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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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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와의 괴물’ 탄생의 비밀은 기다림

“모든 투구에 영혼을 불어넣는” 사사키 로키
고교 때 시속163km 던지는 신기록 세우고도
무리한 등판보다 쉼표를 찍는 데 초점
등록 2023-03-26 09:42 수정 2023-03-27 05:41
사사키 로키 일본 국가대표팀 투수가 멕시코와 겨룬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결승전에서 선발 등판해 투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사키 로키 일본 국가대표팀 투수가 멕시코와 겨룬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결승전에서 선발 등판해 투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1년 3월11일.

그날, 진도 9.1의 일본 관측 사상 역대 최대 규모의 지진이 일본 동북부 지역을 강타했다. 지진뿐만이 아니었다. 초대형 쓰나미까지 덮쳐 동북부 지역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됐다. 당시 사상자만 2만 명이 넘었다.

끔찍한 재난이 닥친 그때, 9살의 사사키 로키는 이와테현 리쿠젠타카타시의 초등학교에 있었고 쓰나미가 삼키기 전 더 높은 곳으로 이동해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37살의 그의 아버지와 조부모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아버지와 캐치볼을 하며 야구의 즐거움을 알아가던 사사키의 일상도 함께 날아갔다. 한동안 양로원에서 지내던 그의 가족은 친척이 사는 근처 오후나토로 이사했다.

‘꿈의 무대’ 고시엔에는 못 섰지만

<요미우리신문>이 전한 사사키의 어릴 적 야구 훈련 환경은 열악했다. 학교 운동장에는 피난민을 위한 임시주택이 있었고, 연습할 만한 강둑 근처에는 잡초가 가득했다. 야구부 훈련은 오후 4시께 시작했는데 야간 조명 시설도 없었다. 학부모들은 야구공을 주황색 등 형광으로 칠했고, 자동차 전조등을 켜서 빛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건설 현장에서 쓰는 조명 설비도 들여왔다.

중학교 시절에는 허리 부상까지 당했다. 당시 스즈키 겐타 코치는 4시간 거리의 아오모리현 병원까지 사사키를 데려가 검사받게 했다. 검진 결과는 피로 골절. 스즈키 코치는 100% 완치될 때까지 사사키에게 공 던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사사키는 울었지만 스즈키 코치는 단호했다. 재활이 끝난 뒤 사사키는 중학교 3학년 나이에 시속 141㎞ 공을 뿌렸다.

전국 각지의 야구 명문 고교에서 사사키에게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하지만 사사키는 고향 가까이에 있고 싶어 오후나토고교로 진학했다. 그는 2학년 때 최고시속 157㎞의 강속구를 던졌고, 3학년 때는 시속 163㎞의 공을 포수 미트에 꽂아넣었다. ‘이도류’ 오타니 쇼헤이(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의 고교 시절(최고시속 160㎞)보다 더 빠른 구속이었다. 그에게는 ‘레이와의 괴물’이라는 별칭이 따라붙었다. ‘레이와’는 나루히토 일왕이 즉위한 2019년 5월1일 자정부터 사용된 일본의 연호. 레이와 이전 헤이세이 시대(1989년 1월8일~2019년 4월30일) 때 ‘헤이세이의 괴물’로 불린 이는 마쓰자카 다이스케(2021년 은퇴)였다.

사사키는 일본 유명 고교대회인 고시엔 본선에는 뛰지 못했다. 사사키에 대한 관심으로 지역 예선 결승의 지상파방송 중계까지 잡힌 상황에서 고쿠보 요헤이 감독은 사사키를 등판시키지 않았다. 결승전에서 이기면 35년 만에 ‘꿈의 무대’ 고시엔 본선에 진출할 수 있었으나 출전 선수 명단에 사사키는 없었다. 8일 동안 네 경기에 등판해 435개의 공을 던진 사사키의 몸 상태를 고려한 결정이었다. 가뜩이나 사사키는 전날 준결승에서 이미 129개의 공을 던진 터. 오후나토고교는 하나마키히가시고교에 2-12로 패했고, 고시엔 본선 티켓도 따지 못했다.

고쿠보 감독의 결정에 대해 여러 찬반 의견이 오갔다. 일생에 한 번뿐인 고시엔 무대를 놓친 데 따른 비난도 있었고, 혹사로부터 선수를 보호하려는 과감한 결단이라 옹호하는 의견도 있었다. 고쿠보 감독의 멘토 역할을 하는 가와무라 다카시 일본 쓰쿠바대학 보건체육과학부 교수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에는 오직 승리에만 초점을 맞춰 이어져온 정신력 문화가 여전히 유효하고, 특히 고시엔은 그 이상의 장기적인 선수 커리어를 생각하지 않고 승리만을 궁극적인 목표로 내세운다”며 “프로로 가든 안 가든 야구는 중·고교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오래 즐길 수 있는 방식이 돼야 한다”고 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한 고쿠보 감독의 결정은 사사키가 프로에서 더욱 도약할 수 있는 추진체가 됐다.

‘완벽한 투구’를 위한 2년의 준비

사사키는 2020년 드래프트(선수 선발) 전체 1순위로 지바 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지바 롯데 또한 서두르지 않았다. 사사키의 몸이 아직 성장 과정에 있다고 판단했다. 큰 키(192㎝)까지 고려했을 때 자칫 부상 위험까지 있었다. 사사키가 프로 입단 2년 뒤인 2022시즌에 비로소 만개한 이유다. 사사키는 2022년 52타자 연속 범타 처리(17⅓이닝 퍼펙트 투구) 등의 괴력을 선보였다. 이구치 다다히토 지바 롯데 감독은 사사키를 일주일에 한 번씩만 등판시켰고, 피로가 누적됐다 싶으면 별 부상이 없는데도 2군으로 보내 쉬게 했다.

김성근 전 한화 이글스 감독은 “사사키는 팔 스피드가 빠른데 그 스피드로 던지면 팔이 못 견딘다. 빠른 스피드를 견딜 수 있는 팔 근육을 프로 2년간 만들어왔다고 봐야 한다”면서 “일본에서도 처음에는 ‘기술이 먼저지, 체력이 먼저냐’ 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야구할) 몸을 우선시하면서 몸이 된 다음에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가더라”라고 했다. 중학교 시절 스즈키 코치도, 고교 시절 고쿠보 감독도, 그리고 지바 롯데의 이구치 감독도 당장의 성적보다는 선수의 미래를 봤고 결국 사사키는 리그 역대 최연소(20살5개월) 퍼펙트 피칭(9이닝 19탈삼진 무실점, 2022년 4월10일 오릭스 버펄로스전)을 완성시켰다.

사사키는 2023 세계야구클래식(WBC) 일본 대표팀으로 뽑혀 B조 조별리그 체코전에서 국제무대에 데뷔했다. 공교롭게도 데뷔일이 대지진 참사 12주기였다. 그는 최고시속 164㎞ 강속구와 시속 140㎞대의 변화구를 앞세워 4이닝 2피안타 10탈삼진 1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구리야마 히데키 일본 대표팀 감독은 “그가 던지는 공은 (전광판에 찍힌) 속도 그 이상이었다. 그는 모든 투구에 영혼을 불어넣는 것 같았다”고 했다. 사사키는 3월21일 멕시코와의 준결승전 선발등판에서는 4이닝 5피안타(1피홈런) 3실점을 했다.

마침내, 국제무대에서 보여준 희망

사사키의 중학교 스승, 스즈키 코치는 <요미우리신문>에 말했다. “사사키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최선을 다하려 노력했고, 그것이 마운드 위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사키가 계속 투구를 이어가서 재난이 닥친 지역에서 야구를 하는 모든 어린이에게 희망이 됐으면 좋겠다.”

불의의 재난은 사사키에게서 사랑하는 가족을 앗아갔다. 하지만 꿈마저 짓밟지는 못했다. ‘진짜 어른들’의 배려 속에 그가 마운드에서 보여주려는 것은 과거의 상실이 아니라 미래의 희망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상흔 속에서도, 터키 대지진의 잔해 속에서도 아이들의 꿈은 자라나길, 그리고 사사키처럼 그들의 생존이 타인의 희망이 되기를 바라본다.

김양희 <한겨레> 문화부 스포츠팀장·<야구가 뭐라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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