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돼지 먹이를 얻어와야 맛볼 수 있었던 한겨울의 갱죽, 그 잊혀져가는 맛
초저녁부터 발 밑에서 얼음이 서걱거리는 이맘때쯤이면 늘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그것은 내가 어릴 때 어른들이 ‘갱죽’ 또는 ‘갱시기’라고 부르던,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닌 그 무엇이다. 식은 밥과 남은 반찬, 묵은 김치를 썰어 솥에 대충 붓고 물을 넣어서 끓인 음식인데 흔히 말하는 ‘꿀꿀이죽’과 비슷하다. 여유가 있는 집에서는 거기다 참기름을 몇 방울 떨어뜨리고 계란 노른자를 터뜨려 저어 먹기도 했다. 반드시 식은 밥이라야 하고 또 반드시 푹 삭아서 쉰 김치, 남은 반찬이라야 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제 맛이 나지 않았다. 뜨거운 갱죽을 후후 불며 한 그릇 먹고 나면 호롱불을 켜야 할 만큼 캄캄해졌고 사랑방에서는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라디오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기나긴 겨울밤에 더 이상 나올 음식이 없으니 다시 배가 고파지기 전에 얼른 잠을 자는 게 상책이었다.

갱죽을 끓이기 전에 어머니 또는 할머니는 열살에서 열서너살 난 우리에게 양동이를 들려서 삼이웃을 돌며 쌀을 씻고 난 뜨물이며 구정물을 얻어오게 했다. 그 양동이에 구정물을 얻어오면 거기다 집에서 나온 구정물을 보태서 돼지우리에 갖다준 뒤에야 갱죽 한 그릇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갱죽은 맛있었다. 보통의 끼니와 달리 노동의 대가라서 맛있었고 운동을 한 뒤라서 맛있었고 그냥도 맛있었다.
그런데 그 구정물을 가지고 오는 일이 쉽지 않았다. 하필이면 구정물이 많이 나오는 집은 언덕 위에만 있었는데 땅바닥이 얼기 시작할 무렵 무거운 양동이를 들고 언덕길을 오르내리다 보면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빈 양동이를 들고 있을 때보다는 구정물이 가득 차서 무거운 양동이를 들고 있을 때 균형을 잃거나 미끄러지기 쉽다. 애써 얻어오던 구정물을 땅바닥에 쏟고 옷은 옷대로 버리고 너는 왜 늘 그 모양이냐는 잔소리는 잔소리대로 듣고 손가락은 곱아 아파오고 돼지는 배고프다고 꽥꽥거리고 갱죽은 끓고…. 사람이 약이 오르면 머리에 김이 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빈 양동이를 들고 돌아가면 옷에 묻은 구정물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방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목욕을 하고 새옷으로 갈아입은 뒤 방안에 좌정하여 새로 내오는 밥상을 맞는 일은, 나를 포함해 식구들 그 누구도 해당되지 않는 일이었다. 식구들은 바닥이 뜨끈한 방안 두레상에 둘러앉아 서로의 얼굴을 정답게 마주보며 갱죽을 다 먹고 난 뒤였다. 귀퉁이 떨어진 상도 없이 마루에 앉아 식으면서 불어 똥뚱해진 갱죽 밥알을 씹다보면 버림받은 아이라도 되는 양 서러워지기도 했다.
왜 갱죽일까. 갱은 제상에 올리는 ‘메와 갱(羹)’ 할 때의 그 갱인 것 같다. ‘메’는 밥이고 ‘갱’은 무 같은 야채와 고기를 넣고 오래 끓인 국이다. 죽은, 말 그대로 죽인데 물이나 국에다 밥을 넣고 끓여서 만든 죽이다. 쌀알을 넣어 끓이는 죽과 달리 이건 한번 밥이 된 것을 다시 끓인다는 게 다르다. 아아, 그러고 보니 갱죽은 ‘다시 고친다’ 할 때의 ‘갱’(更)인지도 모르겠다. 갱죽의 다른 말인 ‘갱시기’는 ‘갱식’에서 나온 말이며 밥과 반찬에서 다시 모습을 바꾼 음식이라는 뜻이 될 수도 있겠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온 뒤에는 집에서 돼지를 키우지 않았다. 따라서 구정물 얻으러 다닐 일이 없어졌고 겨울이 와도 갱죽이 식탁에 오르는 일이 드물어졌다. 전기밥솥이 등장하면서 식은 밥이 없어졌고 냉장고는 아주 푹 쉰 김치를, 일부러 푹 쉬게 한 건 말고는, 사라지게 만들었다. 구정물 냄새 때문에 방에 들어가지 못하는 아이가 걸터앉을 마루도 없었고 불어터진 밥알이며 아이의 서러움도 있을 리 없었다.
10여년 전 집안에 상사가 나서 출상(出喪)을 하던 새벽, 문득 갱죽이 다시 등장했다. 나는 상주의 신분을 잠시 잊고 그 맛에 매달려 있었다. 아니 매달리고 싶어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오월이어서 겨울에 먹는 갱죽의 진미는 느껴지지 않았다. 갱죽을 후후 불어가며 바쁘게 먹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이제부터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으로 목이 메었더랬다.
성석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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