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산학 협동 시스템으로 도약하는 스코틀랜드
SMC·경제개발공사·알바캠퍼스 등이 각종 지원 도맡아
▣ 에든버러=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40대 중반의 이안 언더우드 박사가 벤처 사업가로 나선 것은 6년 전의 일이다. 에든버러대학에서 전자공학을 가르치던 그가 사업가로 나선 것은 사회적 시스템 덕분이었다. 그가 네이피어대학 연구진과 함께 연구개발(R&D) 프로젝트로 마이크로 디스플레이를 개발한 게 결정적인 계기였다. 소규모 연구실에서 개발한 ‘폴리머 유기 발광 다이오드’(Polymer Organic Light Emitting Diodes) 제품이 사업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곧바로 창업 절차를 밟았는데 별도의 비용은 들어가지 않았다. 에든버러대학 캠퍼스 한쪽에 들어선 ‘스코틀랜드 마이크로일렉크로닉스 센터’(SMC)에 입주한 게 전부였다.
“SMC 입주로 엄청난 비용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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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칩 위에 디스플레이를 하려면 반도체 공정을 거쳐야 한다. 이런 연구를 독자적으로 하려면 시설과 장비를 갖추는 데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 벤처기업으로선 엄두를 내지 못할 일이다. 그런데 SMC 입주가 결정되면서 다른 준비가 필요 없었다.” 언더우드 박사가 동료와 함께 설립한 MED(Micro Emissive Displays)는 초고속 성장을 거듭했다. 창업 이듬해부터 외부 투자를 받아 기술력을 높이고 연구진을 40여명으로 크게 늘릴 수 있었다. 그동안 디스플레이 기술의 눈부신 진보도 이뤄냈다. CMOS 공정의 초절전형 디스플레이에 고화질의 동영상을 구현하는 기술력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MED가 개발하는 마이크로 디스플레이는 극소형 기판을 이용해 동영상을 확대해 감상할 수 있는 장치다. 예컨대 마이크로 디스플레이가 탑재된 디지털 고글로 초대형 극장에서 상영하는 아이맥스 영화도 볼 수 있다. 현재 상용화에 나선 ‘ME3203’라는 제품을 디지털 카메라에 탑재하면 뷰 파인더로 동영상을 실감나게 즐길 수 있다. 스스로 빛을 내는 유기 발광 소자를 사용하는 제품이라 LCoS(Liquid Crystal on Silicone)와 달리 백라이트에 필요한 액정을 사용하지 않아 전력 소비량이 미미하다. 최근 마이크로 디스플레이 시장은 수요가 크게 늘어나 해마다 100% 이상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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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SMC 건물을 다른 벤처기업에 물려줄 준비도 순조롭게 하고 있다. 세계적인 디스플레이 업체인 영국의 CDT가 MED의 기술을 라이선스한 게 3년 전의 일이고 디지털 카메라와 캠코더 등의 뷰 파인더, 개인휴대단말기(PDA)·휴대전화·게임기·야간 투시경 등으로 동영상을 구현하려는 업체들이 잇따라 관심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마이크로 디스플레이라 MP3 같은 소형 제품에서 복합 기능을 구현하는 제품도 선보일 예정이다. 이제 어엿한 중견 사업가로 대접받는 언더우드는 올해 안으로 라이선스 제품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한다. “마이크로 디스플레이는 다양한 형태의 상품으로 나올 것이다. 착용 컴퓨터의 디스플레이용 제품도 개발하고 있다.”
이렇게 대학 캠퍼스의 R&D 프로젝트가 손쉽게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스코틀랜드의 독특한 산학협동 시스템에서 비롯됐다. 스코틀랜드 정부 산하 기관인 스코틀랜드 경제개발공사(SE·Scottish Enterprise)가 산학협동의 중추 구실을 한다. 스코틀랜드의 기업 및 뉴타운 법에 따라 설립된 SE는 사업성이 있는 제품에 대한 개발을 지원하고 관련 지식과 기술을 제공하면서 외국의 투자 유치에도 적극적이다. 대체로 바이오와 정보기술을 중심으로 전략적인 지원이 이뤄진다. SE는 정부 지원 창구 구실을 하면서 수익도 꾀한다. 일방적으로 지원하지 않고 투자에 대한 지분을 확보하는 것이다.
공동 장비 함께 사용해 노하우 공유
그렇다고 SE가 직접 대학의 R&D 프로젝트에 개입하는 것은 아니다. SE와 대학을 잇는 독특한 단체가 있다. 예컨대 반도체 기술의 경우 ‘알바캠퍼스’(Alba Campus)가 산학협동을 실질적으로 이끈다. 스코틀랜드를 뜻하는 고어에서 비롯된 알바캠퍼스는 대학을 지원하는 일종의 고등 교육기관이다. 여기에는 시스템온칩(SoC) 설계 석·박사 과정의 ISLI(Institute System Level Integration), 반도체 설계 자산 유통센터인 VCX(Virtual Component Exchange),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센터 등이 자리잡고 있다. 이를 통해 반도체칩 디자인의 울프슨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음향기기의 린(Linn) 같은 세계적인 기업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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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캠퍼스가 반도체 설계에 관련된 고급 인력을 양성하는 데 견줘 SMC는 벤처 창업 도우미 구실을 한다. R&D 프로젝트로 상용화 기술을 확보한 연구자들이 벤처기업을 차리도록 하는 것이다. SMC 건물은 대학 안에 있지만 연구자들은 일반 회사원들이다. 이들은 대학 시설과 SMC에 구비된 클린룸과 광학기기 등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SMC 디렉터인 안소니 월튼 교수는 “주로 소규모 공간에 적합한 기업들이 SE가 주관하는 심사를 받아 입주한다. 입주 업체들은 고유의 장비만 갖추고 공동 장비를 함께 사용한다. 중복 투자 없이 기술력을 쌓기에 벤처기업으로서 위험 부담을 줄이고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스코틀랜드는 산학 협력 시스템이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당연히 대학 연구자들이 기반기술의 상용화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에든버러대학 정보공학부 디케이 아비드 교수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 카네기멜론대학에서 컴퓨터과학을 공부한 그는 에든버러대학에서 컴퓨팅 시스템 설계 연구소를 이끌면서 극소형 디지털 기기의 상용화에 나섰다. 그가 제안하는 ‘스펙클드 컴퓨팅’(Speckled Computing)은 컴퓨터들이 널리 퍼져 있으면서 사용자에게는 겉모습이 드러나지 않도록 사물에 심어져 유비쿼터스 환경을 만든다. 여기에 쓰이는 스펙은 일종의 ‘스마트 먼지’(Smart dust)로서 지능적으로 데이터를 처리한다.
기술력만 보유하면 자연스레 시장 열려
현재 개발된 스펙은 인형에 들어가 쌍방향 대화를 지원하는 수준이다. 미리 입력된 대화만 반복하는 ‘로봇 인형’과 달리 다른 물체의 스펙과 대화를 지능적으로 주고받고 무선으로 통제할 수 있다. 만일 크기를 1㎣ 정도로 만들면 다양한 사물에 바르거나 뿌려서 네트워크를 형성해 상호 통신과 정보교환을 꾀하는 것도 가능하다. 국가 프로젝트로 지정돼 5개 대학 연합 연구진과 함께 스펙 시제품을 만들어 투자를 받고 있는 아비드 교수는 “일반적인 지능형 센서는 정해진 기능만 할 뿐이지만 스펙은 데이터의 상호작용까지 한다. 건축에도 응용할 수 있고, 건물 내부 벽에 뿌리면 화재 상황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머지않아 스펙클드 컴퓨팅은 연구소 밖으로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일단 스펙의 크기를 줄이기만 하면 SE 같은 기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게 된다. 대학이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탄탄한 기술력을 보유하면 자연스럽게 시장이 열리는 셈이다. 게다가 산학협동에 따른 대학의 R&D 기술력은 스코틀랜드에 다국적 회사를 유치하는 데도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한다. 이미지 센싱업체 ST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가 에든버러대학의 CMOS 기술을 라이선싱하면서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고, 신약 임상실험의 세계적 기업 퀸티리스가 유럽 본부를 에든버러에 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지금 스코틀랜드는 바이오와 정보기술을 양 날개로 삼아 첨단 제국을 향해 날아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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