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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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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설, OTT 우주를 탐험할 시간

지구멸망 SF부터 마피아와 판사의 대결까지 설 연휴 추천작
등록 2023-01-20 13:18 수정 2023-01-21 04:52

최근 뒤늦은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한 격리 기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끼고 살았더니, 갑자기 ‘시간 부자’가 됐다. 모르는 사람의 말에 끼어들곤 하는 아줌마의 참견하는 마음으로, 설 연휴 기간 다른 사람의 헤매는 시간을 줄여주는 추천 목록을 작성해봤다. 내타내본, 내 시간(타임) 들여서 본, 추천하는 OTT 참견 리스트.

스테이션 일레븐 / 왓챠

Station Eleven, 출연 매켄지 데이비스, 히메시 파텔, 다니엘 소바토, 대니엘 데드와일러, 미국 HBO Max 2021~2022년

지구 망해버렸다. 2020년 극장 무대에서 심장마비로 배우 아서 리앤더가 숨지고 관객으로 있던 지번은 무대에 있던 아역 배우 키어스틴을 집으로 데려다준다. 지하철로 이동하는 사이 세상이 돌아가는 게 심상찮다. 의사인 지번의 누나는 잠복기가 아주 짧은 독감이라며 식료품을 사서 동생 집으로 가라고 한다. ‘조지아 독감’은 생존율 0.1%였다. 독감이 휩쓴 뒤 20년, 키어스틴은 문명의 폐허를 방랑하는 유랑극단의 배우가 돼 있다.

어떤 그럴듯한 세계를 구성해내느냐가 과학소설(SF)의 과제다. 하지만 이 아포칼립스물(지구 문명 멸망을 소재로 한 SF)이 절실한 현실감을 얻는 것은 ‘상실감’의 묘사다. 모두 이별을 경험해야 했던 생존자들의 세상에서 ‘애도’가 일상이다. “세상이 이렇게 끝날 줄 알았다면 인사했을 것 같아요.” 부모도 친척도 친구도 모두 갑작스럽게 만나지 못하게 됐다.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유랑극단의 일원이지만 키어스틴은 사람과의 이별이 서투르다. 6부 크레디트가 한참 흐른 뒤 키어스틴의 말이 들려온다.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현재(2040년)와 과거(2020년), 과거의 과거가 오가는 연출이 어지러워서 집중해서 봐야 하고, 집중해서 본 뒤에도 뭔가를 놓친 듯해, 다시 보면 어떤 장면에서 새로운 저릿함이 훅 들어온다. 당신도 인사를 건네지 못하고 소중한 누군가와 헤어져봤을 테니까.

나의 누나 / 웨이브

僕の姉ちゃん, 원작 마스다 미리, 출연 구로키 하루, 스기노 요스케, 일본 Amazon Prime Video 2021년

30~40대 여성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작가 마스다 미리의 <우리 누나>가 원작이다. <나기의 휴식> <중쇄를 찍자!> 등의 드라마로 “내 친구인 줄”이 된, 구로키 하루가 책에서는 몇 개의 선으로 만들어진 치하루 언니를 화면에서 숨 쉬게 한다.

오래된 마당이 있는 집에서 누나 치하루, 동생 준페이 둘이 생활하게 됐다. 부모가 1년간 외국에 나가 살게 된 것. 모든 회는 이런 구성이다. 이제 막 회사에 들어간 준페이가 의욕 넘치고 긍정적인 회사생활에 대해 내레이션을 하면, 머리에 구름을 얹은 치하루가 “피곤해” 하면서 들어온다. 준페이가 순진무구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네면 누나가 일갈한다. “이 가련한 동생아~ 너는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어른의 세계와 아이의 세계, 지나온 세계와 앞으로의 세계가 마주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누나는 <수납 잘하는 법>을 읽고 있다.

―방이 더러운 것으로 보아 누나가 수납을 익혀서 열심히 하려나보다. 그런데 전에도 제목만 다른 책을 읽은 것 같은데.

―이 책은 실용서가 아니라 힐링서란다. “이대로만 하면 나도 분명히 할 수 있어”라고 하잖니.

동생은 부모가 돌아올 때까지 모르는 게 많다. “누나도 모성애 같은 건 있지 않아?” “키우지도 않은 남자한테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비틀즈: 겟 백 / 디즈니플러스

The Beatles: Get Back, 피터 잭슨 감독,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2021년

비틀스는 철부지였다. 전설적인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숨진 뒤 그들은, 누구에게도 매니징을 맡기지 않고 스스로 하기로 한다. 비틀스 멤버들은 (아마) ‘즉흥적으로’ 어떤 형식이 될지 모르는 ‘녹음’을 계획한다. ‘새로운 곡들을 고르고 연습하고, (아직 정해지지 않은) 장소에서 기습적인 공연을 벌이고 그것을 녹음해 라이브 앨범으로 만드는데, 그 과정을 TV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촬영한다.’ 1968년 링고 스타의 영화 촬영 돌입 전까지 그들에게 놓인 시간은 21일. 나중에 애플레코드의 옥상에서 이뤄져 ‘루프톱 공연’으로 알려진 콘서트가 긴 여정의 결말이다. 이 촬영본이 피터 잭슨의 ‘편집’을 거쳐 3부작으로 공개됐다. 7일씩 나눈 각 부는 2~3시간 분량이다.

라이브와 녹음, 오버더빙(여러 음원을 합성)한 곡이 어지럽게 안배된 《렛 잇 비》 앨범은 비틀스 해체 뒤 1970년 발표됐다. 밴드의 해체를 향해 가는 분열과 신경전이 그대로 노출된 다큐멘터리는 조마조마하다. 하지만 명곡 <투 어브 어스>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렛 잇 비> <더 롱 앤 와인드 로드> <아이 미 마인>의 탄생과 변화 과정을 충분히 관찰할 귀한 기회다. 리듬 1인자 폴 매카트니는 <겟 백> 가사를 포함하는 멜로디를 시작으로 노래를 일사천리로 만들어내지만, 전체 가사가 여러 번 바뀐다. 인종차별주의자 시위를 풍자하는 곡으로 파키스탄인과 인도네시아인이 등장하는 가사였다가, ‘애리조나 투산’ 출신 조조가 나오는 가사로 바뀐다. 조지 해리슨은 촬영 기간 중 시청한 SF 영화에서 힌트를 얻어, 3박자 리듬을 주축으로 곡을 만들어나간다. 3박자 왈츠이기에 ‘아이 미 마인’이라고 한 이 노래는 그대로 제목이 된다.

폴 매카트니는 쉬는 시간에도 피아노를 두들기며 예전 곡들을 반복하는 극악한 연습벌레고, 옆의 존 레넌은 연습 시간 내내 오노 요코가 붙어 있는 무한의 ‘애정극락주의자’다. 조지 해리슨이 이런 말을 한다. “우리가 그냥 그 모습대로 보여줬다면 지금의 우리가 아닐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가 이렇게 늦게 찾아온 이유가 이것이지 않을까.

스몰 엑스 / 쿠팡플레이

Small Axe, 스티브 매퀸 감독, 영국 BBC 2020년

자메이카, 푸에르토리코 등 카리브해 지역의 영국 이주민 역사를 소재로 5개 단편을 묶은 시리즈물이다. 차례대로 ‘맹그로브’ ‘러버스 록’ ‘레드 화이트 블루’ ‘알렉스 위틀’ ‘교육’이다. 시리즈를 성사시킨 이는 <헝거>로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받으며 데뷔했고, <노예 12년>으로 흑인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스티브 매퀸이다. 아일랜드 독립운동가의 단식 시위, 노예해방운동 등을 소재로 했던 감독이 자신의 이야기로 걸어갔다. 마지막 편인 ‘교육’은 매퀸의 자전적 내용을 담고 있다. ‘맹그로브’는 시위를 벌이다 잡혀간 흑인들이 부당한 재판에 맞서 묘안을 짜낸다. ‘러버스 록’은 주택가의 아파트 지하에서 젊은 남녀가 모인 파티가 벌어진다. 티빙과 왓챠에선 매퀸 감독의 여성들이 금고털이에 나서는 <위도우즈>를 감상할 수 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 티빙

Your Honor, 출연 브라이언 크랜스턴, 헌터 두핸, 미국 쇼타임 2022년~2021년

마이클 데지아토, 그는 정의롭고 존경받는 판사였다. 천식을 앓는 아들 애덤이 뺑소니를 일으키고 돌아오기 전까지는. 아들을 자수시키러 경찰서에 데리고 갔다가, 뺑소니로 죽은 아이가 그 지역의 마피아 두목 지미 백스터의 아들임을 알게 된다. 지미는 텔레비전에 나와 아들을 죽인 놈을 죽이겠다고 공언한다. 애덤은 자신이 죽인 이의 흔적을 찾아가보며 속죄의 시간을 보낸다. ‘살인자’ 아들이 여유를 부리는 사이, 아들을 지키겠다고 마음먹은 아버지는 전쟁 중이다. 마피아를 상대로. 데지아토 판사를 <브레이킹 배드> 시리즈의 브라이언 크랜스턴이, 아들 애덤을 <웬즈데이>(넷플릭스)의 주인공인 헌터 두핸이 맡았다. 시즌1로 아버지의 고군분투가 끝난 줄 알았는데, 2023년 1월15일 미국에선 시즌2가 시작된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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