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탐사의 전진기지를 세우기 위해 미 항공우주국이 신형 탐사선 모델 공개…식민지 건설하는 데 필요한 엄청난 동력원과 에너지 확보 방안에 관심 집중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지난해 1월14일 미국 조지 부시 대통령은 늦어도 2020년까지 유인 달 탐사를 재개하고 화성에 유·무인 탐사를 하겠다는 ‘우주 탐험 계획’을 발표했다. 달에 식민지를 만들고 화성을 방문한다는 대담한 비전이었다. 마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팔로스 데 라 프론테라 항구를 떠날 때를 떠올리게 하는 거대한 야망도 있었을 것이다. 미국이 우주 탐사 개발의 주도권을 유지한다면 500여년 전 스페인이 그랬던 것처럼 풍요로운 ‘우주 신천지’에 제국의 깃발을 꽂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부의 ‘돈지랄’이라는 지적에도 미 항공우주국(NASA)은 달에 유인 우주기지를 건설할 신형 탐사선(CEV·Crew Exploration Vehicle) 모델을 공개했다.
우주로 향한 탐사선 CEV는 달에 화성 탐사를 위한 전진기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지난 9월20일 NASA가 공개한 달 탐사 계획에는 무려 100조원의 예산이 소요될 예정이다. 가장 관심을 모으는 CEV는 비행기 모양의 기존 우주왕복선과 달리 캡슐형 탐사선으로 아폴로 캡슐과 비슷하지만 3배가량 커졌다. 오는 2008년부터 4년여 동안 로봇이 달 표면 정찰을 통해 적절한 위치를 선정한 뒤, 2018년에 우주인 4명이 달에 착륙해 화성 탐사를 위한 사전 연구를 진행하게 된다. 여기에는 달의 풍부한 광물을 개발하고 발전시설을 갖춘 거주단지를 조성하는 계획도 포함됐다.
달의 먼지로 에너지를 생산?
정말로 달은 우주 개발의 전초기지 구실을 할 것인가. 이를 위해선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달에 탐사선이 장기간 착륙해 식민지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엄청난 동력원을 만들어야 한다. CEV는 태양전지판이 있어 전력을 공급하는 게 가능하지만 대규모 임무를 수행하는 데는 한계가 따른다. 이것을 지구에서 조달하는 데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될 게 틀림없다. 어떻게든 달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이에 관한 아이디어로 나온 게 달의 먼지를 이용해 에너지를 생산하는 방법이다. 달에 있는 미세한 회색 분말이 이산화실리콘과 알루미늄·마그네슘·철 등 12가지 금속산화물로 구성된 데 착안한 것이다.
이미 미국 휴스턴대학 우주시스템연구소의 알렉스 프로인틀리히 박사팀이 진공 체임버 내부 상황을 재현하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가능성을 증명했다. 이들은 아폴로호가 수집한 달의 표토 샘플과 동일한 성분을 지닌 분말을 용해해 매끄러운 유리판 형태로 만들었다. 그 뒤 유리판의 표면에 열을 쬐어 증발하는 과정에서 태양전지를 증착시켰다. 달에서는 무인 우주선으로 착륙한 로봇이 달 표면을 이동하면서 토양을 녹여서 정제한 뒤, 태양전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달의 먼지로 태양전지의 핵심 부품인 패널을 만들어 전력을 생산하는 셈이다. 이를 실현하려면 고도의 정밀작업에 능한 로봇을 개발하고 태양전지의 효율을 개선해야 한다.
이처럼 풍부한 광물 자원을 지닌 달이 인류의 미래를 떠맡을 수도 있다. 에너지 위기에 대비해 달에 발전소를 세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태양광선을 모으기 위한 태양 전지판을 달에 설치한 뒤 이를 마이크로파로 전환해 지구에 있는 정류 안테나로 보내 전지로 변환시키는 것이다. 마이크로파는 비나 구름을 통과하며 라디오파 등에 의한 간섭도 거의 없다. 달 표면에 조사되는 태양에너지는 1만3천TW(1TW=1조 와트)로 지구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의 100배나 된다. 달의 지표면에서 헬륨3을 추출해 에너지로 전환할 수도 있다.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헬륨3은 열핵 원자로에서 에너지를 뿜어내면서 방사성 폐기물도 거의 배출하지 않는다고 알려졌다.
얼음이 발견된다면 가속도 붙을 수도
그렇다고 우리가 달을 당장 품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달에 우주 전진기지를 세울 CEV가 착륙할 자리조차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발전시설을 갖춘 전진기지를 달에 세우려면 태양에 최대로 노출된 지역을 찾아야 한다. 대체로 극지방의 운석 충돌로 생긴 분화구 형태의 ‘크레이터’를 주목한다. 여기에 상대적으로 수소가 풍부하고 얼음의 존재 가능성이 크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응용물리연구소 벤 버시 박사팀은 클레멘타인 우주선이 10여년 전에 달 궤도를 71바퀴나 돌면서 촬영한 53장의 영상을 분석해 최적의 지역을 찾아냈다고 올해 4월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이들이 추천한 지역은 달 북극 지역에 있는 지름 73km의 피어리(Peary) 크레이터다. 1년 내내 태양이 비출 것으로 보이는 이 지역은 분화구 깊은 곳에 얼음 상태의 물이 존재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지구에는 1년 내내 햇볕이 드는 지역이 없다. 극지만 하더라도 태양쪽을 향하는 여름 한철 동안 24시간 태양이 비추는 백야가 있지만, 겨울에는 종일 어둠에 휩싸이게 된다. 지구의 축이 23도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에 견줘 달에는 1.5도로 기울어져 1년 내내 태양을 볼 수 있는 지역이 있다. 만일 이곳에 우주 전진기지를 건설한다면 태양에너지를 손쉽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햇볕 덕분에 다른 지역보다 따뜻할 것으로 기대된다. 달의 적도 지방은 밤낮에 따라 영상 100도에서 영하 180도 사이를 오르내린다. 이로 인해 사람이 작업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뿐 아니라 기계도 오작동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피어리 크레이터 지역은 사람과 기계가 견딜 만한 영하 50도 정도를 유지할 것으로 예측된다. 문제는 대기가 없는 달에서 상대적으로 일사량이 많다면 우주인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주인이 장기간 태양에 노출되면 치명적인 암에 걸릴 가능성이 3%가량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인류가 달을 딛고 우주로 나아가는 길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인 셈이다.
만일 달의 극지에 얼음이 있다면 우주 개발에 가속도가 붙을 게 틀림없다. 우주 전진기지에 음용수를 공급하고, 수소와 산소로 분해해 호흡용 공기와 우주선의 연료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달의 얼음층은 존재를 확연히 드러내지 않고 있다. 지난 2003년 푸에르토리코의 아레시보에 있는 지름 300m의 거대한 전파망원경으로 레이더 파장을 이용해 극지역을 관측했지만 얼음층임을 증명하는 반사를 확인하지 못했다. 설령 달의 극지역에 얼음이 있다 해도 두꺼운 얼음층의 형태가 아니라 토양 속에 흩어진 알갱이 형태일 수도 있다. 이는 무인 우주선에 의해 달 탐사에 들어갈 로봇을 통해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
국제 공동 프로젝트도 가능성 있어
우주 시대가 열리기 전부터 선망의 대상이었던 달은 인류가 첫발을 내디뎌 신비를 벗기면서 관심 영역 밖으로 밀려났다. 그렇게 머나먼 행성 언저리에 30여년 동안 주목받지 않던 달에 인류가 다시 발길을 내밀고 있다. 이미 유럽우주기구가 2003년 9월 아리안로켓에 실어 발사한 달 탐사선 ‘스마트 1호’가 달 궤도에서 지질 조사를 하면서 얼음의 실체를 규명하고 있다. 여기에 중국과 일본, 인도 등도 달 탐사 프로젝트를 진행해 첨단 기술력을 과시하고 국가적 자존심을 세우려고 한다. 달 탐사가 인류의 공익을 위한 것이라면 미국이 유인 탐사선 계획을 발표한 지금, 우주 전진기지 건설을 국제 공동 프로젝트로 성사시켜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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