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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은 무엇을 남겼나

등록 2006-01-19 00:00 수정 2020-05-03 04:24

조작과 상관없이 체세포 핵이식 기술이 독보적인 수준인 것은 분명한 사실
1천여 개의 난자를 실험하며 갖게 된 노하우를 장기이식 등에 활용할 수도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서울대병원 임상의학연구소 강병철 선임연구원은 지난해 11월 중순 ‘황우석 사태’가 불거졌을 때부터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무균 미니돼지의 장기로 사람의 부족한 장기를 채우려는 ‘이종장기’ 꿈이 시들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서울대 조사위원회가 황우석 교수팀의 논문에 ‘가짜’ 낙인을 찍은 날에도 강 연구원은 90마리(유전자 변형 44마리 포함)의 미니돼지가 있는 특수생명연구동 무균 축사를 드나들었다. “황 교수 문제가 불거지면서 이종장기 이식에 관한 연구비 지원 결정도 미뤄지고 있다. 서울대병원에서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실험을 지속하기 힘들다. 그래도 이종장기 실험을 해야 하는데 걱정스럽다.”

멈춰버린 이종장기 실험

사실 지난 2003년 10월에 개소식을 가진 ‘바이오이종장기연구개발센터’(센터장 김상준)는 황 교수의 지원으로 체계를 갖췄다. 황 교수팀 연구원들이 2003년 2월 미국에서 무균 미니돼지의 피부조직에서 체세포를 떼오면서 이종장기 이식 연구의 길을 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황 교수팀에서 미니돼지의 조직과 장기를 이식하는 데 필요한 기술 지원을 받아야만 했다. 예컨대 황 교수팀이 미니돼지 체세포 복제 과정에서 초급성 면역거부 반응이 일어나지 않도록 형질전환으로 ‘다프’(DAF·붕괴촉진인자) 같은 인간 유전자를 주입하는 식이었다. 그래야만 미니돼지의 세포가 인간 항체에 노출되더라도 거부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처럼 황 교수팀은 체세포 핵이식을 통한 복제 기술로 이종장기 연구를 지원했다. 지난해 8월에 들어온 레서스원숭이는 미니돼지의 췌도를 이식받을 예정이다. 요즘 이종장기센터 소속 연구원이 일본의 국립영장류센터에서 영장류 이식에 관한 기술적 도움을 받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종장기 영장류 이식 실험이 언제 이뤄질지 예상하기 어렵다. “최대한 면역거부 반응을 줄이려면 인간 유전자를 3~5개가량 넣을 수 있어야 한다. 미국 등지에서는 2, 3개를 넣는 수준에 이른 것으로 학계에 보고되고 있다. 황 교수팀에서 주도한 형질전환 유전자 연구를 누군가 대신해야 당뇨병 치료를 위한 연구를 지속할 수 있다.”

예상대로 황 교수팀의 줄기세포 관련 <사이언스> 게재 논문은 허위로 밝혀졌다. 환자맞춤형 줄기세포(2005년 논문)는 미즈메디병원의 수정란 줄기세포로 드러났고, 인간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2004년 논문)는 ‘처녀생식’(상자기사 참조)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서울대 조사위의 판단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이종장기이식센터의 배아 줄기센터 이식 실험도 기약 없이 미뤄질 수밖에 없다. 지난 1월12일 황 교수는 기자회견에서 “세계 최초로 인간의 면역 유전자가 주입된 무균 미니돼지의 체세포 복제를 통해 줄기세포를 확립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실 여부를 검증해야 하는 상황에서 임상실험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황 교수팀의 논문 조작 여파로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는 세포 덩어리 속에 묻혀 있을 수밖에 없다. 황 교수팀은 줄기세포 연구를 시작한 뒤 지난해 11월18일까지 배반포 101개(2004년 논문 전에 만든 30개 포함)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제공된 난자 2061개 가운데 핵이식에 사용된 난자가 3분의 2가량 되는 것을 감안하면 배반포 형성률은 10%에도 못 미친다. 서울대 조사위가 황 교수팀의 경쟁 연구팀으로 밝힌 영국 뉴캐슬대학의 머독 교수팀의 배반포 형성률 2.7%보다 높다 해도 줄기세포를 배양하지 못한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황 교수팀이 인간 체세포 핵이식 줄기세포를 만들 만한 기술력을 보유하지 못한 셈이다.

지금으로선 황 교수팀의 체세포 복제 관련 기술은 “스너피 빼고 모두 가짜”라는 말을 부정하기 어렵다. 두 논문에서 밝힌 줄기세포의 흔적이 실험실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황 교수가 세계 최고로 자부하는 체세포 핵이식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지만 인간 배아 줄기세포가 없기에 ‘원천 기술’ 운운하는 것은 옹색하기만 하다. 황 교수가 복제 전문가로서 줄기세포 연구를 총괄 지휘했지만 줄기세포 전문가로 거듭나지는 못한 셈이다. 그런 아쉬움 때문일까. 황 교수는 미즈메디병원과의 제휴 4년을 한탄하면서 차병원과 마리아병원의 줄기세포 전문가에게 ‘긴급 구조’를 요청하는 신호를 보냈다.

줄기세포 배양 인간 영양세포도 유용

정말로 황 교수팀에 지난 4년은 허송세월이었을까. 황 교수팀은 논문 조작으로 평생을 씻어도 씻기지 않을 흠집을 남겼다. 하지만 줄기세포 치료제에 대한 ‘최면’에서 깨어나면 황 교수팀의 기술력을 다시 생각해볼 수도 있다. 적어도 체세포 핵이식을 통해 배반포를 형성하는 기술만큼은 독보적이기 때문이다. 황 교수팀의 복제 기술은 지난해 시사주간지 <타임>이 최고의 발명품으로 뽑은 ‘스너피’를 통해 확인되기도 했다. 한 생명공학 연구자는 “체세포만 가져온 미니돼지도 황 교수팀의 복제 기술로 개체 수를 늘렸다. 복제 소 ‘영롱이’의 장수를 문제 삼고 있지만 미니돼지가 잘 자라는 현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황 교수팀은 매주 평균 6마리의 돼지에서 핵이식 수정란 이식 실험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마리당 150~200개의 핵이식 수정란을 활용하기에 주당 1천 회 이상의 핵이식 실험이 이뤄지는 셈이다. 이는 서울대 조사위에서도 인정한 것으로, 황 교수팀이 국내외에서 가장 활발하게 동물 핵이식 실험을 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게다가 4년여 동안 인간 체세포 핵이식으로 배반포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사람 난자 1천 개 이상을 매만진 것은 줄기세포 존재 유무와 관계없이 의미 있는 일이다. 황 교수가 연구팀의 경쟁력을 밝힌 것을 시간끌기식으로 매도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국내에 체세포 핵이식에 관련된 숙달 인력이 100여 명 있다 해도 이들이 사람의 난자를 이용한 실험을 할 수는 없었다. 앞으로 난자 수급에 따른 어려움을 감안하면 ‘실패한 경험’에서도 연구적 가치를 찾을 수 있다.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 박세필 소장은 “1천여 개의 난자를 이용해 실험을 지속하면서 노하우를 많이 갖게 된 황 교수팀의 기술력을 평가해야 한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황 교수는 논문 조작으로 학문적 ‘파산 선고’를 받았지만 연구팀이 보유한 기술력은 사장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제는 조작의 실체를 면밀히 따져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어쩌면 황 교수팀의 의미 있는 연구가 거대한 조작으로 빛을 잃었는지도 모른다. 줄기세포 배양에 사용된 영양세포(feeder cell)만 해도 그렇다. 황 교수팀은 세포가 증식·분화하면서 100여 개의 세포 덩어리로 자라는 배반포 단계에서 다양한 진화 경로를 밟는 줄기세포를 분리해 배양할 때 인간 영양세포를 일부 사용했다. 영양세포는 줄기세포의 대사에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하는 세포로서 인간의 것을 사용하면 마구잡이 분화를 제어하기 쉽다. 문제는 마우스 영양세포를 줄기세포 확립까지 사용한 뒤, 인간과 마우스 영양세포를 병행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런 시도가 후속 연구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젓가락 기술에 숙달된 연구자들

그동안 황 교수팀에 대한 정부부처와 지자체 등의 지원금을 생각하면 연구 성과가 보잘것없는 게 사실이다. 지난 1998년부터 지난해까지 황 교수팀에 소요된 공식 자금이 623억원이다. 이 가운데 순수 연구비만 83억원에 이른다. 여기에다 한국과학재단이 관리하는 황 교수 공식 후원회를 통해 19억여원이 황 교수팀에 전달되는 등 민간단체와 기업의 후원금도 적지 않다. 그렇게 많은 자금을 투여하고도 체세포 핵이식 줄기세포의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 채 논문 조작으로 국가적 망신을 초래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토록 황 교수가 떠벌리던 ‘치료용 복제’라는 말도 한동안 기력을 회복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황 교수팀의 체세포 핵이식을 통해 배반포 형성 기술은 어떻게 될 것인가. 서울대 조사위의 결정으로 황 교수팀의 줄기세포 실험을 재연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더욱이 검찰의 황 교수팀에 대한 전방위 수사가 이뤄진다면 논문 조작에 관련된 핵심 인력은 연구실 근처에도 오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대 조사위 정명희 위원장이 기자회견장에서 “황 교수팀이 아니더라도 줄기세포 연구의 국내 전문 인력이 100명 이상 있다”면서 “이들의 연구력이 국제적인 수준에 이르렀다”고 밝힌 사실을 떠올리면 황 교수팀 소속 연구원들의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다.

설령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를 만들 수 있는 원천기술이 없다 해도 연구 자체가 무용지물은 아니다. 난자의 핵을 제거하는 ‘쥐어짜기 기법’(일명 젓가락 기술)이 독창적이지 않을지라도 황 교수팀 연구원만큼 숙달된 연구자는 드물다. 황 교수팀의 논문 조작의 후유증을 최소화하면서 노하우를 활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세대 의대 생리학교실 김동욱 교수(국제줄기세포학회 위원)는 “황 교수팀이 복제에 관한 전문 기술이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들의 기술력을 활용하는 것은 앞으로 대학 당국이 결정해야 할 몫이다. 새로운 리더를 찾을 수도 있고, 다른 연구팀과 제휴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몇 걸음이라도 앞당기도록…

당장 서울대 이종장기센터에서 미니돼지에서 추출한 췌도세포를 레서스원숭이 당뇨병 모델에 적용하는 실험을 하려면 황 교수팀의 복제 기술을 활용해야 한다. 실제로 황 교수팀이 미니돼지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했다면 장기 이식이 새로운 단계로 진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황 교수가 없더라도 줄기세포의 꿈은 시들지 않는다. 문제는 줄기세포를 비롯한 첨단의학의 연구 성과를 몇 걸음이라도 앞당길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검찰이 논문 조작 관련자를 색출하고, 국가 차원의 연구윤리위원회를 설치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첨단의학의 성취에 기여할 체세포 핵이식 기술의 몫이 있다는 사실이다.


‘처녀생식’은 또 뭐야?

2004년 논문의 줄기세포 둘러싼 논쟁, 상당 기간의 후속 연구 통해 실체 밝혀질 듯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초기 배아는 4∼7일가량 지나면 속이 빈 공을 닮은 100여개의 세포 덩어리로 이뤄진 포배로 분화된다. 그러다가 내부 세포군을 형성하는 배반포 단계에 이르면 모든 세포로 분화할 가능성이 있는 줄기세포가 섞여 있게 된다. 문제는 배반포의 형태가 불량하면 줄기세포를 분리하는 게 쉽지 않다는 데 있다. 황우석 교수팀이 101개의 배반포를 만들었으면서도 줄기세포주를 확립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황 교수팀이 2004년 <사이언스> 논문에 게재한 1번 줄기세포는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서울대 조사위원회는 지난 1월10일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1번 줄기세포가 우연히 ‘처녀생식’(parthenogenesis)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조사위는 1번 줄기세포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체세포 난자 제공자 등의 DNA 지문 검사를 하고 전문가들에게 자문했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난자와 극체(난자를 만드는 세포분열 과정에서 떨어져나가 도태되는 미세 세포)가 합쳐지는 처녀생식이 일어나 줄기세포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난자만으로 생식이 이뤄진 셈이다.

이에 대해 황 교수는 “2004년 논문 제출 당시 DNA 검사를 통해 단성생식(처녀생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검사에서 확인했다”면서 “난자를 다룰 기술이 없는 연구원이 제1극체를 난자에 주입한다는 것은 기술적 측면에서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한편 서울대 조사위의 한 위원은 “난자의 핵이 극체세포가 있는 부분에 쏠려 있는 상황에서 핵을 빼내기 위해 구멍을 뚫다가 극체세포가 끌려들어 갔을 것”이라고 밝혔는데 ‘난자와 극체가 결합’하거나 ’두 개의 난자가 충돌’ 했을 때 처녀생식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서울대 조사위에서 검증한 바에 따르면 1번 줄기세포가 처녀생식의 의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처녀생식에 관련된 의혹이 제기된다면 핵형(염색체 수와 형태)을 분석하거나 모계로 계승되는 각인 유전자를 확인하면 된다. 서울대 조사위는 강성근 교수에게 후속 연구를 권유했다고 한다.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 박세필 소장은 “만일 처녀생식 줄기세포가 맞다면 이식 뒤에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아 가임기에 있는 여성 난치병 환자들이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다만 인위적으로 유도하는 방법이 확립되지 않아 효용성을 장담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과학계에서 처녀생식을 주목한 것은 20여 년 전의 일이다. 현재 하버드대에 재직 중인 분자생물학자 엘리자베스 로버트슨이 지난 1983년에 처녀생식으로 만든 생쥐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분리해 신경과 근육을 비롯한 다양한 조직으로 분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로 인해 벌이나 진딧물 같은 하등동물에서 일어나는 처녀생식이 고등동물에서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다가 미국 미시간대 호세 시벨리 교수가 2003년 처녀생식으로 원숭이 배아를 복제하는 데 성공했다.

난자가 있는 여성이 처녀생식으로 줄기세포를 만들 수 있다면 남성의 경우도 동정생식(androgenesis)에 의한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처녀생식에 대응하는 동정생식은 정자에서 새로운 개체가 생기는 것을 일컫는다. 예컨대 난세포 속에 정자가 들어가서 난세포핵이 퇴화한 뒤 정자핵과 난세포질로 발생을 시작해 성체가 되는 식이다. 라듐을 쬔 성게의 경우 난세포핵이 퇴화한 다음 정자를 받아들여 발생을 시작한다. 하지만 사람은 남성의 정자에서 추출한 핵을 난자 없이 처리해 생식으로 유도할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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