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 경제가 풀어야 할 난제들…얼음입자의 나노공간 이용한 저장 메커니즘 눈길 끌어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첨단 장비에 뛰어난 지능을 겸비한 슈퍼카 ‘키트’(KITT·Knight Industry Two Thousand)의 활약상이 담긴 <전격 Z작전>은 20여년 전에 우리를 꿈의 세계로 초대했다. 미국을 대표했던 스포츠카 폰티액 ‘파이어버드’를 개조한 키트는 평소에는 트럭 속에 숨어 있다가 범죄가 발생하면 스스로 작동해 시속 300km로 도로를 질주했다. 그야말로 꿈의 자동차였던 키트의 인공지능 기능은 ‘텔레매틱스’를 통해 현실에서 구현되고 있다. 여기에서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 그것은 우리를 꿈의 세계로 초대한 키트의 에너지원에 대한 것이다. 키트가 이름값에 걸맞게 2000년대 산업의 성과를 집대성했다면 무엇을 에너지원으로 삼았을까.
신재생에너지를 통한 수소의 가능성
먼저 도요타의 ‘프리우스’(Prius)처럼 가솔린 1ℓ로 20km 이상을 달리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떠올릴 수 있겠다. 하지만 화석연료의 한계 수명을 생각하면 장기적 대안은 아니다. 더구나 환경을 생각하지 않는 과학기술이 외면받는 상황에서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받는 화석연료에 미래를 맡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일부 자동차에 유채씨 기름이나 석탄에서 나오는 메탄올 또는 알코올을 쓰더라도 널리 활용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쯤 되면 수소 에너지를 이용한 연료전지 자동차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해마다 50억달러 이상을 수소 관련 기술에 투자하는 상황이다.
현재 수소는 환경과 경제, 에너지라는 세 마리의 난제를 해결하는 유력한 대안으로 꼽힌다. 하지만 수소 자동차가 실용화되는 데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게 틀림없다. 아무리 노무현 대통령이 현대자동차의 수소연료전지 자동차에 감탄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수소 경제’를 선언해도 풀어야 할 난제가 수두룩한 탓이다. 지금은 수소를 경제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술도 확보되지 않아서 천연가스나 석유 등 화석연료에서 수소를 추출해 사용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방송통신대 이필렬 교수는 ‘수소 경제는 없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수소를 얻으려고 화석연료를 3배나 소비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고 밝혔다.
물론 수소 에너지 연구자들은 이런 지적에 수긍하지 않는다. 이들은 현재의 수소 에너지 기술력만으로 수소 경제의 유무를 판단하기는 이르다고 주장한다. 즉, 수소 에너지에 관한 기술개발과 태양광이나 풍력 등을 통해 수소를 생산하고, 제4세대 원자로에서 ‘원자력 수소’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래지향적으로 수소 경제에 대비해야 한다는 반론이다. 산업자원부 산하 수소연료전지사업단 홍성안 단장은 “화석연료에서 나오는 수소를 이용한 연료전지를 사용하는 것은 과도기적 현상일 뿐"이라고 말하며 “경제성 있는 수소 생산 방법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져 수소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단언했다.
정말로 수소는 신재생에너지를 통해 에너지 운반체로 널리 쓰이게 될 것인가. 현재 풍력이나 태양열·지열·바이오매스 등 신재생에너지는 지구 에너지 수요의 2%를 감당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이 비약적으로 확대되지 않는다면 수소 자동차가 상용화되더라도 화석연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수소 경제라는 말이 허망한 구호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더구나 신재생에너지가 획기적으로 늘어나도 수소가 제구실을 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른다. 무엇보다 안정적으로 수소를 저장하는 방법이 기술적으로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소를 만들어도 담을 수 있는 용기가 부실하면 폭발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수소 고체화도 엄청난 중량 해결 못해
그렇다면 수소 경제는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올 것인가. 적어도 500km가량 운행할 수소를 4kg가량 저장한 자동차라야 도로에 안정적으로 진입할 수 있다. 현재 개발된 수소 자동차 모델들은 이에 턱없이 모자란다. 효율적인 수소 저장매체가 확보되지 않은 탓이다. 지금의 방법으로는 영하 252도 극저온의 수소 끓는점에서 수소 기체를 액화해 특별한 단열 용기에 저장하거나, 350기압 정도의 높은 압력에서 기체 수소를 저장하는 방법 등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극저온이나 높은 압력을 유도하는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자연 증발로 인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에 따라 수소 저장매체 연구자들은 수소를 고체화하는 데서 해법을 찾으려 했다. 마치 물이 스폰지에 흡수되듯이 수소가 압축한 금속합금 분말의 틈새로 들어가도록 ‘금속수소화물’(Metal Hydride)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구조가 간단하고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으며 부피당 저장량도 액체수소 형태의 저장방법보다 1.5배 이상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고온·고압을 견디는 Ng2Nih4나 LaNi5H6 같은 금속수소화물로 연료 탱크를 만들면 중량이 엄청나게 나간다는 데 있다. 한때 저장매체가 없어도 수소를 연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꿈의 촉매제 ‘보랙스’(Borax)는 가솔린보다 50배나 비싼 고비용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의 연구자가 전혀 새로운 수소 저장매체 개발로 이어질 수 있는 연구결과를 내놓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최근 한국과학기술원 생명화학공학과 이흔 교수팀이 규명한 자연현상을 이용한 수소 저장 메커니즘이 과학저널 <네이처>의 ‘주목해야 할 논문’으로 선정됐다. 섭씨 0도 부근에서 수소 분자가 얼음 입자 안에 만들어진 나노 크기의 미세한 공간에 저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소는 낮은 밀도로 인해 수송이 천연가스보다 어렵다. 당연히 압축 과정에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행기 동체 크기의 직경을 가진 파이프라인을 이용해야 한다. 이런 수소 저장에 관련된 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할 가능성을 찾아낸 것이다.
이 교수팀이 찾은 수소 저장 해법은 간단하다. 얼음 입자로 이뤄진 공간만 있으면 수소를 얼마든지 저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여백이 없는 순수한 물에 ‘테트라히드로푸란’이라는 유기물을 첨가해 얼음 입자를 만들었다. 여기에 무수히 많은 나노 크기의 공간이 생기면서 수소가 안정적으로 저장됐다. 이런 사실을 발견한 이흔 교수는 “별도의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아도 되는 영상의 온도에서 수소가 생성된다는 사실이 놀랍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얼음 입자가 상온에서 물로 바뀔 때 수소가 자연적으로 방출된다. 수소의 저장과 방출이 짧은 시간 내에 단순한 과정으로 진행되기에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수소의 순환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장 가능한 수소 중량 늘리는 게 열쇠
지금으로선 얼음을 이용한 수소 저장 메커니즘이 자동차에 적용되리라 단정하긴 이르다. 얼음 입자 사이의 공간에 저장할 수 있는 수소 중량이 물 대비 4%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에너지성의 기준에 따라 수소 저장률이 적어도 6%까지 올라가야 실용성을 인정받게 된다. 현재 이 교수는 얼음 내부의 공간을 더욱 넓힐 수 있는 몇 가지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있다. 언젠가는 수소를 채운 얼음 창고가 지금의 LPG충전소를 대신하는 수소충전소에 적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얼음에 담긴 수소를 자동차에 주입하려면 현재 개발된 방식과는 전혀 다르게 작동하는 수소 자동차를 개발해야 한다. ‘얼음 수소’가 수소 저장의 신기원을 이룩해도 21세기형 ‘키트’가 수소를 에너지원으로 삼기엔 역부족인 셈이다. 그럼에도 이런 과정을 통해 수소 경제의 가능성이 차츰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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