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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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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야구, 한 번의 선택이 우승을 가른다

희비 가른 가을야구의 선택들, 플레이오프 LG의 선택과 한국시리즈 키움의 선택
등록 2022-11-22 05:43 수정 2022-11-25 16:51
2022년 11월7일 인천 SSG랜더스필드 구장, 9회말 대타로 나선 김강민의 홈런이 SSG와 히어로즈의 희비를 갈랐다. 연합뉴스

2022년 11월7일 인천 SSG랜더스필드 구장, 9회말 대타로 나선 김강민의 홈런이 SSG와 히어로즈의 희비를 갈랐다. 연합뉴스

2022년 가을야구는 흥미로웠다. ‘왕좌의 게임’ 파이널 라운드에 오른 두 팀의 차이가 분명했다. SSG 랜더스가 ‘부자 구단’ 이미지였다면 키움 히어로즈는 ‘가난한 구단’ 이미지가 강했다. 실제로 SSG 구단은 든든한 모그룹이 있지만 히어로즈 구단은 네이밍 마케팅(키움증권)에 의존한다. 게다가 SSG는 정규리그 ‘와이어 투 와이어’(정규리그 내내 1위) 우승을 차지한 팀이었고, 히어로즈는 산전수전 다 겪은 정규리그 3위 팀이었다. 평소 야구를 안 챙겨보는 회사 동료든 한화 이글스 팬인 편의점 사장님이든 약자 편에 서고 싶은 이가 많았던 가을이다. 결과적으로 ‘SSG’라는 점보기가 우승 착륙(랜딩)을 이뤄냈지만 말이다.

만약 그 공이 바깥쪽이었다면, 빨랐다면

SSG와 히어로즈의 희비를 가른 것은 5차전(11월7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이었다. 5차전 9회말 2-4로 뒤지던 SSG는 무사 1, 3루에서 8번 타자 최경모 대신 베테랑 김강민을 대타로 내세웠다. 풍선껌을 질겅질겅 씹으면서 조금은 건방진 모습(사실 그가 껌을 씹는 이유는 긴장 완화를 위해서다)으로 타석에 선 김강민은 (안타 쳐서) 뛰기도 귀찮다는 표정으로 냅다 홈런을 쳐버렸다. KBO리그 41년 역사상 최초의 한국시리즈 대타 끝내기 홈런이자 포스트시즌 최고령(만 40살1개월26일) 홈런 기록이었다. SSG에 3패가 아닌 3승을 안긴 ‘한 방’이기도 했다.

최원태-이지영 히어로즈 배터리는 처음에 투심 패스트볼로 김강민을 윽박질렀다. 초구(시속 146㎞)가 가운데로 몰렸으나 김강민이 놓쳤다. 2구는 시속 149㎞ 속구인데 파울이 됐다. 빠른 공에 방망이가 밀렸다. 3구째 최원태-이지영 배터리의 선택은 시속 142㎞ 슬라이더였다. 김강민은 전형적인 ‘게스 히터’(타자가 투수의 어떤 코스의 볼을 어떻게 맞힐지 예측해서 정한 코스대로 스윙을 내는 타자)다. 속구 타이밍에 맞춰 있던 김강민의 스윙 속도가 이전 공보다 7㎞ 느려진 공을 놓칠 리 없었다.

야구에서 ‘만약’만큼 부질없는 것이 없으나 혹여 최원태-이지영 배터리가 3구째 공을 바깥쪽으로 던졌으면 어땠을까. 투심 패스트볼이었다면 더욱 좋았을 테고. 찬 기운이 가득한 가을밤, 시속 145㎞ 이상의 속구는 세월을 품어 느려진 김강민의 배트 속도가 따라가기 버거웠을 것이다. 두 번째 파울 타구가 이를 증명한다.

한국시리즈 1차전 경험으로 베테랑 포수 이지영이 변화구를 택했는지도 모른다. 1차전 때도 김강민은 5-6으로 뒤지던 9회말 1사 뒤 대타로 나와 동점포를 쏘아 올렸다. 히어로즈 좌완 마무리 김재웅의 4구째 시속 140㎞ 속구를 냅다 받아쳤다. 김재웅-이지영 배터리는 이날 김강민을 상대하면서 1~3구 모두 속구를 던졌다. 힘 대 힘으로 맞붙은 셈인데, 기존 매뉴얼(나이 든 타자를 상대할 때는 배트 속도를 고려해 빠른 공을 우선 택한다. 반면 힘이 넘치는 신인급 타자에겐 다양한 변화구로 상대한다)대로 했다. 그러나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를 거치면서 누적된 피로로 김재웅의 속구는 느려졌고, 베테랑에게는 치기 좋은 먹잇감이 됐다. 4구째 공이 첫 번째 공(시속 144㎞)만큼 빨랐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구속 1~2㎞ 차이가 그만큼 크다. 볼 배합 싸움에서 1차전 패배가 5차전 선택으로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두 선택은 모두 실패했다.

어제의 공, 지금의 공

가을야구만큼 선택이 중요한 때도 없다. 공 하나, 타자 교체 하나, 투수 교체 하나에 그라운드의 공기는 바뀌고 승자와 패자가 뒤바뀐다. 순간의 결정은 가끔 잔인한 결과를 잉태한다. 한국시리즈에 앞서 열린 플레이오프에서는 류지현 LG 트윈스 감독의 선택이 부메랑이 됐다.

LG는 KT 위즈와 5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올라온 히어로즈를 상대로 1차전을 비교적 쉽게 이겼다. 점수가 필요할 때마다 적시타가 터졌고, 투수 교체도 정확한 시기에 이뤄졌다. 하지만 1차전의 쉬운 승리는 2차전 때 독이 되고 말았다. LG 선수단의 긴장감은 떨어졌고, 판단력은 느슨해졌다. 결정타가 된 것은 선발이던 애덤 플럿코의 교체 시기였다.

플럿코는 정규시즌 때 훌륭했다. 28경기에 등판해 15승5패 평균자책점 2.39의 성적을 냈다. 하지만 어제의 공이 오늘의 승리를 이끌어주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공’이기 때문이다. 정규리그 막판 어깨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제외됐던 플럿코는 한 달여 만의 실전 등판에서 2이닝도 채우지 못했다. 1⅔이닝 8피안타 6실점(4자책). 류 감독은 플럿코가 1·2회 난타를 당하는 중에도 불펜 투수를 준비시키지 않았다. 류 감독은 경기 뒤 “시리즈 4~5차전이었다면 일찍 판단했을 텐데 남은 경기도 고려해 운영했다”고 말했다. 단기전에 ‘내일’을 생각한 야구를 했고, LG는 졌다.

3차전 때는 정반대로 투수 교체가 빨랐다. 팀이 2-0으로 앞선 6회 말 2사 3루 이정후 타석 때 잘 던지던 선발 김윤식을 내리고 진해수를 올렸다. 김윤식에게 이닝 끝까지 맡겼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정규리그 때 난공불락이던 불펜진을 믿었다고 볼 수 있지만 앞서 말했듯 어제의 공은 어제의 공일 뿐이다. 게다가 단기전의 변수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류 감독은 잇단 투수 교체 실패로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업셋(순위 낮은 팀에 패하는 것)을 당했고 재계약에 실패했다.

나는 오늘 최적의 공을 던졌나

오늘 우리는 어떤 공을 던졌을까. 상황에 맞는 최적의 공을 던졌기를 바라지만 늘 그럴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던지고 난 뒤 후회해봐도 소용없다. 공은 이미 포수 미트에 박혔거나 허공에 떠 있거나, 둘 중 하나다. 속구냐 변화구냐의 선택. 그리고 선수 교체냐 아니냐의 선택. ‘어제’와 ‘내일’이 혼재되면 결정은 더 어렵다. 사람을 다루는 일이라면 감정까지 개입되니까 더욱 힘들어진다. 다만 내 선택이 끝내기 피홈런이 되지는 않기를, 재계약 불가 통보로 이어지지는 않기를. 궁극적으로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기를 고민에 고민을 더해 오늘의 선택을 이어가야겠다.

덧붙이기. 한국시리즈 6차전을 통틀어 가장 성적이 좋았던 SSG 선수는 최정이다. 최정은 6경기 동안 타율 0.476(21타수 10안타) 2홈런 9타점의 성적을 올렸다. SSG 6경기 총 타점(30개)의 30%를 혼자 생산해냈다. 하지만 MVP는 3안타(8타수)를 때려낸 김강민이었다. 돌이켜보면 2021년 한국시리즈 MVP도 3차전 때 선제 결승 솔로포를 터뜨린 베테랑 박경수(KT 위즈)였다. 당시 박경수가 한국시리즈에서 때려낸 안타 수는 고작 2개(8타수)뿐. 역시 인생은 ‘한 방’인 것일까.

김양희 <한겨레> 문화부 스포츠팀장·<야구가 뭐라고> 저자

*오랫동안 야구를 취재하며 야구인생을 살아온 김양희 기자가 야구에서 인생을 읽는 칼럼입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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