 와인 등이 든 즙에 담가두는 ‘매리네이드’(Marinade) 과정을 거치도록 하는 것이다. 예컨대 생선을 굽기 전에 적포도주(반컵), 향이 있는 식초(2술), 올리브유(찻숟가락 1술), 마늘 등의 향신료가 든 즙에 담근 뒤 요리하면 고기가 타더라도 HCA 발생량이 줄어들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분자 미식학은 식품영양학 실험실과 식당·가정의 주방의 만남을 주선하고 있다. 그것만이 아니다. 새로운 도구와 재료가 등장하기도 한다. 예컨대 음식물을 조리할 때 조리도구 밖으로 빠져나가는 에너지가 적지 않다. 이를 조리기구 개발에 적용하면 버리는 에너지를 줄일 수도 있다. 머지않아 요리가 두려운 사람도 숟가락 센서로 먹는 사람의 입맛에 맞는 요리를 할 수도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랩의 ‘자기개발주방’ 프로젝트팀이 시제품으로 내놓은 ‘똑똑한 숟가락’을 음식물에 대면 온도를 감지하고 산도, 염도, 점도 등을 파악한다. 이 정보에 따라 컴퓨터가 요구대로 재료를 넣으면 원하는 맛을 낼 수 있다.

과학 논문을 유명 레스토랑에

누구도 요리가 과학의 결과물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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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화학반응을 통해 맛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여기엔 물리적 현상과 함께 생물학적 현상도 가미되게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리사의 ‘손맛’에 기댔던 전통 요리에 분자 미식학자들이 최근에야 개입하는 것은 뒤늦은 감도 있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냄비와 시험관이 만나면서 전혀 색다른 요리를 기대하게 한다. 이미 에르베 디스는 19세기의 조리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프랑스의 맛을 바꿀 채비를 하고 있다. 실험실에서 밝힌 요리의 과학에 관한 논문을 유명 레스토랑의 주방장에게 보내 새로운 요리 개발을 돕고 있다. 요즘 세계인이 건강식으로 주목하는 우리 맛에도 과학을 양념으로 뿌려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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