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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햄버거의 ‘약발’을

등록 2004-11-12 00:00 수정 2020-05-03 04:23

우리는 얼마나 패스트푸드에 노출돼 있나…윤광용씨의 ‘한국판’ 실험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한 남자(모건 스펄록)가 있다. 그는 패스트푸드 생체실험의 ‘마루타’가 되기로 한다. 오로지 맥도널드 매장에서 파는 샌드위치와 빅맥, 프렌치 프라이 등을 주식으로 삼아 30일을 버티는 것이다. 카운터에 주문한 것만 먹고 모든 메뉴를 적어도 한번은 먹기로 작정한다. 카운터 종업원이 권하면 슈퍼사이즈도 마다하지 않는다. 인류의 건강을 위해 햄버거만 먹은 대가는 한주 만에 곧바로 나타났다. 한꺼번에 많은 양을 소화하다 보니 구역질에 구토는 다반사였다. 그리고 한달이 지났을 때 그는 이전의 그가 아니었다. 몸무게가 11kg이나 늘었고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치명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었다.

“이 한몸 망가져 어린이 살린다”

11월12일 스크린에서 만나게 될 다큐멘터리 영화 는 한 남자가 온몸으로 증언하는 패스트푸드에 관한 보고서다. 성인병과 비만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도 실체를 드러내지 않았던 유해성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맥도널드는 음료수 컵의 크기가 2ℓ인 슈퍼사이즈를 없애고 ‘건강식 메뉴’를 쏟아냈다. 하지만 업체들이 패스트푸드의 유해성이 학술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며 패스트푸드를 강변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가 보여주는 것보다 확실한 유해성의 ‘물증’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건강을 위한 식품을 내놓아도 ‘유해식품’이라는 꼬리를 떼기 어려운 것이다.

모건 스펄록이 한국 관객과의 만남을 기다리는 동안 또 다른 한 남자가 패스트푸드의 유해성을 고발하는 ‘한국판 마루타’를 자청했다. (사)환경정의 간사로 활동하는 윤광용(31)씨가 주인공이다. 이 남자가 모건 스펄록이 제작비 30만달러로 저예산 영화를 만들어 1100만달러를 웃도는 ‘대박’을 터뜨린 데서 ‘재테크’의 기본을 배웠을 리 만무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동영상으로 담는 캠코더 서너개가 있어도 극장 상영은 꿈도 꾸지 않았다. 지난 4일 오후 5시 국회 문화관광위 입법청원소위원회 간사인 열린우리당 민병두 의원실에서 그를 만났다. 영화 국회 시사회를 앞두고 ‘방송법 개정에 따른 어린이 대상 패스트푸드 텔레비전 광고 금지조항 신설’ 의견서를 전달하는 자리였다.

사실 멀쩡한 젊은이가 ‘결과가 뻔한 생체실험’을 반복하는 까닭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패스트푸드의 유해성 논란이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모건 스펄록이 패스트푸드 때문에 망친 몸을 회복하는 데 1년 이상 걸린 것을 되풀이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패스트푸드의 성분이 태평양을 넘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윤씨에게 다짜고짜 물었다. 지금 당신의 몸을 학대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어리석은 질문임을 단박에 깨닫게 하는 현명한 답이 날아왔다. “는 미국의 사례가 아니다. 수많은 패스트푸드의 유해성이 발표돼도 제조업체는 변한 게 없다. 내 몸이 망가져 단 한명의 어린이라도 패스트푸드를 먹지 않는다면 나는 만족한다.”

그렇게 절박한 마음으로 생체실험에 참여한 윤씨. 그의 몸은 20여일 만에 에서처럼 ‘지방짱’이 됐다. 지난달 16일 생체실험에 들어가기 전보다 몸무게가 2kg 늘었다. 하루에 섭취하는 열량이 3천kcal가 넘는 것치고는 그다지 심각하지는 않다. 놀라운 사실은 체지방이 실험 전 12.8kg에서 17.5kg으로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패스트푸드를 주식으로 삼으며 활동량을 줄였다면 훨씬 더 늘었을 것이다. 종합검진에서는 간의 효소수치가 알코올중독자 수준으로 나왔고, 신경정신과에서는 우울증과 무기력증이 치료를 받아야 할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개봉일에야 그토록 먹고 싶어하는 ‘김치찌개’를 먹을 수 있다.

학교·군대의 급식은 더욱 위험하다

이런 놀라운 위력을 보이는 패스트푸드에 우리는 얼마나 노출된 것일까. (사)환경정의의 조사에 따르면 서울시는 ‘정크푸드 특별시’라 불릴 만하다. 서울 시내에만 주요 패스트푸드 매장이 438군데에 이른다. 면적 비율로 보면 1.3km에 하나씩 있는 셈이다. 심지어 대형 종합병원에도 어김없이 패스트푸드점이 들어서 있다. 어떤 곳은 ‘신속 배달’이라는 문구를 새기고 병실에 갇힌 어린이 환자를 유혹한다. 이래저래 잇속을 챙기려는 업체와 병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소아 환자들의 병이 깊어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관련 부처의 협의로 개선책을 마련하겠다는 원칙적 대책만 되풀이하고 있다.

최근의 생체실험 여파로 무분별한 패스트푸드 광고도 도마 위에 올랐다. 패스트푸드가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어떻게든 증명됐으니 적어도 어린이 시간대 텔레비전 광고만이라도 규제하라는 것이다. (사)환경정의 ‘다음을 지키는 사람들’ 광고 모니터링단의 유정옥 분과장은 “패스트푸드에 들어가는 화학첨가물의 성분과 재료 원산지 등 기본적인 정보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업체들은 유해물질에 대한 면역력이 낮은 어린이들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업체들의 상혼에 어린이의 미래가 짓밟혀서는 안 된다. 어린이의 패스트푸드에 대한 노출을 제도적으로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국내의 패스트푸드 제국은 번화가에만 형성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욱 지독한 위험을 퍼뜨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학교나 군대의 매점에서 판매하거나 급식으로 제공하는 ‘매장 밖 햄버거’는 치외법권 지대에서 인체를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다. 이들은 고속도로 휴게소 등지에서 판매되는 것과 달리 법적 규제를 받지 않는다. 육류의 경우 냉동 보관된 등급 외 고기를 사용한다는 목소리가 들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 김선미 의원(열린우리당)은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패스트푸드 문제를 풀어야 한다”면서 “패스트푸드 관련 제도를 마련하는 것은 안전한 먹거리를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 사회의 라이프 스타일을 그대로 반영한 패스트푸드. 청소년과 아동의 37%가 지방 과다인 이유가 패스트푸드 때문만이라고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패스트푸드의 혐의가 짙어진 것만은 분명하다. 영화 가 ‘햄버거’에 관련된 밀과 옥수수, 쇠고기 중심으로 짜인 음식 생태계를 완전히 바꾸지는 못해도 ‘외식문화’에는 일정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이미 미국에서도 채식 위주인 ‘멕시칸 푸드’의 소비량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도 다시 패스트푸드를 대신하는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일단 영화 에서 패스트푸드의 폐해를 확인하는 게 좋겠다.



적게 먹어도 비만 유발



요즘 ‘한국판 슈퍼사이즈 미’의 주인공 (사)환경정의 간사 윤광용씨는 매우 바쁘다. 패스트푸드 방송법 개정을 위한 서명을 받고, 방송 인터뷰가 끊이지 않는다. 하루 세끼를 패스트푸드로 채우기 위해 때가 되면 매장에도 들러야 한다. 그리고 패스트푸드 때문에 망가지는 몸을 확인하기 위해 종합병원과 한의원, 신경정신과에서 검진을 받기도 한다. 패스트푸드가 몸과 마음을 갉아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흡연과 폐암의 인과관계를 확인하는 게 간단치 않은 것처럼 패스트푸드의 유해성을 규명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하지만 구체적인 성분이 밝혀진다면 문제는 간단하게 풀릴 수도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 패스트푸드의 폐해를 몇 가지 살펴보자.

패스프푸드가 중독자를 만드는 까닭은? 패스트푸드 주메뉴의 성분은 동물성 단백질과 지방, 정제된 설탕, 소금, 식품첨가제 등이다. 여기에서 식품첨가제는 맛을 좋게 하고 보존기간을 늘리기 위해 사용하는 화학물질이다. 아직까지 첨가제의 성분이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MSG라 불리는 글루탐산 나트륨이 쓰이는 것으로 추측된다. 하루에 3g 이상 첨가제를 섭취하면 안면 경직, 흉부 압박, 불쾌감 등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식품첨가제는 체내에 들어가 화학물질 대사 과정에서 상당량의 비타민과 무기질을 소모하는데, 자극적인 맛으로 인해 중독성을 유발하게 된다.
패스트푸드가 비만을 일으키는 까닭은? 햄버거나 도넛, 닭이나 감자튀김 등의 패스트푸드가 확실한 포만감을 안겨주지는 않는다. 빅맥 햄버거 하나를 먹더라도 자신의 평균 음식물 섭취량을 크게 초과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식품첨가제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탐식하게 되고, 육류의 에너지 밀도가 높아 적게 먹어도 칼로리가 매우 높다는 것이다. 대개 패스트푸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섭취하는 전통적인 식단의 음식물보다 에너지 밀도가 2배 이상 높다. 그래서 자신의 일반적인 섭취량보다 덜 먹더라도 비만을 유발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기름 성분이 신진대사를 저하시켜 미처 소화되지 않은 가공육류가 그대로 체세포에 쌓이게 된다.
패스트푸드가 정신질환을 유발하는 까닭은? 아이들의 성장과 대사에 필요한 비타민과 미네랄을 패스트푸드에서 찾기 힘들다. 제조나 조리 과정 혹은 방부제 사용 등으로 인해 필수성분들이 사라지게 된다. 특히 미량 성분인 아연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아연은 청소년의 정서에 깊은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밝혀졌다. 체내에 아연이 부족할 경우 타인을 해치려는 공격성이 높아져 폭력적 행동을 하게 되며 우울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게다가 아연 부족은 피부염이나 탈모, 시각장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아연은 해산물이나 유제품에 많이 들어 있다. 그래도 패스트푸드를 먹어야 한다면 ‘치즈버거’를 먹으면 피해를 줄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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